*아 드디어...! 쓰고 싶던...! 소재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현대 물이고, 릭 말투가 조금 다르니 주의해 주세요 ㅠㅠ...(어캐든 해 보려 했는데 잘 안되었던...부분)
[자~. 우리 모두 꼬마 물개 친구들에게 인사해 볼까요?]
투명한 유리벽 너머.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서둘러 작은 새끼 물개, 리온이 앞장설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기는 수심 5m. 푸르디푸른 바다보다 훨씬 좁은 공간. 그럼에도 생명이 숨 쉬는 곳.
리온은 그 자리에 서서 나의 지휘에 맞추어 재롱을 부리기 시작했다. 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추었으니 이 정도는 문제없음. 녀석의 지느러미가 기분 좋은 듯 퍼덕거리기 시작했다. 나 또한 수중 장비를 끼고 있기 때문에 불편했지만, 녀석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아, 저도 모르게 웃어 버렸다. 나의 산소 방울이 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올라가는 것이 보여 잠시 거기에 시선을 준 사이, 재롱이 끝난 녀석이 내 코앞으로 다가와 콧잔등에 제 코를 비볐다. 그것이 신기한 듯,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들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에 리온과 함께 수족관 내벽에 바짝 붙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아이들은 웃었고, 오늘도 나와 리온의 합동 무대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여기는 수심 5m. 푸르디푸른 바다보다 훨씬 좁은 공간. 그럼에도 생명이 숨 쉬는 곳.
나는 아쿠아리스트다.
1.
“오늘도?”
“하하.”
나는 그저 웃으며 문턱에 기대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수조에 들어가려거든 수중 장비는 꼭 하고 들어가. 알겠지?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는 선배의 말에 나는 알겠다 말하며 서둘러 그의 등을 떠밀었다. 여기서 지낸 지 벌써 5년의 세월이 지났는데. 이제는 익숙해져서 잔소리를 안 할 것만 같았던 선배는 그래도 연신 가는 내내 뒤를 돌아보며 잔소리를 퍼부어 주고서야 차에 올라탔다. 가만히 그 뒤로 손을 흔들자 시동 거는 소리와 함께 헤드라이트가 쨍한 빛을 내며 앞길을 비춘다. 이내 부드럽게 소리를 내며 지나가는 차의 모습에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드디어 갔구나. 나는 서둘러 수조의 제일 윗면, 5층으로 올라갔다. 옆에 단정하게 걸려 있는 스쿠버 다이빙 장비들이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나는 늘 맨몸이 편했으니까.
“읏쌰.”
가볍게 준비 체조를 하고, 입고 있던 티셔츠를 벗어 던졌다. 헐렁하게 입고 다니던 청바지와 속옷도. 나체의 몸 위에 얇은 소재의 스노클링 바지를 입고 천천히 발목 한쪽을 담가 보았다. 열대어가 가장 잘 살 수 있는 최적의 온도 25도. 한가을이지만, 그리 못 견딜 만한 온도는 아니었다. 겨울에도 항상 이곳에 들어왔으니까. 크게 숨을 들이쉬고.
찰방 소리가 날 정도로 가볍게 입수했다.
눈앞의 풍경은 꽤 아름다웠다. 아무것도 끼지 않은 상태에서, 보이는 눈앞의 풍경이라 흐릴 수밖에 없지만, 흐린 시야에서도 아주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이동하는 모습. 그 사이에 가만히 서 있다 보면 마치 내가 온 것을 반기듯 내 주위를 방황한다. 꽤 귀여운 물고기가 가만히 내 손바닥을 스쳐 지나가는 때도 있으니. 지금은 아무도 없는 터라 관람객도 없으니 이런 차림으로 잠수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보기라도 한다면-.
나는 웃으며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보기라도. 한다면.
열대어로 가득했던 시야 너머에. 무언가 하얀 인영의 모습이 비쳐 지고 있었다. 뭐지. 누가 들어온 거지? 천천히 열대어들이 비켜주는 대로 앞으로 손을 뻗어 나아갔다. 얼마 안 가 딱딱하게 닿아온 유리벽. 내가 다가오는 것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피하지 않은 그 사람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유리벽 가까이 얼굴을 다가가 보았지만, 여전히 흐릿하고 뿌옇게 보이는 시야 탓에 제대로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다. 대충.. 이목구비는 달린 것처럼 보이니 사람은 맞는 것 같은데. 머리카락이 완전히 투명한 은색이었다. 게다가, 그 눈. 흐릿하지만 보였던 그 눈. 마치 지난번에 새로 들어왔던 열대어 베타와 똑 닮은 그 색에 나는 나도 모르게 손을 더듬어 앞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을 더듬어 보았다.
[톡.]
무언가 작은 소리와 함께 유리벽을 두드리는 것 같아 그쪽으로 시선을 주니 상당히 가늘고 긴 손이 나를 따라 하듯 내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겹쳐 놓은 것이 보였다. 어쩐지 그 온기가 손바닥으로 느껴지는 것 같아 웃어버리자 그 인영이 내 얼굴 쪽 근처로 다른 손을 가져다 대곤 유리벽을 문지르듯 엄지 손을 움직이는 것에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누굴까.
누굴까, 정말. 여자? 남자? 머리카락은 정말 길던데. 아니면 유령일까?
망상도 잠시. 금세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선배 말을 듣지 않은 것이 어찌나 안타깝던지.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유리벽 너머의 인물을 잠시 주시하곤 위쪽으로 천천히 헤엄쳐 나갔다. 숨이 부족해서 죽을 수는 없으니. 그러나 너무 궁금했다.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 서둘러 물 밖으로 빠져나와 물안경을 쓰고 다시 입수하여 그 사람이 있던 자리에 가 보았으나, 텅 빈 아쿠아리움의 한적스런 모습밖에 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꽤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유리벽 너머를 바라보았다.
2.
“안녕하-.”
“선배!!!!”
나는 다짜고짜 선배의 멱살을 부여잡고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는 오자마자 격하게 반겨주는 나의 반응에 적잖게 당황하며 이..이거 왜 이래? 하고 말을 더듬기까지 하며 나와 주먹으로 잔뜩 잡혀 구겨진 자신의 셔츠를 번갈아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지금 어제 그 사람이 누구인지가 더 급했다.
“선배가, 어제저녁에 아쿠아리움에 다시 들렸습니까?”
“릭. 이거 좀 놓고 말해.”
“얼른. 중요한 일입니다.”
“아니, 무슨..!! 너 내가 가는 거 보고도 이러냐!! 내가 다시 오긴 왜 와!”
그의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에 나는 허탈하게 그의 옷깃을 부여잡은 손을 놓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아쿠아리움에 무단으로 맨몸으로 들어갔으니 그 점에 대해서 혼날까 걱정되어야 하는 게 맞는데. 그 이상으로 그 벽 너머의 사람이 궁금했다. 단단한 유리벽 하나. 그 사이로 느껴진 그 미묘한 감정이 나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으니까. 일평생 바다 하나만을 좋아하던 그 기분이 그 사람에게 느껴져 버렸으니까. 허탈함에 나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고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왜. 어제 누가 왔었어?”
“아.......”
“관계자 외에는 들어오지도 못하는데. 유령이라도 본 거 아니야?”
그런가. 요즘 자주 물속에 들어가서 기가 허해지기라도 한 탓일까. 부드럽게 내 머리카락을 한번 매만져 준 선배는 웃으며 그대로 탈의실로 들어갔다. 오늘은 좀 더 특별한 먹이를 준비해 줘야겠다며 나의 일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 모습에 오히려 더 한숨이 나왔다.
그건 그저, 단순한 환영에 불과했던 것인가.
3.
“야. 유령도 봤다는 애가 무슨 오늘도 아쿠아리움에서 자.”
“그거랑 상관없이 여기가 편해요.”
“못 말리긴....... 감기나 조심해라. 나간다.”
예, 들어가세요. 나는 어제처럼 또 한 번 연신 내 걱정투성이인 선배의 뒷모습에 인사해 주곤 깊은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흰 돌고래 쪽이나 한번 봐야겠다는 심산으로 다시금 준비 운동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커다란 수조에 딱 두 마리뿐인 흰 돌고래 두 마리. 녀석들의 몸을 한번 쓰다듬어 주고 있자니, 민감해진 아이들이 갑자기 어느 지점으로 급하게 헤엄치기 시작한다.
‘뭐지.’
뭐라도 있는 건가. 물속에서 녀석들의 긴 울음소리가 울리듯 파고드는 것에 귀를 잠시 막고는 서둘러 수족관을 한 바퀴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또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바로 옆 열대어 수족관 쪽으로 향하는 그 인영. 나는 서둘러 그가 이동하는 곳을 따라가 유리벽을 통통 두드렸다. 그러자 우뚝 서서 이쪽을 바라보는 그 사람. 나는 어제처럼 유리벽 앞에 양손을 대고 둥실 거리며 섰다. 또다시 겹쳐지는 손. 마치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듯 자연스럽게 내 손바닥에 자신의 손바닥을 마주 보게끔 하는 그의 행동에 웃어버리건 손을 잡고 싶어 주먹을 움켜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자 그도 그것을 따라 하는 듯, 느릿하고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아.
조금씩 심박 수가 빨라지는 것이 느껴져 나는 유리벽에 Who, R, You. 하고 영어를 반대로 뒤집어써 내려 갔다. 그러자 유리벽 건너편에서는 don’t mind. 란 짧은 답변이 오고야 말았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고 근처를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다니는 흰돌고래 한 마리에게 다가오라 손짓한 뒤 총을 쏘는 시늉을 하듯, 한 손으로 다른 손을 받치고 받쳐진 손으로는 총 모양을 한 채 ‘빵’ 하고 입 모양을 만들어 그에게 총을 쏘았다. 그러자 옆에 흰 돌고래가 가벼운 도넛 모양의 물기둥을 만들어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쏘는 것에 웃어 보이자, 벽 너머의 사람이 웃는 듯. 어깨를 잘게 들썩이는 게 보인다.
‘funny.’
재미있군.
그는 그렇게 유리벽 너머로 손가락을 쓱쓱 그리며 글자를 보냈고 나는 그 앞에 다시 돌아와 유리벽에 양손을 짚고선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대고 장난스럽게 입술을 짧게 유리벽 너머로 맞추었다. 그러자 벽 한 칸 너머로 이쪽을 뚫어지라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입 맞춰 보고 싶다.
이런 말을 했다간 반대쪽이 놀라서 도망갈지도 모르는데. 무슨 자신감이 난 것인지, 말도 안 하고 유리벽에 입을 맞춘 나. 그래도 딱히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늘은 물안경을 가지고 올걸. 그러면 유령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봤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느릿하게 입술을 유리벽에 대자, 어두운 음영과 함께 반대쪽 유리벽 너머로 정확하게 내 입술의 위치에 입을 맞추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난생처음, 가까이에서 본 그 모습. 정확하게 나를 응시하는 파란 눈에 나는,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4.
“...야. 정신 차려. 오늘 사장님 오기로 했단 말이야.”
“아. 네.”
“허, 참. 어제도 그 유령 봤냐?”
“선배. 그거 진짜 사람 같아요.”
웃기고 있네. 물고기 유령이라면 모를까. 사람 유령이 있단 얘긴 네가 처음이다, 야. 선배의 핀잔에 나는 그의 옆에 나란히 걸어가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물론 덕분에 옷도 안 입고 들어갔느냐며 꼴 밤 한 대를 퍼먹었으나. 어느새 아쿠아리움에는 수많은 손님들로 북적였고, 나는 선배와 함께 순찰하며 나란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요 화재 거리는 어제 그 유령. 차마 유령이랑 키스했다는 이야기까지 하면 제대로 정신병자 취급을 받을 것이 뻔해 중간에 입을 다물어 버리자 선배가 ‘아 사장님 저기 계시네.’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야. 근데 유령이 어떻게 생겼는데.”
“하얀, 머리카락에 장발이고요. 엄청나게, 푸르디푸른 눈동자에.”
“.........”
무언가 불길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선 사장이라는 사람이 있는 곳을 쳐다보는 선배의 시선을 따라 이동하며 나는 말끝을 흐렸다.
“엄청나게, 아름답게 생긴.”
“........”
5m. 내가 잠수하는 거리와 똑같은 그 길이. 정장을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던 그 남자가 이내 뒤를 돌아보고 나를 마주하는 순간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사람을 쳐다보았다.
“야. 일단..... 상황은 알았고. 얼른 인사해라. 우리 아쿠아리움, 사장님이신 벨져 홀든 님이야.”
“........”
나는 느릿하게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고개를 대충 까닥이며 인사를 해 버렸다. 그러자 그의 표정이 제법 풀린다 싶더니 내뱉는 말에 나는 확신하고 말았다.
“그 인어로군.”
“........”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릭 톰슨이라 했나. 꽤 오래 일했다 했는데. 장비를 갖추는 습관 정도는 키우도록. 보기는 좋았는데, 안전도 생각하는 편이 제대로 상식이 박힌 아쿠아리스트지.”
돌이킬수 없는 바닷속에 빠져버렸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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