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쓸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썼는데 결국... 끝이 또 흐지부지해서.. 원래 수위씬까지 넣으려 했으나 느낌(??)이 오지 않아 그만 뒀습니다...흑흑
*'미 완 결' 본 입니다만 그냥 올려 둡니다.
-1편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사람에게는 크게 수면욕, 색욕, 식욕, 재물욕, 명예욕이 있다고들 한다. 그중에서 가장 인간의 본능적인 부분은 수면욕, 색욕, 식욕이리라. 본능적이란 것은 그만큼 무의식적으로, 나도 모르게. 그리고 아주 당연히 취해야 하는 것이라고 몸이 인지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이 다섯 가지 욕구를 모두 제대로 취하지 않거나, 관심도 없다는 듯 하는 사람을 한명 알고 있다.
내 옆에 누워서, 나를 끌어안고 깊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반복하는 사람. 고른 숨소리는 그가 꽤나 깊은 잠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그의 이름은 벨져 홀든.
거대한 집안을 배경으로 둔 한 남자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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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병을 간호하는 간호인으로 들어온 지는 벌써 여섯 달이 지났으나, 간호라기보다는 그가 원할 때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하는 일종의 수면제 역할을 해 주는 것이 다였다. 그의 일과는 항상 같았고, 변함이 없었다. 어떻게 보면 저기 저 돌아가는 시계와도 같은 느낌이랄까. 6시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한 그는 정확하게 8시 20분에 식사를 한다. 왜이리 식사를 늦게 하냐 물어 보니, 그가 항상 잠을 못자기 때문에 아침에 지끈거리는 두통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메이드의 말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쭉 이어지는 서류정리. 점심시간 12시를 제외하고선 서제에서 나올 생각이 거의 없는 그의 입은 항상 다물어져 있었다. 그만큼 말을 아끼는 사람인걸 눈치 챈 나는 항상 그의 옆에서 같이 조용히 책을 읽곤 했다.
덕분에 그의 서제에 있는 책들은 대부분 다 읽을 수 있었지만. 시간과 공간이 멈춘 듯 한 그 조용한 공간에서 그와 나 사이만큼 어색한 것은 없으리라. 저녁 6시가 되어서야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가볍게 산책을 한다.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속을 달빛 하나에 의지하며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좇아 늘 한걸음 뒤에서 걸었다. 그리고 저녁 9시에 칼같이 이루어지는 숙면. 그는 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늘 내 옆에서 눈을 감는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평온해 보였으니까.
“........”
정말 웃기지 않은가. 그는 이제껏 여인을 안은 적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고 식사로 욕구를 푸는 성격도 아니었다. 항상 정량. 몸을 쓸 만큼 정량만 먹는 그의 몸은 항상 다부져 있었고 크게 높은 관직을 얻고 싶어 하는 귀족 나으리 무리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생활을 원하는 사람마냥 늘 그렇게 서 있었다.
“그래도 좀 사람이 인간다운 면이 있어야지. 늘 같은 생활이라니.”
나는 샤워를 하다가 고개를 팍 들었다. 그래. 늘 같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자. 그러면 그의 불면증도 어쩌면 조금 호전되지 않을까? 부푼 기대에 찬 나는 비누거품을 잔뜩 묻힌 조그만 천으로 신나게 몸을 닦아 내었다.
정확하게 그와 같이 동거를 하며 그의 옆에 있는지 187일만의 일이였다.
‡
“.........”
“오, 일어났소?”
“메이드랑 집사는 다 어디 갔지?”
나는 눈을 데록 굴렸다. 이미 그 사람들은 잔뜩 짐 가방을 싸매고 각자의 집에 오랜만에 머물게 되었으니까. 본 집에 돌아가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에 부푼 그 사람들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물론 그래도 안절부절 한 그의 유모가 자꾸 나에게 주의사항과 벨져, 그가 못 먹는 음식과 가리는 것들. 불편하게 여기는 것들에 대해 상세하게 적어 준 뒤 한참을 문 앞에 서 있다 간 것을 빼면.
“여행을 갔소.”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 다시 다 오라고 해. 집 주소를 알려줄 테니 편지를 써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등진 체 다시 방 안으로 들어서려 했다. 나는 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았다. 한창 식사를 차리고 있었는데 한 숟가락도 들지 않고 그냥 방으로 들어가는 그를 가만 둘 수는 없었다. 어울리지 않던 에이프런 앞치마는 등 뒤에 숨기고 그의 손을 붙잡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대 허락을 맡지 않은 건 내 잘못이지만, 가끔 그들도 휴식이 필요하잖소. 그러니 그대도 오늘은 주말인 만큼 쉬는 건 어떻소.”
“.........”
대신 여기 청소라든지, 가벼운 집안일은 나도 할 줄 아니까. 당분간만 좀 참아 주시오. 내가 잘못했소. 그대가 항상 같은 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석연찮아서. 나는 말끝을 웅얼거리며 점점 기어들어가듯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말하는데도 그의 흉흉한 기운이 거두어지지 않을게 피부에 닿는 듯 해 목도 움츠리고 눈을 힐끔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가 다시 바닥을 내려보았다를 반복했다. 나의 모습에 그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이내 다시 식탁에 앉고는 ‘식사나 가져와.’ 하고 모든 걸 포기했다는 목소리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나는 그제야 환하게 얼굴을 피고 서둘러 부엌에서 갓 만든 핫케익을 자신 있게 내놓았다.
“…….이게 뭐지?”
좀 타고, 곰돌이 모양으로 귀엽게 만든. 아니 어떻게 보면 약간의 피카소의 그림과도 같아 보이는 그 핫케이크를.
“보면 모르겠소? 핫케이크잖소.”
“핫? 핫의 의미를 모르는 건가. 이건 버닝(Burning)이잖아. 버닝 케이크.”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 핫케이크를 한번 포크로 푹 찌르고는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탄 것 같지는 않은데. 나는 모든 것이 겉보기만큼 이상한 것은 아니라며 그에게 먹어보길 종용했고, 그는 결국 마지못해 한입을 포크로 솜씨 좋게 조각내어 입안에 넣었다.
“......아.”
입 안에서 콰직 소리만 안 났으면 모든 게 완벽했을 텐데.
우드득거리며 그의 입에서 조용히 씹히는 달걀 껍데기의 소리에 나는 침묵을 고수했다. 그는 우두둑우두둑 소리를 더 강조하듯 내며 꼼꼼하게 핫케이크를 씹고는 뱉어 낼 줄 알았건만 기어이 삼켜내고 말았다. 그리고 이제껏 본적 없는 아주 환한 미소로.
“요즘은 달걀 껍데기 토핑 핫케이크가 유행인가보군. 씹는 맛이 그만이야.”
나에게 살기를 흘렸다. 내가 과연 잘 한 짓일까. 땀방울과 핫케익 소스가 담긴 조그만 그릇 입구 부분에 달랑거리듯 붙어 있던 소스 한 방울이 동시에 떨어졌다.
‡
“하. 이정도면 대단하다 쳐 주지. 그만 하는 게 어때. 요리면 충분하지 않나.”
“싫소. 나도 남자인데 이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검 하나 휘두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나는 그의 뒤를 쫓아 기어이 그가 가끔 들어오는 조그마한 펜싱 연습장에 따라 들어와 검 하나를 아무렇게나 집어 들었다. 늘 멀리서만 봤는데 실제로 쥐니 가볍고, 게다가 둥근 원기둥 모양인줄 알았던 칼날은 직 사각형의 뿔 모양이란 사실에 조금 놀랐다. 끝이 뭉툭하게 무언가 막아 놓은 것처럼 되어 있어 적어도 찔려도 아프지는 않게 생긴 펜싱 검으로 손바닥을 톡톡 두드려 보다가 이내 자신 있게 그를 향해 이제껏 멀리서 본 그의 모습을 따라 검을 살짝 휘둘러보곤 만족스럽게 웃으며 그에게 펜싱 검을 겨누었다. 요리조리 바들거리며 휘던 검이 파르르 떨리며 그를 향해 뾰족한 입구를 세우자 그가 한숨을 쉬며 보호구도 착용하지 않고 셔츠 하나에 바지. 늘 입던 평복 차림으로 검을 들었다.
“플레뢰는 검이 잘 휘는데 네가 다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못할 건 또 뭐람.”
덤비시오. 나는 자신 있게 그에게 손가락을 까딱 거렸고, 그는 한숨을 푹 쉬더니 이내 자리를 박차듯 도약해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왔다. 눈을 크게 뜨고 겨우 펜싱 검으로 그의 검을 베어버리듯 막아 내었지만, 그 다음이 더 문제였다. 다가오는 그를 피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뒷걸음 친 몸의 무게가 뒤쪽으로 쏠려 뒤로 넘어갈 듯 안 넘어갈 듯 종종걸음으로 뒷걸음질 치는 나를 격하게 몰아붙이듯 요리조리 검을 벌처럼 쏴대는 그의 행동에 정신이 오락가락 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하.”
그는 그게 또 가소로웠는지 한쪽 입 꼬리를 올리며 더더욱 나에게 바싹 다가왔다. 훅 끼쳐오는 그의 코롱 향기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아버리자 아슬아슬하게 버티던 몸이 결국 제 다리에 제가 꼬여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대로 지는 건가 싶어 이를 악 물고 다가올 고통에 대비를 하자, 턱 소리와 함께 무너진 몸을 붙잡는 손길에 눈을 번쩍 떴다.
“자......”
그는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 몸을 뉘이고는 내 위에 올라타듯 양 무릎을 내 허벅지 바깥쪽에 두곤 자신이 가지고 있던 펜싱 검의 칼날을 손에 쥐더니 쿡 내 이마를 찌르기 시작했다.
쿡쿡. 쿡.
“한 번, 두 번.”
“아. 아!”
“음식 태우지 말고.”
쿡.
“주제를 알며 덤비고.”
쿡.
“검을 들면 눈을 감는 게 아니란 것도 알아둬라.”
쿡쿡쿡쿡.
이마에 톡톡톡 다가오는 아픔에 나는 고통스럽게 악악 거리기만 하다가 울컥 하는 마음으로 여전히 손에 쥐고 있던 내 검으로 정확하게.
“!!”
“흐압!”
그의 중요 부위를 찔렀다. 그리고 자신 있게 외쳤다.
“플레뢰는 몸통부위만 유효 부위니 내 승리오!!!”
그리고 그는 바들거리며 내 몸 위에 올라다 몸을 구부렸다. 패배와, 고통의 쓴맛을 보며. ...조금 미안했긴 했다.
…….그가 한참을 그렇게 내 위에서 바들거리고 있었으니까. 우는 건지 웃는 건지. 나는 한참이나 그의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얼굴을 보며 사과를 했어야 했다.
‡
“…….미안하오. 나도 모르게 승부욕이 붙어서……. 하긴 급소를 그걸로 찔렀는데……. 아들레미는 괜찮...소?”
또다시 시작된 눈치작전. 말없이 한참 뒤에 그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고 검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 둔 뒤 서제로 들어왔다. 급하게 그의 뒤를 따라가며 그를 불러봤지만, 꼿꼿하게 뻗은 몸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엄청난 보폭으로 엄청난 속도를 더해 걸어가는 그의 뒤를 따라 서제로 들어가려 했으나 거의 문에 부닥칠 뻔한 속도로 내가 들어오지도 못하게 문을 쾅 닫은 그는 바로 문을 잠가 버렸다. 나는 주인 잃은 강아지 마냥 낑낑거리며 그의 서제 문을 노크하며 용서를 구했으나, 그의 굳은 자존심은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다가 12시가 다되어 가는 손목시계를 보고 결심을 굳히고는 서둘러 정원으로 달려 나갔다.
“좋아.”
체력 하나는 끝내주게 자신 있으니까. 거칠거칠한 벽돌을 붙잡고 조심스럽게 암벽 등반을 하듯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까스로 담쟁이 넝쿨까지 붙잡아 가며 그가 있는 서제의 창문턱에 겨우 손을 얹었다. ...얹은 것 까지는 좋았는데. 키가 닿지 않아서 한참을 끙끙거렸다. 뛸 수도 없고. 다른 쪽 손으로 무언가 잡아야 힘을 줘서 창문으로 팔을 올릴 수 있는데.
“........”
조금만 더. 나는 조금씩 까치발을 들고 다른 쪽 손을 부들거리며 뻗어 보았다. 조금만 더! 고작 해봤자 2층 높이인데 창문턱이 뭐이리 높은지. 눈을 찡그리며 겨우 양 손을 창문턱에 올리는 순간 발이 미끄러졌다.
“으악!”
그리고 발칵 열리는 창문. 어이없게도 나를 끌어 올려다 줄 수 있을 유일한 구세주인 그의 손이 열어젖히는 창문으로 인해 나의 아슬아슬하게 달린 손가락들이 밀려 창문턱에 매달려 있던 나는 그렇게 바닥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떨어지는 순간 본 것은. 아주 놀란. 정말로 놀란 그의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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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나?”
“........아니 그러게 문 좀 열어주지 그랬소.”
“하……. 말을 말지. 내가 이야길 통하는 사람이랑 대화를 해야 뭘 하던 말든 할 텐데.”
그는 한숨을 쉬며 내 옆에 앉았다. 고작해봤자 2층 높이. 결코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그대로 떨어진 등짝 부분이 부드러운 흙 부분이라서 다행이었지 조금만 더 비껴나간다면 화단의 돌에 머리가 그대로 찧었을지 모르는 일이었으니. 그가 서둘러 달려와 나를 부축하고 의사를 불러서 다행이었지, 하마터면 영영 허리는 못쓰게 될 줄 알았다. 그렇게 크게 다친 것도 아닌데 정말 놀란 듯 한 그의 모습과 행동을 보아하니 웃음이 나와 푸흡 하고 웃자 그가 눈을 희번득 거리며 나를 째려보았다. 그 모습에 헛기침을 하며 웃어 보이며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가 이 정도에 못 버틸라고. 그렇게 걱정됐소?”
“…….걱정은 무슨.”
에이. 이 봐봐. 그대 눈이 이만큼 커졌소. 나는 주먹을 들어 보이며 그에게 웃어보였다. 그는 나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헛웃음을 내며 의자에서 일어나 내 침대 옆에 걸터앉았다. 벌써 점심시간이 한창이나 지났는데. 식사를 차려야 하지만 허리의 고통이 좀처럼 가시지 않는 것에 미간을 찌푸리며 허리를 주물 거렸다.
“…….나의 계획이 이렇게 물거품 되고 말다니.”
“무슨 계획.”
“벨져 홀든의 새로운 하루 말이오.”
그대랑 좋은 책이나 같이 보면서 이번 시간을 때우고 끝내주게 맛있게 릭 톰슨 특제 샌드위치나 만들어 주려 했는데. 커피를 좋아해서 늘 샌드위치 하나를 만들고 들고 다녔거든. 점심시간에 커피 한잔이랑 샌드위치 하나 들고 공원에서 먹으면 정말 맛있소.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아픈 허리를 부여잡고 그가 앉은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이야기 하자 그는 계속 해보라는 듯 내 눈을 쳐다보았다. 잘 생긴 얼굴이 이쪽을 바라보는 것에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모든 게 다 실패했소. 핫케이크는 엉망이었지.”
“꽤 먹을 만했다.”
“…….거짓말은. 그대 펜싱에서도.”
“…….그건 꽤 아팠다. 웃겨서 고개 숙인거지만.”
한 번도 거길 노려진 적은 없어서 말이지. 나도 모르게 쫓는 것이 재미있어 실수했지. 그는 선선히 인정하며 날 보고 웃었다. 난생 처음 보는 그의 인간다운 미소에 놀란 눈을 해 보이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금세 표정을 굳혀 버렸다. 아쉬워라.
“아니, 웃어도 되는데.”
“…….됐다.”
광대놀음도 아니고. 그는 그렇게 말하며 조금 흘러내린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그의 다정한 행동에 어쩐지 마음이 풀려 웃어버렸다가 금세 표정을 고쳐버린 그의 얼굴을 곰곰이 떠올려 보고는 쓸모없는 입을 열었다.
“그대, 그대는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자는 거야 원래 못 잤다가 근래에 좀 자니까 수면욕은 그렇다 쳐도……. 딱히 성 욕도 있는 것 같지 않소. 조금 인생에 여유를 두고 살면 어떨까.”
“하?”
“.......”
말실수를 한 건가. 눈을 깜빡이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어이없다는 눈으로 성욕이 없다고? 하고 되물어 보기 시작한다. 아, 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가. 나는 그를 쳐다보고 눈을 깜빡이며 대꾸했다. 그대가 연인이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말이오. 혈기 왕성한 귀족들은 보통 이때쯤 결혼해 가정을 꾸리지 않소? 나의 말에 그는 한숨을 푹 쉬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거칠고 투박한 손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느낌에 눈을 살짝 감았다 뜨니 그는 한참이나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연인이란 것이.”
“.......”
“꼭 여자 한정일 필요는 없지.”
“…….설마 그대.”
글쎄. 그렇다고 남자만 좋아하는 취향은 아니다. 그저 연인에 성별을 두는 것 자체가 웃겨서 그런 것일 뿐. 그는 그렇게 말하며 ‘그리고 네가 이렇게 애쓰지 않아도 이미 내 인생은 충분히 바뀌어 있다.’ 라고 대답하며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또 다시 그의 손에서 기분 좋은 코롱 향이 나기 시작했다. 바람 향기 마냥 금방 흐드러지는 그의 향기에 나른하게 졸음이 밀려와 그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꾸벅거리며 졸고 있으려니 그가 이불을 더 단단히 덮어 주는 것이 느껴진다. 그리고 무언가 졸린 내 눈꺼풀 위로 따듯하고 습한 무언가가 닿았다가 떨어지곤, 그대로 입술에도 닿아 숨을 앗아갔지만. 무거운 눈꺼풀이 떠오르지 않아 차마 볼 수 없었다.
그것이 입술이라고. 그렇게 생각한 나의 상상이 현실이 될까봐.
무서워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심장 한켠이 조금씩 누군가 북을 두드리듯 쿵쿵 울리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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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뒤에 눈을 뜬 것은 저녁 무렵 이었다. 아무것도 켜지지 않은 캄캄한 어둠이 내린 것을 보니, 그것도 꽤나 늦저녁.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를 먼저 찾았지만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것에 한참을 침대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이불을 걷어내고 맨 발로 바닥을 걸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다가간 창문가에는 그가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역시나. 한순간의 습관이 그렇게 순식간에 바뀌는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지만. 서둘러 나는 간편한 단화를 신고 아무렇게나 웃옷을 걸친 뒤 밖을 나섰다. 정원에 서 있을 그를 생각하며.
어두운 복도를 지나서, 정원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돔 앞에서 조심스레 크게 숨을 들이 쉬자 밤에 숲에서나 맡을 수 있는 축축한 녹음 향기가 들어왔다. 괜히 날씨가 더 쌀쌀해 진 것 같아 팔짱을 끼고 몸을 움츠리고는 그가 있던 곳을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으나, 어느새 저만치 떨어진 그의 뒷모습에 놀라며 거의 달리다 시피 그를 향해 움직였다.
‘왜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소?’
그렇게 물어볼까. 그에게 바쁘게 다가가던 발걸음이 천천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이상하지 않을까? 우린 서로에 대해 아는 것도 없는데. 고작 입 한번 맞추고 심장이 조금 두근거린 것, 아니 조금 많이 두근거리던 것 하나로 지금보다 더 발전한 사이로 나간다는 것이 말이다. 달빛 한줌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은 머리카락을 눈부시게 반짝이도록 비추었다. 참 멀기도 하지. 이제 남은 발걸음은 채 열 걸음이 되지 않는데 이렇게 거리가 멀도록 느껴진다니. 한 몇 억 광년 떨어진 우주 속에 서 있는 것 같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이 아득하게 멀어질 때 즈음, 고민에 빠져 고개를 숙인 내 풍경에, 나의 단화 앞 축과 나란히 마주보듯 보이는 가죽구두가 보인다.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니 달빛보다 환한 그 사람이 눈에 들어와 눈살을 찌푸렸다. 사람이 이렇게 완벽하게 생길 수 있나.
“벌써 허리가 괜찮은 건가? 달밤에 산책도 할 정도로 말이야.”
“오, 나는 튼튼하거든.”
어색하게 웃으며 허리와 전혀 관련 없는 알통을 만들어 보였다. 나의 너스레에 그 또한 픽 웃으며 자신은 좀 더 걷다가 들어가겠다 하며 나를 돌려보내려는 그의 옆에 나란히 붙어 기어이 산책을 같이 한다고 우겼다. 그가 괜찮겠냐는 눈빛을 보냈지만 나는 그 눈빛을 무시하고 앞을 보며 걸어 나갔다. 공기가 좋은 곳이라 그런지 반딧불이가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며 정원 곳곳을 수놓듯 비추는 것이 꽤나 신기해 한참을 쳐다보았다. 내가 사는 곳에는 산업 혁명이다 뭐다 하며 좀처럼 이런 풍경은 보기 힘들어졌는데.
“아이가 따로 없군.”
“뭐, 나말이오?”
“그래.”
반딧불이 몇 마리 가지고 그렇게 들 뜬 표정을 짓는걸 보니. 그는 그렇게 말하며 공중에 잘 날고 있던 반딧불이 한 마리를 솜씨 좋게 낚아 채 내 눈앞에 반딧불이를 가둔 주먹을 내보였다. 정말 잡은 건가? 사실 잘 안보였으나 그의 행동을 보아하니 정말 잡은 것 같았다. 궁금해 죽겠네. 저 손 안을 펴보면 반딧불이가 날아오르려나? 모든 궁금증을 뒤로 하고 짐짓 그에게 ‘난 이런 거 별로 궁금하지 않은데.’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새초롬하게 그를 흘겨보며 말을 이었다.
“나보고 어린애 같다더니 그걸 잡은 그대는 뭐, 아기인가 보오.”
“…….하. 별로 가지고 싶은 건 아닌가 보군.”
그럼 그냥 놔 줘야지. 그는 그렇게 말을 하며 몸을 돌려 주먹을 피려 하는 것을 나도 모르게 그의 어깨를 툭 잡고 억지로 그의 몸을 돌려 버렸다. 나와 반대쪽을 보던 그가 반동으로 돌아보며 바로 내 눈앞에 약속이라도 한 듯 주먹을 펴 보였다.
“에.”
“........”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는 풋 하고 바람 빠진 소리를 내서 웃고는 한참이나 연상인 내 머리카락을 흐트러트렸다. 얼빠진 표정으로 멍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그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그것마저도 웃긴 건지 하하 거리며 자꾸만 웃고. 애초에 그가 웃는 모습을 본 것이 처음이라 그 모습이 더 보고 싶어 쫓아 가는 거지만.
“어휴, 내가 그냥 일 그만두고 말지.”
“뭐?”
그는 내 말에 웃던 얼굴로 고개를 돌리고는 물어보았다. 그의 표정에서는 어딘가 복잡하고도 미묘한 감정이 섞여있었다. 나는 그를 보고 다시 말했다. 일 그만 둔다 했소. 그렇게 다시 말을 하고 나니 그가 고작 반딧불이 하나 때문에? 하고 반문한다.
“설마 그것 때문이겠소.”
“그럼 뭐가 불만이지.”
그는 그와 나 사이에 떨어졌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훅하고 다가온 밤바람에 맡아진 그의 향이 코끝을 간질인다. 요 며칠 사이에 그와 같이 지내고, 같은 잠자리에 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옷 곳곳마다 그의 향이 내 체향을 덮어버렸다. 오죽하면 메이드들도, 그의 유모라던 그 여인도 나에게서 그의 향이 난다고 했을까. 나는 눈높이를 마주하는 그를 보고 웃으며 ‘그냥. 이제는 그대가 나 없어도 잘 지낼 것 같아서. 벌써 여기에 온 지도 여섯 달이 지났고. 그대도 이제 혼자 있을 수 있지 않겠소?’ 하고 대답해 주었다.
“나는.”
그는 한참을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네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해.”
“........”
“처음 네가 옆에 있었을 때, 난생 처음으로 깊은 잠이란 것을 자 보았는데.”
“그대에게 도구로 남고 싶지 않소.”
나는 그의 말을 다 듣지 않고 단칼에 잘라 내었다. 반딧불이 한 마리가 우리 사이를 가로 지나가고, 밤을 울리는 귀뚜라미 소리가 잔잔해 졌다. 그는 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잘생긴 미간을 찌푸렸다. 미간마저 잘생겼다니. 참으로 웃기지. 잠결에도 만져보지 못했던 그의 얼굴에 머뭇거리며 손을 올려 보았다. 뺨 한쪽을 손바닥으로 덮자 그의 눈에 이체의 눈빛이 스친다. 그 스스로도 혼란스러워 하는 것이 보이는데, 그가 답을 내릴 수 있을까.
“꿈에서.”
“.........”
“꿈에서 그대가 무엇을 했는지 아시오?”
나는 천천히 그의 뺨을 덮은 손의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부드러운 입술을 매만졌다. 한번 손가락으로 꾸욱 하고 눌렀다 땐 그의 아랫입술에 혈색이 확 돌아와 더 입술이 붉어져 보이는 것에 희미하게 웃어보이고는 그대가 입술로 이렇게. 입 맞춰 주었소. 하고 대답하며 그의 뺨을 다시금 매만졌다. 그리고 갈 곳 잃은 그의 한쪽 손목을 붙잡아 얇은 내 셔츠 한 자락만 덮은 내 가슴 위에 그의 손을 얹었다.
“꿈인걸 아는데도 이렇게 되었어.”
두근거리면서 점점 빨라지는 심장 소리가 그에게 전달이 될지 모르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그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힘을 더 주었다. 차마 내 입으로 좋아한다고 말 하진 못할 것 같아서. 한참이 지나서야 그의 손목을 놔 주고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아마도 그는 대답하지 못하겠지. 이 공간에 당신과 나 둘 뿐이고, 엿듣는 것이라곤 저 풀벌레들뿐인데. 그래도 대답 못하겠지. 내가 좋아하는 것은 너다. 그렇게 말이야.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이렇게 잔인했다. 6달 동안 같은 침대를 쓰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 놓고. 때론 깊게 잠들지 못하는 그가 안쓰러워 웃통을 벗어 던지고 그를 끌어안고 자고. 내 품에서 안도하고 잠이 드는 그 모습을 보는 동안 사람의 얄팍한 감정이 얼마나 물들었는지. 그를 좋아한다고 순순히 인정하는 나조차도 그대에게 당당하게 좋아한다 말 못하는데. 그대라고 별수 있겠어.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희미하게 웃으며 가슴 위에 올려진 손을 내리고 돌아섰다.
“릭.”
난생 처음 그의 입에서 들어본 내 이름. 아, 그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저런 음으로 불리는구나. 내 이름이 저런 느낌이었나. 수많은 감탄과 찬사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찰나였다. 그가 내 뒤로 다가와 내 목덜미를 붙잡고 정수리에 입을 맞추는 것은. 꽃잎 하나가 머리에 잠깐 앉은 줄 알았는데.
“꿈이 아니라면. 네가 믿어 줄 텐가?”
“......그대가 내 이름 부르는 지금 이 순간도 꿈같은데.”
겨우 뻣뻣하게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내가 하던 모양새를 따라하듯 그가 내 뺨을 그의 손바닥으로 감싼다. 자연스럽게 감기는 그의 눈. 천천히 다가오는 그의 얼굴에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처음에는 그의 숨이 먼저 다가왔고, 그 다음으로는 숨을 빼앗을 정도로 부드러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내려앉았다. 천천히 입을 벌려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는 그의 행동에 살며시 눈을 뜨자 어느새 눈을 뜬 그와 눈이 마주쳤다. 매너 없긴.
“솔직히 말해봐. 그대 연인 없었지?”
“없었지. 그렇지만 이젠 다르지 않겠나?”
“무슨 자신감이오, 그건.”
“네가 허락할거란 자신감.”
오, 세상에. 내 연인은 일단 키스부터 잘 하는 방법을 알려줘야겠소. 나는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의 입술을 한 번 더 쫓았다.
…….뭐, 물론. 세상일은 아무도 모른다고, 그의 키스 실력과 밤..일. 실력이 비례하지는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하건데, 그가 밤일만큼 키스를 잘했다면 더 큰일 이였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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