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8. 20. 21:56
작성자
you. and. me.






간만에 글을 쓰려니 뭔가 이상하지만.. 투닥거리며 귀여운 벨져릭 커플을 보고 싶었슴니다.



1.


“좀 빨리 걸을 수 없겠나?”


“그대는 기러기랑 참새랑 다리 길이가 같다고 생각하시오?”


그는 코웃음을 치며 뱁새랑 황새를 말하고 싶은 거겠지 하고 말하며 나를 한번 뒤 돌아보았다가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평소에 다른 사람들이 걸음걸이가 느리다더니, 귀족 걸음이라며 한마디씩 하는 것이 기억나 버렸다. 세상 사람들 보시오. 저기 저 귀족 좀 보시오. 저게 귀족 걸음걸이다 이놈들아. 나는 준수한 걸음걸이지, 이 정도면. 저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비교하자면 미친 듯이 자전거를 촹촹거리며 밟고 있는 내 옆을 그가 비웃고 기차를 타고 전속력으로 달리는. 딱 그런 느낌이다. 구시렁거리면서 그의 뒤를 따라 걷고 있자니 그가 저 멀리서 갑자기 뒤를 돌아 말했다.


“딱히 참새 같지 않군. 그…….”


그는 내 배를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픽 웃으며 다시 앞길을 가기 시작했다. 아오, 진짜 확.


벨져호 기차는 자전거 평민 릭 톰슨을 거세게 치고 지나갔다.




2.


좀 많이 불편하지만, 한동안 그의 일을 도와주라는 토니의 말만 없었더라면 저자와 같이 일할 이유도 없었을 텐데. 지금이라도 당장 그에게서 벗어날 수 있지만, 복통이 올 때까지 그와 같이 다니는 것을 꾹 참고 다니는 이유는 딱 하나. 루사노 수도원에서 어깨를 관통당한 상처가 여전히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아려오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기술의 취약점인 ‘손’이 완전히 사용이 불가능하자 눈앞이 아득해지고, 난생처음 다가온 공포와 불안감은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지금도 가끔 손을 움직일 때마다 어깨 근육이 경련하는 듯한 느낌이 오는 것 같은데. 그때 그가 와서 구해주지 않았으면 그대로 과다 출혈이든 쇼크사든, 죽었으리란 건 분명했으니까. 빚진 것은 갚아주고 가는 것이 여행자의 미덕이라 생각한 나는 그 이후로 토니의 부탁에 따라 그를 따라다녔다. 딱히 전투에서 내가 활약하는 일은 없어도, 그가 가장 탐난다고 말한 이 공간이동 능력은 그에겐 아주 중요한 이동수단 중 하나였으니까.


“벗어.”


“저기, 말을 그렇게 하지 말고 이유를 앞에 좀 붙이는 게 어떻소?”


그 말만 들으면 지나가던 사람이 오해하고도 충분히 남을 것 같은데. 급하게 호텔에서 시킨 수프를 목 안쪽으로 넘기며 급하게 막히는 목을 뚫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그런데도 그는 꿋꿋하게 나보고 자꾸 벗으라며 종용하기 시작했다. 주변 사람들이 술렁거리든 말든. 나는 침착하게 그들의 눈치를 보다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끌고 서둘러 어제 새벽에 배정받았던 호텔 방 안으로 그를 끌고 들어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중간부터 거의 끌려가다시피 한 거지만. 그의 걸음걸이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으니. 거칠게 그가 날 방 안으로 던지듯 밀어 넣더니 내 위에 올라타 셔츠를 풀어헤쳐 나가기 시작했다.


“미쳤소!?”


“너야말로 미쳤나?”


“무슨!”


양팔을 교차해 가슴을 가리며 몸을 움츠리며 그에게 맨 살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다. 덮쳐진다! 덮쳐지는 건가!? 내가 너무 자신 있게 그를 끌고 온 것이 문제였나?! 아니면 긴 여행에 그가 발정이란 게 난 건가! 마음이 급해 구두를 신을 발을 뻗어 그의 배를 걷어차려 했지만, 순식간에 붙잡힌 발목에 눈을 크게 떴다. 너무나 손쉽게 양다리를 붙잡아 다리를 벌리게 한 뒤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다리 사이로 몸을 밀어 넣은 그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내 셔츠를 다시 벗기려 하는 것에 나도 모르게 으악!! 하고 소리를 지르자 밖에서 갑자기 문을 벌컥 여는 소리가 난다.


“고객님 무슨……!”


“꺼져.”


“예.”


흔한 짐꾼 노릇을 하는 객실 안내원 한 명이 방안에 들어오려다 그가 나를 덮쳐 누르고 가쁜 숨을 내쉬며 흐트러진 옷 모양을 한 나를 보고는 급하게 얼굴을 붉히며 문을 닫고 사라져 버렸다. 나도 모르게 한 손을 그에게 뻗어 보며 살려달라 해 보려 했지만, 이내 손쉽게 아까 붙잡혔던 다리처럼 내 가느다란 손목이, 그의 단단한 손에 꽉 붙잡혀 버렸다. 그리고 너무나 손쉽게 한 손으로 톡톡 칠 때마다 풀리는 셔츠 단추에 얼굴에 열이 확 오르며 그에게 빽 소리쳤다.


“하려면 침대에 가서 하던가!!!”


“좋아.”


그게 좋겠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정말 나를 먹기라도 할 생각인지 나를 안아 올리고는 침대 위로 던져 이미 다 풀어헤쳐 진 셔츠를 벌렸다. 아아, 안녕히 계시오. 모두. 난 여기가 끝인가 봐. 릭 톰슨은 이제 죽었소. 없소. 그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고 있자니 아무런 반응 없이 그가 몸을 일으키는 행동에 꾹 눌러 감았던 양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가 뭐 하냐는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것에 머릿속의 의문을 가득 담은 눈으로 그를 바라봐 주었다. 뭐해. 잡아먹는 거 아니었소? 차마 말로 내뱉긴 뭐해 그냥 말없이 멀뚱거리며 그를 바라보자 그가 한숨을 푹 내쉬며 호텔 객실 내에 있던 하얀 수건에 물을 촉촉하게 적셔 물기를 꾹 짜낸 뒤 내 어깨를 한번 쓸어내듯 조심스럽게 닦아 내자 아까는 느껴지지 않았던 아픔이 따끔하게 밀려오기 시작했다.


“아야.”


“잘도 참았군. 상처가 벌어지는 것도 모르고. 피 향이 여기까지 몰려오는데 본인이 몰랐다니.”


“그대 코가 개 코인 것이오. 셔츠 위로 피가 베여나오 지도 않았는데.”


붕대를 감아 둬야겠다. 당분간은 육로로 이동하는 게 좋겠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아무래도 밖에 여전히 대기 중이었던 객실 안내원을 불러 피가 묻은 수건을 보여주며 지혈제와 붕대를 가져와 달라고 ‘명령’을 한 뒤 다시 문을 닫고 내가 드러누워 버린 침대맡에 걸터앉았다.


“아픈가?”


“아까 수프 떠먹고 그대가 벗으라는 말 하기 전까진 아주 멀쩡했소.”


그에게 그렇게 말하며 웃어 보이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내 이마에 딱밤 하나를 날려 주었다. 이 나이에 딱밤 맞기는 처음이라 눈을 크게 뜨며 나도 모르게 한마디 해버렸다.


“너 지금 때렸소?”


“……. 뭐?”


“왜. 형이 반말하는 게 뭐가 어때서.”


그는 나의 반말에 제법 당황했는지 입을 손으로 가리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장담컨대 그와 함께 한 시절 내내 그가 웃는 표정을 보지 못해서 인지, 그가 웃는 게 엄청 잘생겨 보여 놀랐다. 저런 얼굴을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모진 말이랑 남을 낮추는 행동들로 얄밉게 보이는 거람. 그는 나의 기습 공격에도 그 습관을 버릴 수 없는 것인지 나의 심장에 다시 한 번 비수를 꽂았다.


“아니. 형 같지 않은 사람이 형이라 하니까 이상해서 말이다.”


“……. 형의 심판을 받아봐야 정신을 차리겠군, 그대.”


가볍게 그가 앉은 침대 머리맡과 내가 누운 침대의 밑으로 게이트를 만들어 순식간에 그를 침대에 눕혀 버리곤 그 위에 올라타 버렸다. 공중에서 사과가 떨어지듯 털썩하고 침대에 누워 버린 그 위에 강하게 내리누르듯 앉아버린 내 무게에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그렇게 고통스럽지도 않은 듯 멀뚱히 자신의 위에 올라탄 나를 쳐다만 보는 그에게 당당히 구부렸던 몸을 피고 말했다.


“난 33살이니까. 형이라고 말하시오, 앞으론.”


“……. 호칭이 그렇게 중요한가?”


조금 급하게 움직인 탓에 피가 살짝 묻어버린 셔츠를 대충 벗어 바닥에 던져 버리고 그를 내려다보며 나는 강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호칭은 대인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것이니까. 그러나 그는 미간을 좁히며, ‘나보고 지금 네 얼굴을 보고 형이라 하라고? 그 얼굴에?’ 라고 말하며 내가 원하는 대답을 회피했다. 한 손으로 그의 양 볼을 커다란 햄버거 붙잡듯 꾹 누르곤 그의 얼굴에 얼굴을 바싹대며 ‘그렇소, 이 얼굴에.’ 라고 말하는 순간 급하게 문을 박차고 들어온 객실 안내원의 행각에 나는 몸을 굳혔다.


“고객님 여기…!!!”


“…….”


“……. 아. 거기 두고 가라.”


객실 안내원은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히며 붕대와 약품을 벨져와 내가 있는 침대 옆의 좁은 탁자에 두고 가더니 다시 문밖을 나서려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품속에 간직한 조그만 분홍색의 찰랑거리는 무언가가 들어있는 통을 조심스럽게 옆에 두고는 ‘좋은 밤, 아니 좋은 아침 보내십시오!’ 하고 외치곤 서둘러 문밖으로 나섰다. 저게 뭔가 싶어 약품과 그 알 수 없는 액체가 들어 있는 통을 집어 약품만 그에게 건넨 뒤 통을 살펴보자 꽤 기분 좋은 향기가 나는 것에 코를 킁킁거렸다.


“이게 뭐지. 좋은 향이 나는데.”


“……. 33살이라며?”


“맞소.”


“……. 흐응.”


그는 뭔가 알겠다 싶은 듯 몸을 일으켜 통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내 손을 치워내고는 어깨 위에 지혈제를 조심스럽게 펴 바른 뒤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어깨를 둘둘 감싸는 그의 붕대 감는 솜씨에 감탄하던 찰나 그가 마지막으로 깔끔하게 붕대의 틈 사이로 붕대 끝을 밀어 넣고는 내 손에 들린 통을 빼앗아 흔들어 보았다.



“뭔지 궁금하나?”


“궁금해.”


“생각해봐라. 저 훌륭한 객실 안내원이 우리가 한 행동을 보고 왜 얼굴을 붉혔는지.”


그거야 뻔하지, 한낮에 남자 두 명이 바닥에 뒹굴고 있으니. 딱 봐도 오해를 살 법한 행동인 게 틀림없었다.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해지는 찰나, 생각해보니 방금 그 자세 또한 객실 안내원이 오해할 만한 자세라는 것이 생각나 나까지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얼굴이 파래졌다. 빨개졌다 하는 나의 행동에 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다시 한 번 통 안에 든 내용물을 흔들어 보였다.


“피를 오해했나 보군.”


“응?”


“…….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리고 이야기하려니 나쁜 놈이 되는 것 같아 말하지 않는 게 좋겠다 생각되는데.”


“뭐야. 좀 알아듣게 설명해 주시오.”


나의 말에 그는 한숨을 푹 쉬고 바지 위로 내 둔부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트리듯 움직였다. 그의 행동에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대로 그의 이마를 향해 박치기하자 그가 윽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간 것에 다시 한 번 그의 양 뺨을 붙잡고 약간 붉어진 그의 이마를 향해 정의의 박치기를 날리려던 순간 그가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풉.”


“박치기가 더 필요한 거로군. 기다리시오, 벨 져 홀든. 입에서 저절로 '형, 살려주세요.' 소리가 나오게 해주겠소.”


“……. 정말 모르는 건가. 어른들의 정사를 하다가 뒤가 찢어져 피가 나는 것인 줄 안 거겠지 네가 말한 ‘향기 좋은 액체’는 흔히 말하는 윤활유다."


보통 정사 시에 뒤를 풀어줄 때 쓰는 것이지. 형아.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내 둔부 사이를 툭툭 두드리듯 손가락을 움직이고는 이미 잔뜩 붉어진 내 얼굴을 보고 엄청 재미있는 장난감을 본 아이처럼 웃는 것에 나는 그대로 그의 양 뺨을 다시금 붙잡고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죽어라, 벨져 홀든!!!”


그리고 나는 그대로 그의 이마를 향해 내 이마를 돌진했다. 그 이후로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딱 소리와 함께 멍멍한 느낌이 들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으니까. 윤활유라니. 그랑 내가 그런 사이라니. 어서 빨리 이 호텔을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지배했고, 이내 아득하게 밀려오는 검은 장막에 나는 그대로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놔 버렸다.


3.


웅성웅성.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것에 그것이 나를 향한 것이 아닌 것을 알지만, 나는 고개를 더 숙여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 내 이마에는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주먹만 한 혹이 나 있었고, 신체 강화 인간이라는 특성상 그는 흠결하나 없는 모양으로 나를 비웃으며 저녁을 맞이하게 해 주었다. 깜깜한 어둠이 밀려온 침실에 달랑 하나 켜진 스텐드와 두 개의 침대 중 그의 침대에서 가만히 책을 읽던 그가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내 침대로 다가와 불룩하게 솟아오른 혹을 매만진 것이 화근이었다.


“아욱….”


“그렇게 세게 부닥쳤으니 이마가 이 지경이지. 아침에 볼만하겠군.”


“부탁이 하나 있는데, 그대가 지난번에 내 어깨가 뚫렸을 때 달려온 만큼 나한테는 모든 일에 대해서 좀 빨리빨리 말해 줄 수 없겠소?”


천천히 내 말을 들으며 냉장고에서 얼음을 가득 비닐 주머니에 퍼 담은 그가 내 이마에 비닐 주머니를 올려 주고는 눈을 접히며 웃어 보였다. 때린 것도 나고, 민망한 것도 난데 왜 저 사람이 저렇게 좋아하는 것 같은지. 나는 한숨을 길게 쉬며 잔뜩 웃고 있는 그의 배를 향해 주먹을 툭 치듯 그의 복근을 때렸다. 그래 봤자 솜방망이 주먹이지만.


“그래. 약속하지.”


그렇게 말하며 그가 이마에 얼음 주머니를 올려주었다가 내리기를 반복하는 행동에 까무룩 잠이 다시 들어 일어난 것이 아침. 그가 자기가 쓰던 로브를 나에게 건네 주었지만, 내 코트를 벗는 게 싫어 그가 주는 로브를 한사코 마다하곤 고개만 푹 숙이고 호텔을 빠져나왔다. 육로로 이동한다는 그의 말은 변함이 없는 듯, 괜찮다는 내 말에도 그는 다시금 천천히 걸어 멀리 보이는 기차역을 향해 발을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은 안 먹어도 괜찮겠소?”


“너는?”


“나? 음. 간단하게 모닝 도넛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데.”


“어린아이 입맛이로군.”


이제 와서 생각해 보는 건데, 그때는 잘 몰랐다. 그가 나와 그때부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기 시작했고, 나의 발 보폭에 맞추어 걷게 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날 처음 먹었던 도넛의 크림이 입술에 묻었다며, 가볍게 입을 맞추는 그의 행동에 조금 심장이 뛰기 시작한 것. 그날 아침은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그와 나의 새로운 동행을 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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