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11. 13. 18:25
작성자
you. and. me.





*노래가 취향이라 한번 써 보았습니다. 트위터에 한번 썰을 푼 적도 있었는데 조금 변형시켜서..!



*참조출연: 그랑플람 제단, 마틴 첼피.




*소설가 릭과, 부잣집 도련님 벨져



1.


한 손에는 뉴욕 타임즈 하나. 그 비싸다는 슬타벅스의 종이컵 속은 집에서 내린 커피. 손에는 꽤 오래전에 선물 받은 아르마니 시계 하나. 평범한 하얀 셔츠에, 정장 바지. 끈이 없는 구두. 완벽한 패션에 완벽한 날씨다, 하고 생각하며 어깨에 걸친 검은 코트를 한 번 더 추스르곤 신문을 읽었다. 세상 사는 일들이 다 그렇지-. 하고 혼잣말도 되뇌며 눈을 깜빡여 헤드라인에 시선을 주곤 신문을 팔락 소리가 나게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집에서 작게 소설을 써서 생계를 유지하는 나에게는 이런 일상이 매우 중요하니까. 이따금 흔치 않게 팬레터가 오면 아무렇지 않은 척 무표정한 얼굴로 집배원에게 편지를 받다가 문이 닫히고 집배원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 환희에 차서 행복한 얼굴로 편지를 꼼꼼히 읽어보고 지금까지 8번 받은 팬레터가 든 보물 상자에 친구 한 명을 더 추가시켜 준다. 이게 나의 일상인걸.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다르다. 


사람이 제법 북적거려 한 슬타벅스의 테라스 자리에 앉아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으니, 평소와는 다르지. 오늘은 편집장에게 소설 원고를 내주기로 한 날이다. 오후 3시에 만나기로 했으니, 미리 오후 2시 30분부터 나와 여유 있게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는 주말의 오후. 얼마나 좋은가. 인기가 없다 보니 투고하는 시간도 넉넉해 꽤 편안한 생활을 누리고, 딱 살기 좋은 만큼 벌고 살기 좋은 만큼 쓰다 보니 돈 욕심은 없지만. 가끔 주말에 한번 외출할 때 정도는 멋을 부려야겠지 싶어 힘을 주고 나왔다.


얼굴은 못생긴 편이 아니라고 자신을 독려하며 읽히지도 않는 신문을 보고 있으려니 익숙한 사람 한 명이 신문 너머로 보이는 것에 웃어 보였다. 


“톰슨 씨.”


“오, 첼피.”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청했고, 사주지도 않을 커피를 한번 권해 보았다. 그대, 커피 마시겠소? 그러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한사코 거절하며 기어이 자신의 돈으로 커피 한잔을 시킨다. 가끔은 이쪽이 사 줘도 괜찮긴 하지만, 그는 그럴 성격이 아니니. 알면서도 한번 물어보게 된다.


“다음 화가 너무 기대돼서 생각보다 일찍 와버렸네요.”


“하하. 그렇게 좋은 소설도 아닌데. 그대가 어차피 제일 처음 읽는 독자니까. 얼마든지 보시오.”


마틴 첼피. 그는 좋은 편집장이자, 나의 소설을 발견한 첫 구독자이기도 하니까. 나는 자신감에 차서 그에게 건넬 서류를.


....



어?



“..톰슨 씨?”


“...없어.”


나의 말에 그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물어보았다. 뭘요? 


그리고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원고. 원고가 없소. 분명 가지고 왔는데.



2. 


나는 그에게 커피 값을 지급했다. 교통비 또한. 속으로 돈을 건네주지만 완전 공황상태에 빠져버려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분명 서류 봉투에 제대로 밀봉해서 가지고 왔는데. 손에는 쓸모없는 뉴욕 타임즈가 나를 비웃듯 자리하고 있었다. 그대로 신문을 던져 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선생님은 항상 그러셨잖아요. 늘 원본은 따로 있다고.’


‘아.’


그에게 응. 맞아, 라고 어설프게 대답하고는 있지만. 사실 그런 것은 없다. 그 유명한 모차르트도 자기 생각을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악보에 적는 것처럼. 나 또한 두 번 원고에 손대는 작업을 꽤 귀찮아 하므로 순수하게 그에게 넘겨주는 것은 원본 원본, 딱 한 부 뿐이니까. 결론적으로 내린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찾아야 한다. 지금 돌아가서 찾다 보면, 찾을 수 있을지도 몰라. 나는 급하게 자리를 일어나며 코트를 한쪽 팔에 걸쳤다. 스타벅스의 컵은 이미 뒷전이고 뉴욕 타임즈도 챙길 시간이 없었다. 거치적거리기만 할 뿐.


‘먼저 일어나겠소. 원본을 찾는 데로 집배원을 통해 보낼 테니.’


‘네.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는 순수한 호의적 미소를 띠곤 따듯한 아메리카노가 든 커피를 들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나는 그의 뒷모습에 굳은 미소를 띄워 주다가 그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나서 허겁지겁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머릿속의 과거 기억들을 되감아서. 그러니까.. 집을 나서서, 잠시 들린 도넛 가게에. 잠깐. 내가 그때 서류봉투를 들고 있었나? 미간을 찌푸리며 바쁜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이대로 가다간 정말로 망연자실할지도 모른다며.



3.


‘서류봉투? 그런 거 못 봤는데.’


‘아니요. 손님이 뭔가 내려놓고 가신 적이 없으신 걸 기억하고 있어요.’


‘흠. 잘 모르겠는걸. 들고 있던 건 기억하느냐고? 우리 멍멍이 생일도 기억 못 하는데, 그걸 기억할까.’


어스름하게 달이 떠오르고, 광장에는 조용한 침묵과 가끔 들리는 기타 연주 소리가 들릴 무렵까지도. 나는 내 것을 찾지 못했다. 허탈하게 오늘 아침에 들렸던 모든 가게마다 다 본적이 없다 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집에 가 보았지만 역시나 별로 가구도 없는 좁은 나의 방은 어둠으로만 물들어 있었다. 그것이 지금 내 심정 같아 문을 닫아 버리곤 광장의 시계탑 아래의 계단에 주저앉았다. 사실대로 이야기 하는 게 제일 좋겠지. 이미 시간은 오후 7시가 다 되어가니.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예의가 아닌 것 같아 근처에 붉은 전화 부스에 터덜거리는 발걸음으로 다가가 100톤 정도의 무게처럼 느껴지는 수화기를 들고는 동전 하나를 집어넣었다. 집에는 전화기가 따로 없으니. 이렇게 연락하는 수밖에. 익숙한 번호를 누르고 수화음이 얼마 가지 않아 그의 목소리가 들린다.


[네, 그랑플람 출판사입니다.]


“아. 첼피. 나요. 릭 톰슨. 사실은-.”


[아. 서류 잘 받았어요! 역시 이번 화도 흥미진진하네요.]


나는 그 말에 눈을 크게 뜨곤 애꿎은 공중전화기를 붙들고 흔들었다. 철컹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지거나 말거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서류?’ 하고 의문형으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 선생님께서 보내신 거 아니었나요? 친절한 분께서 서류 봉투를 저한테 주시곤 가셨는데.]


“...사실은, 원고를 길에서 잃어버려서.”


[아. 그럼 이 서류는.. 그분이 주워 주신 거군요. 아마 서류 봉투에 쓰여 있던 주소로 가져다주신 것 같네요. 친절하셔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전화 부스에 기대곤 픽 웃어 버렸다. 팬레터를 받은 날보다 더 기분이 좋아. 어찌나 긴장했는지 다리에 힘이 풀려 결국 그 자리에서 쪼그려 앉고는 전화를 받았다. 그나저나 누구일까. 신사분? 


“뭔가 답례라도 하고 싶은데.”


[아. 안 그래도 명함 하나를 주고 가셨어요. 어디 보자.. 성함이. 벨져 홀든. 주소가, 오스트리아-.]


나는 서둘러 그가 말하는 것을 받아 적기 위해 급하게 주머니를 뒤져 여분으로 늘 가지고 다니던 펜을 꺼내 손바닥에 써내려갔다. 잔뜩 땀으로 젖은 손을 아무렇게나 바지에 문질러 물기 하나 없이 만들고는 손바닥에 주소와 이름을 써 내려갔다. 


“전화번호는?”


[아쉽게도 그건 안 적혀 있네요.]


나는 알았다며 서둘러 전화를 끊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온 세상이 밝게만 보이고 하늘의 별이 유난히 나에게만 반짝이는 것 같아 웃어버리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해 걸어나갔다. 손바닥에 쓰인 그 사람의 이름. 그 사람의 주소.


누구일까. 과연 벨져 홀든은.




4.



나는 그에게 정성을 다 담아 편지를 보냈다. 비록 좋은 편지지를 고르진 못했지만. 내 수중의 돈으로 가장 사치를 부릴 수 있는 질 좋은 좋이 위에 편지를 써 내려갔다. 이 편지를 쓰기 위해 못쓰는 종이에 몇 번이나 글 쓰는 연습을 했던가. 차분하게 심호흡을 하곤 편지지를 써 내려갔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엄청나게난 고급스러운 봉투에 실링 왁스로 H이라고 붉은 낙인이 찍혀 있는 봉투가 한 장 왔고, 그 속에는 딱 보아도 날카롭고 예리해 보이는 글씨체의 짤막한 답변이 나왔다.





5. 



그와 만나기 직전까지. 꽤 나는 장문의 편지를 그에게 보냈다. 처음 보는 사람이 나에게 베푼 호의는 엄청나게 두근거리고 설렜으니까. 나도 모르게 이 내용을 소설로 적을 정도로 말이다. 오늘 식사 내용부터 취미까지 그에게 적어 보내면 그는 글씨체와는 다르게 내 말에 호응을 해주며 좋은 취미를 가졌다고 칭찬을 하기까지 했다. 정중한 그 사람의 말투와 별거 아닌 내용에도 답해주는 그의 편지 덕분에 그를 보기까지의 시간이 천 년, 만년이 걸리는 것만 같았다. 


“...흠.”


타자기를 두드리다 말고 이제까지 쓴 내용을 한번 죽 훑어 보았다. 드디어 내일은 이 두 주인공이 만나 첫눈에 반하고 만다는 흔하디흔한 내용이지만. 편지를 주고받는 내내 이 장면밖에 떠오르지 않아 웃어버렸다. 드디어 내일이면, 나도 내가 쓴 이 소설의 주인공처럼 만날 수 있겠지. 책상 스텐드의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머리 위로 내리쬐는 달빛을 바라보고는 눈을 깜빡였다. 어떤 사람일까. 과연 그 사람은. 



그날 밤 꿈에 나는, 시계탑에서 그 사람과 만나 키스하는 꿈을 꾸고 말았다. 아무도 없는 한산한 시계탑 아래에서. 달빛을 받으며, 그렇게.


어이없게도. 나는 그 꿈에 온통 붉어진 얼굴로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6. 


“.......”


저녁 5시 30분. 늘 그랬던 것처럼 조금 일찍 도착해 그 사람을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꿈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여자였나? 남자였나? 분명 꽤 기분 좋은 키스라 생각했는데. 코트 자락을 여미며 때 이른 겨울의 추위에 입김을 불어본다. 후- 하고 불어본 입김은 이내 공중에서 뿌옇게 흩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시계탑 아래에 앉아 혹시 몰라 큰맘 먹고 산 슬타벅스의 커피 두잔. 따듯한 김이 혹시라도 금방 꺼질까, 품에 꼭 안고 있으려니 온기가 저절로 느껴진다. 


삼삼 오오 모여든 연인들이 나처럼 시계탑 근처를 둘러앉았지만. 이쪽과 시선을 마주하는 사람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 것에 괜히 불안하고 초조해 졌다. 시계를 자꾸 쳐다보며 괜한 의심이라며 심장을 쓸어내리고 있을 무렵, 꽤 화려하게 생긴 도련님 한 명이 시계탑을 난감하게 바라보는 것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딱히 앉을 자리도 없고, 자리라고는 기껏해야 주변 사람과 닿는 게 싫어서 조금 거리를 띄우고 앉은 내 자리를 약간 양보한다면 한 사람이 앉을 정도가 될 것 같아 궁둥이를 조금씩 옮기곤 그에게 말을 걸었다.


“이봐.”


“.....?”


“여기. 앉겠소?”



그는 내가 부르는 것에 당황하지도 않고 잠시 자리를 지켜보다가 이내 내 옆에 와서 간단하게 ‘사례하지.’하고 말을 건네고는 앉았다. 옆에 앉자마자 시원한 내음의 향수에 눈을 깜빡이고는 그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보기 드문 은발에, 꽤 비싸 보이는 캐시미어 코트 하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조차 잘 모르겠는 무표정한 얼굴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전형적인 부잣집 도련님이네! 뭐. 


“안 오려나.”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쉬며 품속에 거의 식어버린 커피를 만지작 꺼리고 있자니 그가 이쪽을 쳐다 보는 것에 같이 눈을 마주하며 웃어 보였다.


“아. 사람을 기다리는 중이라오.”


“그렇군.”


“그대는, 누굴 기다리고 있는 것이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정면을 바라보고 ‘만나고 싶은 사람.’ 이라고 짧게 대답하곤 아까보다 많이 풀어진 표정으로 입가에 작게 미소를 띠었다. 그 표정에 나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애인이라도 기다리는 건가?”


“..........”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한번 바라보곤 품속에 커피를 바라보았다. 아. 잠시 시계를 쳐다보자 벌써 오후 6시 반이 넘어가는 시각에. 나는 아낌없이 선의를 베풀기로 하곤 그에게 커피 한잔을 건내 주었다. 그는 아무런 대답 없이 왜 주느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나는 웃으며 그에게 좀 더 가까이 커피를 들이밀었다. 


“아무래도 난 바람맞은 것 같으니. 아까워서 그런 것이오. 마셔봐. 아직 따듯해.”


“...고맙다. 바람이라 하는 것은. 너도 연인을 기다리는 건가?”


“흐음. 그대 아까 연인이라 생각한 적 없다면서 너‘도’란 단어. 써도 괜찮은 것이오?”


난 웃으며 두 개에서 한 개가 된 컵을 만지작거리며 그동안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했다. 어쩌다가 도움을 준 사람과 오늘 처음 만나기로 했는데 오지 않는 것 같다며. 그렇게 설명을 하고 나니 그가 나를 쳐다보고선 생각에 잠기더니 한마디를 건넸다.


“얼굴은. 알고 있나? 인상착의라든지.”


“물..... 론. 모르지. 아.”


“그래. 모르지.”


생각해 보니 이쪽도 모르는군. 그는 내가 내민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미간을 잠시 구겼으나 이내 아무 말 없이 다시금 커피에 입을 댔다. 생각해보니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전혀 모르는구나. 바보같이. 나는 허탈함에 한숨을 폭 쉬고는 턱을 괴고 앞을 바라보았다. 저마다 쌍쌍이 짝으로 다니는 사람들. 이보다 더 슬픈 광경은 없을 거라며.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처음 만난다더니. 어떻게 운명인 것을 알지?”


“꼭 따지자면 처음은 아니지. 나는 그 사람의 편지를 봤소. 그 사람의 글씨체는 정갈하고, 어딘가 날카로웠지. 그래도... 그 사람도 내가 처음 보는 사람일 텐데도 쓸모없는 말들에 곧잘 답장을 해 주었소. 운명이란 것이 필연적인 것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선 이런 느낌을 받지 못했거든.”


“...그렇군.”


그의 대답은 어딘가 묘하게 내 말에 동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내 말 덕분에 무언가를 깨닫게 되는 그런 말투. 나는 커피잔을 들어 그의 잔에 마치 술잔을 부딪치듯 컵을 마주 대었다.


“불쌍한 두 남자를 위해 건배.”


“........”


난 아직 안 차였다. 아직 안 온 거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의 건배를 기어코 사양하려 했으나 이내 한참 있다가. 건배. 하고 대답해 버렸다. 


7.


“... 그래서, 나는 그 내용으로 소설을 써 보려 하는데 제목이 생각나지 않소.”


“흠. 나라면.”


그는 뜻밖에 선선하게 내 말을 들어 주었다. 까다롭게 생겼다고 겉보기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어머니의 말은 정확했다. 그는 가끔가다 내 말에 흥미가 생겼다는 듯 눈썹 한쪽을 슬쩍 올리는 버릇이 있었고, 생각에 잠길 때엔 커피잔을 톡톡 두드렸다. 시간이 9시가 다 되도록 그와 커피 한잔을 두고 이야기를 하다가 내 직업 이야기가 나와버려 이런저런 이야기를 다 해주고는 결국, 이번에 쓰는 소설의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주제를 돌려 보이자 그가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연인이란. 이름으로.”


“....그대, 내 조수 할 생각 없소? 보수는 커피 한잔뿐이겠지만.”


그는 픽 웃으며 됐다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유 없이 드는 아쉬움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서 가볍게 엉덩이를 투닥거리며 털곤 코트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뭐지?”


“내 이름 물어보기 전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게 먼저 아니겠소.”


나는 웃으며 그에게 대답하고 그는 말없이 명함을 건내 주었다. 그의 이름을 확인하려던 순간, 저 멀리서 빵빵거리는 소리와 함께 고급스러운 차 한 대가 그가 있는 쪽을 보고서더니, 이내 말쑥한 사용인 한 명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데리러 왔다며 인사를 해 보였다.


“...가야겠군. 이만 실례하지.”


“그래.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면 좋겠소.”


“그래.”


그는 나를 한참 바라보다가 이내 차 안으로 몸을 옮겼다. 이제는 사람이 거의 없어 한적하게 조용해진 시계탑 아래에서 달을 잠깐 보고 있다가 문득, 그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한 것에 서둘러 명함을 꺼내 보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Belzer Holden.]


그것이 그의 이름이었다.



8.



다음날 편지는 약간의 섭섭함이 담긴 편지가 올라왔다. 


그의 편지엔 시계탑에서 만난 남자의 이야기로 가득했으나, 이내 나를 보지 못해 약간 아쉬웠다는 내용의 편지가 담겨 있었다. 


나는 조용히 방구석에 자리 잡은 레코드를 틀고는 취직거리며 들리는 음악 소리와 함께 편지를 써 내려갔다.


[친애하는 홀든. 나 또한 거기서 그대를 기다렸소. 나는 오후 5시 반부터 그대를 기다렸지. 커피 두 잔과 말이오. 생각해 보니 나도 거기서 남자 한 명을 만났소. 그는 꽤 잘 차려입은 귀한 집 도련님이었지. 집사 한 명이 직접 모시러 올 정도로 말이오. 그가 나에게 명함도 주고 갔어. 거기서 나는 그 남자와 새로 쓰는 소설에 관해 이야기 했지. 그가 선뜻 제목을 골라 주더라고. 제목은.]



‘연인이란. 이름으로.’





' 벨져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져릭]생일축하해, 벨져. (수위)  (0) 2017.01.13
[벨져릭] 생일 축하해. 릭.  (0) 2016.12.13
[벨져릭] Under the sea.  (0) 2016.10.20
[벨져릭] 가을날의 회상  (0) 2016.10.09
[벨져릭] 그대와 나.  (0) 2016.09.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