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감기에서 탈출한 기념.. 달달한 벨릭이 너무나 보고 싶어서..!
*중간중간에 릭의 쪽지 주의
*과학과 거리가 먼 문과생(본인)의 아인슈타인 드립 주의..
“뭐 가지고 싶은 것 없나?”
“...오, 뭐든 사줄 것이오?”
“그래.”
“도넛.”
그는 그대로 릭에게 미간을 찌푸리며 금방이라도 칼을 들고 덤빌듯한 눈을 해 보였다. 딱 그 눈은 릭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놈의 도넛.’이라고. 릭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딱히 원하는 것이라고는 있지도 않은 데다가, 자기 돈으로 충분히 사고도 남는 것들이 대부분이니까. 그가 아마 저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테지. 릭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와 식사를 이었다. 간만에 그와 같이하는 외식인 만큼, 그에게 좀 더 맛있는 것도 먹게 해주고 싶고, 좋은 것도 보게 해주고 싶으니까. 식사가 끝나는 데로, 시내 구경이나 잠깐 하다 가야겠다며 생각하던 와중, 그의 갑작스러운 ‘가지고 싶은 게 있냐.’는 질문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니다.
“벨져.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어 보는 것이오? 생일은 이미 한참 지났잖아.”
12월 13일이 내 생일인 건 기억하고 있지 벨져? 설마 잊었느냐는 투의 릭의 물음에 벨져는 당연하다는 듯 코웃음만 치고 와인을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접시 위의 스테이크는 절반도 먹지 않았지만, 그는 이미 식사를 마쳤다는 듯 냅킨으로 입을 닦을 뿐, 남은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다른 연인들은 보통 뭘 사달라고 잘들 말한다던데. 너는 그런 게 전혀 없잖아.”
“......”
다른 연인 누구가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그에게 무언가 금전적인 물물 교환 때문인 제품을 원한다고 말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다며 릭은 스테이크 접시 위로 굴러다니는 당근 조각 하나를 푹 포크로 찔렀다.
“당최 날 좋아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군.”
“...정말 모르겠소?”
포크로 접시를 깔짝거리는 것은 실례라는 것을 알지만, 오붓하게 둘만 있게 한 방 안에서 하는 식사라 다른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릭은 전혀 개의치 않고 그의 당혹스런 질문에 애꿎은 당근을 접시 위에서 푹푹 찌르고 있었다.
“그래. 돈도 아닌 것 같고. 역시 외모?”
“뭐, 그것도 아예 아닌 건 아닌데...”
릭은 잠시 얼굴을 붉히며 당근이 찔려있는 포크를 접시 위로 내려놓았다. 이미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 위에는 채소 조각이 몇 조각 굴러다닐 뿐, 소스 흔적을 제외하고는 말끔히 릭의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그나저나 좋아하는 이유라. 그가 이런 걸 궁금해 하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점점 릭, 자신에 대해 궁금해 하는 것에 릭은 제법 입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왜 그런 게 궁금한지 나도 정말 물어보고 싶군. 내가 왜 그대를 좋아하는지 알려줄까?”
“.....”
“알려 줄까 말까, 벨져. 알려달라고 해보시오.”
릭의 칭얼거림에 벨져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리고는 이내 와인잔을 다시 들었다. 한 모금 정도 남은 와인잔. 그는 릭의 말대로 알려달라 하기는커녕 다리를 꼬고 살짝 삐딱하게 앉아서 ‘말해봐.’ 라고 오히려 명령조로 말하는 것에 릭도 기가 차서 와인잔을 들고 벨져를 따라 하며 ‘싫소.’ 라고 답할 뿐이었다.
“.....”
“농담이고. 입 맞춰 주면 내일 말해주겠소.”
“오늘이 아니고?”
“그럼. 내가 그대를 좋아하는 이유는 조금 비싸거든.”
입맞춤 한번? 그건 또 그것대로 싼 편 아닌가. 벨져가 그렇게 말하며 식탁을 짚고 일어나자 릭도 기다렸다는 듯 식탁을 짚고 일어나 테이블 중앙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오가는 시선, 그리고 열리는 입. 릭은 말해주었다. ‘그 벨져 홀든의 입맞춤이 싸다면 지나가던 모든 아가씨가 울겠지. 그것 하나 못 받아서 말이야.’ 하고.
그래, 너 한정이지. 감사히 받도록.
간간히 떨어지는 입의 숨을 고르는 틈을 타서 오가는 대화는 틀림없는 연인들의 대화였다.
*
“...릭?”
간밤에 시내 구경은커녕 그대로 계산을 마치자 말자 바로 게이트로 침대로 와버렸다. 내일이 월요일이란 사실도 잊고 온몸에 자국이란 자국은 다 남기는 것에 릭이 불만을 토로하는 것 같았지만, 벨져는 개의치 않고 자꾸만 릭의 몸에 그의 흔적을 새겨 놓았다. 덕분에 아침에는 아무래도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할 것 같아 깨워주러 했건만, 이미 옆자리는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의 흔적은 없다.
“......”
허탈하게 주변을 둘러보자, 자그마한 수첩을 찢은 종이 한 장이 릭의 자리 위에 놓인 것이 보여 벨져는 조심스럽게 그 종이를 집어 들었다.
“......”
기가 막히다. 쪽지를 보고 나서야 알게된 것. 무의식중에 아침마다 릭을 찾고 있었나. 언제부터 일어나자 마자 릭을 찾았지? 급하게 나간 듯 휘갈겨진 글씨체가 삐뚤거린다. 옆자리가 허전하다는 기분이라-. 생소한 느낌에 벨져는 가만히 종이쪽지를 쳐다보다가 이내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 마냥 그대로 쪽지를 들고 서재에 가서 가장 좋아하는 책 한 권을 골라잡고 그 사이에 쪽지를 껴 두었다. 식사하라는 릭 톰슨의 쪽지의 쓰인 말이 마치 옆에서 잔소리하는 릭이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며 기분 좋게 아침을 맞이했다.
[벨져. 아침 제대로 차린 게 없어서. 냉동식품 있으니까 오늘 아침만 그걸로 대신해주시오.]
“......”
남은 음식을 데워 먹는 게 훨씬 낫다며 입에 맞지 않는 냉동식품 대신 냉장실 문을 열자, 제대로 만들어진 샌드위치가 랩이 쌓여 다소곳하게 기다려 있는 것이 보인다. 뭔가 또 붙어 있는 것에 가만히 음식을 꺼내자 또 종이 한 장이 샌드위치에 잘 올려져 있다. 이건 또 뭔가 싶어 쪽지를 꺼내 보니, 여전히 급한 글씨체로 글이 휘갈겨 쓰듯 쓰여 있다.
맨 끝에는 [내가 그대 식사를 빼놓을 리가 없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오, 그대. PS.아무리 그래도 남은 음식 데워서 먹이면 내 마음이 더 아플 것 같아서.] 라고 간략하게 써 있는 것에. 벨져는 다시 접시에 든 샌드위치를 하나 물고 서재로 올라갔다. 새로 생긴 소중한 것을 다시 보관하기 위해.
*
"오셨습니까, 벨져경.”
그는 가볍게 손을 들어 보이고는 늘 그렇듯 집무실 안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변함없는 공간. 아침에 부하들이 창문이라도 환기 시키려 열어둔 것인지, 집무실 안에서 꽤 청량감이 든다. 늘 그렇듯 오후쯤에 회의에 올라갈 안건이 담긴 파일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물쇠로 잠가둔 서류함을 열었으나 서류함이 텅텅 비어있다. 거기에는 또 하나의 쪽지가 덩그러니 남아 누가 훔쳐 갔는지 단번에 알려 주고 있었다.
“...릭 톰슨. 정말 부러운 능력인 건 변함이 없군.”
[벨져. 부럽다고 생각하고 있지?]
“......”
예리하긴.
[이 서류는 인질이오. 항상 중요한 서류는 여기에 넣어놓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 인질을 구하고 싶으면, 저녁 데이트에 기꺼이 응하겠다는 쪽지를 여기에 넣으시오! 그렇지 않는다면 이 서류는...!]
쪽지의 마지막에는 짤막하게 그림으로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것과 종이 몇 개가 그 속에 타들어 가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며 벨져는 한숨을 쉬고 책상 위의 이면지 하나 위에 ‘집에 있는 네 토끼 같은 커피와 강아지 같은 도넛을 다 불태우기 전에 서류는 내놓는 편이 좋지 않겠나. 잘 생각해라.’ 하고 쪽지를 넣어 두었다.
“...좌표만 알면, 안타리우스 비밀문서 정도 빼 오는 건 식은 죽 먹이겠군.”
자물쇠가 아무런 쓸모도 없어진 것에 미간을 굳히며 괜히 힘주어 서류함 상자를 자물쇠도 걸지 않고 닫아버렸다. 일단 결제부터 먼저 해야겠다며 결제를 한동안 하고 한참을 그렇게 서류와 싸움을 하고 있자니 서류함 상자가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열어진 서류함에는
[데이트 접수 완료. PS. 제 커피와 도넛은 잘못이 없어요, 벨져 홀든경. 살려주시오.]
라는 쪽지가 제대로 정리된 서류 위에 올려져 있었다.
*
그러나 집은 텅텅 비어있었다. 벨져가 정확하게 저녁을 넘긴 시점에 집에 도착했을 무렵의 시간은 7시. 그 시간까지 그 ‘데이트’라는 것을 언급한 자는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었다. 보나 마나 일하는 중이었겠지. 텅 빈 집 안의 문을 열자말자 불 꺼진 집안이 먼저 그를 환영한다. 사람 없는 집이라-. 평소 같았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줬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런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현관 앞에 나란히 놓여 있는 슬리퍼로 갈아 신고 침실로 올라가는 동안 집 안의 불을 켜 두기 시작했다. 점점 밝아지는 집. 역시나 아무도 없는 침실을 확인하고는 옷장에 옷을 벗어 놓고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부엌에서 간단하게 홍차를 내리고 거실의 티 테이블에 앉아 있자니 테이블 위에 언제부터 놓여 있던 건지 쪽지 하나가 덩그러니 사람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쪽지를 보기가 무섭게 문에서 가볍게 노크소리가 들린다. 키도 있을 텐데. 바깥에서 들려오는 기척은 틀림없는 릭 톰슨. 현관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이쪽을 보며 웃어 보이는 갈색 머리카락의 녹색 눈을 가진 사내.
“... 다녀왔나.”
“다녀왔소.”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이쪽을 보고 웃기만 하는것에 벨져의 입꼬리 끝이 살짝 올라간다. 그것은 신호였다. 누군가 뭐라 하지 않아도, 입을 맞출 타이밍이라는. 현관불 밑에서 사람이 오갈지도 모르는 길거리를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체, 조용하고 따듯한 입맞춤이 그렇게 이어졌다.
“으, 벨져. 잠깐만. 이대로 가다가 또 침대로 가려 그러지. 데이트 할 것이오, 데이트.”
“...이시간에?”
당연하지. 이 시간이기 때문에 가는 것이오. 릭은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옷장으로 게이트를 열어 그의 코트를 억지로 입히고는 나갈 채비를 도왔다. 상황이 돌아가는 것도 모르는 체 그렇게 다시 옷을 차려입고 집 문을 나서자 말자 게이트를 연다. 다행히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서 망정이지 환하게 비치는 빛은 이목을 끌기에는 충분했다.
“어디로 가는 거지.”
“따라와 보시오.”
그대에게도 좋은 곳이야. 릭은 부드럽게 벨져의 손을 잡아 이끌며 게이트 너머로 사라졌다. 게이트 너머에는 도대체 뭐가 있을지. 손만 빼꼼히 나와 있는 릭의 손을 보다가 벨져도 이내 게이트 너머로 몸을 옮겼다. 그의 마지막 발끝이 게이트를 스치자 말자 조용히 게이트가 닫히기 시작하며, 깜깜한 어둠만이 가득한 곳. 어딘가의 숲 속인 듯 양옆으로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지만, 길 하나는 사람이 자주 왔다 갔다 하던 곳인 듯 풀 한 포기 없이 다듬어져 있다. 비록 흙길이지만.
“쉿. 여기 야밤이라 짐승도 나타날지 모르오.”
“...그래서, 멧돼지 한 테 치이려고 여길 온 거군.”
데이트는 피의 축제 정도인가. 이럴 줄 알았으면 검을 챙겨 오는 건데. 벨져의 비꼼에 이미 익숙해진 릭은 그의 손을 붙잡고 조용히 길을 따라 앞으로 쭉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제법 불어오는 바람이었지만, 숲 속의 나뭇잎 바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잔잔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자꾸만 앞으로 걸어가는 릭의 손을 강하게 붙잡자 그가 ‘거의 다 왔소.’하고 조용히 속삭이듯 벨져를 한번 돌아보며 말을 건넨다. 다 왔다 해도, 도무지 끝이 안 보이는 곳에 혀를 차며 계속 길을 걷자 나뭇잎이 무성한 수풀이 앞을 가로 막고있는 것에 벨져가 미간을 찌푸렸다.
“막혔군.”
“아니야.”
이게 진짜 비밀의 문이오. 릭은 마치 아이가 비밀 아지트라도 발견한 것 마냥 눈을 빛내며 수풀을 손으로 해쳤다. 수풀 너머로 보이는 것은 그저 다른 곳보다는 조금 더 탁 트인 넓은 공간이 나온다. 숲이 동그랗게 주변을 에워싼 공간. 그 가운데에 아마 커다란 나무라도 있던 듯 밑동만 남은 나무만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 릭은 익숙한 듯 나무 밑동에 앉아 벨져에게 앉으라며 옆자리를 손으로 탁탁 두어 번 친다.
“...여기가 뭐가 좋은 곳이라고.”
“하늘.”
하늘? 벨져는 그제야 하늘을 쳐다보았다. ...도시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별의 향연. 커다란 달 주변을 맴도는 별들이 성운을 이루는 광경이 보인다. 마치 보랏빛 구름이 흘러 지나간 듯한 자리 주변으로 유난히 별들이 반짝이는 것에 릭은 흡족하게 벨져를 바라본다. ‘잘 왔지? 칭찬해줘.’라는 그의 눈치에 벨져가 시선을 느끼고는 입을 열었다.
“...유난히 별을 좋아하는군.”
네 능력도 온통 다 우주, 별. 이런 것들이랑 연관되어 있으니. 벨져는 시선을 다시 하늘로 향했다. 밤하늘은 릭과 매우 닮았다 생각하며. 잡을 듯이,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데 절대 잡을 수 없는. 릭과 매우 닮았다고.
“딱히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거야 뭐, 능력 일부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른 움직이거든.”
말로 설명하긴 복잡하지만. 나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고 말이오. 별을 좋아하는 이유는 따로 있소. 릭은 그렇게 말을 하며 벨져의 옆을 벗어나 벨져와 등이 마주 하는 곳에 앉아 그의 등에 등을 마주하고 머리를 기댔다. 성인 남성의 무게라 제법 무겁게 쏠릴 텐데도, 미동도 없는 벨져의 몸에 릭이 웃어버리자 가만히 한숨 소리가 릭의 등 너머로 들려온다.
“벨져. 어렸을 때, 왜. 그.. 하늘 쳐다보고 달이 왜 따라오는지 궁금해 본적은 없소?”
“달 볼 시간에 검술연습 한 번 더 하는 게 훨씬 더 이득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군.”
그대에게 물어보는 걸 잘못했소. 어렸을 때 감수성은 뭐랑 바꾼 것인지... 릭의 구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벨져는 딱히 그 말에 토를 달지 않고 그저 듣기만 했다. 이따금 다시 바람이 불며 숲의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어렸을 때, 정말 아픈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전차를 타고 밤늦게 집으로 오려던 찰나 하늘을 쳐다보니 달이 자꾸 따라오는 것 아니겠소?”
“흐음.”
“나중에 어머니께 여쭤봤지. 달이 왜 자꾸 따라오느냐고 말이야.”
“그래서?”
우리 어머니니까 당연히 ‘우리 아들이 잘생겨서 따라왔지.’라고 말해 주셨소.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에 벨져가 웃어야 할지, 한숨 쉬어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어정쩡 하게 몸을 굳히고 있으려니 릭의 말이 바로 이어져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래도 말이야, 벨져. 달이 자꾸만 따라오고, 내가 시선을 돌려도 항상 거기 있고. 항상 네 편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나는 상당히 기뻤소.”
별도 마찬가지고. 별은 항상 달 주변을 맴돌고, 무엇보다 자칫해서는 어두 컴컴한 밤하늘에 저렇게 빛나고 있잖소? 별이랑 달이 없었으면 지구의 저녁은 정말 빛 한 줌 없는 컴컴한 곳이었을 거야. 릭은 고개를 살짝 틀어 그의 어깨 위로 머리를 기대었다.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이 벨져의 머리카락을 흩날리자 뺨을 스치듯, 릭의 볼을 머리카락이 한번 어루만지고 가는 것에 릭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였다. 물론 하늘을 보고 있는 벨져에게는 보이지 않겠지만.
“그대를 왜 사랑하느냐 물어봤지?”
“......”
“그대는 달처럼 자꾸 나를 향해 시선을 주고 있고, 항상 내 옆에 있고. 말없이 내 편도 들어주잖소.”
“......”
“어느 순간부터 그대가 저 달처럼 내 옆에 있어주었거든. 그래서 그런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소.”
...썩 운치 있는 말 같았지만, 별로 영혼은 없던 릭의 말에 벨져가 심드렁하게 그저 듣고만 있자 릭이 좀 더 등을 바싹 붙여 온다. 등 너머로 따듯한 온기가 전해져 오는 것에 벨져가 고개를 살짝 돌리자 릭의 코끝과 벨져의 코끝이, 마주 닿았다.
“벨져, 사실은 온종일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를 대 봤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불편한 자세일 텐데도 등 하나에 기대고 이쪽을 바라보며 웃는 릭의 행동에 벨져는 그 녹색 눈을 마주했다. 별보다 더 빛나는 듯한 두 눈이 그를 바라보고 있다 생각하며.
“적어도 내 사랑에 완벽한 이유라는 것은 없다고 말이오. 그대가 내 옆에 있는 게 숨 쉬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듯이.”
그대는 그래. 인간이라 숨 쉬는게 당연한 것처럼 어느 순간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소. 이게 내가 그대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야. 릭은 그렇게 말을 하며 눈을 감았다. 무언가를 털어놓은 듯 후련해 보이기까지 하는 그의 표정에 벨져는 굳혔던 표정을 풀어 보이고는 다시금 밤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그럼 벨져, 그대는 왜 나랑 연인이 되기로 결심한 것이오? 난 33살에, 그냥 평범한 남자인데.”
“아아, 물론. 33살에 아이처럼 도넛 크림이나 입에 묻히고 다니는 중년 남자를 누가 좋아하겠느냐만.”
“...욕이지?”
“뭐, 어찌 되었든 너야말로, 정말 이유 없이 그렇게 된 거다. 숨 쉬는게 당연한 것처럼. 생각해 보니 네 답이 제일 맞는 답인 것 같군.”
...벨져, 침실로 게이트 열까? 오래간만에 제법 머리를 제대로 쓰는군. 릭의 말에 순식간에 두 사람은 앉아 있는 그 자세 그대로 게이트가 열리며 푹신한 침대 위로 안착하게 되었다. 물론, 당연히 그 이후로는....
오늘도 좋은 하루였다.
------
(뭐가?)
' 벨져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져릭] 시간을 거스르는 방법 (0) | 2016.01.10 |
---|---|
[벨져릭] 너는. (0) | 2016.01.06 |
[벨져릭] 그 해, 겨울 -3 (0) | 2016.01.02 |
[벨져릭] 그 해, 겨울 -2 (0) | 2016.01.01 |
[벨져릭] 그 해, 겨울 (0) | 2015.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