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1. 1. 00:26
작성자
you. and. me.




*아니 이게 이렇게 길어질 이유가 없는데 왜이리 길어지는걸까요..


기- 승 - 전 - 결 중에 기 승 단계에서 머무르고 있는 이 소설.. 내일 전 결 까지 해서 올리겠습니다.


*올 한해동안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년인 2016년도 부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연성을 꾸준하게 올릴 수 있을지 장담할 수 는 없지만, 제가 노력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꾸준하게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새로운 한 해의 시작입니다. 모두 좋은 하루, 기운찬 하루로 2016년 1월 1일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이 글이 부디 여러분의 기분 좋은 1월 1일의 시작을 장식 하길 바랍니다.




“부장님?”


혼이 빠진 얼굴로 책상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어 올리니 여직원이 보인다. 어디 아프세요? 하고 물어보는 아가씨의 걱정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픈 건 아니고. 무슨 일이 있었는데 절대 말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마저도 자신이 없다. 


“아무것도-.”


아니. 내 일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되잖아? 거기까지 닿은 생각에 서둘러 빛나는 눈으로 여직원에게 문을 닫아보라 하자 여직원이 떨떠름한 눈으로 문을 닫는다. 그리고 내 책상 바로 앞의 의자에 앉아보라 하자 어딘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의자에 앉고서는 조심스럽게 품속에 껴안고 있는 서류를 좀 더 힘주어 껴안는다.


“있잖소-. 이건 내 친구이야긴데.”


최대한 환하게 웃으며 서둘러 사무실 구석에 있던 차 포트와 컵, 각종 티백이 올려진 탁자의 밑, 간이서랍에 몰래 숨겨놓았던 코코아 가루를 풀어 머그잔에 따듯하게 한잔 타내려서는 여직원에게 건네주자 여직원이 그제야 조금 풀린 얼굴로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이야기죠?’ 하고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


“그-. 엄청나게 잘생긴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내 친구가 얼떨결에 뽀뽀했거든.”


“네네.”


“어때? 그.. 뭐랄까, 이 둘이 잘 될 가능성이 있는 것 같소?”


내가 생각해도 조금 이상하고, 짧은 질문에 여직원은 말없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생각에 빠진 듯 끙- 하고 앓는 소리를 내며 이마를 한번 짚어 보았다. 그리고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듯한 코코아가 들어있는 머그잔을 양손으로 쥐고 한번 후후 불며 맛있게 한 모금 삼키더니 아주 활짝 웃으며 엄지를 내밀었다.


“눈앞이 깜깜해요! 아주 확실하게!”


나는 다시 책상에 머리를 박았다. 내 눈앞도 확실하게 깜깜해 졌다.


*


오전 업무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도무지 긴장되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내 사무실에서 책상 하나를 중간에 두고 그 주위를 몇 번을 빙글빙글 돌았는지 모르겠다. 화장실에서 하지 않아도 될 양치질을 몇 번을 하고, 다행히 옷을 그쪽 홀든 가에 두고 오는 바람에 새로 꺼내입은 정장을 입길 매우 잘했다, 자신을 칭찬하며 먼지가 붙었는지 확인했다. 이왕 죽을 거면 때깔이라도 좋게 해서 죽어야지. 아직도 나를 그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오는 눈으로 쳐다보던 그가 잊혀지지 않는다. 분명 카페에서 봤을 때는 그런 이미지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화장실의 세면대에 양팔을 기대고 거울을 바라보았다. 33살의 평범한 회사원이 그곳에 비치고 있었다. 그리고 내 표정은, 긴장과는 다르게 들떠 보였다. 


“.....”


물론 들떠봤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생각하니 한층 표정이 우울해 졌지만. 넥타이를 다시 한번 고쳐 매고는 화장실 밖으로 비장한 걸음걸이와 표정을 한 체 빠져나왔다. 온 직원들은 아침부터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위해 회사 입구 앞에서 점심시간을 빙자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장님 파이팅!!!”


아니, 이 사람들이!


나도 모르게 벅차오르는 감정으로 부하직원들을 향해 눈물 맺힌 눈을 반짝이며 ‘아니, 이 사람들 나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고 말하는 순간 직원들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외근 기념 맛있는 것 좀 사오세요!”


“전 케이크!” “저는 쿠키!”


눈물은 무슨. 소매로 눈을 꾹꾹 누르고는 직원들의 사이를 가로지르며 다시 성큼성큼 앞을 향해 걸었다. 뜨거운 직원애를 믿었던 내가 바보지. 뒤에서 여직원들보다 더 성화로 남자 직원들이 줄줄이 먹을 것을 말하는 것에 결국은 한숨을 쉬며 외근 끝나고 내일 사 들고갈 음식 종류를 떠올렸다. 


입구를 나서자마자 5칸밖에 되지 않는 계단을 한걸음에 뛰어내리듯 내려오자 바로 앞에서 영화에서나 보던 연미복을 입은 남성 한 명이 내 앞을 발걸음으로 따지면 한 걸음을 사이에 두고 빙그레 웃어 보이며 나를 쳐다보고 있다. 연세는- 이라고 물어봐야 할 정도의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한 주름. 그럼에도 단정한 자세와 칼같이 다려진 바지. 깨끗한 하얀 면장갑. 이게 진짜 집사라는 건가- 하는 분위기를 풍기는 사람에게 어정쩡하게 웃어 보이자 ‘릭 톰슨 씨 맞으십니까?’ 하고 부드럽고 편안한 톤의 음성으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아, 예.”


“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게 말을 끝내며 마차의 문을 열고 마부석 쪽으로 다가간 집사의 뒷모습을 쫓다가 열린 문 너머로 마차 속을 들여다보니, 창틀에 팔을 올려놓고 턱을 괸 체 이쪽을 쳐다보는 그가 보인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검은 캐시미어 코트에, 다만, 지난번과는 다르게 무광택의 구두와, 맞춤인 게 틀림없는 듯 그의 체형을 제대로 살려주는 정장까지. 머리카락과 대조되는 그 옷은 오히려 그의 얼굴을 더 부각할 뿐이었다. 그는 타고난 미인이었다. 잘생겨도 좀 이건 너무 하다 싶을 정도로... 


그나저나 마차 안에서 기다린다는 이야기는 없었잖아...


울상으로 마차 안을 들어갈까 말까 머뭇거리고 있자니 왜 안 들어 오냐는 듯 미간을 점점 좁히는 그의 표정에 서둘러 마차 안을 들어서자마자 마차 천장에 머리를 부딪혔다. 


“억!”


“이봐. 너 그러다가-.”


나도 모르게 비틀거리며 문을 어찌어찌 닫았는지 탁 소리가 마차 안에 잠시 울린다. 붉은 비단과도 같은 천으로 꾸며진 마차 내부에서 허리를 직각으로 굽히고 아픈 머리를 손으로 비비고 있자니, 문 닫힌 소리가 출발 신호인 건 줄 안 마부가 ‘이랴-.’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잠시만. 나 아직 앉지도 못했는데!


“으아아아아-.”


“앉아!”


“말은, 쉽지!”


천장에 몸을 딱 붙이고 천천히 덜컹거리는 마차 안에서 중심을 잡아 보려 하지만 돌부리에 살짝 걸려 휘청하자마자 몸의 균형이 무너진다. 어어- 잠시만 이쪽은 이 자시- 아니 이 사람이 있는 쪽인데! 마차 안이라 잡을 것이 하나도 없는지라 그대로 나는 그의 쪽을 향해 눈을 질끈 감고 넘어졌다. 안 그래도 머리를 제대로 박아서 속이 울렁거리는데 균형까지 잃으니 이젠 될 대로 되라 싶어진다. 최대한 그의 옆쪽으로 넘어지기 위해 몸의 무게를 그의 옆자리 공간으로 옮겨보지만 나는 아주 보기 좋게...


털썩.


“......” “......”


그의 다리를 베개 삼아 소위 연인들이 한다는 무릎베개 자세로 어정쩡하게 누워 버렸다. 얇은 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내 볼과 그의 허벅지의 체온이 닿는 것에 얼굴이 익을 듯이 뜨끈해져 버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나는 그대로 다시 억-! 소리를 내며 천장에 머리를 박아버렸다. 


“제발 나잇값 좀 해라. 가만히 있을 수는 없나?”


“야!”


이마에 힘줄까지 솟아오를 것 같은 그의 화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미 땡땡하게 혹이 두 개는 올라왔을 내 머리를 움켜쥐고 덜컹거리는 마차에서 다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아보며 그를 힘껏 노려보았다. 


“너 몇 살이오.”


“일단 앉아서 이야기해.”


“나이 운운하는 거 정말 좋아하지 않으니까-.”


다시한번 크게 덜컹거리는 마차에 또 몸의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한다. 오기로라도 이젠 버티고 만다, 싶어 한쪽 손으로는 마차의 한쪽 벽면을 밀어내고, 다른 손으로는 창틀을 붙잡고 그를 가둬 놓는 듯한 애매한 자세로 나는.


따닥-.


입술 박치기를 해버렸다. 그것은 박치기였다. 연인들이 하거나, 내가 어제 시도했던 부드러운 입맞춤이 아닌, 이와 이가 부딪혀 입술이 살짝 터질 정도로 대단한, 입술 박치기였다.



*


“아.. 아니, 도련님들 입술이...!”


무슨일이 있으셨습니까? 도련님? 서둘러 품속의 손수건으로 그의 입술에서 자꾸 새어나오는 피를 막았다. 그는 그저 미간을 구기며 아무것도 아니다. 하고 대답하고는 자기 혼자서 저택 안쪽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곧이어 집사는 나에게도 품속의 다른 손수건을 꺼내 입술의 피를 지혈해 주었다. 집사는 대단하구나. 멋쩍게 웃어 보이며 감사하오. 하고 대답하니 집사가 ‘마차 안에서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하고 물어보는 것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저희 도련님께서는 다른 사람과 썩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시는 편이 아니십니다.”


평소에도 주로 혼자 계시는 것을 더 편안해하시고, 본가에도 잘 계시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다른 사람에게 조금 관심을 보이시는 것 같아서 안심하고 있었는데... 마차에서 싸우셨습니까? 이 집사가, 대신 사과 드리겠습니다. 하고 손바닥으로 가슴을 살짝 덮은 체 나보다 한창나이가 많은 어른이 허리를 숙여 보이는 것에 나도 당황해 하며 고개를 숙이며 아. 아닙니다. 그저 잠시 제가 마차에서 허둥거리는 바람에... 하고 말끝을 흐리니 그제야 허리를 들고 다행이라며 환하게 웃어 보이는 집사분에게 나는 하하-. 하고 웃어 보였다.


허둥거리는 바람에 제대로 뽀뽀해서 입술을 터쳤소. 


내 입이 33개라도 절대 말하지 않을 테다. 암.


“그나저나...”


엄청난 규모의 저택이긴 하구나. 아까 엄청 커다란 철문을 지나쳐서도 한참 잘 포장된 가로숫길을 한참이나 달려서야 저택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내가 정원에서 길을 잃어버려도 이상한 것은 아닐 테지.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홀든 가의 저택은 백색으로 아름답게 조각하듯, 벽돌을 이어 붙인 흔적도 없이 건축되어 있었다. 창문부터, 창틀. 주변을 살짝 돌아봤을 때도 척 봐도 잘 관리된 환경미화까지. 


“엄청난 저택이로군.”


“저희 홀든가는 대대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이곳을 유지해 왔습니다.”


마치 박물관 소장이 할 법한 대사가 흘러 나오는 것에 집사를 바라보자 매우 자부심 넘치는 표정을 하고 계신 것에 그렇군. 척 봐도 훌륭해 보였습니다. 하고 추임새를 넣어주었다. 집사는 도련님이 매우 좋은 친구분을 두셨다며 서둘러 나를 저택 안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친구 아닌데... 대답도 못하고 집사의 뒤를 따라서자 마자 메이드와 다른 집사들이 일렬로 양옆으로 늘어서서 ‘어서 오십시오, 손님.’ 하고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에 놀라 다시 한번 또 같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집사가 소리 나지 않게 어깨를 붙잡고 내 쪽을 바라보며 입을 뻥긋거리며 허리는 숙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에 그제야 허리를 펴 보였다.


“도련님은?”


“벨져 도련님은 방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차를 준비할까요?”


“내가 직접 하지. 나머지는 마저 할 일들을 해주세요.”


메리, 너만 조금 일손을 도와주겠니? 손님 짐을. 집사가 익숙한 자세로 머리를 잘 묶어 단정하게 한 아가씨 한 명에게 내 코트를 부탁하는 것에 서둘러 코트를 벗어 아가씨에게 건네 주었다. 겉 외향뿐만 아니라 속까지 완벽하게 전통은 전통인 듯, 귀족 특유의 느낌으로 꾸며진 집 안. 천장에는 커다란 샹들리에가 불빛을 내는 양초를 반사해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다. 양옆으로 나 있는 계단을 덮고 있는 붉은 레드카펫 위로 집사가 따라오시죠. 하고 먼저 발걸음을 내딛는 것에 집사를 따라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복도의 제일 끝방. 무언가 사람의 시선이 그렇게 닿지는 않을듯한 방의 위치에 주변을 새삼 둘러보다가 집사가 방문을 두드리는 것에 긴장했다.


“도련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그의 목소리에 움찔하며 집사가 열어주는 문틈으로 고개만 빼꼼 내밀자 집사가 웃어 보인다. 그런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가 날 죽일 태세 인지, 살릴 태세인지를 먼저 확인하기 위해 그를 찾자, 침대에 앉아 머리가 희끗희끗한 메이드에게 입술 치료를 받는 것이 보인다. 


“오. 한나. 여기 있었군요.”


“어머, 집사님. 벨져 도련님께서 입술이 다치시는 바람에.”


사람좋은 푸근한 인상으로 웃어 보이며 이야기를 나누는 집사와 메이드. 그리고 메이드는 문틈으로 고개만 내민 나에게 시선을 주었다. 눈이 마주치자 눈을 접어 보이며 웃어주는 한나라는 메이드 분. 나까지 덩달아 편안해지는 기분에 같이 웃어주자 그의 날 서린 목소리가 가슴을 파고든다.


“뭘 웃고 있나. 입술 이렇게 해 놓고 웃으면 다란 건가?”


“아니, 그걸 내가 일부러 한 것도 아니고-.”


“의자에 앉으라고 몇 번을 말했지?”


으르렁 거리며 이제는 방 안으로 성큼 들어가 침대에 앉아 있는 그에게 오히려 어제와는 반대로 내가 팔짱을 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썹 한쪽이 꿈틀거리며 불만을 표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5번.”


“......”


“왜.”


“... 그냥, 대화할 가치가 없는 것 같아서.”


어머, 도련님들 사이가 좋군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어 보이는 메이드에게 둘 다 정색을 하며 ‘아니.’,‘아니요.’ 라고 해 보이는 것에 메이드는 손뼉을 치며 ‘정말 사이가 좋네요! 다과라도 내오겠습니다.’ 하고 집사와 함께 문밖으로 빠져나간다. 닫히는 문소리를 마지막으로 다시 조용해지는 그의 방에 다시금 어색해지기 시작했다.


*


“자. 거래를 할까.”


“.....”


한나라는 메이드 분께서 가져다주신 홍차와 다과는 정말 맛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입으로 흙이 들어가는 것인지 과자가 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의 손에 흔들리고 있는 지갑을 따라 내 시선도 흔들렸다. 저게 잡혀 있었지.


“내 입술도 찢어놨겠다.”


“내 입술도 같이 찢어 졌-.”


“조용히 해라. 네가 자리에 제대로 앉기만 했어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도 않아.”


그래, 이 대가를 치러야지. 그는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그의 아름다운 외모만 보고 내가 반한 게 틀림없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자꾸 눈앞의 과자만 먹어 치웠다. 입술에 과자 부스러기가 붙어 따끔하자 나도 모르게 아-. 하고 입술을 매만졌다. 가루 털어내야지.


“.....”


“...뭘 그렇게 보시오?”


“바보같이. 칠칠하지 못하게 애처럼.”


와, 진짜 성격 나쁘네. 미간을 찌푸리며 대충 입술을 엄지 손으로 훑어내렸다. 상처가 손에 쓸려도 되려 더 아픈 것에 낮게 신음하자 그가 손수건을 건네준다. 하얀 손수건. 이게 뭐지, 하고 그를 쳐다보고 손수건을 한번 쳐다보자 그가 짜증 난다는 말투로 닦으라며 다시 수건을 건네준다. 느릿하게 그 손수건을 받아 입술을 닦아내자 피와 과자 가루가 같이 묻어나온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품에 있어서 그런 것인지, 그의 향이 묻어난 손수건이었다.


“치워봐라.”


손수건으로 입술을 꾹꾹 누르듯 닦아내고 있으려니 그가 손수건을 쥔 내 손을 밀어낸다. 뭘 하나 싶어서 봤더니 그가 아까 그 메이드 분이 발라주던 연고 통을 들고 있다. 육각형의 작은 연고통. 그가 연고를 손가락에 조금 묻혀 내 입술의 찢어진 곳에 손을 대자, 따끔한 고통이 잠시 밀려온다.


“아.”


“참아라.”


그의 말에 주먹에 힘을 주고 따끔거리는 입술의 통증을 참자 그가 피식하고 웃는 소리가 들린다. 입술을 누르듯, 살짝살짝 움직이는 그의 손가락에만 시선을 주다가 그에게 시선을 주자 바깥 풍경보다 더 파랗게, 깊어 보이는 하늘과 같은 눈이 거기 있었다. 그는 연고를 바른다고 이쪽은 제대로 쳐다보고 있지도 않다가 내 시선을 느끼고서야 나를 마주 보았다.


나는 늘 그런 이야기를 마음에 담고 있다.


눈은 마음을 보는 창이라고.


그의 눈은 정직하게 푸른 빛을 띠고 있었다. 숨김이 없는 눈빛. 내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눈빛이 마음에 든다. 아마 내가 그의 얼굴에 반한 것 보다는 저 눈에 반한 게 아닐까. 나도 모르게 눈을 휘어 보이며 웃자 그가 입술을 문지르던 손가락을 때어낸다.


“네가 해라. 나머진.”


“응?”


“그리고 오늘부터 회사에 말해 둘 테니. 당분간 내 일을 도와.”


언제 네가 필요할지 모르니 당분간 이쪽에서 방을 마련해 줄 테니 여기서 숙박하도록. 어처구니가 없는 그의 말에 안 한다면? 이라고 말을 하니 그가 웃으며 내가 가장 아끼는 가죽 코트를 옷장에서 꺼내고는 옷장 옆에 세워진 검 하나를 들어 올린다. 


“요즘은 새로운 취미로 가죽 찢기를 하고 있는데.”


“성심성의껏 돕겠습니다.”


좋은 비즈니스맨의 자세로군. 훌륭하다. 유모에게 시켜 방을 마련해 주지. 기간은 언제까지? 한 달. 하안다알? 유급에 시간 외 수당까지 주도록 하지. 그가 옷장에 다시 옷을 넣어두고는 검을 허리에 차고 이쪽을 바라본다.


“....입이 귀까지 찢어지겠군.”


“응? 아니. 딱히.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하면 되는 것이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웃음 뒤에 알 수 없는 계략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



“......”


“...도우랬지, 자라곤 한 적 없는데.”


“에?”


침흐른다. 그의 말에 서둘러 입 옆으로 살짝 삐져나온 침을 셔츠 소매로 닦아내었다. 지금 시각 오후 11시. 이미 내 책상의 잔 밑에 살짝 고인 커피가 굳어버려 딱딱하게 컵에 눌어붙을 정도로 일을 시작한 지 꽤 시간이 지났다. 시계를 한번 쳐다보고 어두워진 밤에 비해 환한 그의 방에 시선을 주었다. 졸았던 건가. 아주 꾸부정해진 몸에 기지개를 피며 뭉친 근육을 풀어주자 미동 없이 서류에 사인하는 그가 보인다.


“안 피곤하시오?” 


“너야말로. 무슨 직장인이라더니, 야근도 해보지 않은 건가.”


“아니. 어제랑 오늘 잠을 잘 못 자서...”


눈을 비비며 책상에 한가득 쌓여있는 서류에 힘을 주었다. 그랑 만난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어서 조금 밤을 새운 것이 화근일까. 눈꺼풀에 누가 돌덩이를 올려놓은 듯 눈이 감길 듯 말 듯하다. 


“...이것만 마무리 짓고 한잔하지. 푹 잘 수 있을 테니까.”


“...나, 술 약한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주량도 파악할 겸. 한잔해 둬. 내일도 일이 많을 건데 오늘 푹 자지 않으면 곤란한 건 나다.”


그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나에게 할 말만 하고는 서류에 시선을 주었다. 그래. 차라리 얼른 끝내고 푹 자자. 무거운 몸을 움직여 그가 결제 해야 할 필수 서류와, 그냥 넘겨도 될 듯한 서류를 구분했다. 내가 결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나저나 그가 일하는 곳이 기사단이라 하던데, 글 문장 자체가 엄청 투박하다. 엉망인 것도 많고. ...이래도 되려나. 잘못 기재된 서류 위에 고쳐야 할 사항에 대해 추가로 필기를 해 주고, 필요없는 부분은 주욱 선을 그어 한쪽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시계 초침이 찰깍거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 자꾸만 움직이는 덕분에 조금씩 수마가 사라지는 것에 몸에 힘을 주었다. 좋아. 내쪽 서류 정리는 거의 끝나가니까. 정리된 서류를 그의 책상 위로 가져다주자 그가 나를 쳐다본다.


“내가 결제사인을 내릴 수는 없잖소.”


“......”


그는 나에게 일을 맡겼음에도 약간 미심쩍은 눈을 하더니 서류 한 장을 집어 들어 본다. 뭔가 심사받는 기분에 조금 두근두근하며, 그의 옆에서 가만히 서 있다가 그가 들고 있는 서류를 다른 손으로 옮겨 들고는, 들고 있던 서류에 시선을 고정한 체 다른 손을 나에게 내민다.


“.....?”


잡아달라는건가? 아까 연고를 발라주었던 손. ...천천히 그의 손 위로 완전히 손을 포개지 않고 약간 어긋나게 해서 깍지를 끼듯 손을 잡아주었다. 움찔하고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손을 쳐다보는 그에게 웃어 보였다.


“손잡아 달라고?”


“...다른 서류를 달라는 의미다.”


“아. 미안. 자 여기. 서류-.”


난 그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다른 손으로 서류를 집어 들어 그에게 건네 주자 그도 아무런 말없이 잡은 손을 내려놓지 않고 그대로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 내가 건네주는 서류를 받아 든다. 


사람의 손이란 것은, 입술 다음으로 체온을 가장 많이 접촉할 수 있는 부위이다. 그의 손은 약간 서늘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컸다. 생각 외로 가늘었으나, 두꺼운 손. 그의 손등을 다른 손으로 만지작거리자 그가 서류를 보던 시선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 지난번에 카페에서 봤었지.”


“기억하고 있었소?”


“그래.”


너무 뚫어지게 쳐다봐서, 창문 너머까지 시선이 미치는 것 같더군. 그래서 쳐다봤지. 그가 말을 하는 사이에 우리가 잡은 손 사이에서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긴장한 것인지, 그가 긴장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상당히 재수 없는 사람 1 정도로 생각됐는데. 이유 없이 붙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은 그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에 웃어버리자 그가 가만히 나에게 물어온다.


“한잔하겠나?”


“프랑스 포도주 아니면 마시지 않겠소.”


“준비해 두지.”


그렇게, 그와 나의 동거 아닌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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