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곤하다..
*알파 벨져, 오메가 릭이지만 뭔가 그냥 그런것 없이도 매우 자연스러운것 같은 느낌..? 아니 뭐랄까 벨져랑 릭이라면 당연히 그게(?) 될거라는 그런 기분...?
*아이들 이름은 랜덤으로 지었습니다.
그날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날이었다. 내 몸에서 가장 진한 향이 나오는 때. 난 늘 그렇듯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이 향이 내 몸 바깥으로 나가지 않기를 바라며 이불로 온몸을 둘러 싸맸다. 오늘이 부디 넘어가기를. 가쁜 호흡과, 달아오르는 몸은 이미 다른 사람을 원하고 있지만, 이성은 생각보다 냉철했다. 절대, 알파를 만나서는 안 돼. 불까지 다 꺼 둔 거실에서 혼자 소파에 앉아 불안에 떨었다.
그러나 내 이성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졌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익숙한 모습. 실수로 문을 잠가 버리는 것을 잊었다, 생각하는 찰나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거실이 한 번에 보이는 현관에서 어깨너머까지 조금 더 긴 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당신과. 나는 그와 마주한 순간 이성을 무너트렸다.
“릭? 전화는 왜 받지를 않고 문을 열...”
순간적으로 그의 표정이 긴장에 굳혀졌다. 심장이 아주 크게 요동치고 있다. 왔다. 왔어. 그라면 너를 구원해 줄 수 있어. 약도 없잖아? 뭘 망설이는 거지, 릭 톰슨? 악마가 귓가에 속삭이는 듯한 그 머릿속을 맴도는 말에 이불을 붙잡고 있던 손이 느슨해 졌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내게 다가오는 그와 나는 입을 맞추었다. 원래부터 이런 관계였지만, 좀처럼 이때, 그러니까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히트 사이클’이라는 시기에는 그와 마주하지 않았는데. 그와 사귄 지는 벌써 양손을 꼽을 정도로 몇 달이 지났다. 내 집의 키는 이미 그에게 하나 복사해 주었을 정도로 우리는 제법 연인다웠다. 그러나 나는 그 이상을 원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선.
그와 나는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선을 그었다.
그는 그 홀든 가의 귀족 집 자제분이셨고, 나는 그냥 평범하디 평범한 회사원이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그와 이어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는 문제 이전에, 그와 나의 ‘차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괜찮지 않을까?
생각보다 이성이라는 것은 감정에 약했다. 마주친 입이 열리며 혀와 혀가 얽히는 순간 나는 조금 만 더. 아주 조금 더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합의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선을 넘어버렸다. 그어둔 것 자체가 우스워질 정도로. 우리는 본능에 충실했다.
*
“...그래서...”
“내 아이다.”
홀든가의 응접실은 엄청난 고요함에 빠져들었다. 나 때문이지. 내 아이다, 하고 당차게 말한 벨져와는 달리 찻잔의 손잡이가 덜덜덜 떨릴 정도로 내 손은 혼돈과 공포 그 중간 즈음에 머문 것 같았다. 차를 마시는 순간 입 옆으로 덜커덕거리며 내 이와 찻잔이 부딪치고 차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밖으로 새는 건지 모르게 마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셈이지.”
찻잔을 잡은 손만 보고 있다가 문득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 것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마자, 서슬 퍼런 눈빛의 다이무스경 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무고한 생명에 빛을 내보이지 않는 것도 우습고, 무엇보다...
“그와, 나의 아이요.”
“......”
“모든 책임은. 내가 지겠소.”
나 또한. 그는 말없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나도 모르게 내 배를 보호하듯 감싸 쥐고는 벨져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 침착하게 다이무스경을 쳐다보자 그가 생각을 읽을 수 없는 눈빛으로 나와 벨져를 같이 번갈아 쳐다보았다. 깊게 내 쉬어진 한숨. 그리고 이내 떨어진 허락.
“알아서 해라. 홀든 가에 먹칠할 행동만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
“단.”
아이가 태어나고 성인이 될 때까지, 릭 톰슨 또한 홀든 가에 머물고 육아를 하게 할 것이다. 이 점을 수락하지 않는다면... 평상복인데도 항상 들고 다니는 듯, 검의 손잡이와 검날 사이의 경계를 알려주는 듯한 작은 철판을 엄지손가락으로 밀어 올려 검집에서 손쉽게 검을 빼낼 수 있게 자세를 취한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
벨져도 만만치 않게 소파 옆에 내려놓았던 검집에 담긴 그의 검을 집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살벌한 풍경. 이 와중에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며 ‘자자, 진정들 하라고? 응? 첫째 형사도. 둘째 형도.’ 하고 나름 중재하려 하는 이글 홀든.
“알겠소.”
어짜피 나올 수밖에 없는 합의. 답은 하나다. 나는 벨져의 셔츠 뒤쪽을 힘주어 잡고 입을 열었다. 나의 말에 다이무스경은 엄지손가락을 내리고 칼날이 살짝 보였던 검을 숨긴 체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일 안으로 방 하나를 내 주지. 벨져 홀든, 네 옆방으로.’ 그는 그 말만 남긴 체 자리에서 일어나 응접실 밖으로 나섰다.
“그럼. 잘 부탁해 형수님.”
농담반, 진담 반인 이글은 그렇게 다이무스경의 뒤를 따라가며 나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 보였다. 커다란 응접실에 남은 그와 나. 커다란 창문 덕분에 쏟아내리는 햇빛이 따듯하기만 하다.
“릭.”
“괜찮아. 당신이 옆에 있어 줄 거잖소.”
그렇지? 옆에 앉은 그에게 웃어 보이자 그가 이내 내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춰온다. 그러나 나에게는 조금 더 확신이 필요했다. 나와 아기, 이 모든 것에 대해 벨져 그가, 책임감 있게 다가올 것인지. 그저 단순히 벌어진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 없이 대처하는 것인지. 나는 확신이 필요했다. 아가, 너도 이해해 줄 거지?
한번 배 위에 올린 손 위로, 아직 제대로 태어나지 않았을 생명체가 발을 차며 대답해 주는 것만 같은 기분에 웃어 버렸다.
*
“벨져.”
“...왜?”
그는 설마 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에게 배시시 웃어 보이며 ‘오스트리아의 특산물, 집중 취재!’라는 타이틀이 크게 박힌 잡지에서 시선을 떼고는 그에게 입을 열었다.
“오스트리아의 슈타이어마크 지역에서 아주 맛있는 호박씨 오일을 생산하고 있다는데. 아아, 호박씨 오일로 만든 고소하고 진한 맛의 향기로운 호박씨 오일 샐러드가 먹고 싶다.”
“......”
알겠다. 게이트를 열어. 그는 생각외로 선선히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갈 채비를 했다. 그것에 제법 감동했지만. 그래도 말이지...
“벨져. 나 아무래도 배가 아파서. 게이트를 열지 못하겠소.”
“......”
“아아, 그래도 호박씨 오일로 드레싱을 한 샐러드가 너무너무. 너무!!! 먹고 싶네...”
이걸 어쩐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보니 그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그러나 이내 문밖으로 나서서 지나가던 메이드에게 마차를 준비하라고 말한 뒤 다녀오지. 하고 내 이마에 입을 맞추는 그. 한참 캄캄한 저녁에 밖으로 나서는 그에게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든 뒤 따듯한 이불에 누워 가만히 침대 천장을 바라보았다.
“천하의 벨져 홀든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거구나. 실제로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하는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었다. 마차 한 대가 빠르게 저택을 빠져나가는 것에 창문턱에 팔을 올려 몸을 지탱시키고 언덕 너머까지, 마차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그의 뒤를 쫓듯 그것을 바라보았다.
*
[벨져. 짭조름 한 게 당기지 않소? 역시 우기에는 짜고 맵게 먹어주는 편이 좋은가 봐. 응? 내가 먹고 싶은 거 아니냐고? 절대 아니오. 우리 아기가 먹고 싶다는데. 그렇지, 아가? 자! 벨져! 오스트리아의 소금 마을이라 하는 할슈타트의 소금으로 만든 수프가 먹고 싶소. 지금 출발하면 오후 즈음에는 돌아올 수 있겠지. 마차는 내가 준비시켜놨소.]
[벨져. 그대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커피인 아인슈패너를 알고 있지? 처음 커피를 접한 오스트리아인들이 강하고 진한 커피맛에 익숙하지 않아서 우유나 크림을 타서 연하게 먹었다 하던데. 그래서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고? ...기차표는 여기 있소. 커피는 따듯하게 해서 식지 않게 다녀오시오! 목적지는 비엔나!]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하다 할 정도의 부탁인데도 그는 아무런 말없이 가끔 눈썹만 꿈틀거릴 뿐 불평 한마디 한 적도 없이 손수 내가 원하는 음식을 기꺼이 가져오고야 말았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포기할까, 아니면 화를 낼까 싶었는데. 그는 덤덤했다. 어느새 내가 여기 홀든 가에 머무른 지도 벌써 5개월이 지나가고, 배는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왔다. 이제는 묵직해진 배 덕분에 움직이기 힘들어져 간혹가다 그의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로 움직임이 불편해 졌다.
“자. 여기.”
이번에는 잘츠부르크의 명물인 모차르트 초콜릿을 그가 건넨다. 잘 포장된 상자를 열자 모차르트가 그려진 금박 포장지 속에 담긴 초콜릿이 보인다. 하나를 까서 입 안에 넣자마자 달콤한 초콜릿의 풍미가 느껴진다. 하나를 까서 침대 옆에 앉아서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입 쪽으로 초콜릿을 대 주자, 그가 말없이 초콜릿을 받아먹는다.
“...어떻소?”
“맛없다.”
당연하다는 듯 그가 말하는 것에 웃어버리자 그가 입을 맞춘다. 달콤한 초콜릿 맛의 입맞춤이라. 입을 벌리자 그의 입안에서 체 녹지 않은 초콜렛 알맹이가 느껴진다. 천천히 완전히 입안에서 녹을 때까지 이어진 입맞춤에 혀뿌리까지 아플 지경이다.
“......”
“벨져, 지금 하고 싶다 생각했지?”
“...아니. 전혀.”
눈썹을 꿈틀거리는 그는 딱 봐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았다. 하긴 5달을 참는 사내라... 나야 어쩔 수 없이 성욕이 딱 떨어져 버렸지만... 그에게 멋쩍게 웃으며 그래도 미안하오. 아기가 다칠지도 몰라. 하고 대답해 주니 그도 고개를 끄덕거리며 내 옆에 눕는다. 아까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벨져? 뭔가 고개 끄덕이는 게 어째 영 바랬던 것 같은데. 그의 옆구리를 장난스럽게 쿡쿡 찌르다가 그가 피식 웃어버리는 것에 냉큼 그의 품에 파고들 듯 들어가 누워 버렸다. 가장 편안한 시간. 평소에는 늘 메이드들과 이야기를 하거나, 집사의 도움을 받아 서제서 책을 읽거나 하지만. 그래도 늘 저녁이면 돌아와 내 옆에 붙어있는 그와 있는 지금 이 시간이 제일 편안하다.
“벨져.”
나른한 수마가 몰려오는 것에 눈을 감고 그의 이름을 부르자 대답 없이 내 머리카락을 한번 매만져 주는 그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내 자세를 고치고 그가 팔베개까지 해 주는 것에 웃어버리자 그가 내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한번 튕긴다.
“아프오, 하지 마.”
웃으면서 그의 손을 치워도 자꾸만 콧잔등을 튕기는 그의 손길에 결국은 눈을 뜨고 다시 한번 그의 입술을 찾았다.
벨져, 아빠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소?
그는 나의 물음에 대답해 주었다.
마냥 기쁜 것은 아닌 것.
왜?
나의 물음에 다시 그는 대답해 주었다.
그만큼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이 늘었다는 거고, 난 책임 질 생각이니까.
난 그날 이후로 그에게 음식 사달라는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
“아버님이랑 결혼할 거에요.”
“...마리나.”
첫째는 그와 닮은 머리카락을 가진 예쁜 아가씨였다. 나는 매우 만족했고, 그는 조금 놀란 눈치였다. 새삼 나에게 ‘너랑 닮은 아이일 줄 알았는데.’하고 아쉬워 하는 것도 없지 않아 있지만. 자신과 똑 닮은 은백색의 머리카락을 가진 아이를 그는 제법 예뻐했다. 게다가 아이는 자신의 아버지인 벨져에게 유난히 그 맑은 녹색 눈을 빛내고는 했다. 벨져가 절대 가르칠 생각이 없던 검술을, 아이가 하도 졸라대며 가르쳐 달라 하기에 어찌어찌 가르쳐 주고 있지만.
“그래도, 이미 아버지는, 나랑 결혼했는걸.”
“어머님이랑 결혼한 것 정도는 알고 있어요.”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카락. 다른 귀족 자제의 여자아이답지 않게 치마와 인형을 좋아하기보단 전쟁놀이를 좋아하고 가죽 바지를 입는 것을 즐기는 아가씨라. 그것도 나름대로 귀여워 내 무릎을 조금 넘어선 키의 마리나를 안아 올려 품에 안자 자연스럽게 목에 팔을 둘러 온다. 고사리만 한 손이 따끈하게 목을 감싸는 것에 새삼 감격하게 된다. 이런 아이가 내 딸이라니. 보드랍게 우유 향이 나는 볼에 입을 맞춰주자 사랑스럽게 웃어 보인다.
“그래도! 아버님이랑 꼭 결혼할 거에요.”
“나랑은 별로인가...”
첫째는 어느덧 5살. 나를 닮은 머리카락에 벨져의 눈을 쏙 빼닮은 3살배기 둘째 아들, 에브게니도 어째 나한테는 별로 관심이 없고, 벨져를 좋아한다. 물론 아이들이 그렇다고 나에게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것은 절대 아닌데, 무심한듯한 벨져를 왜 더 좋아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어머니도 멋있어요. 그렇지만 아버지가 조금 더 멋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근육도 많고! 잘생겼고! 게다가 늘 에브게니한테 검을 가르치실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거든요!”
완전히 화색이 돈 아이는 이내 벨져의 눈빛을 따라 하며 ‘그 정도 실력으로는 좋아하는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할 거다.’ 하고 흉내 내는 것에 푸흐. 하고 웃어버리자 아이가 내 볼에 조막만 한 손을 올려 본다.
“역시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머니겠죠?”
“글쎄, 물어보는 편이 좋지 않을까요, 우리 아가씨. 같이 물어보러 갈까?”
아이의 코에 내 코를 닿게 하고 얼굴을 도리질하며 코를 비비자 아이 특유의 까르르하고 웃는 소리가 귀를 파고든다. 귀여워. 내 배 아파서 낳은 보람이 있는 아이였다. 그래요! 하고 당차게 말하는 아이를 품에 안고 나도 서둘러 에브게니를 가르치고 있을 그에게 발걸음을 돌렸다.
*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사람은 역시 어머니죠?”
우리는 모든 홀든 가에서 실행하는 아이들의 수업을 끝내고 그의 방 벽난로 앞에 둘러앉아 벨져를 쳐다보았다. 벽난로 옆에 있는 1인용 소파에 느긋하게 누워 쉬고 있던 그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를 쳐다보았다. 당돌하게 물어보는 마리나와 내 옆에 엎드려 턱을 양손으로 꽃받침을 한 체 제 아버지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쳐다보는 에브게니. 마린룩이 제법 귀엽게 잘 어울리는 것에 아이의 동그란 머리통을 한번 쓰다듬어 주자 그가 나에게 시선을 준다. 이거 네가 한 짓이지? 무언의 시선에 나는 그저 어깨를 한번 으쓱여 보였다.
“...그...”
아이들의 눈이 커지고 내 눈도 커지기 시작했다. 벨져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는 것에 점점 더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되어 가자 벨져가 어렵게 입을 연다.
“그렇지 않고서야 너희들이 태어났을 리가 있겠나.”
돌려서 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용케 알아들은 듯하다. 똑똑한 아이들. 또 그것이 뿌듯해서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한 번씩 맞춰주자 아이들이 기분 좋은 듯 벨져에게도 달려가서 뽀뽀하고 나에게도 안겨와 뽀뽀를 마구 하기 시작한다. 어느새 벨져의 품에 자리를 차지한 마리나와, 내 품에 자리를 차지한 에브게니. 이제 졸리기 시작한 듯 아이들의 눈이 끔뻑거려지기 시작하고 병아리같이 하품을 한다.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어요?”
졸린 눈을 비비는 마리나의 물음에 우리 둘은 경직했다. 바닥에 정좌 자세로 앉아 에브게니를 품에 안고 있는 나와, 소파에 앉아 마리나를 안아주고 있던 그와 나의 눈에서는 무수한 말이 오고 갔다.
벨져, 뭐라고 답 좀 해보시오.
네가 답해. 이런 건 네가 잘 말하잖아.
내가!? 내가 무슨 육아 박사인 줄 아시오?!
그는 시선을 회피하고 나와 절대 눈을 마주하지 않았다. 결국엔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그건 말이지. 이렇게, 잘 때 손을 꼬옥 잡고 사랑한다, 사랑한다. 세 번 정도를 말하면 황새가 물어다 주는 것이오.”
“......”
벨져가 고개를 돌리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웃는 것이 틀림없다.. 얄밉긴.
“그럼 제가 아버지 손 꼬옥 잡고 사랑한다고 세 번 말하면 황새가 아기를 물어다 주나요?”
“푸흐.”
결국에는 벨져가 먼저 소리 내 웃어버리고 말았다. 소파 팔걸이에 핏줄이 오르도록 손에 힘을 주어도 웃긴 것은 웃긴 건가 보다. 나는 지금 울고 싶은데. 나 혼자만 당할 수 없지.
“으응, 그건 아마 안될 것이오. 왜인지는 우리 ‘벨져 아버지’가 잘 알려 줄 거야.”
이내 졸리던 아이들도 눈을 다시 빛내며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이제 대답해 보시지, 벨져. 아기가 어떻게 생기는지 말이오! 회심의 눈빛을 보내자 그가 한숨을 푹 쉬면서 입을 열었다.
“선생한테 물어봐라.”
“선생님께서 부모님께 여쭤보라 하셨어요.”
그가 혀를 차며 아쉬워한다. 어딜 선생한테 돌리려고. 나 혼자 회심의 눈길로 웃으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더듬더듬 좀처럼 어울리지 않게 말끝을 흐리며 대답을 한다.
“그건...”
“그건?”
내가 반문하는 것에 어쩐지 벨져의 이마에 힘줄이 올라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내 평소의 냉철한 벨져의 표정이 나를 마주하는 것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야밤에. 결혼한 두 부부가. 침대에-”
“자! 우리 이제 슬슬 잘 시간이 된 것 같은데, 아버지랑 빠이빠이 하고 잘까?”
저 양반이 진짜... 속으로 이를 갈며 졸린 두 눈을 비비는 아이들의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온 벨져도 자신의 무릎 위에서 내려온 마리나와 에브게니의 볼에 입을 맞춰 준 뒤, 잘 자라. 이불 꼭 잘 덮고 자고. 하고 아버지다운 말을 건네 준다. 아이들이 고개를 꾸벅거리며 방 안을 빠져나가는 것을 보고 완전히 복도가 조용해 져서야 방문을 닫았다.
“벨져.”
“왜.”
“아니, 그걸 진짜 그대로 말할 작정이었소? 애들 육아에 좋지 않을 수 있어, 그런 건.”
네가 막을 줄 알았으니까. 나도 황새가 물어다 줬다 할 예정이었는데? 내 뒤로 다가와 허리를 껴안고 턱을 어깨 위로 올리는 그의 행동에 한숨을 푹 쉬자 그가 냉큼 나를 안아 들고는 침대 위에 눕혀 버린다.
“성교육, 중요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하나 다시 체험해 보면서 아이들에게 올바른 성교육을 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아이들 한테 동화책을 읽어주는 것을 깜빡했소.”
서둘러 말을 돌려 그의 품을 빠져 나가 보려 하지만 내 위에 올라탄 그는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바둥거리며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자니 그가 진심인 듯, 농담인 듯 셋째는 널 닮아서 머리카락도, 눈도 너와 똑같았으면 좋겠군. 하고 웃어 보인다.
“...욕심은.”
웃으며 그의 목을 붙잡고 힘을 주자 그가 고개를 내린다. 몇 번을 마주한 입술인데도 부드럽고, 기분 좋다. 한참을 입을 맞추고 있자니 그가 안 되겠다며 셋째도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옷을 벗겨 나가는 것에 황급하게 그를 밀쳐 내 보지만, 이미 밤은 깊었고, 그는 너무나 완고했다.
...이러다 정말 복상사하지 않을까, 하는 겨울의 어느 조용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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