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12. 26. 00:05
작성자
you. and. me.





*아 늦었어 10시 반부터 썼는데!!!!



“크리스마스인데, 우리는 여기서 뭐 하는 거지.”


완전히 지쳐버린 여사원의 말에 모두 작업하던 손을 멈추고 허무하게 서류들을 훑어 보았다. 크리스마스인데 회사에서 일이 터진 것 때문에 전 직원들이 모여 다시 서류를 정리하고 결제해야 하는 일이 터지고 말았다. 덕분에 부장인 나 또한 사무실에서 바쁘게 일을 할 수밖에. 어느새 시계는 10시 48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미 넥타이는 거슬려서 셔츠 주머니 안으로 넣고 일에만 집중 한지 벌써 12시간이 넘었다. 아침 9시부터 출근했으니까. 


“...벨져랑 같이 영화 보기로 했는데.”


이미 영화 시간은 한 시간이나 지났다. 지금이면 영화관도 문을 다 닫아버렸을 것이고. 벨져에게 전화로 연락은 해 뒀는데, 그도 그 나름대로 시간을 비워 뒀던 건지 한참이나 늦어진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겨우 들려오는 ‘...알았다.’ 라는 이야기에 식은땀이 흐른다. 기대 안 할 것 같은 사람이 기대하니까 더더욱. 그게 아마 점심때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 한숨을 쉬며 몇 잔째 인지도 모르는 커피를 들이켰다. 


“...속까지 쓰리는군.”


집에서 간단하게 케이크라도 대충 만들어야겠다. 모처럼의 그와 난생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가 완전히 파토가  난 것에 이제는 화까지 난다. 어느 누가 그렇게 일을 망쳐놨는지. 걸리기만 해봐라. 이를 악물고 서류 결재 사인란 에 사인을 휘갈기며 바쁘게 다음 장 서류를 확인하고 몇 장 남지 않은 서류를 향해 화색을 보이는 순간 무거운 소리를 내며 열리는 내 방의 문. 회사 측의 배려로 부장급 이상인 사람에게 하나씩 배정된 방의 문이 무겁게 열리며 눈그늘이 바닥까지 내려온 듯한 표정의 여직원이 서류를 한 아름 들고온다.


“부장님... 결제 부탁합니다....”


오늘 안으로 집 가기는 글렀다. 나는 펜을 그 자리에서 놓고 의자를 뒤로 젖혀 버린체 얼굴을 양손으로 덮어버렸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



*



“다녀왔소.......”


눈치껏 가장 어두운 듯한 11시 20분이 되어서야 겨우 끝낸 업무에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화장실로 나가 게이트를 열었다. 마음이 무겁다. 그는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피곤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자 어두 컴컴한 거실이 보인다. 그는 자는걸까. 미리 자두라고는 했는데. 


이미 온기가 다 가신 슬리퍼로 신발을 갈아 신고 무거운 걸음을 옮겨 2층의 나와 그의 침실로 가자 여전히 어둑한 방의 풍경이 보인다. 달빛만을 의지한 방 안의 불을 켜 보았다. 당연히 있을 줄 안 그가 없다. 


“...벨져?”


다급한 마음으로 서둘러 집안을 뒤적거렸다. 마치 보물찾기라도 하는 듯 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손님 방에서 자나, 그럴 리가 없다는 것을 알지만 열어본 방 안은 역시나 텅 비어있었다. 모든 것이 공허한 방. 


“......”


그는 오늘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무래도 그를 찾아야겠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사과해야겠어. 서둘러 코트 자락을 다시 여몄다. 지금 시각은 11시 40분. 시계를 한번 매만지다가 이내 거실과 침실의 불을 켠 체 현관문으로 나섰다. 근처 시내부터 돌아봐야겠다. 따로 연락할 수단도 없으니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지. 


*


“여기 혹시 하얀 머리카락에, 장발이고... 파란 눈동자에. 그런 사람이 들렀소?”


“아, 그분이시라면 여기 잠시 들렀다가 가신지 20분 정도 지나셨어요. 조금 급하게 나가셨는데.”


“....왔었군. 어디로 간다는 이야기는 없었소?”


무슨 선물- 뭐라 하셨던 것 같은데. 고맙소. 서둘러 베이커리를 빠져나갔다. 아니. 가기 전에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하나 사가야지. 만들 시간은 없고. 서둘러 진열장에 블루베리 치즈 케이크를 고르고 어서 달라 한 뒤 정신없어 보이는 여직원을 뒤로하고 가격을 지급한 체 선물가게들을 찾아 정처 없이 헤맸다. 뒤에서 여직원이 ‘그분도 케이크를 사가셨는데!’ 라는 말은 제대로 듣지도 못한 체. 


“선물가게라.”


게이트로 이동한 덕분에 시간은 단축되었는데 벌써 11시 50분이 다 되어간다. ...그와는 적어도 크리스마스 때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이야기하려 했는데. 일단 아무래도 케이크가 망가질 것 같아 집에 두고 찾아야겠다며 아무도 없는 골목길로 발걸음을 돌렸다. 사람들은 12시가 넘어가자 저마다 광장의 커다란 트리로 다가가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타이밍도 좋게 들려오는 캐럴과 하얗게 내리기 시작하는 눈. 


저마다 연인들 끼리 얼굴을 마주하며 웃어 보이고, 입을 맞추는 광경.


나 빼고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였다. 



*


“.....”


다시 돌아온 현관문 앞에는 그의 신발이 놓여 있었다. 아까보다 더 따듯한 집안의 온도. 천천히 문을 닫고 ‘벨져?’ 하고 집안이 조용히 울릴 정도의 목소리를 내 보았다. 부엌에서 고개를 내미는 그. 


“왔나?”


서둘러 케이크를 들고 그가 있는 쪽으로 슬리퍼도 신지 않은 체 성큼성큼 다가갔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가 이내 내가 울컥하는 눈으로 바라보자 당황스러워한다. ‘릭?’ 나를 불러주는 그의 목소리에 한 손에는 케이크를 든 체 다른 팔로 그의 목을 감싸 안고 그를 끌어안았다.


“릭?”


“집에 없길래, 찾아다녔소.”


“... 잠시 볼일이 있어서.”


이미 다 알고 있거든. 그대 찾느라 케이크 가게란 케이크 가게는 다 돌아다녔소. ...그런가? 응. 당신이 왔다 간 가게에서 케이크 사왔지. 그의 품에서 몸을 때어내고는 케이크 상자를 들어 보이자 그가 미간을 좁힌다.


“...나도 샀는데.”


“응?”


부엌에 놓인 제법 화려한 모양의 초콜릿 케이크. 산타와 루돌프의 모양을 한 설탕과자가 올려져 있고, 하얗게 파우더가 내려와 눈같이 소복하게 쌓여있고, 붉은 빛깔의 과자 집 형상을 한 쿠키. 모든 크리스마스 케이크가 그러하듯 조그만 미슬토 나무와 열매 모양의 플라스틱 장식물이 중앙에 콱 박혀있다.


“....내가 내일 다 먹지 뭐.”


“릭. 이대로 뱃살에 근육이란 게 점점 사라져 가면 각방을 쓰는 것도 생각을 해 봐야 할 것 같다.”


“...그것 말고 좀 더 좋은 말을 해 줄 순 없소?”


무슨말?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것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소. 그래. 


“메리 크리스마스, 릭.”


가만히 웃어 보이는 그와 얼굴을 마주하며 웃어버렸다. 그대, 예전보다 표정이 유해졌소. 그런가? 가만히 턱을 매만지며 어색한 표정으로 다시 웃어버리는 그의 볼을 매만졌다. 매끄러운 피부. 그의 뺨을 감싼 손으로 엄지손가락만 움직여 그의 입술을 매만져 본다.


“그대가 온 뒤로 나도 많이 웃게 된 것 같고.”


“감상은 나중에 하지. 케이크나 먹도록.”


내일도 먹으려면 지금 일단 먹고 자는 동안 최대한 배를 꺼지게 하는 거다. 저녁에 간단한 운동 정도도 하고. 벨져, 그 운동이 그 운동이 아니지? ...일단 먹어라. 나 안 먹는 게 좋을 것 같아 벨져. 말은 그렇게 하고 산타클로스 머리를 이미 먹어 버렸잖아. 그와 한동안 투닥거리기도 잠시. 어느새 시간이 11시 59분을 가리키는 것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래도 이왕 당신과 처음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인데. 아무것도 한 게 없군. 케이크 먹는 것 빼고 말이오.”


“.....”


그는 이내 가만히 케이크 중앙에 꽂힌 미슬토나무 조형물을 빼내더니 케이크에 꽂힌 덕분에 고정대에 덕지덕지 붙은 크림과 빵조각을 그가 살짝 빨아내고는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고정대를 잡고 빙글빙글 돌리며 이쪽을 나른한 눈으로 쳐다본다.


“릭.”


“응?”


이내 몸을 일으킨 그가 식탁을 비추고 있는 전등의 끈에 고정대를 대충 매 두고는 그대로 허리만 굽혀 내 턱을 손으로 들어 올린다.


“....벨-.”


입에 묻은 초콜릿 크림을 닦아내지도 못한 체 부딪혀 오는 입술. 가만히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핥듯이 혀를 움직이며 키스하는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해 있자 그가 이내 말끔해진 입술이 드러날 정도로 비비던 그의 입을 때어 낸다.


“....너무 달군.”


“...케이크니까.”


가만히 케이크를 덜어준 그의 접시를 보아하니 역시나 한입도 먹지 않았다. 초콜릿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억지로 먹으려는 듯 아주 코딱지만큼 때어진 빵조각이 보이긴 한다만. 


“...초콜릿 케이크는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괜히 민망해지는 기분에 불쌍한 케이크를 포크로 꾹 꾹 누르듯 학살하자 그가 정말 모르느냐는 듯 전등 위에 매달아 놓은 미슬토나무 모양의 플라스틱 조형물을 다시 빼낸다.


“...뭘 말이오?”


“....네가 이런 걸 모르는 것이 더 신기하군. 이건 풍습이잖아.”


“그러니까 뭘 말하는 것이오. 초콜릿 케이크 먹고 입술에 초콜릿 생크림 범벅이 된 사람에게 키스하고 미간 찌푸리며 잔소리하기?”


어쩐지 그가 다른 쪽 손에 어느새 케이크를 자르던 나이프를 들고 있다. 뭘까, 평소에 쓰던 칼보다 더 위협적으로 날 노리는 것 같은 것은. 농담이오, 하고 웃어 보이며 정말 모르겠다며 다시 한 번 그에게 뭘 말하는지 물어보자 그가 그제야 케이크를 자르는 나이프를 내려놓고는 말을 이었다.


“미슬토나무 아래에서 키스하면.”


“하면?”


알고 있는데. 알고 있는데 그의 입으로 말하게 하고 싶다. 아까부터 모르는 척을 하느라 힘이 들었는데. 하며언?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미 입이 귀에 걸릴 것 같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를 쳐다보자 그가 미간을 다시 좁힌다.


“너. 알고 그러는 건가?”


“으응? 난 잘 모르겠소. 그러니 얼른 말해 보시오. 키스하면 뭐?”


과장되게 귀를 쫑긋거리며 귓등을 손으로 에워싸듯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하자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너무 놀렸나. 사과 해야 하나, 하고 서둘러 그를 바라보는 순간 그가 이내 의자에 앉아있는 내 몸의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집어넣어 덜렁 나를 들어 올린다.


“...벨져, 이거 어째, 지난번 생일이랑 똑같은 패턴인 것 같은.”


그리고 난 다시 어깨에 들춰 매 졌다.. 짐짝같이 덜렁거리는 양팔과 다리. 거꾸로 보이는 세상. 


“벨져 도련님, 잘못했습니다.”


“안 들린다.”


“벨져, 오늘따라 잘생겨 보이는걸.”


“안다. 오늘 운동은 제법 강도가 심할 것 같군.”


이젠 더는 아무것도 통하지 않는 건가. 알게 모르게 눈가 끝에 대롱 고인 나의 눈물은 오늘따라 애처로웠다.


미슬토 나무 아래에서 키스를 하면, 사랑이 이루어 진다라. 세삼 먼저 키스한 그의 얼굴이 다시 떠오르기 시작해서 웃어버리자 그가 한층 더 빠르게 몸을 움직여 2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나와, 그 또한. 메리크리스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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