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12. 27. 18:18
작성자
you. and. me.




*약간 나무위키를 참조했습니다.


“그러니까-. 갑옷을 입는 편이 좋았잖아요.”


잠시 다른 용무로 타라로 다녀온 사이에 사도와 한바탕 하고 온 것인지, 온 옷이며 그가 늘 가볍게 입는 갑주 하나에 그리브가 온통 피에 물들어 붉은빛을 띄고 있다. 당연히 당사자는 카즈윈 그 일 수밖에. 파란색 가죽옷은 이미 붉은 피로 인해서 보랏빛처럼 물들어 갔고, 배 한가운데를 가르는 검상은 심상치 않아 보였다. 말 없이 도착하자마자 다쳤다는 그의 소식에 서둘러 그의 방으로 가서 병수발을 도맡아 하고 있다. 붕대를 들고 피는 닦아낸 그의 복부 위로 상처를 아물게 해 주는데에 효과가 좋다는 약초를 덕지덕지 바른 뒤 붕대를 감아주었다.


“됐어, 이런 건 내가 할-.”


그의 말에 한번 입꼬리를 올리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의 갈라진 배 위로 주먹을 올렸다 내렸다 금방이라도 배 한 대를 칠듯한 동작을 취해서야 그가 혀를 차며 얌전히 치료받기를 수락했다. 이미 상처투성인 몸에 그런 상처 하나쯤이야 더,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의 몸은 상처가 아문 흔적들이 가득하다. 


“갑옷을 입어요.”


이런거 보기는 싫으니까. 그런 거 필요 없다. 여전히 입만 살아있는 카즈윈의 배에 붕대 감기를 아주 꽉 꽉 피가 멎을 정도로 감싸 주었다. 이따금 헛숨을 들이키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이쪽의 심정 정도는 알아줘도 좋지 않을까. 


그러니까... 음... 


그...


신경이 쓰인다고나 할까. 


뭔가 부끄러워지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힘을 줬나 보다.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그에게서 미.밀레시안. 하고 드물게 아픈 목소리가 나온다. 아까만 해도 기고만장하더니. 안쓰러운 눈과 웃는 표정을 동시에 보이며 미안해요. 하고 다시 붕대를 잘 감아 마무리를 지었다. 


“이만 가도 돼.”


“그 정도 상처면 저녁에 앓을 게 분명해요.”


그냥 푹 자요. 옆에 있어 줄 테니까. 필요 없다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제법 힘든지 침대 위로 천천히 누워버린다. 이미 식은땀이 잔뜩 흐르기 시작하는 그의 이마 위로 미리 준비해 둔 얼음물 속에 담가둔 수건을 쭉 짜서 그의 이마를 닦아내었다. 


가을 무렵의 풀벌레 우는 소리가 창문 가를 타고 들어온다. 새삼 그가 다치는 모습을 보니 그도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센척하기는. 풋. 하고 웃어버리자 그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미간의 주름은 한 6개쯤 되어 보일 정도로...


“웃지 마.”


“그렇지만, 이런 카즈윈도 나쁘진 않네요.”


뭐? 아니... 뭐, 가끔은 아픈 카즈윈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돼서요. 그는 내 말에 몸을 일으키더니 기사답게 그 지경이 된 몸으로도 완력으로 기어이 팔을 끄집어 당겨 침대 위로 눕혀버리고 만다. 머리 양옆으로 팔을 기댄 체 이미 얼굴에 땀이 흘러 턱밑으로 한 방울 뚝 떨어트릴 정도로 아프면서. 애써 표정관리를 하려 하지만 전혀 멀쩡해 보이지 않는다. 


“하나도, 아프지 않아.”


“..카즈윈, 미간에 주름이 이미 4개나 나 있어요.”


게다가 땀까지. 엉망으로 잘린 머리카락이 그의 뺨에 땀으로 달라붙어 있는 것에 시선을 주자 그가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올린다. 자기도 무의식중에 그렇게 한 건지 이내 커다란 움직임 때문에 상처가 벌어졌나 보다. 그가 한 손으로는 배를 움켜쥐고 이내 내 배 위로 얼굴을 내려버렸다. ...다이어트는 좀 해 둘걸. 


“거봐요. 무리하니까 그렇지.”


이쪽으로 누워요. 비켜줄 테니까. 몸을 옆으로 돌리려 하자 그가 그대로 몸을 다시 일으켜 내 몸 위로 쓰러져 버린다. 카.. 카즈윈. 잠깐만. 됐어, 움직일 힘도 없고. 이게 훨씬 나아. 가쁜 숨을 내쉬는 그의 목소리와 입김이 귓가에 와 닿기 시작한다. 왼쪽에 비스듬하게 누워 내가 베개라도 되는 듯 끌어안고 끙끙거리는 그를 보니..


토닥토닥.


“...뭐하는,”


“그냥 푹 쉬어요. 아픈 사람이 입은 살았네요, 정말.”


완전히 어둑해진 밤하늘, 창문 가로 빛나는 별빛을 바라보며 그가 그래도 숨쉬기 편하도록 자세를 고쳐주자 그가 크게 숨을 들이켜더니 그제야 편한 숨을 내뱉는다. ...여유로워 보이긴 하지만, 완전히 상의가 맨몸인 그의 몸이 자꾸 밀착해 있다는 생각에 뭔가 기분이 이상해진다. ..지금 동요해 봤자, 카즈윈이 비웃을 것 같아 버려 말은 안 하고 있지만. 


그의 머리를 가끔 쓸어 넘겨주며, 땀에 머리카락이 들러붙지 않도록 해 주자 열린 창문 가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그의 땀으로 뒤덮인 이마를 식혀 주는 듯, 표정도 풀리기 시작한다.


“카즈윈?”


“...왜.”


아니, 자나 해서요. 자면 또 가려고? 좀 더 그가 팔에 힘을 주는 것에 얼굴을 붉혔다. 나중에 기사단 전체에 이상한 소문이 퍼질지도 몰라요. 그의 표정을 확인하기 위해 눈을 돌리는 순간 빛나는 그의 눈.


“...카즈윈 눈은 보석을 닮았네요.”


“...낯 부끄러운 칭찬은 그만둬. 아파서 지금 칭찬해도 칭찬 같지가 않아.”


아프긴 아프군요? 센척하긴. 그에게 웃어 보이자 그가 한숨을 푹 쉰다. 다시 마주친 눈동자에 그의 눈가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 보았다. 눈 한번 깜빡이지 않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수리부엉이의 눈과도 닮아있었다. 


“탄자나이트라고, 검은 대륙의 푸른 별이라는 이름을 가진 보석이 있어요.”


당신이랑 제법 잘 어울리는 별명을 가진 보석이네요. 밤이라 그런지 다른 건 하나도 안보이고 당신 눈만 둥둥 떠다니는 것 같아요. 좀 더듬듯 그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아. 이건 귀고.. 손가락으로 가만히 그의 턱선을 따라 내려오자 그의 아랫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드리고 말았다. 움찔해서 나도 모르게 거칠면서도 따듯한 그 느낌에 손을 떼버렸지만 이내 그 손을 붙잡는 다른 손에 더 놀라고 말았다. 


“난 다 보여.”


손 위로 닿아오는 입술의 감각. 아픈 터라 입술이 까끌까끌하게 터 있다. 검지, 중지, 약지의 손가락 길이를 딱 덮는 그의 입술 온기. 중지 끝으로 닿아 오는 그의 코. 정말 보이기라도 하는 듯, 그는 거침없이 내 손을 붙잡던 손을 풀어버리고는 아까 내가 하는 행동을 따라 하기라도 하는 듯 천천히 손으로 내 뺨을 매만진다.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다 보여.”


가볍게 끌어 당겨진 얼굴과, 이미 가까워 있어서 서로의 숨을 공유할 듯한 거리는 이제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마주 닿은 입술이 제 짝을 찾은 듯 포개지는 것에 눈을 감았다. 한밤중의 조용한 사건은 마치 그 입맞춤처럼 조용히 일어났다.


신경쓰인다라, 그거 그냥 


좋아하고 있기의 다른 말 아닐까, 생각할 정도로.


입맞춤은 상당히 두근거렸다.



*



“자. 약.”


통증약이 없이는 힘든 것인지, 다시 숨이 거칠어지는 그에게 진통약을 물과 함께 건네자 그가 힘없이 받아 약을 입안에 털어 넣고 물을 마신다. 흘러내리는 것이 절반인 것 같다. 수건을 들어 그의 턱밑으로 흐르는 물기를 가만히 닦아 주었다.


“병수발에 익숙하군.”


“알터는 자주 다쳐서 오니까요.”


걱정되니 옆에 자주 이렇게 밤을 새워 주곤 했죠. 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린다. 이런 말까지 하긴 뭐하지만, 당신이랑 했던 그 모든 것들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 해줘야 할까. 괜한 변명은 오히려 사람의 기분을 망치는 법이다.


“알터는 보살펴 줘야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나는?”


“......”


아, 간질거린다. 목구멍 속에서 요정이라도 춤추고 있는 건가. 왜 이리 이 사람 앞에서는 확 하고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나오지 않는 걸까. 달빛 하나에 의지한 체 침대에 누워 있는 그와 다시 마주하려니 귀가 달아오른다.


“귀 빨갛다.”


저도 알아요. 결국, 나는 그의 질문에 어울리는 답을 찾지 못했다. 내 입으로 어떻게 좋아한다. 아무 스스럼 없이 말을 할까. 몸 아픈 사람한테 다짜고짜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좀, 실례인 것 같고.


“헤루인 조의 엠블럼은 파도. 애초에 헤루인 자체가 바다의 빛이라는 의미지.”


결국은 그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리자 그가 입을 연다. 여전히 힘든 표정을 지어 보이는 그의 이마 위로 다시금 얼음물에 담가둔 수건을 짜 내 땀을 닦아 주었다.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인데 중요한 이야기라도 하는 듯 아까보다 훨씬 침착하고, 고요한 눈으로 그는 나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이었다.



“다른 조들은 흰색이 무조건 포함되어 있지. 엠블럼뿐만 아니라 상징 깃발까지. 그렇지만 헤루인은 흰색이 없어.”


왜일 것 같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좀 맞춰 보는 노력이라도 해봐. 묘하게 초점이 안 맞는 그 덕에 서로 말다툼이나 하는 꼴이지만. 정말 잘 모르겠다. 분명 헤루인 조는 파란색과 노란색이 반씩 섞여 있었지. 


“어차피 빛이 있잖나. 태양 빛처럼 강렬한 모래사장. 마치 당연한 것처럼 바다가 있으면 모래사장이 있지.”



다른 빛들처럼 제 색을 물들여 달라는 하얀 공간은 필요 없어. 그냥 이미 빛을 찾았고, 그걸 지키면 그만이라는 듯한 그 문양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는 시선을 돌려 천장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파도와 같은 그 눈빛은 무언가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서 적어도 너라는 존재는 그 모래사장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지.”


너는?


결코 정직하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야기와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그의 모습에 웃어버렸다. 사람이 아프면 본 모습이 나온다 하더니, 조금은 귀여운 면모가 있다 생각해 버리게 된다. 내 웃는 모습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그의 눈빛이 조금은 일그러져 있다. 미간 찌푸린 건가.


“음...”


가만히 고민해 보았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당신이 갑옷을 입게 되는 이유가. 나였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웃어 보이자 그가 이쪽을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이내 말없이 눈을 감았다. 카즈윈, 자려고요? 그래. 좋은 꿈 꾸길, 카즈윈. 가만히 그의 이마를 쓸어 올리듯 머리카락을 넘겨 주자 그가 깊은 잠에 천천히 빠져 들어가는 듯, 편안하게 숨을 쉰다.


좋은 꿈 꾸길, 카즈윈.


침대 옆의 의자에 앉아서 나는 한동안 그렇게 그를 바라보았다. 그가 깨어날 때도,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나이길 바라면서.



*



“...오늘 피네 한테 무슨 일이 있습니까?”


“...저 오늘 멀쩡한데요.”


조장들 뿐만 아니라 다른 조원들도 멍하니 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다친 이후로 정확하게 한 달 만에 다시 이어지는 사도 관련 작전에 모두 준비를 하고 나오는 찰나, 이쪽을 향해 느릿하게 걸어오는 카즈윈의 모습에 다들 지금처럼 정지한 상태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자, 여기. 이건 이따 보급용으로 쓸 물이랑-.”


“밀레시안.”


남들이 뭘 하든 보급품 준비에 정신없이 지시하며 짐을 챙기고 있자니 저 멀리서부터 내 옆까지 누군가 걸어오는 듯 철컥거리는 갑주 소리에 바닥에 시선을 주자, 평소에도 잘 본 그리브가 보인다. 이런 그리면 딱 한 명 뿐인데.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


“.....”


됐지? 한번 어깨를 으쓱여 보이는 그 덕에 나는 어이없다는 듯 그 자리에서 멈춰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몸에 달라붙게끔 탄력 있게 만들어진 마스크와, 좀처럼 볼 수 없는 ‘제대로 차려입은’ 모습. 


“준비 다 됐으면 가지.”


말한다고 잠시 턱까지만 내렸던 마스크를 제대로 고쳐 쓴 그가 말하자 멍하게 있던 기사단들이 서둘러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를 닮은 검은 색의 말이 있는 곳으로 그가 다가가는 것에 사람들의 시선이 알게 모르게 쏠린다.


“흐음.”


톨비쉬의 미묘한 웃음에 알터가 먼저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넨다.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 거죠?”


“예? 하하. 뭐... 그에게 중요한 뭔가가 생겼다는 것은. 저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 않나요?”


부럽네요. 알 수 없는 표정의 톨비쉬를 바라본 알터는 다시금 카즈윈에게 시선을 주었다. 나 또한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투레질을 하는 말의 목덜미를 쓰다듬는 그.


“자 그럼. 출발하죠.”


힘찬 박수 소리와 함께 시작된 작전.


작전과 함께 다른 무언가가 시작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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