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티마!
단 한 번도 나는.
“그럼, 다시 해보거라.”
“으악!! 사부, 진짜 힘들다고!”
그의 생각을 읽어 본 적이 없다. 문득 저 멀리서 수련하고 있는 두 사람을 창문 너머로 내려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벌써 가을이네요.”
그리고 그 사람이 온 것도 이맘때 즈음인 것 같은데. 늘 머리를 누르듯 쓰고 있던 뉴스보이켑을 벗고 가만히 낙엽이 바람에 쓸리는 그 조용한 파도 같은 소리와 함께 바람을 맞이했다. 퍼석한 풀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아 벤치 등받이에 기대 고개를 뒤로 넘겨 기분 좋게 눈을 감고 있으려니 이내 햇볕까지 제법 따듯하게 내리 쬔다. 이것은 가을이 아니고 봄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이 날 정도로.
“......”
티엔 정. 처음부터 그는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을 읽지 못한다는 것 이전부터, 마인드 스캔이라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능력을 가지고 있는 나 못지않은 눈매로 사람 속내를 읽어보는 듯한 눈을 가졌으니까. 그와 관련 된 생각을 하다가, 감은 눈을 뜨자마자 바로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으악!!”
“...실수했군. 괜찮나?”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이유 없이 도망치려던 찰나에, 낙엽을 밟아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도 풀썩하는 소리와 함께 낙엽위로 안착하고 대짜로 누워버렸다. 완전히 못볼꼴은 아니었지만, 그의 앞에서 넘어졌다는 것 하나 자체가 일단 치명타였다. 괜히 볼이 달아오른다. 이 사람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다니. 나와는 다르게 정말 미안한 듯, 어색하게 그의 검은 문양이 어깨너머까지 올라온 팔이 내밀어 진다.
“...괜찮아요.”
차마 아주 싫은 티를 낼 수는 없으니, 그의 손을 잡아본다. ...처음 마주쳤을 때도 잡아보지 못한 묵직한 손은, 굳은살로 가득 박혀있었다. 과장을 조금 섞어 남들보다 두 배는 더 두꺼운듯한 거친 손. 색에 뒤덮여 그것이 잘 느껴지지 않았을 뿐. 그, 하랑 군이랑 자주 한다는 수련을 하면 이렇게 되는 걸까.
“첼피?”
“아.”
감사합니다. 서둘러 그의 손을 내려놓고 모자를 집어 든체 발 닿는 곳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일단 그를 피하는 게 우선이다. 다른 사람처럼, 보기 좋은 얼굴만 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그의 머릿속은 도대체 알 수가 없으니까. 구겨진 옷을 두어 번 손으로 털어내며 드문드문 붙은 낙엽을 떨어트리자, 어느새 바싹 다가온 그가 한걸음 뒤에서 따라 걸어온다. 아까와는 다르게 발걸음 소리로 제대로 기척까지 내면서.
“어디, 가시는 길이세요?”
“딱히. 방향이 겹치는 것뿐이다.”
“그래요? 저는 이만 시내 쪽으로 가봐야 해서.”
“같이 가면 되겠군. 마침 나도 그쪽으로 가던 중이었으니.”
정말이지, 속을 알 수가 없다.
*
그러고 보니 오늘따라 그의 복장은 뭔가 평소와는 다르다. 아무래도 정말 시내로 갈 생각이었는지, 한쪽 어깨와 가슴 부근까지 완전히 파인 도복과는 다르게 앞쪽에서는 용의 무늬가 금박으로 수놓아진 중국의 남성 복식을 입고 있었다. 위아래로 검은색을 입고 있는데다가, 당연히 동양인이니 좀 더 타인보다 훨씬 시선을 사로잡는다.
“뭐 사시려고요?”
“... 좋은 소리가 나는 것.”
아니면 향 종류도 상관없다. 제법 진지하게 살펴보는 그의 눈치에 딱히 그를 피하려 시내로 나간 턱에 목적도 없어진 내가 민망해진다. 그래도 같은 재단 사람이니 예의상 도와줘야겠지. 좋은 소리라... 동양계통에서는 좋은 소리라면 역시 종 같은가려나. 진지하게 한쪽 팔로 턱을 잡은 다른 팔을 받친 체 고민에 빠져 있으려니 어느새 그가 옆에 와서 나를 내려다본다. 고작 2cm 차이인데.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에게 웃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여기서는 동양의 물건은 찾기 힘들 텐데. 서양 물건이라도 괜찮으세요?”
“그런 것 같군. 살펴봐야겠지만, 구태여 동서양을 나눌 필요는 없다.”
그래요? 그럼 골동품점으로 가죠. 좋은 소리가 나는 거라면 하나 알고 있는 물건이 있으니까요. 다시금 그를 지나쳐 앞장서서 걸어가니 뒤를 따라오는 그의 기척이 느껴진다. 그리고 사람이 많은 터라 집중하고 싶어도, 잡다한 소리 덕분에 온갖 생각들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오늘 저녁거리는 무엇을 먹을까에 서부터, 인생에 대하여 한탄하는 목소리. 그중에서는 사이퍼들도 있는지 가끔 액자라든지 안개 지역이라든지 잡다한 것들이 들려온다.
소리에 갇힌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다. 이 소리는 귀를 막아도, 아무리 막아도 들려온다. 지금은 조금 덜하지만, 브루스씨를 만나고 엘리어트를 만나 조금은 이 능력이 덜 해졌지만, 아무도 없는 지금은 이렇게.
“첼피.”
“아.”
표정이 안 좋았던 걸까. 그가 아까처럼 걱정되는 듯한 얼굴이지만, 그런 표정마저 어색한 듯 무덤덤한 표정이 뒤섞여 나를 바라보고 있다. 괜찮아요.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좀. 그렇게 얼버무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각종 잡다한 액세서리부터, 옷을 파는 상인. 음료를 즉석에서 만들어 주는 상인. 온갖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니 당연히 들릴 수밖에 없겠지. 안들린다고 생각하려 집중하기도 어려운 환경이다. 한참을 걸어 골목길을 지나가니 익숙한 간판이 보인다.
“아, 저기에요.”
시내 구석에 있는 곳. 유일하게 장인이 만드는 물건이 있는 이곳. 항상 이곳에서 마음을 안정시키곤 했는데, 그에게 이렇게 소개할 줄은 몰랐다. 드디어 이 고통에서 잠시나마 해방되는 것에 서둘러 조금 격양된 어조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죠.’ 란 쓸데없는 말 까지 내뱉으며 발걸음을 빨리했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가볍게 울리고 노장의 ‘어서오-. 오, 마틴!’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반갑게 그에게 인사를 해 보이자, 가게 주인이자 노인도 제법 반갑게 인사를 해준다. 그리고 뒤따라 들어오는 그의 모습에 ‘호오... 동양인이 이런 곳에도 오는군.’ 하고 신기한 듯 그를 이리저리 쳐다보기 바쁘다.
“아, 여기는 제가 일하는 재단의 스카우터인 티엔 씨에요.”
여기는, 이 가게 주인이신 말콥씨. 미국식 소개법으로 소개하자 그가 익숙하지 않게 또 포권을 취하며 인사를 하는 것에 호탕하게 말콥씨가 웃어버린다. 재미있는 친구를 데리고 왔구먼! 하고 등을 두어 번 팍팍. 두드릴 정도로.
“여기서 제일 평온한 소리가 나는 것을 원합니다.”
“... 주문이 상당히 특이하군, 자네.”
제일 평온한 소리라. 우리 가게에 딱 하나 있긴 하지. 말콥씨는 이내 진열장에 가득한 물건 중 하나를 꺼내 들었다. 말콥씨, 그는 이곳에서 유일한 오르골 장인이다. 얇은 쇠 판에 드문드문 아주 조그마한 기둥을 하나하나 붙여가며 만드는 것은, 일반인들도. 말콥씨 보다 훨씬 젊은 사람들도 만들기 힘들뿐더러, 이제껏 들어본 오르골 소리 중에서도 가장 풍부하고 좋은 음색을 가졌으니까. 게다가 이 오르골들의 소리에 뭍혀있으면 다른 잡생각들의 소리들이 들리지 않기 시작한다. 유독 그가 만든 오르골은 그랬다. 이런 분이 추천하는 오르골이라, 하고 쳐다보는 순간 내가 가장 아끼던 축음기 모양의 오르골이 꺼내진다.
“음은 단조롭지만. 자네가 말하는 데로 가장 평온한 소리가 나는 거야.”
마틴군이 제일 좋아했던 거지? 그의 말에 멋쩍게 웃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살 수는 있는데, 딱히 자주 들을 것 같지 않아서 안 사두던 것이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가는 것을 눈앞에서 보려 하니 속이 쓰리다. 단순한 캐논의 변주곡 정도의 노래였지만, 제일 좋았는데. 별로 듣지도 않고, 바로 사버리는 티엔, 그의 행동에 미간을 찌푸렸다. 별로 고심해서 고르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다가 바로 ‘이걸로 하겠습니다.’하고 결정하는 건 뭐람.
“그래, 그럼 다음에 또 보세. 마틴군도 자주 들리고.”
구태여 마중 나오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기어이 입구 앞까지 나와서 배웅하는 말콥씨에게 한번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잘 포장된 상자에 담겨있을 오르골을 쳐다보았다. 누구한테 가는 건진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잘 써줬으면 좋겠다. 가장 좋아하던 음색이니까.
“선물하실 건가요?”
“그렇다.”
어쩐지 큰 덩치와는 안 맞게 조그마한 상자 하나를 뒷짐 대체 들고 있는 그를 보려니 어울리지가 않아 묘하게 웃음이 난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조용했던 골목길을 벗어나니 다시금 시끄러운 시내 광장이 보인다. 다시 소리의 숲을 지나야 하는 건가. 한숨을 푹 쉬려니 그가 이쪽을 바라본다. 나와 같은 갈색 시선이 공중에서 얽히는 것에 얼른 고개를 돌려 버렸다.
“..조금 서둘러서 가도록 하지.”
아. 네. 급한 것인지 정말로 속보로 걷는 그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걸었다. 덕분에 머릿속에 들어오는 잡소리이 아득하게 멀어지며 넓은 그의 등만 시야를 사로잡는다. 그리고 그 뒤에 꼬리처럼 따라붙은 듯, 손으로 받치고 있는 상자까지. 그의 등이 이렇게 넓었나, 이제 보니까 머리카락은 옷깃을 조금 덮을 정도로 자랐구나 정도의 생각이 드는 등.
그를 닮은 반듯한 옷에는 주름 하나 잡혀있지 않았다.
완벽을 추구하는 그 다운 옷이었다.
*
“...헉...헉...”
“...괜찮나? 뛰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힘들어할 줄은 몰랐는데.”
운동신경이 당신과 같을 리가 없잖아요. 억울함을 내뱉으려는 말은 이내 목구멍을 타고 다시 들어갔다 나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한다. 말해봤자 입만 아플 것이다. 어느새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재단 건물에 침을 삼켰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아, 그러고 보니.”
숨을 돌릴 겸 그에게 말을 건네니 그가 이쪽을 쳐다본다. 여전히 바람 하나는 잘 불어오는 재단으로 가는 길. 검은 머리카락은 보기와도 같이 바람에 실 한올 한올이 날리듯, 그의 머리를 스쳐 지나가며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선물은 누구 주실 거에요? 재단에 오늘 생일인 사람이 있었나?”
“아, 이건.”
그리고 그제야 내밀어 지는 작은 상자. 다시 보라는 건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자 ‘첼피, 네 것이다.’ 라는 대답이 들려 온다. 저요?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농담인가? 아무리 봐도 농담하는 얼굴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농담이라는 것을 하기는 할까. 당황스러움에 저한테 왜요? 하고 반문을 하며 어느새 내 손바닥 위에 안착한 상자를 쳐다보았다.
“엘리어트도 자리에 없고, 아까도 힘들어 하는 것 같던데.”
“......”
“브루스 씨에게 들었다. 생각 외로 힘들겠더군. 그 능력은.”
그래서 도움이 될까 해서 산 것이다. 혼자 가도 됐는데, 번거롭게 했군. 실례했다. 그는 그렇게 할 말만 다 한 채 등을 돌려 가려 한다. 나도 모르게 급하게 그의 뒷짐 진 손을 붙잡자, 그가 당황한 것인지 어정쩡하게 발걸음을 멈춘다.
“아, 저기.”
“음?”
“고마워요. 이렇게 가지게 될 줄은 몰랐는데. 티엔 씨는 정말 모르겠네요, 다른 사람처럼 속마음을 읽을 수 있더라만 좀 더 빨리 감사하다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면 제가 따로 사도 되니까 번거롭게 해드리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멋쩍게 웃어 보이며 한번 고개를 숙여 보이자 마치 우리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처럼 시원한 대답이 들려 온다.
“처음엔 네가 마음대로 속내를 읽으려 하는 것이었지만.”
“......”
아직도 그걸 기억하다니. 하긴, 나도 첫 만남은 기억하지만.
“원한다면 언제든. 말을 해준다면 언제든 읽혀질 수 있도록 조취를 취하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미세하게 웃어 보이는 그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졌다. 마치 금단의 구역을 허락 맡은듯한 기분. 그대로 모자를 벗어 얼굴을 가려버렸다. 선물까지 준 데에다가 저런 말 까지 하는 사람을 어떻게 미워할 수가-.
“마틴?”
“......”
난생 처음 그의 입으로 듣는 이름에 얼굴 위로 김이 나는 것 같아 모자 속으로 얼굴을 파묻어 버렸다. 내 이름이 저렇게 들렸나? 평소에도 저런 음색으로 들리는 거였나? 이런 생각은 알지도 못하는 그가 ‘마틴, 어디 아픈가?’ 하고 또 이쪽을 살펴온다. 이내 모자를 잡은 손을 치워낸 그 덕에 완전히 익어버린 얼굴이 그와 마주하자, 그의 목덜미가 붉게 달아오른다.
“아...그, 먼저 실례하지.”
아까 속보로 걷는 것은 장난이었다는 듯 순시 간에 시야 멀리 사라지는 그 덕에 거리에 덜렁 혼자 남아버렸다. 모자를 다시 제대로 쓰고 상자를 열자, 자그마한 축음기 모양의 오르골이 보인다.
“...정말이지, 속을 모르겠네요.”
옆의 작은 태엽을 감고 들려오는 오르골 소리. 가만히 발걸음을 다시 옮겨 처음 앉았던 그 벤치에 다시 앉았다.
오히려, 그는. 생각을 읽지 못해서 더 나를 편하게 해주는 걸지도.
오늘은 그런 생각이 드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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