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급하게 하느라 브금을 고르질 못했습니다 ㅠㅠ.. 그냥 아무거나 넣어버렸어요 ㅠㅠ
* 벨져릭 첫 만남을 가상으로 풀어 쓴 글입니다. (능력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개그물
- 아마 실: 잃다,는 세드물을 만드는게 가장 좋겠지만 요즘 기분이 좋아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내가 잘못 했다 하잖아.”
아아. 흔한 거리의 치정 싸움. 연인들의 싸움이다. 민망하지도 않은지 요정과 천사들이 물동이에서 뿜어내는 시원한 분수의 물줄기를 구경하는 사람들 보다 더 구경꾼이 많은 걸 모르는지. 자꾸만 언성을 점점 높이며 싸우기에만 급급하다. 아무래도 남자 쪽이 바람을 피웠다는 것으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듯하다. 남자 쪽에서는 자꾸만 미안하다는 말만 내뱉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마음을 다친 여자보다, 주변의 상황을 분석하기 바쁜 남자는 이내 어디라도 들어가서 이야기하자며 자꾸만 여자를 달래 보지만, 잔뜩 흥분한 여자는 좀처럼 발을 떼려 하지 않는다. 결국, 푹 한숨을 쉰 남자가 여자에게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잘못했다니까!”
남자의 높은 언성에 놀란 여자가 결국은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옴팡지게 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는가 싶더니 이내 소리 없이 울기 시작한다.
“... 저러다 없어지겠는데.”
커피 한잔을 느긋하게 하며 그 연인들의 치정 싸움을 구경하며 동시에 그들의 손을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아아, 결국은.
“헤어지자.”
더는 여자를 달랠 이유도, 감정도 없어진 남자의 손가락에 살짝이나마 매여져 있던 붉은 실이 툭 하고 끊겨버렸다. 곧이어 눈부시게 빛나며 사라진 남자의 손가락 실 반대쪽에 정말로 단단하게 매여있던 여자의 붉은 실은 이내 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저 둘은 더는 만날 수도 없겠지. 저기까지가 그들의 인연이다.
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들 월하노인이 이어준다는 그 붉은 실이 바로 그것이다. 남자와 여자의 인연을 이어준다는 그 붉은 실을 나는 볼 수 있다. 잡을 수 있다면 더더욱 좋겠지만, 인생이란 것은 공평한 것인지 잡지도, 끊지도 못한다. 그저 볼 수만 있을 뿐.
게다가 더욱이 내 손목에 둘둘 감겨있다시피 단단히 둘려진 내 붉은 실의 인연도.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으니까.
붉은 실을 보게 됨으로써 알게 된 것을 몇 가지 말해보자면, 우선 끊어진 인연은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고, 만약 한쪽만 끊어지고 다른 쪽이 남는다면, 그것은 미련 혹은 집착의 감정이란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알 수 있던 것은...
“어머, 저거 봐. 너무 예쁘다.”
“그러네.” “좋네, 저거.”
같은 조각상을 보며 한 여자를 사이에 둔 두 남자. 그렇게 셋이 걸어가고 있고 틀림없이 같은 디자인의 반지를 나누어 낀 여자와 키가 큰 남자가 붉은 실이 이어졌어야 마땅하겠지만, 여자의 건너편에 있는 키가 작은 남자와, 키가 큰 남자 둘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때로는 보기 불편한 사실들도 알아버리게 된다는 미안함까지 들게 된다. 동물과 이어진 사람도 있는가 하면 동물이 아닌 다른 특정 물건과도 이어지는 사람이 있고,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실타래가 나누어져 있는 사람도 있다.
“......”
한심하기 그지없는 능력이구나.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능력이라는 생각만 앞서 간다. 카페 테라스에서 혼자서 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만지작거려본다. 과연 내 인연은 어떻게 생겼을까.
팽-.
“.....음?”
잘못 느낀 건가? 순간 손목에 감긴 붉은 실이 단단히 당겨지는 기분을 느꼈는데. 잘못 느낀 거겠지. 저 멀리까지 이어져 끝이 보이지 않는 붉은 실을 보며 다시금 커피를 마시려는 순간, 또다시 팽팽하게 줄이 당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찌나 강력한지 얼굴에 마시고 있던 커피를 덜컥하며 다 흘릴 정도로.
“이게 무슨-......”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왼쪽 손에 둘둘 감긴 실 덕분에 팔이 쭉 어디로 끌려가는 모양새 마냥 뻗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테이블을 박차고 질질 끌려가는 수준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처럼!
“이게 왜 이러는!”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카페 테라스는 엉망진창이 되었고, 한쪽 팔을 든 체 기괴한 자세로 거의 뛰어가다시피 하는 나를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더군다나..
“릭톰슨!! 웬일로 커피를 후불로 시킨다더니 먹고 튀려는 속셈이었군!!!!”
거대한 몸으로 거의 구르듯 뛰어오는 그 이름도 잘 어울린 테디가 카페 종업원 복장을 한 체 다급하게 굴러, 아니 뛰어오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커피 값을 떼먹을 리가! 억울함에 몸을 멈춰 보지만 이내 실은 더더욱 강한 힘으로 몸을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최대한 버티려 해 보지만, 악력으로도 버티기 힘들 정도의 힘으로 당겨오는 실에 결국은 팔이 빠져버릴 것 같아서 일단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잠깐 멈춘 것에 대해 안도한 테디는 이내 다시 달리기 시작하는 나에게 거친 숨을 내뱉으며 다시 달려오기 시작했다.
“릭 톰슨!!!”
안되겠다. 주머니 속에서 커피 값만큼의 지폐를 구깃구깃 뭉쳐서 뒤를 돌아보았다. 마치 거대한 정육점이 뛰어오는 것을 연상하는 테디의 이마를 향해 정확하게 지폐를 던졌다.
“억!!!”
“커피 값이오!!!”
물론 명중률을 위해 단단한 동전들도 속에 두둑이 넣은 것을 빼고는. 절대 악의가 아니라 정말 난 돈을 주기 위해서 내 돈을 아낌없이 뿌린 것이나 다름없다. 나름 커피 값을 정당하게 지급 해서 뿌듯한 얼굴로 테디를 돌아본 체 달리자니 그가 주섬주섬, 자기 발도 보이지 않을 몸을 굽혀 돈을 줍고는 나에게 흔들어 보였다. 잘 받았다는 뜻인가?
“.......”
아니. 아닌 것 같다. 곱게 접힌 주먹에서 가운뎃손가락만 삐죽 나오는 것을 보니. 이 근방에서는 저 커피집이 제일 맛있었는데. 내가 도대체 왜 이 붉은 실 때문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 거지? 이내 이를 악물고 어디 얼마나 대단한 일이길래 날 끌고 가나 앞을 노려보며 제대로 뛰기 시작했다. 설마 새로운 인연일까. 그렇다면 좋을 텐데. 나이 30이 넘도록 내 인연을 못 만났다. 사실 인연을 만들려고 제법 괜찮다 싶은 여자를 만나 봤지만, 정작 정말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 마냥 붉은 실은 결코 그 여자들과 이어지려 하지 않았다. 붉은 실을 무시해 보려 했지만 그걸 비웃기라도 하는 듯 가면 갈수록 연인끼리의 감정이 사라져 가게 되어 결국은 제대로 사귀어 본 여자도 없게 되었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말이다.
“이왕이면 정말 다정하고 착한 사람이면 좋겠는데.”
그리고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실은 나를 저 끝에 가물가물 하게 보이는 할머니 쪽으로 나를 이끌기 시작했다. 홀 하는 목소리로 나를 향해 틀니가 빠진 잇몸으로 인자하게 웃는 다정하고 착한 할머니에게. 달려가게 하고 있었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적어도 이왕이면 나랑 나이가 비슷한 사람이랑은!!!! 차라리 하늘 위에 날아다니는 새랑 사귀겠소!!”
부딪힌다, 부딪힌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 할머니가 내 인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급커브를 돌며 붉은 실은 할머니를 비켜나가 왼쪽으로 난 비좁은 골목길로 나를 인도 하기 시작했다. 코트 자락이 벽에 드문드문 쓸리는 소리가 나지만 그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팻샵으로 달려가는 이 손이랄까. 팻샵으로 달려가기 시작한 나는 결국 당차게 입구를 열어젖히고 아름다운 앵무새와 애완용 닭, 그리고 우아한 페르시안 고양이에게 얼굴 훈장을 만들고 나서야 이어져 있는 뒷문 쪽으로 당당히 나올 수 있었다. 물론 가게 주인에게 미안하다. 거듭 사과를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갑자기 쳐들어와 놀란 동물들 덕분에 가게는 아수라장이 되었고, 나는 온몸에 깃털을 꽃꽂이 마냥 달고 미친 듯이 거길 빠져나왔으니까.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낫겠소.”
이 붉은 실을 어떻게 해버리면 좋을 텐데! 내일 회사는 출근할 수 있을까? 아니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 반대편까지 달리는 게 아닐까. 이젠 슬슬 불투명한 내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인연은 저 세상인가 보오.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기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곳으로 실은 날인도 하고 있었으니까. 할렘가 같은 거무튀튀한 낡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로 접어든 나는 점점 약해지는 실의 힘에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내 인연인지 뭔지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팔은 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로 이끌어 가기 시작했다.
“......내 인연이 이런 곳에서.”
일단 내가 봤을 땐 내 월급 가지고는 절대 내 인연이랑 풍족하게 살긴 글렀군. 우선 대출을 받고-.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누가 살긴 살았는지 거적때기 같은 옷들과 살림살이들이 건물 구석구석에 아무렇게나 늘어선 걸 보고서 한숨을 푹 쉬었다. 이 건물 어딘가에 있는 것은 틀림없는지 자꾸만 위로 올라가는 붉은 실의 힘에 결국은 이젠 다 포기했다는 심정으로 건물 옥상까지 올라가고 말았다. 거의 옥상까지 올라가는 중인 덕분에 여기 있나- 하고 약간의 기대를 했으나 그런 마음을 배반하고 허허벌판인 옥상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실은 거의 이제 축 늘어져 여기 어딘가에 있음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난간 쪽으로 걸어가 보니 한 1m 간격으로 바싹 붙어있는 옆 건물과 이 건물 사이를 빨랫줄이 거미줄처럼 겨우 이어주고 있었고, 온갖 낡은 옷들과 속옷들이 즐비하게 널려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우락부락한 건달들과 비록 후드 망토를 뒤집어썼으나 긴 은발 머리카락마저 숨길 순 없었는지 건달들에게 둘러싸인 여자 정도의 인물이 보였다.
“저런 저런.”
안타깝지만 난 힘없는 회사원이라. 그럼 이만, 하고 다시 다른 곳을 찾아보려는 순간.
팽-.
.... 정말이지 죽고 싶다.
“으악!!!!”
그래 난 지금!! 8층 높이에서 무려 빨랫줄에 이리저리 치이며 얻어맞으며 떨어지고 있다! 정신을 차려 보려 해도 얼굴을 치고 지나가는 옷들은 너무나 아팠고,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얽히고설켜 있는 거미줄 같은 빨랫줄을 걸칠 때마다 중력에 반하는 속도로 천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일까. 온갖 괴성을 질러가며 가끔 끊어져 버린 빨랫줄에 온몸을 두루두루 맞고 나서야 나는 인간의 몰골이 아닌 기괴한 모습으로 바닥에 엎어질 수 있었다. 물론 머리에 트렁크 팬티 한 장과 온 팔과 다리에 꿰어진 옷들은 옵션이었고, 그물망처럼 날 받쳐준 빨랫줄들은 날 바닥에 천천히 안착시켜주자 마자 다 끊어져 버렸지만.
“....뭐냐 이건.”
“처리할까요 형님?”
처리? 설마 날? 당혹스러움에 바닥에 떨어진 아픔도 잊은 체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은 늘 말하지.
“내... 내가 누군지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니가 누군데.”
“나는.”
죽을때가 되면 없는 용기도 생긴다고.
“....프...플라잉 용사다!”
다-다- 다-. 한적하기만 한 할렘가의 골목에서 내 목소리가 청량하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은발의 머리카락의 여인과 건달들 중간에 껴서. 이 민망한 상황에 건달들이 왁자지껄하게 웃기 시작했다.
“푸하하하!!!”
“형님, 저놈 미쳤습니다! 미쳤어요!”
누군가는 뱅글뱅글 손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돌리듯 가리키며 웃고 있었고, 몇 놈은 숨도 못 쉴 정도로 벽을 부여잡고 꺽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런 놈들을 중재한 아마도 형님이란 그분은 오만상을 다 쓰며 갖은 욕과 함께 저놈도 잡아! 하고 외쳤다. 그게 신호라도 되는 듯 언제 웃었느냐는 표정으로 갑자기 연장들을 챙겨 달려오는 건달들. 다급하게 옷을 벗고 빨랫줄을 죽기 살기 힘으로 당겨 옷들과 속옷들을 건달들에게 퍼붓고 뒤에 멀뚱히 서 있던 여인의 손을 잡았다.
“뛰시오!!”
살고는 봐야지! 다급하게 쥔 여인의 손은 정말이지... 크고.. 단단했다. 잘 몰랐는데 가죽 장갑을 낀 여인의 손은 매우 단단했다. 게다가.. 혹시나 하는 기분으로 달리는 와중에도 확인할 것은 확인해야겠다는 마음 덕분인지 아래를 내려다보자, 일반 여인들치고는 다부진 근육이 가득한 다리가 바지에도 숨겨지지 못하고 나름대로 형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이젠 정말 마지막 희망이다 하는 심정으로 얼굴을 쳐다보니 어느새 후드가 벗겨져 부드러운 은발 머리카락이 눈부시게 빛나는.
“뭐하나. 뛰라면서.”
남자가. 어디였더라. 푸켓이란 섬에서 본 그 비취 빗보다 더 푸른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것에 멍하니 있다가, 남자가 내뱉는 듣기 좋은 미성에 정신을 차렸다. 뒤에서 거기서라!! 뭐라 어쩌고저쩌고 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에 서둘러 다시 달리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끌고 가는 게 아니라 그 아름다운 사내의 손에 거의 끌려가다시피 달리기 시작했던 우리는 결국 뒤쫓아 오는 놈들을 따돌리기 위해 비좁고 비좁은 골목길에서 서로 마주 보며 꼭 붙어 놈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마음을 졸였다.
“숨소리 좀 어떻게 해라.”
아니, 마음을 졸인 건 나뿐일지도 모르겠다. 이 남자, 그렇게 뛰었는데 숨도 안 차나?
“후-. 후.. 아니. 지금 숨이 목 끝까지 차오.. 후.”
덥기까지한데 둘이 딱 붙어 있으려니 죽을 맛이다. 그냥 양옆으로 나란히 벽에 붙어 서면 될법한데, 내 실수 때문에 남자보다 안쪽으로 들어가려다가 결국 껴버린 것은. 내 책임이라 할 말도 없다. 게다가...
“어이가 없군. 플라잉 뭐?”
남자는 조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얼굴만 잘생겼지 성격은 영별로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는 게, 얼굴을 보자마자 이전까지는 느껴보지 못했던 두근거림이란 게 갑자기 솟구쳐 올라와서. 게다가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내 얼굴 양옆으로 올려진 그 남자의 팔에 이어진 붉은 실은 내 왼쪽 팔목의 붉은 실과 단단히도 이어져 있었다. 인연이란 걸 발견하면 이런 거구나. 더 더워지는 것 같아서 바르작 거리면서 그의 옆으로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시도했다.
“으.. 좀만 더 옆으로.”
“쉿.”
그가 불편한 자세로 내 입을 손바닥으로 막아 버렸다. 어느새 골목길 안쪽까지 뒤지고 있는 놈들이 이쪽 근처까지 슬렁슬렁 거리며 우리를 찾기 시작한 것. 가쁘게 오르락내리락 하는 숨은 이내 천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마주 닿은 심장 소리가 느껴질까 괜히 숨을 편안하게 들이쉬고 내쉬다가 이내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
“......”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그저 내 눈만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뭘까. 자꾸만 쳐다보면 대단히 위험한 일을 칠 것 같은 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소. 입 밖으로 내뱉고 싶은 말은 목소리를 잃어버린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버렸다.
“형님, 없는뎁쇼.”
“제길. 그 이상한 놈 때문에 놓쳐 버렸어!”
한참을 온갖 욕설을 내뱉었던 그 형님이란 작자는 결국 부하들을 이끌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 비좁은 골목까지는 손댈 생각을 못했는지, 점점 발걸음 소리가 멀찍하게 떨어지는 것에서부터 완전히 들리지 않을 때까지. 그는 내 입을 막았던 손을 결코 내려놓지 않았다. 한참이 되어서야 겨우 입을 가린 손을 뗀 그는 푸하- 하고 숨을 내뱉는 날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 왜 자꾸 그렇게 쳐다보시오?”
“어디서 봤나?”
“누굴? 당신을?”
그래. 그는 짧게 답하며 내 답을 종용했다. 글쎄, 당신을 봤다면 다시 잊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이 근방에서 이렇게 잘생긴 사람이 있었나. 잊기 힘든 얼굴인데 말이오. 헛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대답하고 나서는 바르작 거리며 그의 품에서 꼼지락거렸다.
“가만히 좀 있어라. 더 끼잖나.”
“...아니, 다 큰 남자 두 명이어서 이러고 있자니...”
결국 또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정말이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이내 그가 얼마나 관리를 안 하길래 이렇게 팍 끼냐면서 또 한 번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시비를 거는 것에 나도 모르게 얼굴을 팍 올렸다.
“읏,”
덕분에 그 잘난 얼굴 턱을 그대로 들이받아 버려서 문제지만. 당황스러워서 괜찮소만 연신 내뱉으며 그의 턱을 이리저리 매만져 주며 안색을 살피나, 이미 서늘해진 그의 눈동자가 나를 째려 보는 것에 움찔해 버렸다.
“...여기서 나가자마자. 일단 몇 대 맞을 각오는 해 두시지. 이름은?”
“...보통은 먼저 말하는 게 예의 아니오?”
예의? 그럼 잘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늘에서 뚝 떨어져 모든 걸 망쳐버린 것도 예의인 건가? 그는 한마디도 질 생각이 없는 듯 저런 식으로 자꾸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이름 한번 먼저 알려 달라 했을 뿐인데. 두 번 알려달라 했다간 정말 배에 칼이 꽂혀도 이상하지 않겠다며 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릭 톰슨이오.”
“나이는.”
“...무슨 호구조사.. 아니. 33살.”
어디선가 갑자기 스르릉 하는 칼 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서둘러 물어보는 질문에 답이나 제대로 해줘야겠다며 쓸데없는 말을 내뱉으려는 입을 제대로 된 말만 내뱉도록 조절했다. 만족스러웠던 건지, 검집에 검이 제대로 끼워지는 탁 소리와 함께 그는 자신의 이름만 겨우 말해주었다.
“벨져 홀든 이다.”
이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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