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져릭 육아물
* 드디어 소설 하나가 연제가 끝났군요 와 진짜 일 하느라 너무 바쁘네요
* 2015. 11. 01 (03:19) - 토니 편지 추가 (죄송합니다.)
가을치고는 따듯하다 생각했다. 더욱이 그와 제리, 둘과 함께 있다 하면 더욱더 따듯할 거라 그렇게 생각했다.
“......”
그러나 지금은 한겨울과도 같이, 허허벌판에서 고스란히 눈보라를 맞고 있는 느낌인 것 같다.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노을빛에 아이의 옷이 노란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어 가기 시작했다.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그 모습은 정말 천진난만한 아이 그대로였다. 그 어느 세상의 때도 묻어가지 못하는 따듯한 순수함 그대로였다.
“따아-.”
아이가 장난감을 손에 쥐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도 모르게 편지를 구겨 뒤로 숨긴 체 아이에게 웃어 보였다. 아이는 나의 웃는 모습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인지,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공룡 장난감을 손에 꼭 쥐고 밝게 웃어 보인다. 그리고 때마침 열리는 문 너머로 들리는 당신의 목소리.
“다녀왔다.”
편지를 보여줘야 할까. 말아야 할까. 망설임 가득한 마음 위로 편지를 숨겨버렸다. 바지 주머니 속에 구깃구깃 아무렇게나 접혀 들어간 편지. 서둘러 아이를 품에 안고 그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다가가니 그가 피곤했던 얼굴에서 조금 얼굴을 펴 보인다.
“다녀왔소?”
“아아. 오늘따라 유난히 시끄러웠다. 아무래도 이상해. 안타리우스가 이쪽 부근까지 내려오면서 움직이고 있다. 릭. 적어도 외출 시에는 조심하도록.”
조금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를 그의 품에 안겨주고는 그의 코트 자락을 받곤 마치 멀리서 아이와 그를 쳐다보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행복해 보이는. 정작 말로는 전하지 못하지만, 평소보다 더 풀어지고 밝아 보이는 그의 얼굴을 보는 순간.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해 버렸다. 그래, 아직은 말할 필요가 없겠지. 한 달이라는 여유기간이 있으니. 아직은. 자연스럽게 그들의 품에 섞여 나 또한 웃어버렸다. 지금 있는 이 시간, 절대 아깝지 않은 시간을 보내게 하리라. 그렇게 다짐하면서.
.
.
.
“벨져, 괜찮을까?”
“안 괜찮을 이유는 또 뭐지. 이렇게 바로 근처에 있으니 무슨 일이 있으면 -.”
말하자마자 아이가 또 모랫바닥에 아슬아슬하게 엎어지려 한다. 그가 당황스러움에 서둘러 아이를 받쳐 주자 아이가 재미있다는 듯 까르르 웃어 버린다. 그러게 위험하다 하지 않았소. 그에게 약간의 핀잔을 주자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 하여간 고집은. 한숨을 푹 쉬고 아이가 열심히 모래 성 쌓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제리 또래의 아이들 한누리가 저 멀찍이서 노는데 제리는 별로 섞여 놀고 싶지 않은 듯, 조막만 한 삽으로 열심히 장난감 양동이에 모래를 퍼담기 바빴다. 제리 사수작전에 성공한 벨져가 느긋한 걸음으로 걸어와 벤치에 다리를 꼬고 앉자마자 아이가, 벨져를 보고 벌떡 일어나 비틀거리며 또 엎어지려 한다.
“.......저건..”
“아기가 제법, 머리를 쓰는군.”
걸음마에 익숙해질 때가 됐는데도 어설프게 비틀거린다. 마치 우리가 잡아주길 기다리는 것처럼 비틀 꺼리는 것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버렸다. 아이는 아이인 건가. 벨져가 좀처럼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이자 나라도 움직여야지 하며 뒤뚱뒤뚱 움직이는 제리를 받아주러 가려 하니 그가 손을 갑자기 붙잡는다.
“천하의 벨져가 이런 공공장소에서 신체접촉을-!”
“미련하긴. 가만히 앉아나 있어라.”
입다물면 반이라도 가지. 그가 나지막이 말하는 것에 당황스러워하며 아이와 벨져를 번갈아 보았다. 그는 움직이면 당장에라도 한 대 칠 것 같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기에, 조심스럽게 다시 자리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왜지? 그는 제리를 정말 좋아하고 아끼고 있는데. 내 판단이 틀린 건가?
“뿌우-.”
아이가 비틀비틀 거리더니 결국은 자기 혼자 어설프게 뒤뚱거리다가 정말로 넘어져 버렸다. 다행히 부드러운 모래는 아기를 푹신 소리가 난다 싶을 정도로 충격을 완화 시켜 주었지만, 아이는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당황한 듯 손바닥에 엉겨붙은 모래를 이번에 새로 장만한 토끼 모양 우주복에 부비적 거리며 닦아내기 시작했다. 그리곤 이내 동그란 녹색 구슬에서 물방울이 퐁퐁 나오려 하기 시작했다.
“벨져!”
“쉿.”
서러움에 아이는 히끅 거리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억장이 다 무너지는 것 같았다. 다시 벌떡 일어나서 아이를 달래 주러 가려 하지만 그의 손이 또 내 손을 다부지게 잡아온다.
“가지 마라.”
“.......”
“아이가 응석 부리는 것은. 자꾸 받아주면 버릇없어진다.”
“....그런 의도였소?”
그럼 말을 해주던가. 그래도 애가 저렇게 우는데 다가가서 다독여 줘야 하지 않겠소. 자꾸만 그를 설득시켜 보지만 망부석처럼 자리에 앉아서 움직이지 않던 그가 몇 분은 더 지나서야 겨우 입을 다시 열어 아이를 불러 보기 시작했다. 이미 우리 토끼는 닭똥 같은 눈물을 퐁퐁 거리며 조막만 한 주먹으로 눈물을 겨우겨우 훔쳐내고 있었다.
“제리.”
“으앙!!!”
“제리. 이리와.”
제법 엄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가 아이를 부르기 시작했다. 서러운 토끼는 그제야 히끅히끅 거리며 숨을 내쉬고 들이쉬길 반복하며 벨져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마다 부드럽게 아이를 불러주며, 내 손을 잡았던 손을 조심스럽게 빼내고는 아이를 향해 팔을 벌렸다.
“이리 와라.”
아이는 천천히 바닥에 앉아있던 엉덩이를 들고는 억울하단 표정으로 벨져를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오기 시작했다. 눈물 자국이 아이의 볼에 범벅되어 있는 걸 보고 당황해서 보조 가방에서 서둘러 가재 손수건을 꺼내놓았다. 느릿하게 걸어오는 아이가 겨우 벨져의 품에 들어오자 그는 좀처럼 듣기 힘든 “잘했다.” 칭찬 한마디를 자꾸만 뱉어 주며 아이를 다독거려 주었다. 아이의 눈은 이미 눈물 덕분에 퉁퉁 부어있었고, 부드러운 볼은 어찌나 서럽게 울었는지 찐득찐득, 눈물로 엉겨붙어 있었다.
“잘했다. 혼자서도 일어서는 법을 배워라.”
아이가 아직 이해하기 힘든 말일 텐데도, 그는 아이가 마치 다 알아듣기라도 하는 것 마냥 아이에게 스스로 서는 법에 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아이의 볼에 눈물 자국들을 손수건으로 훔쳐 내 주며 그를 바라보았다. 혼자서는 법이라. 당신은 어렸을 때도 그렇게 자란 것일까. 덤덤히 아이에게 스스로 일어서는 법을 강조하는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나랑 나이 차이가 7살인데도, 당신은 나보다 강하구나. 픽 웃어 보이니 그가 이쪽을 쳐다본다. 왜 웃느냐는 듯 물어보는 그의 눈빛에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의 볼에 입을 살짝 맞추고 아이의 볼에도 입을 맞추었다.
혼자서는법이라.
“벨져.”
우리는 벌써 이별에 대해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할 말이 있소. 긴 이야기가 될지도 몰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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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편지를 보고서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아이는 침대에서 곤히 자고 있었고, 그런 아이의 옆에서 우리는 나란히 좌, 우로 누워 아무 말도 없이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아이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주지 못했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조용히 편지를 협탁위에 올려 두고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았다. 그의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는 언제나 그렇듯,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덤덤하듯, 무심하듯. 그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릭.”
그의 대답에 나는 눈을 한번 깜빡였다. 대답이 필요 없는, 답이 정해진 부름이었다. 그는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이미 정해 둔 것이리라. 나도 모르게 이불 속으로, 잡아둔 아이의 손에 힘을 주어버렸다. 아이가 잠결에 뒤척거리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나에게 손을 내밀어 내 머리카락을 가만히 쓸어 넘겨주었다.
“나는 너를 지킬 수 없다.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마음이 아플 거라 생각했는데.”
“....”
“지켜야 할 것이 늘어난 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무거워지고.”
그의 손끝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머리카락만을 쓸어 넘겨주던 그의 손이 이내 멈춰버리고는 갈 곳을 잃은 체 서성이는 것을, 아이의 손을 잡던 내 손을 빼내어 잡아주었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구나.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군.”
그의 아프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그다웠다. 그의 손끝에 입을 맞춰 주었다. 그 어떤 것에도 구속당하지 않던 그가 이렇게 아이 하나, 남자 하나에 얽매여 힘들어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좀처럼 익숙하지 않은 일이겠지.
“아주 한순간이지만. 당신이 아이를 너무나 좋아했기에. 내가 차라리 다른 곳으로 가버릴까 생각했소.”
그의 손가락의 굳은살을 만지작거렸다. 딱딱한 검의 무게만큼, 그는 아마 내 생각외로 더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런데, 그러기엔 내가 당신을 무척 좋아해서. 욕심이 많아서 미안하오. 벨져.”
그는 내 손에서 그의 손을 빼내었다. 그리고는 아이를 안고 한참을 침대 옆에서 서성이다, 거실로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이의 특유 단내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을 손등으로 가려버렸다. 멀리서 들려오는 벨져의 자장자장- 우리 아가. 그 소리가 너무나 마음 아파서. 거기서 울어 버릴까 봐, 나도 모르게 눈을 가려 버렸다.
생각 외로 흔적이라는 것은, 무뎌지긴 하지만 지워지지는 않았다. 그것도 더욱더 애정이란 감정을 가진 것에 대한 흔적이라면. 어느새 그 상태로 누워 맞이한 아침에는, 그는 없고 아이만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1층으로 내려가 보지만 그는 여전히 부재중이었다. 너저분하게 거실에 널브러진 장난감들. 잠깐이라도 물을 마시려 하면 꼭 보이는 아이의 조그마한 식기들. 옷장 한 쪽에 가득 자리 잡은 아이의 귀여운 옷들.
“......”
지워버리기에는 너무나 잃기 싫은 아이의 추억들이 가득했다. 괜한 말을 한 걸까. 그는 어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찻잔에 든 홍차 잎의 미세한 가루를 쳐다보며 아무말 없이 물결에 비치는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욕심에 가득 찬 남자가 보이는 것만 같아 눈을 감아 버리고는 아이가 늘 앉아 있던 장난감 상자 근처에 앉아서 아이가 쌓고 놀던 블록을 조심스럽게 쌓아 올려 두었다. 아이가 좋아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자꾸만 쌓아 올렸다. 내 고민의 높이만큼.
그리고 고민이 쌓이고 쌓아질 때 즈음이 되어서야 난간 너머로 셔츠 한 장 차림으로 테라스에 앉아있는 그를 쳐다볼 수 있었다. 한참을 거기 있던 건지, 머리카락이 바람에 잔뜩 흩날려 이리저리 엉켜 있었고, 추운 아침 바람 덕에 붉게 물든 그의 코 끝이 보이지만, 그는 미동 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끓여 두었던 홍차 잔을 하나 더 챙기고는 티 포트와 함께 테라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기 척을 느꼈을 텐데도 그는 돌아보지 않고 자꾸만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감기 걸리면 아기에게 큰일인 건 알고 있소?”
아기가 옮을지도 몰라. 장난삼아 웃어넘기려는 말투로 그에게 찻잔을 건네 주었다. 그는 그제야 찻잔에 올라오는 김을 한번 쳐다보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고민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고민스러운 표정. 괜찮다. 해주고 싶지만, 괜찮다 말하지 못하는 답답함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릭.”
“응?”
“둘 중 한 명을 고르라 한다면.”
그의 말에 찻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차가운 아침 바람이 우리 둘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난 너를 택할 거다.”
“......”
“그리고, 반드시. 아이를 다시 되찾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다시 찾아올 거다.”
반드시. 그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다시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를 선택했다는 안도감보단, 둘 다를 선택하고 말겠다는 그의 무거운 책임감이 단호하게 전달되기 시작했다. 그의 욕심에 고개를 푹 숙이고 울어버렸다. 어른의 욕심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확정 지을 수 없음에도. 찾고 말겠단 어른의 욕심에. 그리고 그럴 수 있다고 믿어버리는 어른의 욕심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
.
.
“그래서 오늘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쿠키 만들기에 도오 전! 하겠소.”
“따야!”
“...... 한심하다. 난 빠지지.”
그렇게 말해도 소용없소! 그의 앞치마를 손수 수선하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르지! 그에게 욱여넣기로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앞치마를 입혀주자 그가 당장에라도 칼로 찢어버릴 듯한 눈매로 나를 쳐다보는 것에 등골이 서늘해 졌다. 결국, 그에게 평범한 내 앞치마를 둘러주고 내가 그 너풀너풀한 레이스와 분홍빛이 가득한 앞치마를 입고 나서야 그는 만족스럽게 요리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먼저, 버터를 이렇게-.”
버터를 거품기로 부드럽게 으깨주자 벨져가 그 정도는 자신 있다며 퍽퍽 그릇을 거품기로 내려찍자 아이가 신이 난다며 자기 밥 먹는 아기용 수저로 같이 퍽퍽 거리며 이미 살상당한 버터를 더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아가, 어디 가서 숟가락 살인마라 불려다니면 혼낼 것이오. 스스로 알 수 없는 다짐을 하며 부드럽게 풀린 버터 이에 설탕과 소금을 각각 벨져와 아이의 손에 쥐여 주며 조금씩 뿌리라 하자 그가 조금씩의 기준을 모르겠다며 설탕을 듬뿍듬뿍 퍼 넣기 시작했다. 아이도 신이 나서 같이 소금을 듬뿍듬뿍 뿌려 넣기 시작하자 점점 맛에 대한 기대를 놓기 시작했다.
먹을수 있는 게 나오긴 할까부터 걱정이 되지만, 둘은 꽤 재미있는지 열심히도 뿌려댄다. 한숨을 쉬며 능숙하게 달걀을 한 손으로 잡아 그릇에 탁탁 두들겨 살짝 틈을 벌린 뒤 흰자만 빼내곤 노른자를 그릇에 넣어주자, 신 나게 또 휘젓기 시작한다.
“...신이시여, 먹고 죽지 않게 해주시오.”
양 어깨 끝과 이마를 손끝으로 찍고는 부엌 창가 너머로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
부디 오늘 밤, 살아남길 기대하며.
“아니지. 박력분이오. 박력 있게 내려쳐야지!”
“강력분은 강력하게 내려치라 하지 그러나.”
그것참 웃기는 소리로군. 정말로 웃겨서 배를 잡고 채를 치던 박력분을 놓쳐 버려 그릇에 수북이 박력분이 엉겨 붙은 체로 떨어졌다. 서늘한 기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가고, 급하게 엎어진 박력분의 가루가 아이와 벨져의 얼굴로 잔뜩 튄 것이 그제야 발견되어 당황스러움에 물로 적신 수건으로 아이의 얼굴과 벨져의 얼굴을 닦아주지만, 밀가루 특유의 끈적함만 한층 더 더해졌을 뿐 호전되지 못하고 난 혼이 났다.
이나이에 말이다.
“......그럼 이제 여기에 초콜릿이랑.. 초콜릿 칩을 넣고...”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아이와 그에게 초콜릿 칩을 손에 쥐여주자 자기들 나름대로 작품을 만들려는 건지, 열심히도 콕콕 초콜릿 칩을 끼워 넣는다. 나도 만족스럽게 나름 그와 아이의 얼굴을 흉내 내 만들고는 자랑스럽게 내밀어 보았지만, 아이도 고개를 살며시 흔들고 그도 고개를 저어 보이면서 내 꿈과 희망이 산산이 조각나 버렸다는 것은 비밀. 결국은 엉성한 모양에 엉성한 맛이 날 쿠키를 오븐에 굽고는 서로 기대되는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쿠키가 잘 구워지길 기다렸다.
“오오, 제법 맛있는 향이 나는데.”
“빠아-.”
“흐음.”
그도 제법 기대하는 듯, 셋은 나란히 오븐에 시선을 주었다. 테이블 위에 얹어놓은 타이머가 띵 소리가 나자마자 서둘러 오븐용 장갑을 끼고는 아이와 벨져를 포함해서 오븐 앞에 나란히 앉았다.
“자 그럼 어디-.”
신이 나서 오븐에서 조심스럽게 쿠키를 담은 판을 꺼내기 시작하자 흥분에 휩싸인 우리의 표정은 점점 식어가기 시작했다. 오히려 구겨지기 시작했다고 해야 하나. 오늘은 쿠키에 맞춰 진저 쿠키 의상을 입혀둔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기가 봐도 이상한 것인가.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초콜릿은 과도하게 녹아 위에는 초코 범벅이 되어 기존에 꾸며놓은 장식이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영상 적으로 문제가 상당히 컸다.
“그... 그래도 맛은!”
조심스럽게 철판을 완전히 꺼내어 접시 위에 쿠키를 담아 테이블로 옮겨 담고는 우선 벨져와 내가 한입 먹어 본 뒤에 아이에게 먹여주기로 다짐하곤 쿠키를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
“릭. 방금 턱관절이 나갈 뻔 했다. 화석 요리법을 알려준 건가.”
당신은 조금만 먹으려 했지 난 방금 틀니 낄 뻔했소. 그 말을 하지도 못하고 아픈 이를 움켜쥐고 부들거리며 책상에 엎어졌다. 쿠키가 과도한 박력분과 설탕 때문에 딱딱하게 굳어 버린 점을 예상하지 못했다. 너덜너덜해진 이를 부여잡고 엎드려 있자니 아기가 덥석 쿠키에 손을 올리고는 입으로 가져간다.
“제리!!”
먹으면 안 된다 말하기도 전에 이미 아이는 입에 쿠키를 물고 있었다. 귀여운 앞니 두 개가 이대로 부러지는 건가! 하고 서둘러 아이의 입에서 쿠키를 빼려 하는데 아이가 촙촙거리며 쿠키를 사탕처럼 빨아 먹기 시작했다.
“......오호.”
아이는 보면서 배우는 거라더니. 감탄에 겨워하는 벨져를 보니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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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아이가 이동하는 것은 새벽에 조용히 이루어졌다. 아이가 가기 직전까지 최대한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놀이동산이든, 외출이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만 골라 갔고, 집에서도 아이가 즐거워하는 행동만 했다. 아이가 쓰던 옷과 용품들을 가방에 차곡차곡 담아 토니에게 건네주자 그가 잔뜩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거듭 사과를 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보내지 말 걸 그랬는데 말이지.”
“알면 조용히 하고 얼른 가시오.”
“그래. 이쪽에서 보호자는 확보해 놨으니까.”
그나마 안심인 건 보호자가 있다는 것일까. 다른 곳에서 키워질 제리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지만. 처음의 슬픔보다는 조금 더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벨져가 몇 번이나 토니의 사무실에 들어가 육아 계획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지를 확실하게 해 놓으라 한 것이겠지. 조용히 잠든 아이를 토니 옆의 여성에게 안겨주고는 두 발짝 떨어져 아이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 훌륭하게 커 주시오, 제리.”
아이의 귓가에 들릴까.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못하는 나를 쳐다보던 토니는 이내 준비된 마차 안으로 여성과 함께 탑승했다. 창문 밖으로 손을 흔들어 보이며 출발한 마차는 이내 느릿하게 떠오르는 아침 해가 뜨는 쪽으로 이동하며 점점 작아지기 시작했다.
“슬픈가?”
“그대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면 슬프겠지.”
“약속은 지킨다. 정 여차하면.”
그는 팔짱 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보고는 덤덤히 지나가는 사람이 안녕하세요? 하고 물어보는 투로 자연스럽게 말했다.
“네가 홀든을 이으면 될 게 아닌가.”
“.......”
제리, 나도 거기에 그냥 같이 갈 걸 그랬소. 괘씸함에 벨져의 발을 한번 콱 밟아 주고는 씩씩거리며 집 안으로 들어와 버렸다. 정말 아팠는지 옷, 하고 짧은 신음이 뒤로 들렸지만 개념이 않고 집안으로 들어가자 미처 전달하지 못한 아이의 장난감 하나가 바닥에 굴러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는 조심히 장난감을 집어 들었다.
“......”
안녕, 제리. 다음에 만날 때까지 안녕.
미쳐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조심스럽게 나누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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