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9. 15. 22:43
작성자
you. and. me.




- 난 아무 생각도 없다.

- 왜냐면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 생각한게 딱 하나 있다면 이것은 3편 상중하로 나뉘는 소설이고 겁나 길것이라는 것이다.

- 애기 조심, 사랑으로 인한 옆구리 시림 조심




모처럼의 저녁 만찬에 초대받게 되었다. 그 유명한 홀든 가에 발을 들이는 일은 전례에 거의 없었으나, 그의 생일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각기 각 층의 인사들이 모여 그의 생일을 축하해 준다는 명분으로 가게 된 그의 본가. 마차가 제법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지만, 중간마다 간혹 걸리는 돌멩이에 마차가 덜컹거린다. 창 턱에 팔을 올려 턱을 괴고는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마치 영화가 지나가는 듯, 느릿하게 숲이 움직이는 모습을 아무런 감상평 없이 보고 있으려니 책 덮는 소리가 나, 상념에 깨어 소리의 근원지를 바라보았다.


“가도, 식사만 하고 바로 나올 거다. 그곳에 오래 머무를 이유는 없다.”


별로 내키지도 않고. 그는 마저 말을 하고는 내 눈을 바라보았다. 난 그저 웃으며 짧은 수긍의 답을 내놓고는 말을 잇지 않았다. 그가 번거롭게 본가에 들락날락하는 이유가 나와 동거를 함으로써 생긴 불편한 중 하나란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본래대로 좋은 가문의 아가씨와 약혼을 치르고 결혼에 성공했다면, 그는 본가에서 평소대로 생활할 수 있었겠지. 이런 내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는 어느새 시선을 내려 다시금 책에 집중하고 있었다. 언 듯 표지를 힐끔거리며 쳐다보니 붉은 장정판의 표지에는 금박으로 독일어라 무어라 쓰여 있는데 읽지 못하겠구나. 지루한 풍경을 자꾸만 보려니 졸음이 몰려와 나지막이 하품을 하는 순간 , 마차가 저택 안으로 들어서는 풍경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벌써 온 건가?


“다 왔습니다, 도련님.”


제법 한 가문의 마부답게도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마부가 문까지 열어주며 다 왔다는 소식을 알려준다. 벨져는 책을 덮어 마차 한 쪽에 내려두고는 먼저 발걸음을 내디뎌 발 밑에 고인 웅덩이를 요령 있게 피하고는 손을 그를 따라나오려는 나에게 내밀었다.


“......”


세상 그 어느 때 보다도 가장 환하게 웃으며 그의 손을 무시한 채 웅덩이를 피해 내렸다. 그가 헛웃음을 치며 이내 바른 걸음으로 내 옆에 다가와 섰다. 같은 키에 같은 눈높이. 그도 무심결에 내민 손이겠지만, 무언가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단 기분 한쪽으로 너무 과보호하고 있단 느낌이 들어 거절해 버린 그의 손. 그도 의중에 그것을 알아 차린 것인지, 별말 없이 앞으로 걸어간다. 


가을 무렵에 어울리게 화단에는 국화가 가득 심어져 있었고, 가끔 불어오는 바람에 국화 꽃잎이 떨어져 절경을 만들어 내었다. 


“어서 오십시오, 벨져 도련님. 안쪽 식당에 다이무스 도련님과 이글 도련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가지.”


육중한 문을 여니 하녀 들과, 집사들이 일렬로 서서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것에 놀라 그의 뒤로 숨을 뻔 했다. 여전히 적응이 안 되는 집이로군. 나도 모르게 그의 옷깃을 잡아 당겨버리자 그가 손을 조심스럽게 떨어내고는 손을 붙잡아 왔다. 가지, 라니. 바로 그쪽으로 가는 건가? 나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소 벨져! 소리 없는 속마음을 숨기고 당황스러움에 그의 손을 꼭 붙잡고 연신 벨져, 벨져. 그의 이름만 조심스럽게 외치자 그가 성큼성큼 걸어가려는 걸음을 멈추어 섰다.


“왜 그러나.”


“아니, 그래도 뭔가 마음의 준비를... 그대가 잘 몰라서 그렇지, 그대 형제들은 보통 위압감을 가진 게 아니라서.”


당신도 포함해서. 그 말을 입으로 꿀꺽 삼켜 넣고는 그가 아까보다는 그리한 발걸음으로 앞서 가는 것에 뒤따라 가며 천천히 심호흡했다. 좋아. 첫 말문은, 우선 안녕하셨소, 다이무스경. 잠시만. 안녕하십니까 가 좋겠군. 그리고 그다음에는 이글, 그자에게-.


“읏.”


생각에 잠기느라 문 앞에 선 그의 등에 얼굴을 부딪혔다. 이마를 문지르며 그의 옆에 서자, 그가 문 연다. 하고 제법 큰 문의 손잡이를 밀어내었다. 순백의 문과, 수려한 문양에 걸맞은 금색 새 공의 문과 문 손잡이.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것은 홀든 가의 장남과 막내. 그리고 익숙하지 않은 얼굴이지만 상석에 있는 것을 보아, 분명히 홀든 가의 사주일 거라 약 200%의 확률로 짐작하게 하는 하얀 머리카락의 엄청난 위압감을 풍기는 중후한 미남과, 익숙한 얼굴인 토니 리켓까지. 오늘 정말... 입 열기를 잘 열어야만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그가 익숙한 걸음으로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따라 가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다. 개인적으로 일일이 나누지 않아도 되는구나. 그를 따라 숙인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려 그를 쳐다보다가 벨져,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앉아라.”


그가 의자를 꺼내 주고는, 자신도 그 옆에 앉아 냅킨을 무릎 위로 올려 두었다. 식사 예절 정도는 아는데, 어쩌다 보니 내 바로 옆은 상석인 홀든 가의 가주 바로 옆이면서, 동시에 이글과 다이무스경, 그리고 토니의 맞은편이 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벨져가 옆에 앉아 있다는 것일까. 떨리는 손으로 냅킨을 조심스럽게 허벅지 위에 펼쳐 놓고는 멀뚱히 있다가, 서둘러 가주에게 인사를 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홀든.. 경. 릭 톰슨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모든 이목이 나와 가주에게 시선이 몰렸다. 뭐지. 나 방금 뭐 말실수했나. 당황스러움에 주변을 둘러보자, 수프를 뜨던 수저를 멈추고 이쪽을 쳐다보는 다이무스경과, 수프에 빵을 찍어 먹으려던 입 벌린 자세 상태로 멈춰버린 이글. 그리고 무표정하게 식사를 하는데 뭔가 대단한 시선을 보내는 벨져와,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한 토니 라켓의 표정이 보인다.


“아아, 당신이 그 벨져 홀든의.”


홀든의?


“연인이로군.”


옆에서 잠깐 목이 턱 막히는 소리가 나서 돌아보니 벨져 그가, 수프를 잘못 삼켰는지 잔기침을 하며 연거푸 물이 든 잔을 입에 대며 물을 마신다. 점점 손에서 식은땀이 나기 시작하지만, 가주가 들지, 하며 접시를 손으로 정중히 가리키는 것에 수저를 들었다. 이럴 땐 뭐라 답해야 하는 걸까. 예라 해야 하나. 아니, 벨져를 위해서라면 아니라 하는 게 맞나?


“...예. 벨져와 같이 살면서-.”

“호오, 벨져 홀든 이랑 동거를 하면서?”


방금도 말실수 한 건가. 사방에서 난리다. 눈을 깜빡거리며 당황스러움에 숟가락으로 수프를 저어대며 말을 이었다.


“잘, 지내고 있습니-.”


“호오... 잘 이라.. 잘...”


그가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제법 다채로운 표정으로 식사를 계속했다. 검사답게 손에는 그 어떤 흔한 반지 하나도 없었고, 벨져와 똑같은 장발의 머리카락은 차분하게 가슴께 까지 흘러내려 움직일 때마다 유연하게 은빛 파도처럼 넘실거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벨져의 유전자가 아마 대부분 가중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거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벨져와 매우 비슷한 느낌을 주는 사내였다. 거추장스러운 옷 자체를 싫어하는 듯 거의 몸에 라인이 도드라지는 복장을 하고선, 냅킨을 들고 입술을 가볍게 닦아내는 가주. 행동 하나하나가 절도 있다. 마치 칼과 같이.


“아아. 그래. 오늘은 벨져의 생일이었지. 생일 축하한다.”


“... 감사합니다.”


의례적인 말이 오가는 식사는 이후 침묵만이 가득했다. 드문드문 토니 리켓이 오호, 이거 맛있는데 하고 외치는 소리가 간혹 들렸을 뿐, 사람들은 입을 다물고 식사에 열중했다. 마치 이것만 마치면 서로 볼일이 없다는 무거운 침묵이 끝나고, 후식을 먹을 때 즈음 당연히 도넛과 단 것을 좋아하는 내가 신나서 이것저것 조금씩 맛보고 있자 이쪽을 웃으며 보는 가져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단 걸 좋아하는군.”


“아. 이건 일할 때 습관적으로 식사 대신 도넛 같은 종류를 섭취하다 보니 생긴 모종의 습관입니다. 그리고 단 것은...”


초콜렛이 덮인 슈네발 하나를 들어 올려 보았다. 벌써 입안 가득 단맛이 풍겨오는 것 같아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가져와 이야길 나누었다. 그래도 보기보다 그렇게 무서운 가주는 것이 아니구나. 그 홀든 가라서 지레 겁먹었는데 말이지. 슈네발을 조그마한 나무망치로 톡톡 두드려 깨부수고는 한입 맛을 제대로 느끼며 감격에 차 있을 때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어릴 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벨져는 어릴 적부터 영리해서 말이야. 매우 기대했지. 적어도 그 잘츠부르크의 밤이 끝날 무렵에 돌아온 유일한 아이니까 말이야.”


가주는 정말 기대에 찬 눈으로 벨져를 쳐다보았지만, 벨져는 말없이 내가 먹는 것을 지켜보다가 간혹 입에 묻은 과자 부스러기를 보고 미간을 찌푸릴 뿐이었다. 


“릭, 당신은?”


“응?”


신나게 망치로 뚜들기며 과자를 부수다가 이게 무슨 소리지 하고 고개를 들었다. 생각외로 홀든가 도련님들과 가주가 이쪽을 흥미롭게 쳐다보고 있던 것에 머쓱해 져서 망치를 내리고 주제를 다시 물어보자, ‘나의 어릴 적’이야기에 대하여 궁금했던 것을 알아내고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어릴 적에는... 아주 아기였을 때에는 어머니께서 미디룩을 좋아하셔서 그 옷을 주로 입고는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그때도 과자와 단 것을 좋아해서 볼이 매일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소. 과자를 한가득 입에 물고 다녔거든.”


웃으면서 잘 부서진 과자를 한 조각 들고 입 안에 넣고는 우물거리자 옆에서 꽤 귀여웠겠군. 하고 말문을 열었다. 잘 모르겠다. 어릴 때에는 특유의 아이다운 귀여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었을 테니. 어깨를 으쓱이며 과자를 자꾸 집어 먹자 토니 리켓이 좀처럼 열지 않았던 입을 열었다.


“벨져. 어릴 때 릭 톰슨이 궁금하지 않나?”


“궁금하다.”


의외로 그는 선선히 답해주었다. 정말 궁금한 걸까. 지난번에 사진도 보여줬었는데. 그거론 만족하지 못했나 보다. 

“그렇군. 아. 오늘이 생일이었지. 선물은 혹시 몰라서 당신들이 같이 사는 그 집에 옮겨 달라 해 놓았네. 실례인 걸 알지만 제법 귀한 선물이라 집 안에 들여 놓았어.”


방법은 비밀이고. 토니 라켓은 웃으며 거주를 바라보았다. 이제 식사는 이쯤 하면 되지 않았냐는 그 눈빛에 가주는 웃으며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를 따라서 식사를 마친 홀든가 도련님들과 나, 그리고 토니 라켓은 한동안 가벼운 잡담 시간을 가지다가 허망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정말 단순한 식사 자리였던 건가. 


그러고 보니, 토니 리켓이 귀한 선물이라 했는데. 뭘까. 집 안에 들여 놓은 걸 보면, 고급 식기나 음식재료? 아니면 고급 가구? 뭔진 모르겠지만, 집 안에 들어가며 대단한 것이 우리를 맞이할 것 같은 기분에 심장이 두근두근 해 졌다. 내 선물도 아닌데 말이다. 


.

.

.


“그래서.”


“에?”


“이게 뭐지.”


벨져의 굳은 표정. 눈이 앞 머리카락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맙소사. 도대체 이게 ... 이게 뭐지. 집 안에 불을 켜자 마자 보이는 것은 동그란 뒤통수. 조막만 한 몸과 손, 팔다리. 장난감 도넛을 손에 꼭 쥐고선 마치 어릴 적의 나와 똑같은 그 모습이란. 게다가 미디룩 까지 입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도대체. 


“바..”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옹알거리며 도도 하고 달려온 아이는 벨져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었다. 순간적으로 온몸에서 살기가 느껴졌지만, 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들어 벨져의 얼굴을 쳐다보는 순간 살기가 쑥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째서 내... 나는 아니지만 나와 똑같이 생긴 이 아이는 도대체.”


황망함에 주변을 둘러보다가 책상 위에 놓인 종이봉투가 보여 냅다 달려가 종이봉투를 찢다시피 열어 속에 든 종이 쪼가리를 끄집어내 떨리는 손과 떨리는 눈으로 더듬더듬 읽어보았다.


“....그래서, ‘이게’ 네 표본으로 만든 안타리우스의 실패작이란 거군.”


좌절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타리우스 녀석들이 어떻게 어머니의 취향까지 맞춰서 나와 똑같은 클론을 만들어 낸 거지? 게다가 감정과 이성이 살아 있는 클론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빠아아-.”


바둥거리면서 벨져의 종아리를 콰직 하고 물어버린 순간 벨져가 검 손잡이에 가차 없이 손을 올리며 무서운 표정을 내리는 것에 아이가 울먹거리기 시작한다. 나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는 벨져에게 흐린 눈을 지어 보이며 노려보았다.


“그래도 아이오.”

“그리고 클론이지. 내가 너와 닮았다고 -.”


닮았다고 뭐. 말을 이어야 할 것 아닌가. 아이가 엄지손가락을 쫍쫍 거리며 빨고 나와 동시에 벨져를 쳐다보는 것에 벨져가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았다. 갸웃하고 고개를 한번 기울이자, 아이가 재미있어 보이는지 따라서 엄지손가락을 물고 갸웃거린다.


“....귀여워!”


날 닮았지만, 매우 귀엽다. 흡족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자, 아이 특유의 단내와, 부드러운 볼의 감촉이 느껴진다. 너무 귀여워. 자꾸만 쪽쪽 거리며 아이의 뺨에 입을 맞추자 벨져가 냉큼 아이의 옷 뒤쪽을 잡아채 대롱대롱 공중에 매단 것 마냥 위태롭게 아이를 들었다.


“벨져!”


“다시 돌려주던지, 이 상태로 베어내던지. 둘 중 하나를 선택-.”


“따아-.”


아이가 공중에서 버둥거리더니 벨져의 얼굴에 찰싹 달라붙었다. 헛숨을 들이키며 벨져의 입을 막아버린 아이의 행동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아이가 벨져의 얼굴을 부여잡고는 마치 내가 해준 행동을 따라 하는 것 마냥 입술을 그의 볼에 꾹 눌렀다.


“......”

“......”


그 천하의 벨져 홀든이 눈을 크게 뜨며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한 것에 나도 같이 당황해 버렸다. 그렇지만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없을 것 같은 이 타이밍. 서둘러 벨져의 품에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겨 주었다. 서툰 팔의 위치와 구부정한 자세가 웃겼지만, 아이는 제법 편했던 것인지 벨져의 머리카락을 잡고는 손가락 사이로 꼬물꼬물 이리저리 장난치듯 매만지는 아이의 행동에 나도 모르게 벨져 옆에 달라붙어서 웃어버렸다. 아이의 뺨을 간질거려 주자, 아이가 까르르 거리며 웃어버리는 것에 나도 모르게 함박웃음을 지으며 벨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귀엽다-.’ 하고 중얼거리듯 말해버렸다.


“....이번만이다.”


그가 가볍게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고 자리를 이동했다. 어느새 아이는 아무도 없던 집에서 혼자 놀던 게 지친 것인지, 따듯한 온기에 둘러싸여 잠에 빠져 버린 것이다. 벨져의 품에 몸을 움츠리고 곤한 숨소리를 내뱉으며 자는 것이 어찌나 귀엽던지. 벨져도 그게 나쁘진 않은 듯, 아이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내려놓았다. 손님방이란 게 문제였지만.


“아이를 손님방에 재우려는 것이오?”

“당연하지.”

“무슨, 여기다 혼자 두다가 애가 실수로 나가면 어떻게 하오.”


그말에 약간은 움찔한 것인지, 한참을 고민하던 벨져가 그럼 어떻게 하라는 건가. 하고 나를 쳐다보는 것에 당연한 말투로 대답했다. 당연히 우리 사이에 두고 자야지, 벨져. 


“사이에 두고 잔다고?”

“그럼 좋잖소. 아이도 안전하고, 우리도 안심이고.”


그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는 것에 나도 모르게 그와 같이 살아온 세월의 여파로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눈치채 버렸다.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을 애써 참아 내며 그래도 꿋꿋하게 아이를 사이에 두고 자는 것으로 그와 합의를 보았다. 물론 후일의 여파는 생각하지 못하고. 


아이를 다시 품에 조심스럽게 안은 벨져는 2층의 우리 방으로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나를 안고 침실에 올라가면 이런 느낌인 걸까. 무척이나 귀한 보물 안 듯 그렇게 소리 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이 낯설다. 나도 모르게 그의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다가, 그가 따라오지 않는 것을 느꼈는지, 계단 위에서 뒤돌아 보는것에 웃어 보이며 집안의 불을 다 끄며 그를 따라올라 갔다.


침대 위에 납작한 쿠션 하나를 아이의 베개 대신 사용하고는, 침대 시트 자락을 아이의 목까지 올려주는 그의 모습. 


그리고 아이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우리도 자자는 듯 나를 향해 손짓 하나 없이 눈빛 하나로 부르는 그의 모습. 


가볍게 웃어 버리며 아이를 사이에 두고 그와 침대에 마주 보고 누웠다.



“벨져.”


“음?”


“가끔은, 그대 뒷모습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어.”


그는 이게 또 무슨 소리냐며, 스텐드 불을 끄려다 말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아이의 배 위로 그의 손을 마주 잡고 한쪽 팔로는 그의 앞 머리카락 쓸어 넘겨주었다. 결 좋은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사륵 거리며 넘겨지고, 그의 아름다운 눈을 바라보았을 때, 조금 더 내 마음이 전해지길 바라면서 그의 맞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가끔은. 그대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보여주고 싶어질 때가 있어.”


“넌 가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군.”


그는 이내 스텐드 손잡이를 당기곤 불을 껐다. 깜깜한 어둠 아래, 창문 빛으로 내려오는 달빛이 우리의 침실을 비춰주는 순간, 그의 눈이 작게 반짝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 뒷모습은 어떠했길래 그런 말을 하지?”


“푸흐, 그대 뒷모습은 말이지.”


눈을 감고 그의 뒷모습을 머리에 그려 보았다. 아이의 부드러운 몸 냄새가 코끝에 맴돌자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나른한 감각을 타고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의 손잡이에 손을 걸치듯 올리고 서 있는 그의 모습. 한없이 강하기만 하고, 범접할 수 없는 그의 모습 위로 천천히, 아이를 안아 올린 그의 뒷모습이 겹쳐지기 시작한다. 매우 소중한 것을 다루는 그의 뒷모습. 


누가보아도, 애정이란 것을 느낄 수 있는 그의 뒷 모습.


“...릭, 자나?”


벨져, 당신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나원... 좋은 꿈 꿔라, 릭.”


적어도, 당신의 그 뒷모습 하나만큼은.


“... 다음부턴 적절한 이름을 붙여 주는 편이 좋겠군. 네놈도 잘 자라 꼬맹이.”


꼭 지켜 주고 싶다고. 그 말을 해주고 싶어, 벨져.


당신이란 존재가 나에게 있어서 얼마나 큰 존재인지를 느껴주게 하는 당신의 뒷모습을.


내가 꼭 지켜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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