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9. 5. 02:29
작성자
you. and. me.

 

 

 

 

- 역시 벨져릭은 달달한게 최고.

- 미술작품 주의

- 미술작품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의 The kiss 를 보고 떠오른 소설입니다.

- 음악 뒤에 음악 제작자의 후기 설명 주의...

 

 

 

 

“손님. 이제 영업이 끝났는데요.”

“...아. 벌써 시간이.”

 

당황한 나머지 서둘러 시계를 바라보았다. 저녁 7시 즈음을 넘긴 시각. 아무래도 내 옆에서 자꾸 기다렸던 모양인지 그 흔한 청소도구 하나 없이 공손하게 양손을 모으고 이쪽을 바라보는 직원에게 미안한 듯, 웃으며 연신 사과했다. 이미 문 닫을 시간인데도 기다려준 것이 고마워, 한 번 더 사과를 하며 그림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남자와 여자의 그림.

 

잘 모르는 사람은 그냥 하나의 그림이라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마저 풍기는 그림이라니. 만져 볼 수 없는 게 최고의 아쉬움이라. 분명 유화 특유의 질감이. 캔버스에 붙어있는 그 물감의 굳은 느낌을 손으로 쓸어본다면 황금빛 부드러움이 넘쳐 흐를 텐데.

 

밖을 빠져나오니 어느새 해가 뉘엇 저물어 붉은 노을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나는 항상, 미국에서 오스트리아까지. 이 그림을 보기 위해 온다.

 

그림이 뭐 별개 있느냐 말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자꾸만 그 부드러움과, 연인끼리의 사랑을 느끼는 그림에는 그만큼 좋은 그림이 없었다. 뭐, 물론 지금은 비록 연인이 없지만. 연인이 없는데도 연인이 그려진 그림을 좋아하다니. 어폐가 있으려나. 웃으면서 높은 계단을 한 걸음씩 내딛으며 내려왔다.

노을진 거리는 발 한 걸음을 내 딛을수록, 기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내었다. 언제나 떨어지지 않는 그것이야말로 내 연인이리라. 오늘 하루도 보람찼다. 하루를 장식하는 마지막은 꼭 이 박물관에 들러 전시된 그 그림을 보고서야 끝이 나니까.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골목에 들어서서 조용히 게이트를 열었다. 푸른 우주가 골목에 생겨나, 은은한 빛을 내는 그 너머에 내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장소, 내 집이 보이기 시작한다. 게이트로 넘어가자마자 푹신한 침대 위에 털썩 누웠다. 여전히 머릿속에는 그 그림이 그려지는 것 같아 입에서 미소가 떠오른다.

 

“또 보고 싶은데.”

내일은 모처럼의 휴일이니.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보러 가야겠다 다짐을 하며 밀려오는 수마를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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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창문 가에 새들이 시끄럽게 지저귀는 알람 소리를 듣고 일어나 서둘러 씻고, 늘 그랬던 것처럼 근처 가게에서 커피 한잔과 도넛 하나를 가볍게 먹은 뒤 바로 박물관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오늘따라 박물관이 생각보다 사람이 많다 생각하니... 주말이었던 것을 망각한 것이 기억나 혀를 찼다. 사람이 더 많아지기 전에 얼른 박물관 중앙에 전시된 그 그림 앞으로 빠른 걸음으로 달려갔다. 조금이라도 먼저 그 그림이 잘 보이는 곳에서 지켜보기 위해.

 

“.......”

 

... 아니나 다를까. 가장 그림이 잘 보이는 정 중앙 자리에 누군가 떡하니 팔짱을 낀 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귀족인 건가? 등만 보여서 잘 모르겠지만, 허리에 검을 두 개나 차고 있다. 품위 유지를 위해 차는 것인지.. 이유는 정말 모르겠군. 이왕이면 좀 옆으로 비켜주지.

어지간히 있으면 비키겠지 싶어, 그 뒤에 마련된 벤치에 앉았다. 멀리서 보아도 그 아름다운 그림이, 한 남자에 의해 정 중앙이 가려져 버렸다. 덕분에 그림의 남자 얼굴은 보이지 않고, 여성의 얼굴만 보인다. 미간이 점점 좁아지기 시작했다. 언제쯤 비키나 두고 보자.

 

그러나, 생각 외로 그는 끈질겼다.

 

그 자세 어디 하나 흐트러짐 없이 정 중앙에 서서 그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그. 답답한 마음에 그 옆에 서서 결국은 비스듬하게 그림을 바라보고 말았다. 그가 이쪽을 쳐다보는 게 느껴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옆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았다.

 

“...좋아.”

 

나도 모르게 눈까지 휘어가며 그림에 대한 짧은 감탄을 남기고 말았다. 그 때문에 가려진 그림을 못 본 대가를 겨우 치러 낸 것 같은 기분. 조금 틀어진 방향에서 보아도 그 따스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 같아서 한참을 쳐다보았다. 옆에 그는 이미 안중에도 없고, 그림에 심취해서 자꾸만 그림을 보는 순간, 또다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저, 손님들. 인제 그만 문을...”

 

이번에도 공손하게 양손을 모은 그 직원이 말하는 것에 놀라 뒤를 돌아보자 그자가 여전히 그림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맙소사. 이 사람 아직도 옆에 있었나? 당황스러움에 얼른 직원에게 사과하자, 그가 아랑곳하지 않고 짧게 ‘실례했다.’하며 직원과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부드러운 노을 냄새가 지나갔다.

나도 모르게 직원의 어깨너머로 그를 쳐다보았다. 뭐하는 사람일까.

 

직원과의 인사 후 서둘러 그를 뒤따라 건물의 계단을 내려갔다.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린체 가죽 장갑으로 가려진 손으로 부드럽게 이따금 손잡이를 쥐는 그자는 정갈한 걸음걸이로 저 너머의 큰 저택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설마, 귀족 나리가 이런 곳에 고작 그림 한 점 그렇게 오래 보고 싶어서 다시 오겠어.

 

그러나 그 설마가. 진짜가 될 줄이야.

그는 그 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자꾸만 그 자리 그곳에 그대로 서서 그림을 쳐다보았다.

문득 그렇게 그사람과 그림을 본지 약 한달 즈음이 되 갈 때 즈음, 자꾸 뒤에서 그를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고 그 위에 팔을 올려 턱을 괸 체 바라보자, 천천히 그가 그림과 동화되어 가는 기분을 받았다.
아, 그래 지금. 지금이다.

 

내 등 뒤에 커다란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그 황금빛 태양의 노을이 그의 머리카락을 비추자마자 눈부시게 금빛으로 빛나는 그의 머리카락은. 그 그림과 무척이나 어울렸다. 나도 모르게 눈을 크게 떴다. 난생처음 지금 이렇게 그림을 바라봐도 좋구나. 그런 생각이 떠올라서.

왜 얼굴이 다 붉어지는 거람.

턱을 괸 손으로 입도 가려버리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노을이 그와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더는 바라보면 그림에서 느끼는 그 감정 이상을 느낄 것 같아서.

 

오늘도 ‘우리’의 퇴근 시간은 여전히 박물관 직원의 몫이었다. 최근 들어 그림에 흥미를 느낀 우리 둘이 그렇게 신기했던 건지, 마시고 가라며 조심스럽게 출구 앞에서 커피 두 잔을 나눠주었다. 그도 말없이 커피잔을 받길래, 나 또한 커피잔을 받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또 벌써 저녁인가. 계단 옆으로 보이는 노을 저물어 가는 풍경에 빙그레 웃고 있다가 계단 아래로 발을 헛디뎠다.

 

헉, 설마.

이런 곳에서!

민망하게!

 

곧 이어 다가올 둔탁한 아픔을 대비해 눈을 질끈 감자 푹신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허리를 붙잡아 오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민망하게 팔을 쭉 뻗은 자세로 그렇게 멈춰서 눈을 슬며시 떠보니 저만치 굴러떨어진 커피잔이 보이고, 손이 커피에 젖어 뚝뚝 , 갈색 잉크를 떨어트리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짙게 느껴지는 노을 향기.
“앞을 똑바로 보고 걸어라.”

 

뒤에서 낮게 들리는 목소리와, 언 듯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황금빛으로 물든 머리카락.
심장이 천천히, 북을 울리듯 둥둥거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고개를 돌려서 그를 쳐다보면 분명 아주 큰 일이 생기고 말 거야.

 

“... 닦아라.”

 

그가 뒤에서 손수건 하나를 꺼내 주었다. 하얀 손수건. 그와 닮은 그 손수건. 가만히 고맙소.. 하고 들릴 듯 말 듯 말하고는 수건을 받고 커피에 물든 손을 닦아내었다. 어차피 내일도 그를 만나겠지. 내일 잘 빨아서 돌려주자.

 

“아. 손수건. 손수건은 내일 돌려...”

 

어느새 허리에 감은 손을 빼낸 그가 앞서 계단을 내려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내 시선에, 그리고 이쪽을 올려다보는 그 사람의 모습에. 우리 둘 사이로 천천히 어둠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러던지.”

 

그가 웃는 것인지, 안 웃는 것인지 모를 미묘한 표정으로. 이쪽을 한번 쳐다보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고 다시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아. 정말이지. 마치 그의 눈은 우주를 담은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밝은 빛을 내는. 푸른 별을 닮아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계단 앞을 서 있던 것 같다.

.
.
.

“헉, 헉.”


서둘러 박물관 계단을 두 계단씩 올라갔다. 오늘도 그가 있을까? 품속에 갈무리한 하얀 손수건. 어제 커피 얼룩이 빠지지 않아 얼마나 고생했는지. 두근거림, 설렘 반씩 합친 마음으로 그림 앞으로 달려가자, 그림은 온데간데없고 훤한 하얀 벽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그도 없었고.

 

“.......”

 

순간적으로 시간이 멈춘 줄 알았다. 그림이 없어진 것이 충격이 아니라. 그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더 충격이었던 걸지도. 손에 쥔 손수건을 꾹 쥐자, 잘 다려진 손수건이 주먹 모양을 따라 구겨지기 시작했다.

 

“아, 손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그가 웃으며 종이 하나를 내미는 것에 종이에 시선을 주며 천천히 종이를 건네받았다.

 

“전해 주라 하셨습니다.”

 

누가? 하고 반문할 이유도 없었다. 이곳에서 이런 수상한 종이를 건내 줄 사람은 그 사람뿐이니. 조금 급한 마음으로 종잇조각 치고는 고급스러운 종이에 감탄하며 속을 열어보았다.

그리고 종이에 써진 글씨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항상 친절하게 미소를 띠는 직원에게 고맙단 인사를 마치고 서둘러 박물관을 빠져나왔다.

늘 내려가던 계단을 내려가, 아직 아침 햇살이 떠올라 청량하게 빛나는 그 거대한 저택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그림 보관 중. 홀든가에서 당분간 열릴 예술품 전시회에 사용하기 위한 목적.]

 

종이 쪽지에 쓰인 가장 마지막 말을.

 

[그림은 내일이면 다시 돌려주겠지만.]

 

실천하기 위해.

 

[그림이 목적이 아니라. 그 다른 무언가가 목적이라면. 저택으로 오도록, 기다리지. -Belzer Hold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