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8. 26. 15:58
작성자
you. and. me.







-1편의 오타 및 릭의 대사를 일부 수정 하였습니다. (수정 날짜 2015- 08- 24)

-앵스트 물.

- 중, 장편소설 (5편)

-음악과 함께 하는 소설..일지도.









나는 가장 가까이에서 그들과 마주하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식사자리에서 나는 너스레를 떨며 그들의 분위기를 맞춰주려 다분히도 노력했다. 덕분에 식사자리에서는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가만히 입만 웃은 체 식사에 집중하는 그나, 입을 가리며 가끔씩 예쁘게 웃는 그녀나. 어느 쪽으로 보아도,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그 모양새.

 

그러나 가끔은 그가 그녀에게 보여주는 웃음이, 너무나 마음 아파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저녁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녀가 잘 때를 짐작 해 보았다. 지금쯤이겠지. 그는 아마 서제에서 서류를 처리 하고 있을 터였다. 조용히 의자 끌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방은 정 중앙에 있으니까.

 

그녀의 방은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끝에 있고.

 

마치 저울 추 같은 우리들의 인연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를 중심으로 좌우로 기울어지는 아슬아슬한 관계. 그 어느 곳에 서지 못하고 중심에서 성스러운 법 앞에 선 것처럼, 칼과 저울을 한손에 든 유스티치아 같은 그.

 

판가름은 그가 내리는 것이겠지만.

 

이번만큼은.

 

 

똑똑.

 

늘 하던 것처럼, 노크 두 번을 했다. 딱딱한 나무 문 너머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들리지 않음에 의아해 하며 문에 귀를 바싹 대자마자 문이 벌컥 열린다.

 

?”

 

어어. 기울어지는 몸도 인지하지 못하고 그의 품에 푹 파묻혀 버린 것에 그대로 딱딱 하게 굳어 그를 올려다보자, 아무런 표정 없이 이쪽을 내려다보며, 또 입 꼬리만 살짝 올린 체 뭐하나-. 하고 물어보는 그가 보인다.

 

“... . 거 아니오.”

 

말 더듬는 사람마냥, 발음이 잔뜩 꼬여버렸다. 그의 품에서 몸을 겨우 일으키고는 가볍게 그의 옷의 구겨진 부분을 손으로 펴주었다. 마치흔적을 지우는 듯. 목에 맨 크라바트를 정리해 주며 그에게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제 그만 가야겠소.”

 

어딜?”

 

어디든.”

 

당신이 없는 곳이라면. 웃으면서 마지막 말을 내뱉지 못한 체 그를 쳐다보았다. 같은 눈높이에 같은 시선이 짧게 마주치자마자, 그가 정리를 끝마쳐서 빠지려는 내 손을 붙잡았다. 똑바로 마주쳐 오는 시선에 긴장감마저 서리기 시작했다.

 

농담이 과하군. 릭 톰슨. 불만이 있다면 말로 하는 게 좋을 텐데.”

 

“......”

 

농담? 그의 뒤로 게이트를 열자마자 그를 밀어 버렸다. 게이트를 열 때부터 알고 있다는 듯 그저 가만히 나를 쳐다보며 게이트 너머로 사라지는 그를 따라 몸을 던졌다. 짙은 꽃향기 속에서 그가 가만히 누워있는 그 위에, 조심스럽게 앉았다. 주변에 잔뜩 핀 상사화는 달빛에 빛나서 더 붉게만 보였고, 그와 대조되는 듯 한 그의 머리카락 색이란. 그 광경이 상당히 신비로워서 가만히 쳐다만 보았다.

 

“...무겁다. 내려와.”

 

싫소.”

 

농담 아니다. 내려-”

 

그대를 좋아해.”

 

그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등 뒤에 짓눌린 꽃들이 신음하듯,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남자끼리의 고백이란 이런 것일까. 그의 표정을 보는 순간 괜한 말을 했다며 얼굴을 감싸자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약혼녀가 있다.”

 

“...알고 있소, 그쯤은.”

 

그래서 그대를 떠나려 해. 내 마음이 그대에게 더 닿아서 더 이상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당신에게 오점을 남길까봐. 그래서 떠나려해.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린아이 우는 것처럼 여우비가 보슬보슬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그가 비에 맞을까, 서둘러 그를 일으켜 근처의 유리로 만들어진 아치 돔에 들어가 비를 피했다. 잔뜩 젖은 둘의 모습이 비에 젖은 생쥐가 되어 버려 나도 모르게 웃어버렸지만. 그를 향한 체념의 마음이 벌써부터 웃음이란 걸 짓게 해 주는구나. 애써 그를 외면한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좀처럼 그치지 않을 것 같구나.

 

그래서 떠난다고?”

 

. 그대가 없는 곳으로.”

 

그를 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다.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한줄기가 턱까지 흘러 내려와 바닥에 톡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축축한 코트 자락 너머로 시린 한기가 드는 것 같았다. 아무런 말없이 우리는 그렇게 같은 곳을 바라보면서도, 서로를 바라보지 않고 말없이 그렇게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

 

그대가 없는 곳에서는, 난 늘 그렇듯 불규칙한 아침을 보내겠지. 그러나 최근 들어 가지 못한 단골 도넛 가게에는 자주 들러서 늘 마시던 커피와 도넛을 다시 먹을 것이오. 그리고 못 다한 여행도 다시금 떠날 것이고.”

 

프랑스 파리의 에펠탑 꼭대기 위에서 혼자 걸터앉아 도넛이나 먹으려고. 농담 삼아 던진 말에 그가 웃었다. 들릴 듯 말 듯 작게. 그의 웃는 목소리가 좋아서 눈을 감았다. 점점 또렷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의 목소리에 집중하자. 마지막 목소리가 될 테니까.

 

그게 너의 일상인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래, 평온 했던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그대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그대, 셰익스피어도 좋아하시오?”

 

그러니까 마지막 정도는 괜찮겠지. 그대가 날 잊지는 못하게 추억 하나 정돈 그대에게 남겨주는 것이 좋겠지. 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어.

 

안다.”

 

그렇소? 웃으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마주한 그가 이쪽을 바라보며 같이 일어섰다. 마지막 자에게 예의를 다 하려는 그의 모습과, 복잡한 마음을 보여주는 그의 눈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나에 대해서 다시금 진지하게 돌이켜 보는 것 같아서.

 

눈아, 마지막으로 보아라.”

 

조용히 말하는 대사에 그가 상념에서 깨어나 이쪽을 쳐다본다. 그의 푸른 눈은 참 마음에 들었다. 고요한 파동을 일으키는 그 눈동자가 가장 아름다웠다.

 

팔아,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자.”

 

그를 한번 조심스럽게 안아보았다. 그제야 몸에 드는 차가운 한기가 가시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습한 느낌과 함께 처음으로 그의 체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어울리는 짙은 나무향. 얼핏 맡아보면 조금의 시원함도 느껴지는 그 향기.

 

그리고 입술아.”

 

끌어안았던 몸을 조금 때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왜이리 떨리는지.

 

생명의 문이여.”

 

그와의 코끝이 닿는 순간 그의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에, 심장이 멈추었다. 그를 더 혼잡하게 하고 싶지는 않아.

 

“...올바른. 입맞춤으로.”

 

결국은 뒤꿈치를 조금 더 들어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볼을 타고 가만히 빗물이 흘러내린다.

 

“... 안녕.”

 

어느새 비는 그쳐 달빛이 다시금 정원을 밝게 비추고 있었다. 미동 없이 서 있는 그를 뒤로 하고, 조용히 인사를 남기고 나는 서둘러 그와의 공간을 빠져 나왔다. 자꾸만 그를 껴안아 보고 싶어져서. 겨우 돌린 마음을 굳힐 수 없을까봐 자꾸만.

 

달빛을 머금은 게이트가 열리고, 이쪽을 바라보는 그와 마주한 체 게이트 너머로 몸을 옮겼다.

 

안녕.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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