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리어스물
- 안타리우스 호이짜
- 음악은 자유입니다.
항상 그가 문제였지. 종이 속에 구겨진 글씨에는 ‘미안하네.’ 그 4글자만이 힘주어 쓰여 있었다. 혀를 차며 조금 더 빨리 이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없는 동안, 릭의 바쁜 사정이란 것을 조금 더 신경 써서 눈치 챘어야 하는데. 토니 그자의 비밀스러운 ‘임무’는 이어서 거대한 규모의 전쟁을 일으키게 되는 시초가 되었다.
발단의 시초. 그것은 과거의 시간으로 돌아간다. 3일전부터 잠시의 외출이라던 릭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마지막으로 만나러 간다 했던 토니 리켓의 집무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사과의 말을 전했었다.
“안타리우스의 안식의 문에 대한 비밀. 그들이 알고 있는 비밀에 대하여 조사하려면 잠입에 유용한 릭, 그자가-.”
“입만 살았군.”
당장이라도 저 잘난 입에 검을 꽂아 넣어버리고 싶은 심정에 그의 사과를 단칼에 베어냈다. 그가 없는 지금에서는 사과는 소용이 없었다. 그를 다시 내 품에 돌려놓는 것 외에는.
그는 짧게 신음하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이번에 릭을 구출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연합과 회사, 그리고 기타 세력의 동맹을 통해서 안타리우스의 액자의 비밀을 파헤치는 한편 릭도 구출하겠다며 약속해 왔으나 코웃음 밖에 나지 않았다.
릭은 공간이동 능력자.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런 그가 3일째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은 신변에 문제가 있다는 것.
“루사노인가.”
창문 밖에는 어느새 달이 비춰지고 있었다. 가만히 달을 보다가 그를 외면한 채 방문을 나섰다. 갈 곳은 하나. 구할 사람도 하나. 방법도 하나.
“루사노 수도원. 릭은 내가 구한다. 안식의 문에 대해서 조사하는 것에 대하여서는 말리지 않겠다만, 앞으로 이런 사건에 그를 휘말리도록 하지 마라.”
달빛에 빛나는 서슬 퍼런 눈빛을 그에게 보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다. 협박이고.”
그를 구하러 가려면 빠듯한 시간이다. 생각보다 초조해 지는 마음에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빠른 걸음으로 도약하기 시작했다. 꼬박 몇 시간이 걸리는 거리. 상관없다. 당장 그를 구해야 하니까.
꽤나 긴 여행의 시작이었다. 그를 만나기 위해 회사와 기사단의 힘까지 동원해 가며 겨우 겨우 루사노 수도원으로 가는 거리를 좁혀 나가기 시작했다. 밝게 빛나기만 하는 달빛이 루사노 수도원 인근 지역까지 가는 기차 안을 아침처럼 비추기 시작했다.
안식의 문.
눈을 감고 그날, 광란의 잘츠부르크 축제를 돌이켜 보았다. 문의 틈새에서는 가느다란 찬송가가 흘러 나왔고, 그 무엇보다도 빛나는 그것이 문 너머로 보였을 때. 비밀을 알아버린 어린아이가 되었던 나는 그 비밀을 감추고 살았지.
“... 어쭙잖은 감상은.”
눈을 뜨자 세상의 풍경이 더없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아름답기로 소문난 루사노 수도원. 그 너머에 있는 진실은 아는 자 만이 알겠지. 온통 하얀색으로 뒤덮인 그 수도원은 너무나 깨끗해 보여, 더욱더 기시감을 드러내었다.
자욱한 안개 속에서 기차가 멈추자마자 루사노 수도원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처럼, 다시 검은 로브를 뒤집어쓰고.
.
.
.
“......”
그래. 이건 틀림없는, 환영의 표시인가. 루사노 수도원의 어디로 가야 할지는 이미 길 위에 부서진 시계가 그 방향을 말해 주고 있었다. 마치 이쪽으로 오라는 듯. 순백의 거리 위에 놓인 피 묻은 시계. 아주 익숙한 그 시계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산산 조각이 나, 길게 흔적을 남겨놓았다.
시계를 피해서 걸음을 옮기자 성당과도 흡사한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끝없는 탑처럼 생긴 것이 일반 성당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것을 말해주지만.
주변에는 마치, 사람이 없는 도시처럼 조용하기만 한 그곳을 한번 둘러보다가 이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끼이-...
육중한 문이 생각 보다 가볍게 열리고, 이내 성당 정 중앙에 나 있는 계단에는 또 다른 문이 보였다. 마치 자꾸만 예상된 경로로 이동되는 것이 꺼림칙한 것에 발을 한걸음 내 딛자마자 쿵 소리와 함께 거대한 문이 닫히며 어둠만이 내려앉았다. 간간히 타오르는 벽에 걸린 조그만 유리 등이 성당 안쪽을 비춰 줄 뿐이었다. 발걸음을 디뎌 문을 열려 하는 순간, 문에 적힌 글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 첫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피 섞인 우박과 불이 나와서 땅 위로 쏟아지니 나무의 삼분의 일이 타고 푸른 풀이 다 타니라.’
...알 수 없는 문구에 문을 열자마자, 아무 것도 없는 텅텅 빈 공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특유의 기름 냄새가 코끝을 자극 하는 순간 아차 싶어 서둘러 다음 층계로 내려가는 계단을 향해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방 안에 불꽃 한 점이 떨어지자마자 불바다로 변하는 방. 지독하군. 매캐한 연기에 로브로 입과 코를 막자마자 방 중앙에 보이는 인영에 눈을 크게 떴다.
“......조노비치.”
그 여자가... 아니. 저건 그 여자가 아니다. 지독하군. 안타리우스가 벌써 여기까지 진보 한 건가. 능력자들의 프로필을 빼내 간 건지, 그녀와 너무나도 닮은 클론이 불구덩이 정 중앙에서 아주 끔찍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는 것에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점점 녹아가며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문드러지는 그것. 이건...
뜨거운 열기에 다음 방문의 입구를 열려 하는 순간 또다시 방문에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 이마를 감싸 쥐었다.
‘둘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이 바다에 던져지니 바다의 삼분의 일이 피가 되며.’
불붙는 큰 산과 같은 것? 바다 삼분의 일이 피가 되었다라. 긴장감에 검 손잡이에 손을 대고 한발자국 물러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또다시 텅 빈 공간이 들어나며, 이번에는 조그마한 인영 두 명이 있는 것 마냥 방 중앙에 어두컴컴한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음을 눈치 챘다.
“...안타리우스. 도대체...”
어린 아이까지도 클론으로 복제한 건가. 물을 다룰 줄 아는 유일한 어린 숙녀 두 명과 똑같이 생긴 아이들이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손짓 하나에 방 하나를 가득 채우다 거대한 불덩이를 만들어 내는 것에 눈을 크게 뜨고는 다시 입구의 문에 손을 대었다. 차라리 이 물로 아래쪽에 불들을 소화시키는 게 나을지도.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실현시키기도 전에, 철컥거리며 닫혀버린 문소리에 눈을 찌푸렸다.
가지가지 하는군.
하는 수 없지. 검을 들고, 어린 소녀들과 대치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런 감정도,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클론을 상대로 싸우려니, 자꾸만 검이 살에 박해와도 도리어 검을 쥐고 더 깊숙이 파묻으며 어떻게든 나를 잡으려 하는 클론들. 환영이다. 환영이야. 자꾸만 스스로에게 주문을 되새기듯 읊조리며 클론들을 베어나갔다.
그 다음 층도, 또 그 다음 층도. 가면 갈수록 익숙한 얼굴들이 나오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하나같이 먼 허공을 쳐다보는 눈빛으로 일관하였다. 그들을 베어나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자꾸만 환영이라며 내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우는 이유는.
마지막 층에서. 혹시나 그가 보일까봐.
이들처럼, 단순한 클론이라도. 그가 나올까봐.
자꾸만 조급해 지는 마음에 6번째 층을 지나 7번째 층에 다다를 즈음, 다시금 그때, 잘츠부르크 축제처럼. 문 너머로 가는 찬송가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냐. 그럴 리 없어.
문을 느릿하게 열었다. 그때와 똑같아. 환하게 내리 쬐는 그 빛은, 어둠에 익숙해진 시야를 멀게 해 버렸다. 장갑을 낀 손으로 눈에 내리 쬐는 빛을 가리고, 천천히 시야에 적응할 때 즈음,
순백의 의자 위에서, 가장 하얀 옷을 입고 인형처럼 앉아 있는 네가 보였다.
“아니야.”
아니야. 그에게 다가가려 하기도 전에, 의자 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서와. 벨져 홀든.”
가만히 그를 노려보았다. 낮은 음성으로 그에게 대답할 여유 없이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를 내놔. 릭 톰슨. 그자를.”
그러자 그가 미친 듯이 소름끼치는 목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것은 괴물 이였다. 인간의 탈을 뒤집어 쓴. 다시금 잔뜩 피가 묻어간 검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필요 하다면 무력을 행사해서라도.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릭의 턱을 손으로 부여잡고 억지로 나와 눈을 마주치게 하는 그. 릭의 멍한 눈동자가 이쪽을 주시하는 순간 심장이 멈추었다.
“ 이자의 이름은 릭. 톰슨이 아니야. 더는 말이지.”
그건 기억을 잃어버린 것들에게만 부여된 이름이지-.
“기억을 잃어버린 것들에게만 부여된 이름... 분명 내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의 손끝에서 날카롭게 테라듀가 삐져나와 그의 뺨을 타고 손가락을 살짝 내리자마자 뺨에 상흔과 같이 붉은 선혈이 내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릭 톰슨이 아니야.”
파란 입술이 잔뜩 웃는다.
“내 충실한 하인, 강화 인간이지.”
너무나 하얗고 깨끗한 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마치 천사처럼 웃어 보인다. 아무런 감정 없는 그 눈동자가.
“......”
“거룩해. 너무나도 거룩하도다!!”
미친 듯이 웃으며 그는 그렇게 다시금 의자 뒤의 어둠으로 사라졌다. 빈 공간에서 남은 건 너와 나 둘 뿐.
천천히 검을 들고 네 앞에 다가섰다. 여전히 초점 없는 눈이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것에. 검을 의자에 박아 넣은 체 너를 조금 끌어안아 보았다. 따듯한 온기. 틀림없는 너의 온기인데.
“처음인데... 낯설지가 않소.”
왜 너는 나를 기억 하지 못하는지.
“온기. 향. 모든 게 낯설지가 않아. 그대는 누구지?”
아아. 꿈일 것이다.
모든 것이 하얀 공간에, 나 혼자만 검은색에 뒤덮인 이 기분은. 나락으로 추락하는 기분이란 것은.
말없이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내 이름은.”
어떻게든, 기억을 돌리고 말겠다.
“벨져 홀든.”
그대가 다시 내 품에서 내 체취를 남길 때 까지. 언제까지든.
“그리고, 그대의 연인.”
자꾸만 되새겨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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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네요. 좀더 장기적으로 쓰고 싶은 시리어스 벨져&안타릭..
여기서 문 앞에 써 있는 글은 실제 '묵시록'에서 언급되는 일곱 나팔의 대죄 였나? 에서 퍼온 글 입니다.
제키엘 스킬중에 묵시록이 있기에 연관지어서 써 봤는데 뭔가 아쉬움이 남네요.
역시 그래도 문 하면 안타리우스의 안식의 문만한게.. (코쓱)
미흡하지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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