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8. 24. 02:21
작성자
you. and. me.




-(음악과 함께 하는 소설일지도 ...???

- 중, 장편소설 (5편)(예상은 5편 정도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목의 꽃의 꽃말 처럼 결말도 그렇게 흘러 갈 예정입니다. (앵스트)




루사노 수도원으로 가야 한다.”

 

그와의 첫 만남은 마치, 익숙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체 좀처럼 모습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그였지만, 그의 음색부터 단호함과, 특유의 오만함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와 함께 도착한 루사노 수도원은 과연 수도원답게도, 아름답기 그지없었으나 마치 너무 아름다워서 기시감마저 느껴지는 듯 했다.

 

흩어지지. 난 이쪽으로 갈 테니.”

 

그는 과연이라 할 정도로, 그의 코드명답게 가벼운 도약 하나로 저만치 앞서 나갔다. 좀처럼 그의 뒷모습이 눈에서 떨어지지 않았지만, 이내 몸을 돌렸다. 그와 나는 오늘이 마지막 인연일 테니. 자꾸만 모습이 밟혀도. 잊으면 그만이니까.

 

차갑고 어둡기 만한 한 건물로 들어섰다. 가장 높은 건물. 혹여나 이곳에서 내려다보면 무언가 있지 않을까,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올라가 옥상에 다다랐을 무렵. 소름끼치는 청록빛 눈동자가 코앞까지 다가오며 검은 어둠을 몰아와 덮치기 시작했다.

 

-”

 

순간적으로 뚫린 어깨에 헛숨이 들이켜 졌다. 기둥으로 몰린 체 그 청록빛 눈을 마주하자 온 몸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능력은 양 팔이 자유롭게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때에만 발휘 할 수 있기 때문에 흐려져 가는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점점 가려지는 시야에 고통스러워하며 몸을 움직이는 순간 그가 낮게 웃으며 그 이상한 물체를 더 깊숙하게 박아 넣었다. 쇠가 끼긱 거리며 마찰하는 음이 들리며, 살이 짓이기는 그 느낌이 좀처럼 익숙하지 않아서 이를 악물 때, 천장이 무너지며 검은 로브를 쓴 레피드.’ 그자가 곧장 청록색 눈을 한 남자에게 검을 내렸다. 달빛에 비춰진 검이 섬뜩한 빛을 내며 수상한 자의 머리 위로 내려찍으려 하자마자 능숙하게도 뒤로 빠져 버리는 그 자.

 

겨우 자유로워진 손으로, 피가 철철 흐르는 어깨를 부여잡았다. 그와 수상한 자의 대치와 함께, 자신의 이름은 제키엘 이라며 크게 소리치는 그자의 목소리와. 동시에 레피드를 향해 돌진하는 그를 보자마자 바로 게이트를 열어 근처의 공사장에서 봐두었던 철제 구조물들을 그 자의 머리 위로 떨어트려 버렸다.

 

하아…….하아…….”

 

우습게도 그것은 단지 잠시의 시간벌이가 될 뿐, 상처하나 없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제키엘을 바라보았다. 가쁜 숨을 쉬며 여전히 레피드와의 대치상황을 마치 즐기는 듯 하는 목소리가 오가는 것을 흐린 정신으로 듣고 있자니, 갑자기 달빛이 환하게 비춰지기 시작했다.

 

달빛?

 

달빛이 이렇게 환한 적이 있었던가?”

 

망가져 가는 정신을 붙잡으려 환하게 빛나는 바깥을 쳐다보자, 이내 제키엘이라는 자는 알 수 없는 말을 던지고 사라져 버렸다.

 

“...놓쳐버렸군.”

 

그의 목소리에 다시금 그에게 시선을 주니 그가 이제껏 머리카락을 가렸던 로브를 벗어 내렸다. 어둠에 잠식된 그의 달빛과 같은 머리카락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이었다. 이쪽을 돌아보는 그의 눈은 마치 깊은 바다속과 같은 푸르디 푸른 빛을 띄며 빛나고 있었다. 숨죽이며 그를 쳐다 보다 이내, 잔뜩 흘린 피로 인해 아득해지는 정신을 붙잡지 못하고, 천천히 쓰러져 버렸다.

 

그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거칠고 장난기가 다분한 목소리가.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것을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렇게 눈을 감았다.

 

.

.

.

 

일어나. 일어난 거 안다고.”

 

-.”

 

혀 차는 소리가 한번 들리고 무언가 녹색의 빛이 눈앞을 번쩍이고 지나가자 좀 더 정신이 맑아지는 것에 겨우 눈을 떴다. 그러자 보이는 것은 둥근 안경을 코끝에 걸치고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는 남자가 보인다. 언 듯 본 가슴의 명찰에는 Dr. Camille. 라고 적혀 있었기에, ‘아 의사구나.’ 하는 인식을 머리에 품고 다시금 조금 들었던 머리를 뉘일 수 있었다.

 

하마터면 팔 하나는 절단 할 뻔 했어. 테라듀... 가 이정도로 훌륭했나.”

 

보통은 위험하다 하지 않나? ...약간의 의구심을 뒤로 하고 겨우 입을 열었다.

 

의사란 자가 못하는 말이 없군. 어떻게 내가 여기에.”

 

좀처럼 보기 힘든 자가 당신을 들쳐 업고 왔지. 난 짐짝인줄 알았어.”

 

좀처럼 보기 힘든 자? 미간을 찌푸리며 도통 생각나지 않아 잔뜩 고민을 하니 표정을 알아본 의사는 이내 작게 웃고는 레피드. 그자 말이야.’ 하며 수술도구가 즐비하게 늘어선 카트를 정리했다.

무튼, 당분간은 다친 쪽 팔 움직이는데 조심하고. 온 어깨를 헤집고 테라듀 파편을 꺼내느라 제법 고생했지만. 재미는 있었어.”

 

... 아무리 봐도 의사가 할 말이 아닌데. 그리 생각하며 몸을 조금 움직였다. 어깨는 관통 당한 흔적만 미미하게 있을 뿐, 제법 새살이 돋아 얼핏 보면 흉이 가려 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솜씨는 좋군. 웃으며 말하니 그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며 턱짓을 하며 나가보라는 시늉을 했다.

 

병원비는?”

 

없어. 그가 다 결제하고 갔으니.”

 

그런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의에 누군가 새로 준비한 듯 하얀 티셔츠와, 수선된 코트를 주섬주섬 입었다. 코트도 입을까 하다 주저하며 티만 입고는 코트를 들고 문 밖으로 빠져 나왔다. 별도의 전달사항이 없는 것을 보면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들자마자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댄 체 이쪽을 쳐다보는 예의 친절한그가 보인다.

 

곧바로 움직여도 되는걸 보니 치료는 제대로 된 것 같군.”

 

느릿하게 벽에 기댄 몸을 일으키는 자세마저 절도가 있어서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귀족집 도련님 그 이하로는 보이지 않는 것이 묘하게 신경 쓰였고, 무엇보다 그는 그게 어울려 보여서. 그 아름다운 얼굴이면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 인정되는 것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덕분에. 고맙소.”

 

별로. 이쪽의 일에 끌어들여서 사례한 것일 뿐이다.”

 

그의 말을 듣고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심 그의 이름을 알고 싶어져 먼저 통성명을 하며 손을 내밀었다.

 

코드명만 알고 있었지. 릭 톰슨이라 하오.”

 

그는 내밀어진 손을 멀뚱하게 쳐다보았다가 이내 자세를 고치고는 손에 낀 장갑을 벗었다. 그 자세가 정중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며 회사 상사에게 하듯 인사할 뻔 했다. 제 장갑 속에만 숨겨져 가늘게만 보인 그의 손은, 직접 잡아 본 순간 딱딱하고, 잔뜩 상흔자국이 남아있었다.

 

결코 그는 외모로만 전장을 누비는 남자는 아니었을 거다. 강한 자다. 이 사람은.

무작정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무언가를 다 아는 듯 꿰뚫어보는 그 눈. 자존심 강한 손.

 

그자라면 내 여행의 종지부를 알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 그가 이름을 천천히 내뱉듯 말했다. 군더더기 없는 깔끔하고 청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벨져 홀든. 검의 형제 기사단 소속이다.”

 

가벼운 인사만 마친 그는 할 일은 다 했다는 듯 다시금 장갑을 끼고 그럼 이만.’ 이란 말만 남긴 체 다시 복도의 끝자락을 향해 걸어 나갔다.

 

“.......”

 

이봐. 반하면 안 된다고.”

 

!”

 

나도 모르게 놀라 소리의 원흉지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니 둔탁한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간 의사의 모습이 보인다. 당황스러움에 몇 초간 정지한 사고와 몸을 서둘러 재가동 시켜 의사를 향해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돌아간 고개를 다시금 맞춰주었다.

 

..괜찮소? 그날 이후로 갑자기 뭐가 튀어나오면 주먹이 먼저 나가려 하는군. 괜찮소?”

 

“...... 안 괜찮아. 리키 이후로는 처음이야.”

 

리키는 또 누군가. 점점 알 수 없는 소리만 하는 의사의 표정을 다시금 살피니 무표정으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눈빛에 움찔 해 버렸다.

 

“... 그나저나 반하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오.”

 

같은 성별을 떠나서...”

 

그가 갑자기 벽에 밀어 붙이는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도무지 알 수 없는 자.

 

그는 정혼녀가 있으니까.”

 

정혼녀? 정말 대단한 가문의 도련님인가 보군. 아아, 그런가. 귀족들은 항상 그런 식이지. 늘 끼리끼리 결혼하고. 로맨스라곤 그 거들먹거리는 돈으로 사랑을 사는 것 밖에 없겠지. 화가 나기 시작했다.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고.. 늘 하는 말끝마다 이제 됐지? 한동안은 찾지 마시오.’ 라고 말하고 다닌 게 무색할 정도로 그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그가 그렇게 신경쓰이지도 않고.

 

그를 밀어내며 다시금 옷매무새를 가다듬고는 앞을 보며 걸었다. 마치 그와 같은 방향을 따라 가는 것처럼.

 

상관없다고?”

 

낮은 실소가 복도를 울렸다. 상관없이 자꾸만 앞을 보며 걸었다. 걸으려 했다.

 

그러기엔 이미, 당신 눈은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말해주는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마지막 말을 듣기 전 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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