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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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5. 8. 23. 00:34
작성자
you. and. me.


- 앵스트 안쓰기로 했는데... 참.. 소재가 너무 끌려서 손이 갑니다.

-노래와 함께 하는 소설입니다.


-17금. (중간에 수위가 아주 잠깐 등장합니다.)





“하아-. 하아.”


가쁜 숨을 쉰 얼굴에는 이미 날카로운 핏자국이 번져 있다. 나의 피는 아니었지만, 피가 묻은 것도 모른 체 아무 표정 없이 발아래에서 움찔거리는 여인의 형태의 괴물을 내려다보았다. 안타리우스, 그들이 자꾸만 만들어 낸 클론이 아닌, 순수한 인간이었지만, 죄가 많은 인간.


“....크흐흐흐, 잘못 건드린 거야. 하아.. 하아.. 날 죽이면 모든 게 멈출 거라 생각해?!”


날카로운 여성의 음성이 고막을 찢을 듯 울린다. 벨져, 그가 없는 게 다행이야. 그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그가 분명 싫어 할 테니. 손에 힘을 주자 푸른 은하수를 닮은 구체가 그녀의 손에서 마치 별이 죽을 때 폭발하는 것처럼 터져버렸다.


각혈하는 그녀는 결코 눈 만큼은, 나에게서 때어 놓지 않겠다는 듯, 잔뜩 피를 쏟음에도 불구하고 낮은 욕지거리와 함께 나에게 저주의 말을 퍼부었다.


“잔뜩 사랑을 받은 아이야. 너는 이제 다시는 아무것도 듣지 못할 거야. 아무것도. 세상에서 제일 잔인한 방법으로 고통스러워 해라!”


울컥거리며 쏟아지는 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음성이 귓가를 파고드는 순간 이명이 들렸고, 어느새 그녀의 뒤에서 내가 제일 사랑 하는 사람이 달려오는 모습이 보인다.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 없어.


자꾸만 이쪽을 보며 내 이름을 부르는 듯, 잔뜩 벌려진 그의 입에도 불구하고, 내 귀에는 그녀의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제일 잔인한 방법으로.’


벨져, 어떡하지.


‘고통스러워 해라!’


이렇게 가까이에서도,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어떡하지.

이제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어.


전투 속에서 몸을 스쳐 지나가는 상처 보다, 더 아파져 오는 마음에, 볼을 타고 뜨거운 것이 흘러내린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듯, 바닥에 내 팽개치듯 떨어지는 눈물을 훔치지도 못하고, 양 귀를 감싼 체 그를 바라보며 쓰러져 버렸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것은 하얗기만 한 타일로 뒤덮인 천장이었다. 두 개로 보이는 시야가 초점을 맞추고, 조용하기만 한 세상 속에서 주변을 둘러보자, 가장 먼저 그의 얼굴이 보인다.


이렇게나 조용한 세상인데, 그와 나는 손을 잡고, 나는 병실 침대에 누워 그저 그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의 눈을 마주치며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 주변에는 잔뜩 의사와 간호사들이, 나에게 손을 가리키며 무언가를 지시하고 뛰어다니기 바쁜데,


우리는 그렇게 우리밖에 없다는 듯, 서로를 쳐다보기만 했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나오는 것을 잊어버리고는 귀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고 들리지 않는다는 표식을 하려 했으나, 막상 표현하려니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다.


그가 가만히 맞잡은 손바닥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써 내려간다.


R.i.c.k.


한 글자, 한 글자. 써 내려가는 그의 손이. 내 손바닥을 꾹 잡고, 글씨를 내려쓰는 그의 손이 떨려 온다. 이내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의 표정이 보이지 않아 걱정스레 그를 내려다보자, 굵은 눈물이 떨어지는 게 보인다.


그 모습이 너무나 슬퍼서. 나도 모르게 입으로 울지마.

울지마, 그대.


자꾸만 그렇게 말해 주었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바닥을 향한 체 잔뜩 젖은 얼굴을 내 손으로 가려 버렸다.


울지마, 그대.



그대 우는 목소리도, 듣지 못해서. 너무나 슬퍼서, 눈물이 흐르지 않아.

울지마 그대.



나 대신 울지마.

.

.

.

결국은 지금의 방법으로는 아마 다시 청각을 회복시킬 수 없을 거란 판정을 받았다. 의사의 소견서는, 나를 배려한 탓인지, 타자기 특유의 글씨체가 가득한 편지처럼 쓰인 그 글을 받고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내 어깨를 감싸 안아오지만, 내 몸은 차게만 식어갔다.


집에 와서도 나는, 그저 그가 종이에 써주는 글을 보고, 웃거나, 또 웃거나. 그에게 한 번도 싫은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지만.


마치 들리지 않는 것이, 목소리를 앗아간 듯.

점점 말도 잃어버렸다.


[릭. 오늘은 제법 날씨가 좋다. 정원에 나가서 차나 마실까.]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갑자기 표정을 굳힌다. 그의 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그가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연다.


‘말해라.’


.......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벙긋거리는 입 모양은. 나에게 입을 열기를 독촉하고 있었다.


‘말해 릭. 사랑한다고 말해.’


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눈가에 무언가 차오르는 느낌과 코끝이 찡해오는 기분. 난 또 울고 있었다.


‘말해. 사랑한다 말해라 제발! 들리진 않아도, 말 할 수 있잖아.’


그가 소리치고 있다.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애절하게 나를 향해 외치는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어린아이처럼 그의 목을 끌어안고 큰 소리를 내며 엉엉 울어 버렸다.


“벨져!, 벨져! 사랑해, 사랑하오.”


그가 나를 힘주어 끌어안아 온다. 그의 품에 잔뜩 매달린 체 서러움에 더 눈물을 흘려 버렸다. 얼굴이 눈물로 엉망이 되고, 소금기 담긴 눈물이 자꾸만 눈에서 흘러내려 눈이 쓰라려도. 그에게 한 맺힌 서러움을 다 털어 내 버렸다.


“나도, 나도 듣고 싶어. 그대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소. 나는, 나는 그대 목소리 못 듣잖아. 못듣잖아!”


내 한쪽 어깨는 어느새 그의 눈물로 잔뜩 젖어버렸다. 그가 자꾸만 등을 쓸어 내리며 한쪽 손바닥에,


Sorry. Sorry.


그렇게 적어 오는 것에 울음을 겨우 멈추려 목에 힘을 주었다. 자꾸만 터져 나오려는 서러움을 멈추려 안간힘을 주었다.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그녀의 말이 맞았어.

그의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것이 결코 아니었어.

내 모든 것이, 그의 것에 향하지 않으면, 이렇게나 슬퍼져.

너무나도 잔인하구나.

그녀의 말이 맞았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그날 밤, 우리는 말없이 서로의 몸을 탐했다. 그는 자꾸만 파고들어 오며, 귓가를 깨물고, 귀에 간간이 스치는 바람은 그가 내 이름을 불러오는 것을 알게끔 해 주었다.


릭.


들리지 않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정신없이 그에게 안겼다. 그의 목소리를 대신하려, 자꾸만 그에게 몸을 내주었다. 떨어지기 싫은 듯. 그에게 매달렸다.

.

.

.

그렇게 계절이 흘러, 이제는 제법 덤덤해진 우리는, 글로 서로의 마음을 전했다. 그와의 밤 이후로, 나는 이제는 그의 목소리를 찾는 대신. 그와 함께 할 더 소중한 추억을 만들기 위해. 작은 일들도 하나하나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도 나와 같은 노트를 사서, 나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꾸 적어내렸다.


같은 시간을 걷고,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

그 소중함을, 귀가 들리지 않음으로 인해 느끼는 것에 좀 더 감사하며.

우리는 듣는 대신, 보았으며,

소리가 들린다는 단어 대신, 행복한 기분이라고 고쳐 써내러 갔다.


그가 해준 소중한 배려.


그렇게 우리의 노트는, 사랑으로 다시금 채워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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