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Yes24 서평단 합격을 통해 제공받은 책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TV 예능 프로그램인 '유퀴즈' 에서도 한번 방영된 적이 있고, 또 별도의 매체들을 통해 보도된 사건이 있다. '엄궁동 살인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사건의 경위는 대략 이러했다. 엄궁동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엉뚱한 사람들이 범죄자로 지목되었다. 경찰은 이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를 하기보다는, 그때 당시 실적을 올리면 빠른 승진을 해 줄 수 있었기 때문에 승진을 위해 지목된 사람들에게 물고문을 하며 거짓 자백을 받아내었다. 그렇게 그 억울한 사람들은 약 21년간을 감옥에서 살게 되었고, 뒤늦게 변호인들을 통해 다시 재심에 들어갔다. 그렇게 지난 2021년 2월 4일. 두 사람의 무고가 밝혀지며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가 된다.
법원의 앞에는 늘 여신의 동상을 볼 수 있다. 그녀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정의의 여신'인 디케로, 이후에는 로마시대에서부터 유스티타아(Justitia)로 불리게 된다. 우리가 요즘 잘 쓰는 영어인 저스티스(justice), 즉 정의는 바로 이 여신의 이름에서 따왔다. 여신은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저울을 들고 있으며 눈을 가리고 있다. 칼은 여기서 엄정한 법의 심판을, 저울은 모두의 형평성을, 눈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 중립성을 나타낸다. 이것은 간접적으로나마 법을 집행하는 자로써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제법 법이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도 위의 예시와 같은 판례로 억울한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에는 어떠할까. 지금보다 조사의 환경이 더 열악하고, 추리하기 힘든 사건에 대해 과연 어떤 판결을 내렸을까. 책 <다산의 법과 정의 이야기>에서는 '흠흠신서'에서 나오는 형사 사건에 대해 다루며, 먼저 왕이 결정한 접의 판결을 다루고, 이후에 다산 정약용의 생각을 담음으로써 각자 하나의 사건에 어떻게 다른 의견을 펼치는지를 알 수 있게 정리해 둔 책이다. 많은 사건 중 몇 가지 인상 깊은 사건들이 있었다.
전라도 강진에서 사는 윤덕규에게는 본처와 첩이 있었다. 각각 아들들을 낳았는데, 첩의 아들들이 아버지에게 곡식을 얻기 위해 말을 걸자 아버지가 주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기 시작해 언쟁을 벌이다 아버지를 발로 차고 때렸다. 이후 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다가 죽게 되자, 본 처의 자식들이 첩의 아들들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에도 1심, 2심, 3심이 있듯 조선시대에서도 초검, 재검 등으로 검사를 여러 차례에 걸쳐 하기도 했는데 초검관과 재검관은 사건의 전체적인 원인 결과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형벌과 형량, 그리고 복수를 한 본처의 아들들이 더 수상한 것 같다는 의견을 내보이며 상소문을 올렸고, 이에 대해 정조는 '조사도 부실하거니와, 벼슬아치들은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노력은 일절 하지도 않고, 초검관과 재검관의 태도는 모호하며, 수령은 인지상정에 맞지 않는 판결을 내린다.'라며 오히려 담당 책임자들에 대해 엄중한 태도를 보였다. 즉, 정조는 법조문의 글자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더 큰 사건의 핵심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검사 보고서를 여러 번 살펴보면 비록 이치에 맞는 듯 하지만, 시신 검험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사건의 진실을 놓친 것이 명백합니다. 애석한 일입니다!
- 정약용-
-35~36p-
지방 관찰사의 직분은 검사관이나 법관과는 다르다. 법조문과 사람의 도리 양쪽 중에서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면 안 된다.
- 정조-
-38p-
하나의 사건에서 정약용과 정조는 같은 판단을 했다. 즉, 정치 지도자라면 법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인정에 치우쳐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펼쳤다. 법대로 진행을 하게 되면 지도자는 편하게 되나, 사건 당사자들이 마음으로 납득하지 못하며, 끝내 억울한 백성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정조가 칭찬한 사건도 있으며, 오히려 정약용이 더 칭찬한 사건도 있다. 대체적으로 정약용은 법에 대한 엄중한 처벌을 신분과 계급에 논하지 않고 벌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견해를 보이며, 오히려 정조는 모호한 사건에 대해 엄중한 처벌을 내리게 된다면 사람들의 고통이 늘어날 것을 염려하며 최소한의 형량을 집행하는 것을 중시했다. 이것은 어쩌면 사람이 중요함을 강조하는 '실학(천주교)'의 사상적 면모가 보이는 정약용의 행동과, 임금으로써 어질게 백성을 가르치고 뉘우치게 해야 한다는 만백성의 어버이의 마음가짐인 정조의 사상 차이일 수도 있겠다.
다산은 어떤 형사 사건을 처리할 때는 그것이 하나의 판례가 되어 향후에 사회에 미칠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고 보았다.
-172p-
다산 정약용과 정조는 많은 사건들에 대해 의구심이 들면 수사에 파고듦을 멈추지 않았다. 이는 법이 집행하는 영향력은, 향후의 일들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열악한 환경이지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통해 법의 테두리 내에서 공평한 법을 집행함으로써 조선에 새로운 이치를 세우는 이러한 활동들과, 솔직하게 임금의 심판 내용을 검토하듯 말하는 정약용은 우리가 현대 사회에서 잠시 잊게 되어버린 '법'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개념을 다시 깨우치게 한다.
이 책을 읽고, 과연 '법'이란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책 <흠흠신서> 서문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정약용이 써 놓았다.
이 책을 흠흠(欽欽)'이라 한 것은 '삼가고 삼가는' 일이야 말로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다.
- 4p-
법이란 것은 과연, 법전에 적혀 있는 내용에 대해 잘 분리해 처벌을 하는 것이 그 목적일 것인가, 아니면 억울한 사람들에게 형평성 있는 심판을 내리는 것인가. 이 두 가지는 사실 크게 다른 내용은 아니다. 하나의 법전 안에 있는 내용을 바탕으로 법관들은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이론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삼가고 삼가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법에 대해 공부하고 싶고, 법을 다루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필독해야 하는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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