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5. 20. 17:53
작성자
you. and. me.




*요즘 앵스트가 너무 끌리네요..



*노래가 너무 좋아서, 저도모르게 광광 울며 글을 한번 써봤습니다. 벨져릭이 나빴네요.



*딱히 벨져가 바람핀건.. 아니 맞구나. ..음. 미안타, 벨져.







그때의 너는 철없는 27살에 지나지 않았고. 그때의 나는 그저 그런 너를 사랑하는 33살의 어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푸른 내음 가득한 초여름을 기억한다. 

지금처럼. 눈을 감고 어딘가 미지근한 바람에 머리카락이 잔잔하게 어루어 만져질 때. 나는 아직도 그날의 푸름 내음 가득한 초여름을 기억한다.






“아, 잠깐만. 아냐. 기억났소. 음... 바다?”


“바다?”


“그래. 그대 하면 떠오르는 것. 바다.”


모든걸 푸른색이랑 연관 지어서 말하는 버릇은 이제 슬슬 버리는 것이 좋다, 릭 톰슨. 그의 말에 나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러는 그대는 내 녹색 눈이랑 닮았다고 항상 이렇게 인적 드문 공원 잔디밭에 누워서 나랑 이야기하잖소. 그는 말없이 입꼬리만 올리고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감는 것을 보고 나도 눈을 감자, 그것을 칭찬이라도 하는 듯 더운 여름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갔다. 한여름의 잔디가 바람에 흩날리면, 마치 그것은 파도소리와도 같아서 바다에 온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곤 한다. 



“또 있다!”


“........”


“엄청 사랑스러운 키스.”


“하?”



그는 정말 어이없다는 듯 몸을 일으켜 팔로 몸을 지탱하며 내 쪽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렇게나 잔디 위로 흐트러진 내 머리카락을 가다듬지도 않고 그에게 팔을 벌리며 웃어 보였다. 나는 틀린 말은 하지 않소. 그대의 키스는 늘 그런 기분이 드는걸. 어쩐지 가만히 이쪽을 바라보는 그를 마주하니 얼굴에 열이 올라 머뭇거리며 그의 머리카락에 뭍은 잔디 잎 조각을 때어내 주자, 나의 손목을 천천히 붙잡은 그가 내 팔목을 따라 손을 천천히, 팔뚝까지 쓸어 내려오며 고개를 숙였다. 


초여름, 그와 마주한 입술에서는 바람 향이 났다. 자연스럽게 그의 목에 팔을 두르자 자연스럽게 더 입을 포개는 그의 은빛 머리카락이 내 얼굴을 뒤덮었다. 겨우 우물거리듯 입을 가끔 때어 내며 간지럽소. 간지럽다고, 벨져. 하고 웃어버리자 그도 내 웃음을 따라 웃어버리며 ‘엄청 사랑스러운 키스에 그 정도 대가는 상응해야지.’ 하며 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새가 입을 맞추듯 가벼운 소리와 함께 입을 맞추었다. 


그 여름날의 우리는 너무나 철이 없었고, 철이 없던 만큼 너무나 사랑해서. 항상 키스로 시작된 행위들은 언제나 자연스럽게 침실로 내가 게이트를 열게끔 하였고, 항상 그와의 온기를 나누는 것으로 저녁을 마무리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진.






그때의 너는 철없는 27살에 지나지 않았고. 그때의 나는 그저 그런 너를 사랑하는 33살의 어른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푸른 내음 가득한 초여름을 기억한다. 

그날 나는 그대를 기다리며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들을 차려 놓고, 그대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현관문이 가장 잘 보이는 소파에 앉아서 그대를 기다렸다. TV를 틀어놨으나 그 흔한 내용에 대해 귓등으로 넘겨 들으며 행복한 기분에 잠겼다. 그대를 기다리는 시간마저 나에게는 너무나 큰 행복이어서.



“너무 일찍 준비했나...”



그래도 늦게 준비한 것보다는 낫다고 자신을 위안하며 TV에 시선을 주었던 눈을 돌려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그는 8시쯤 온다 했는데 아직 7시 반. 시간은 넉넉하게 남았고, 음식은 덥히면 그만이니까. 그가 오면 뭘 할까. 가장 먼저 그와 껴안고 그의 하루가 가득 베어진 그의 옷에 코를 파묻고 숨을 들이켤까. 다녀왔느냐며 가볍게 그에게 입을 맞출까. 턱을 괴며 입을 손으로 가렸는데도 입꼬리가 비실비실 올라간다. 그는 저녁에 또 사랑한다 말해주겠지. 눈을 감자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저절로 표정이 기분 좋게 찡그려진다. 아, 빨리 보고 싶다.


TV를 보며 시계를 본지 한참. 지금 시각 8시 30분. 


소파에 조금은 뒹굴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서 다시 시계를 본 시각 9시 20분.

그가 오면 바로 안아줘야지, 하고 현관문에 기대어 그를 기다리는 시간 10시 30분.



결국 오지 않는 그를 찾기 위해 밖을 나서는 순간, 시내로 들어서는 골목길,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 가로등 하나가 비추는 그 골목에서, 아름다운 여성 한 명과 입을 맞춘 그를 본 시각. 11시. 


그 자리에서 한참을 멈추어 있던 그와 시선을 마주친 11시 5분. 



“.....릭. 이건.”

“홀든경, 뒤에 저분은...”


“.....숙녀분이 있는 줄 모르고 실례했소. 연인이 있다고 말을 해 줬으면 내가.”


“릭.”


“......내가.”



나는 그저 그에게 한번 웃어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목구멍에 누군가 뭐라도 집어넣은 듯, 목이 꽉 메는 것에 침을 삼키며. 집에는 돌아가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면 차갑게 식은 음식들과, 무의미하게 돌아가는 TV 소리에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간만에 들어온 집 앞 우체통에는 전단이라든지, 가끔 아는 펜팔 친구에게서 온 편지라든지, 혹은 세금에 대한 공문들이 가득 차 있었고, 한 번도 제대로 쓸어두지 못한 마당은 1년 사이에 그 세 너저분한 폐허처럼 갈색 나뭇잎들이 잔뜩 쌓여 축축한 향을 풍겼다. 너무 오래 비웠나. 굳게 잠겨진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자, 1년 전의 그 풍경 그대로의 집이 보인다. 다만 조금 다른 건 켜져 있어야 할 TV가 꺼져 있고.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있었던 듯, 깨끗한 집안과. 그때 차려놓은 음식들은 다 사라져 있고 깔끔하게 정리된 부엌. 


“........”


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나를 제외 하고서는 한 사람뿐이니. 아무렇게나 쑤셔 넣듯 가득 부푼 짐 가방을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두고는 바로 욕실로 향했다. 현관에 놓인 구두라든지 신발이 없는 걸 보면 그가 집에 있는 건 아니니까. 한참을 샤워기 밑에서 물줄기를 맡고 맨몸으로 서서 생각에 잠겼다. 일단 현관문 자물쇠를 바꿔버리자. 마당도 깨끗하게 손질하고. 


생각을 실천에 옮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텅텅 빈 냉장고가 마음에 걸려 장을 보러 가야겠다며 머리를 북북 긁적이고는 편한 차림으로 밖을 나섰다. 오늘 하루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기 위해 중간에 카페에 들려 아메리카노 한잔을 구매했다. 직원의 배려 덕분에 시원하게 식혀진 아메리카노를 한잔 들이키자, 무더운 여름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보자…. 간만에 와서 그런지 많이 바뀌었군.”


더듬 더듬, 기억을 되새겨 보며 도착한 시장가는 어느새 높은 건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건물 입구에서 친절한 경비원 덕분에 시장이 전철로 한 정거장을 더 가야 나오는 지역으로 이전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사함에 거듭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느릿하게 발걸음을 옮겨 전철을 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인적이 드문 탓에, 역무원이 거의 졸다시피 있는 것을 깨워 열차표를 구매하고는 정류장에서 기차를 기다렸다. 옛날과는 달리 이제는 전기로 돌아가는 기차들이 가끔 역을 지나가는 장면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어느새 얼음이 조금 담겨 있던 아메리카노에서는, 얼음의 흔적도 찾기 힘들 정도로 날이 무더워 지는 것에 한숨을 푹 쉬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저 멀리서 기차 한 대가 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내가 원하는 시장 쪽으로 가는 기차가 아닌, 반대편 기차. 기분 좋다 말았다며 다시금 한숨을 푹 쉬고 건너편 정거장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한적한 시골 마을에 내릴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참 뒤에야 기차가 약간의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출발했고, 나는 내 반대편 기차 정류장에서.



“........”


“.......”



어쩐지 예전과 달리 조금은 더 야윈 것 같고, 그 길었던 머리카락을 잘라 버린. 너와 마주했다.


그가 나를 보고 움직이지 않고 이쪽만을 주시하는 것에 가만히 웃어 보이자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안녕, 벨져.”


“........”


“1년 사이에 많이 바뀌었소, 그대. 머리카락이 짧아졌네.”


“넌 변한 게 없군.”



변한 게 없다고? 그래,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내가 변한 것은. 



“갑자기 여행하고 싶었지 뭐야. 사랑하는 나의 옛 연인에게 정인이 있는 줄 몰랐소.”


“....그건.”



그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의 이야기는 잘 알고 있다. 나중에 뉴스도 뜨던데. 오스트리아 귀족 가문 중 차남이 성대한 약혼식을 올렸다나 뭐라나. TV로 언 듯 보이던 그의 얼굴을 아직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나도 모르게 화면을 매만지며, 다시금 미간을 찌푸렸던 것도.



“사랑하는 나의 벨져.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걸 포기하는 대가로 얻은. 그대의 사랑은.”


“......”


“행복해? 행복 하고 있소, 벨져?”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날 주시할 뿐이었다. 철없던 그날, 우리의 여름과는 달리. 이번 여름은 너무나 무더웠다. 숨이 막히고, 먹먹하여질 정도로. 



“사랑하는 벨져. 내가 일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빼앗아 간 그녀와 행복하게 지내고 있소?”


“릭.”


“오, 괜찮아.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소.”


나는 아무렇지 않소. 희미하게 웃어 보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움이라는 것이 지독하게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하얀 반소매 셔츠의 배 부분을 움켜쥐었다. 속이 쓰리듯 아파지기 시작한다. 커피 때문일까, 눈앞에 하나의 거리를 둔 그와 나의 거리감 때문일까.


“난 정말 아무렇지 않아. 그대가 행복해 졌으면 하는 바람이야. 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하길 바래.”


결국은 참았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날 여름의 저녁. 한참을 밖에서 그가 보여준 충격적인 장면에 집을 들어가지 못했으나, 혹시나 그가 나에게 이유라도 설명해 줄까, 다시금 내 집에 돌아가 보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 백색 소음만 들리는 TV와, 불 꺼진 집 안이 날 반겨주었다. 나는 소파에 앉아 쿠션 하나를 끌어 앉고 지금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TV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렇게 그를 다시 기다려 보았다. 어두 컴컴한 방 안에서. 혹시나 돌아올까, 혹시나 나에게 설명이란 것을 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러나 새벽이 오고, 아침이 와도 그는 오지 않았고. 나는 그날 이후로 바로 짐을 싸서 문밖을 나섰다. 뜬 눈으로 소파에서 지낸 지난밤은 나에게 너무나 춥고 시린 겨울과도 같아서. 미련없이 집 밖을 빠져나왔었다.



“벨져, 우리가 정말 철이 없었지. 나는 그대 사랑 하나면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라 생각했소.”


“.......”


“그대가 그렇게 좋은 집안 자제분 인 줄도 몰랐던 내가 미안해.”


“릭 톰슨. 거기까지 해라.”


“잡지 그랬소? 좀 붙잡지 그랬소. 그대는 그렇게 빠른데.”



날 한 번이라도 붙잡는 시늉이라도 해 보지 그랬소? 내가 너무 가여워. 가슴을 치며 눈물로 뒤범벅된 얼굴을 가리지도 못하고 그에게 그렇게 울분을 토했다. 사랑한 번 하는 게 이렇게 힘겨울 일일 줄 알았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건데.


이 여름이 지나면 꽃이 필 줄 알았는데, 메마른 겨울만 다가와서 눈으로 뒤덮여 버린 내 사랑 꽃은 그렇게 져버렸는데.


한참을 서럽게 울고 있으려니 빠른 속도로 기차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인다. 내가 타고 가야 할 기차. 


“안녕, 벨져 홀든. 다신 만나지 말자. 그냥 어린 날 우리의 철없던 어린 날의 추억으로 세겨 놓자.”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와 나 사이에 기차가 바람을 일으키며 스쳐 지나갔다. 제법 강하게 흩날리는 바람에 턱에 고인 눈물방울들이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버렸다. 손목으로 대충 눈가를 훔치고는 열차에 타려는 순간 뜨거운 체온이 내 손목을 붙잡았다.



“릭.”


“.........”


짧은 머리카락의 그가 내 손목을 쥐던 그 느낌에 다시금 눈물이 올라와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기껏 마음먹은 것들이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견고하게 쌓은 성벽이 하나씩 틀어지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 사랑을 기만해서. 미안하다.”


“.....이제와서 그런 소리 해봤ㅈ-.”


“모든 것을 정리하고 돌아왔다.”


그는 어딘가 다급해 보였다. 평소의 그와는 다른 모습에 손목에 주었던 힘이 풀려버렸다. 정리했다고? 어쩐지.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 부푼 그의 한쪽 광대뼈. 따귀라도 맞은 듯, 조만간 멍이 들것 같아 그쪽에 시선을 주자 그가 힘을 주워내 손목을 당겼다.


“열차 출발합니다! 얼른 타실 거면 타고 말려면 말어!”


“아.”


서둘러 그가 당기는 손목을 밀치고 열차 안으로 다시 몸을 돌리려 하자 그가 더 강하게 이쪽 팔을 잡아당겼다.


“출발해라. 이쪽은 타지 않을 거니까.”


“그대가 왜 멋대로 정하고 난리오? 난 가야 해.”


“아, 거 간다는 거야, 만다는 거야!”



역장의 성질에 나는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 가시오!!! 가! 좀처럼 화를 내 본 적 없는 나의 언성에 그도 놀라고, 역장도 놀랐다. 역장은 약간의 욕설을 조금 읊조리는 듯하더니 천천히 기차를 출발시켰다. 


“.... 그대가 정리했다고 해서 출발 시킨 거 아니오.”


“안다.”


“이야기는 들어줄게. 대신 그대도 좀 들어줬으면 해. 33살의 나와, 34살이 된 지금의 내 이야기를. 이야기하자, 벨져. 잔디밭에 누워서. 바닷소리 듣고. 예전 그때처럼.”


조금이라도 우리가 가까워질 수 있게. 다시 그때 그 시절로.


그는 말없이 내 손에 깍지를 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힘없이 내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사랑한다. 릭 톰슨.”


“아직 용서 안 했다니까.”


“안다. 그래도.”


사랑한다. 짧은 머리카락에서는 샴푸 향이 흩날렸다. 더운 바람이 불어오는 역은 어쩐지 시원해서. 눈물로 젖은 내 얼굴을 식혀 주었다.






그런데 그대 어떻게 건너편으로 온 것이오?


뭐가.


전철 역. 최소 플랫폼 사이 거리가 6m 이상인데.


네가 간 다른 나라에서 내가 있는 이곳까지의 거리가 몇십 km인걸 고려한다면. 

그게 그렇게 먼 거리인가?

기찻길로 뛰어들어서 사다리 타고 올라 온 거다.


품위 없기는. 벨져 홀든 품위는 죽었나 봐?


누구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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