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5. 18. 19:41
작성자
you. and. me.


* 하이브리드 차일드 기반으로 쓴 글입니다.


*급하게 쓴 거라 어색함이 없지 않아 있는것 같기도..


*앵스트, 사망소재. 




사람은 이기적인 동물이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나, 극한의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자신의 본심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푸른 녹음이 우거진 나무 밑, 벤치에 앉아서 나뭇잎들 사이로 투영되는 푸른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때도 이런 빛을 보았는데.

 

 

1.

 

 

아니. 안 돼. 안 돼, 벨져. 이제 나 혼자 두고 가는 일은 질리지 않았소?”

 

“.........”

 

가지마.”

 

미안.”

 

가지마, 이 나쁜 자식아.”

 

나의 거친 언사에도 그는 그저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어릴 적에 자주 보았던 만화책에서 나오는 영웅들은 하나같이 멋있었다. 정의를 지킨다는 명목 하에 그들의 망토는 바람에 따라 펄럭거렸고, 사람들은 그를 추앙했다.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차고 다니는 무기를 하늘을 향해 치켜세우며 이겼노라 외치는 영웅을 보면 나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닌데.

 

저 멀리서 내 영웅이 나에게 등을 보였다.

 

가지 말라는 나의 목소리에도, 그는 내가 원하는 대답을 주지 않았다. 그의 뒷모습은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영웅과 닮았는데도. 전혀 자랑스럽지 않았다. 원망스럽고, 붙잡고 싶었다.

 

벨져. 제발.”

 

그는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눈앞이 눈물로 뿌옇게 흐려져서 시야가 구분이 안가 눈을 질끈 감았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지? 눈을 감았다 떴을 땐 내가 사랑하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일그러진 표정을 짓고 너무나 애달프게 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내 말을 듣고 돌아 온 걸까. 하고 눈을 한번 깜빡이는 순간, 바람이 불었다. 나에게 마지막 선물인 그 짧은 입맞춤을 남긴 그는, 다시 천천히 눈을 떴을 때, 나에게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 문 너머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마치 천국의 형상을 한 그 안식의 문이 닫힐 때.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끝끝내, 나와 연인이라는 관계라는 것을 형성한 이후로. 그 마지막 까지.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못한 체 그렇게 문 너머로 사라졌다.

 

내가 본 가장 푸르른 빛이 문 너머로 사라지는 순간, 모든 것이 암흑으로 뒤덮였다.

 

 

 

2.

 

 

여기에 사인하시면 됩니다.”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서류 밑에 사인을 하자 이쪽을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이 느껴진다. 그런 시선을 가만히 응시하자 한숨을 푹 쉰 남자는 안쪽에서 주문한 인형을 데리고 나왔다. 아직 아무 말도 못하는 듯 어딘가 멍한 표정의 어린 아이는 나의 옛 연인의 어릴 적 모습과 매우 닮았다. 아니. 똑같다.

 

저 인형은 홀든가에서 받은 그의 어릴 적 사진으로 만든, 일종의 거짓된 환영, 혹은 허상.

 

그러나 그것마저 없으면 내 스스로가 너무나 불쌍해 질것만 같아서. 나는 그렇게 그 인형을 구입했다.

 

 

“...계약서를 보시면 알겠지만, 이 인형은 교육하는 사람의 애정을 받고 자라는 인형입니다. 말도 할 수 있고, 인간과 똑같은 감정을 가진. 그런 인형이죠.”

 

알고 있소.”

 

 

더 이상 인형을 판매하는 사람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내 얼굴을 한번 보고 고개를 끄덕일 뿐. 남자가 인형의 엉덩이를 살짝 밀어주자, 통통 거리며 아이가 나에게 주춤 거리며 다가왔다. 아이는 날 보고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의자에 앉아 허벅지에 손을 올린 내 손을 꼭 붙잡고 말없이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를 투영하는 아이. 나의 애정을 받고 자랄 아이.

 

벨져, 벌써부터 그가 겹쳐져 보여 나는 눈을 감고 말았다.

 

 

 

 

3.

 

 

릭 톰슨. 이번엔 그리스다.”

 

연인이 아니라 그냥 특급 열차 정도로 부르는 건 어떻소.”

 

 

나의 툴툴거림에 그는 말없이 내 어깨를 두어 번 툭툭 손으로 두드리고는 피식 웃어버리는 것이 다였다. 그래도 또 그가 웃었다는 그것 하나에 기분이 좋아 게이트를 열곤 한다. 연인이라 하기에는 너무나도 어색하고, 스킨십조차 거의 하지 않지만. 그와의 그런 묘한 거리감이 오히려 더 익숙했다. 손 끝자락이 어쩌다 닿을 때면 심장 한편이 아리게 아파 와서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으니까.

 

 

저기, 벨져. 모든 연인들이 다 한다는 그 말좀 어디 해 주면 안되겠소?”

 

뭐가.”

 

아니 왜...”

 

게이트를 열다 만 나는 손으로 하트모양을 만들어 그에게 푹 쏘듯 보냈다. 그는 어딘가 하트가 날아가는 표적을 쫓기라도 하는 듯 눈으로 흘겨보며, 하트가 그의 옆을 스쳐 지나간다 생각 될 때 즈음, 내 하트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터진다! 내 하트가!

 

너무하는군.”

 

네가 항상 하는 말인데 뭘 꼭 들으려 하나.”

 

 

내가 하는 거랑 네가 하는 거랑 같소? 벨져 멍청이. 바보. 멍게. 해삼, 말미잘! 나는 흐릿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그에게 아무 말이나 마구 던졌다. 그는 단 한 번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본적이 없으니까. 그냥 빈말이라도 좋으니 한번 던져줬으면 하는 그 단어는 그에게 금기어라도 되는지 그는 한 번도 말 해 준적이 없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울한 내 표정을 읽은 그가 장갑 낀 손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렸다. 같은 키지만, 그의 구두 굽 차이인걸까. 아주 조금 그를 향해 치켜들어진 턱 끝이 그의 입술이 먼저 닿았다. 놀란 눈을 깜빡이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내 입술 위를 덮었다. 조용히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나에게 사랑을 전했다.

 

사랑해, 벨져.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해 주는듯한 당신의 그 눈을 사랑하고. 나의 쓸모없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당신의 귀를 사랑해.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당신의 입술을 사랑해.

 

무엇보다 날 가장 행복하게 해주는 당신의 차가운 온기를 나는 사랑해.

 

 

 

내가 그를 가장 사랑할 때 즈음, 그의 온기가 나를 감쌀 때 즈음.

 

그는 내 귓가에 나만이 들릴 정도로 아주 조그맣게 속삭인다.

 

 

네가 타키온이라 좋다. 내가 레피드라 널 잡을 수 있는 게 나밖에 없을 것 같아서.’

 

 

 

 

4.

 

 

저건, 나무라는 것이오. 새가 쉴 수 있고, 우리에게 먹을 것도 주고.”

 

“.......”

 

나의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아이는 자라지 않았다. 애정을 받으면 자란다던데. 전혀 성장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부드러운 은빛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자, 아이가 내 품에 안긴다. 내가 싫은 것은 아닌 것인지 답싹 답싹 잘도 안기는 것이 귀여워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조용한 숲속 한 가운데에서 돗자리를 피고 피크닉 기분을 잔뜩 내기 위해 싸온 샌드위치를 먹고. 이처럼 평온한 일상이 어디 있을까.

 

이제 그만 슬슬 집으로-.”

 

말 마치기가 무섭게 한 쌍의 새 들이 우리 머리 위에서 파닥거리며 서로에게 닿지 못해 안달을 부리더니 근처 나뭇가지에 앉아서 한참을 서로의 털을 골라 주는 것에 나와 아이 둘 다 시선이 가 버렸다.

 

새도 사랑을 하는데, 나는...”

 

어쩐지 허망한 기분마저 드는 것에 한숨을 푹 쉬자 아이가 내가 내뱉은 단어에 유난히 집착을 보이는 듯 내 옷깃을 꽉 붙들어 잡았다. 어디서 흥미를 가진 걸까. 아이의 공허한 눈을 바라보며 ?’ 하고 물어보자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사랑?’

 

아이는 내 말에 그제야 눈을 반짝였다.

 

, 이런. 하하. 저 새는 지금 사랑을 나누고 있소. 좋아하는 사람에게 가장 따듯한걸 전해 주는거지.”

 

“......”

 

아이는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할까. 사랑이라. 항상 그 단어만을 말하는 나에게선 그것을 설명할 길이 없어 답답했다. 새삼스럽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항상 사랑해, 사랑해. 말로 전하는 나의 말이 너무 잦아서 그가 사랑에 대해 퇴색한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사랑이란 감각에 무뎌져 나에게 그런 단어를 말해 주지 않았나.

 

사랑은...”

 

나는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아이의 손을 붙잡았다. 서늘한 아이의 손에서 미약하게 내 온기가 스며들어 따듯함을 주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9시에 퇴근한다 하면, 나는 7시부터 그를 위해 식사를 차리고, 춥지 않게 벽난로에 불을 지피며. 그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틀고 그를 생각하며 기다리는 것이고.”

 

아이는 나의 눈을 마주쳤다. 어쩐지 그를 닮은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너무, 좋아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마음이 아프고. 답답하고.”

 

그런 게 사랑이오. 너무 행복해서 마음 아픈 것이 사랑이오.

 

또다시 눈앞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마치 그때처럼. 흐릿한 눈을 감았다 뜨자, 나를 쳐다보는 그가 보인다. 일그러진 얼굴. 그리고 나를 쳐다보는 눈빛.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의, 지금의 그가 내 뺨을 붙잡았다. 조그마한 입술이. 내 입술에 살짝 닿고 떨어지고. 그는 나에게 말했다.

 

미안.”

 

“........”

 

미안.”

 

 

아이의 어눌한 음성이 내 귀를 파고드는 순간 나는 더 울고 말았다. 나는 도대체 그의 허상뿐인 이 인형에게 어떤 것을 바란 것일까. 진짜 그도 아닌데. 나를 비추는 하나의 다른 인격인 그 인형을 보고 나는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사랑해.”

 

“........”

 

사랑해, 릭 톰슨.”

 

그저, 아주 조금 더 그에게 사랑받고 싶었다는, 욕심을. 내가 생각한 이상으로, 그를 사랑했던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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