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6. 5. 2. 00:26
작성자
you. and. me.






* 매우 피곤하군요..


* 루드빅이 등장합니다. 3각 구도로 갈것 같아 잠시 타이틀에 [벨져릭루드]도 추가하겠습니다.





1. 



아침부터 머리를 쪼아대는 듯한 자명종 소리에 이불 속에서 숨어있던 팔을 뻗어 침대 옆 협탁을 탁탁 두드렸다. 아무리 더듬거려도 손에 닿지 않는 자명종을 찾기 위해 협탁위에 올려두었던 메모지들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나서야 겨우 자명종 시계의 머리를 두드릴 수 있었다.


“몇 시지....”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고 푹신한 베개에서 얼굴 반쪽만을 내민 체 손에 덜렁거리며 잡힌 자명종을 쳐다보았다. 새벽 6시. 출근하기까진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아무렇게나 자명종을 바닥에 힘없이 떨어트리고는 몸을 돌렸다. 5분만 더 자도 될 것 같아. 이불을 다시 끌어안고 자려 하자 오히려 이불보다 더 부드럽고 무언가 딱딱하면서도 따듯한 것이 앞을 막는다. 그리고는 코끝까지 퍼져오는 어딘가 시원한 향기에 그 ‘무언’가에 코를 파묻었다. 느낌도 좋아.


“아침부터 기세도 좋군.”


“........”



세삼스럽게 눈이 번쩍 떠졌다. 맞아. 어제 일 끝나고 와인 한잔하자고 꼬드기는 바람에 사장이랑. 기억을 좀 더 더듬어보자 완전히 만취한 나를 사장이 껴안듯 부축하고는 으리으리한 호텔로 데려온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시선이 얽히자마자 제법 부드러운 느낌으로 내 볼을 감싸며 알 수 없는 언어를 중얼거리듯 나에게 속삭여준 그는 내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몸을 일으켰다. 실크 재질의 이불 같지도 않은 이불이 그의 맨몸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머리끝까지 이불을 올려 붉어진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의 등은 온통 무언가에 긁힌듯한 자국들로 가득했으니까. 


어느새 이제는 당연하게 그의 몸에는 내 자욱들이. 내 몸에는 그의 자욱들이 가득해져 버렸다.




2. 


쉬어도 좋다는 사장의 권유에도 허리를 부여잡고 사장에게 ‘나보다 1시간 늦게 오라.’고 못을 박아둔 뒤 옷을 가다듬고 내 사무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 그래도 이번에 인사과에서 새로운 신입사원 한 명이 외국으로 파견된 부장을 대신해 온다는 이야기 덕분에, 비워진 부장의 자리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이르게도 착했다. 필요한 서류는 이미 어제 다 준비를 해 두었고. 남은 건 기분 좋게 인수인계하는 것.



“실장님. 응접실에 신입사원분 대기 중이십니다.”


“알겠소. 차는? 그래도 지금은 명분상 손님이니.”


“어휴, 그럴 줄 알고 다 준비해서 가져다 드렸어요.”


남자 사원은 기분 좋게 웃으며 팔짱을 끼고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칭찬이라도 해주라는 것 같은 그 미소에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며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안내에서부터 차 접대까지 다 신경 써주느라 고생 많았다며, 점심시간 때 커피는 내가 산다는 말을 전한 뒤 가벼운 발걸음으로 응접실 문을 두어 번 두드렸다.


“실례하겠습니다.”


예의와 존중을 가득 담아 친절한 목소리로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다리를 꼬고 앉아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배우처럼 기다란 다리를 자랑하며 커피를 마시는 남자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황금빛 머리카락이 유리 창문 너머로 반사되는 햇빛에 비치어져 어쩐지 반투명한 느낌이 들기까지 하는 남자.


“아.”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프로필은 봤지만, 키가 무려 185. 내 앞에 선 그와 눈을 마주하려면 자연스럽게 고개를 들어야 했다. 어디까지 빛나는 걸까, 이 남자는. 난생 처음 보는 그의 황금빛 속눈썹에 시선을 주었다. 


벨져 홀든. 그가 달이라면.


“안녕하십니까. 루드비히 와일드라 합니다.”


이 남자는 틀림없이 태양이라 견줄 정도로.

그가 내미는 손에 시선을 주기에는 창문 너머의 빛이 그를 너무나 강하게 내리쬐고 있었다.




3.



“33살이라. 한 살 많군요.”


“...나도 동안 소리 듣고 살았지만, 그대도 꽤 동안이오. 아차. 말 놔도 되겠소? 지금 이 말투에 적응하려면 그대는 아직 힘들려나?”


 

간만에 만난 내 나이대의 사람에 저절로 기분이 들뜬다. 그를 자리까지 안내하느라 앞장을 서서 복도를 걷자 그가 피식, 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로 웃더니 ‘괜찮습니다. 나쁘진 않군요.’ 하고 대답을 해준다. 성격도 좋은 것 같아. 기분 좋게 앞장서서 걷고 있으려니 복도에 열어둔 유리 창문으로 바람이 들어와 목덜미를 간질거린다. 


“...그나저나, 이맘때쯤이면 다들 연애에 들뜰 시기인데. 비서실장님도?”


목덜미를 머리카락이 간질이는 것에 나도 모르게 목을 덮던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가 다시 차분히 내려놓았다. 연애? 그 단어를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 한 명에 나 자신을 죽일 뻔 했다. 벨져 홀든. 맙소사... 어떻게 그 사람이 바로 떠오를 수가 있지? 순식간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에 말까지 더듬거리며 ‘그..글세, 그런 건 너무 사적인 질문 아닌가 싶은데...’하고 말끝을 흐리자 그가 의도를 알 수 없는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귀까지 빨개지신 걸 보니 있으신가 보군요.”


“....그게 말이-.”


“있다.”



호오. 루드빅의 낮은 감탄사에 목소리가 들리는 뒤편으로 다시 몸을 돌리자 아침까지만 해도 하루를 같이 보냈던 남자가 검은색의 정장을 입고 나타나 내 등 뒤로 서서 내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손을 올렸다.


“신입 사원으로 온다는 사람치고는 특이한걸 물어보는 게 취미인가 보지?”


“실례. 제 취미가 탐색이라.”


“사냥개가 따로 없군.”


벨져와 루드빅 사이에 어쩐지 스파크가 튀는 것 같았다. 이 자리를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손에 잡힌 어깨를 바르자 거리며 빼려 애써도 그의 악력에 잡힌 어깨는 도망칠 수 있는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내가 어째서 더 곤란스러워 지는 것 같지. 싸우는 것은 두 사람인데. 식은땀이 저절로 난다. 


“좋은 지적입니다. 코끝까지 달콤하게 풍기는 우유 향이 꽤 사냥개에겐 치명적이라 말이죠. 더군다나...”


이번에는 갑자기 루드빅이 내 목덜미를 매만졌다. 섬뜩한 그 손길에 몸이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우유향. 억제제를 먹었는데도 풍기는 건가. 입안이 메말라 가는 것만 같아서 목울대를 울릴 정도로 침을 삼켰다. 


“이렇게, 사랑받은 흔적을 가득 단 어린양에는 더더욱.”


“.....이거, 재미있어지는군.”


“이하 동문입니다.”


나도 좀 재미있어 보자, 이 자식들아. 목 끝까지 차올라 가는 욕을 가다듬고 몸을 쑥 내려 주저앉아버렸다. 덕분에 그들의 손아귀에서 탈출할 수 있던 나는 서류를 루드빅의 품 안에 퍽퍽 소리가 날 정도로 안겨주고는 벨져 홀든의 헐거워 보이는 넥타이를 목 끝까지 조여주고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난 갈 테니 두 분 어디 재미 좀 보십시오.”


그렇게 두 사람을 내 챙겨 쳐 두고는 사장실 바로 옆에 있는 비서실을 향해 지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끈질긴 시선이 내 등을 쏘아 붙듯 노려보는 것이 느껴진다. 


“아, 사장님! 오늘 새로운 협력업체에서 확인 미팅 있는 거 아십니까?”


“지금 가지.”


깜빡 할뻔했다. 공은 공이고 사는 사지. 서로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죽일 듯이 서로 노려보다가 내 말 한마디에 두 사람의 시선이 나란히 나에게 오고, 결국 벨져는 그에게 주었던 시선을 거두고 나에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벨져 홀든.]


그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루드빅을 쳐다보았다. 어쩐지 이국적인 발음의 그 이름. 벨져또한 나에게로 오던 발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보았다. 루드빅은 어딘가 도발적인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여전히 나만 못 알아 들을 타국 어로 그에게 이야기를 건넸다.


[곧 사냥이 시작될 테니. 마음껏 달아나세요. 도망쳐 보란 말입니다.]


뭐라는거람. 미간을 찌푸리고는 그를 바라보자 그의 서슬 퍼런 파란 눈동자가 루드빅을 마주 보며 살기를 풍겼다.


[웃기는군. 어차피 모두 가질 테니. 네놈에게 선택은 없다.]


결코 좋은 말이 아닌 건 감으로 알고 있지만. 두 사람의 형형한 눈빛은 그렇게 한참을 지속했다.




4.



“내 책상은?”


“어머. 사장님이 말씀 안 하셨어요?”


아침부터 내 사무실에 내 책상이 없어 당황스러워하는 나보다 훨씬 더 곤란해 보이는 여직원의 당황스러운 표정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간을 찌푸리자 여직원이 서둘러 앞장서서 아직 출근하지 않은 사장실의 문을 열어주었다. 설마. 손에 들고 있던 출퇴근용 사첼백 서류가방 손잡이를 꾹 쥐고는 사장실 문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그의 사무실 중앙 창가 자리 바로 옆에 ‘ㄴ’자 모양으로 마주 보게끔 놓인 내 책상이 보인다.


“비서실장님 일 처리 하는 거 편하게 해주신다고 자리 옮기라고 하셨는데.”


“....알겠소.”



한숨을 쉬며 책상 앞으로 터덜터덜 걸어가 푹신한 사무용 의자에 몸을 앉혔다. 엊그제 신입사원 루드빅의 등장 이후로 그가 부쩍 이것저것 핑계를 대며 나를 불러대는 통에 머리가 다 아파질 지경이다. 편두통이 생길 것만 같아 이마를 짚고는 의자를 잔뜩 뒤로 재꼈다. 벨져, 그 만 이런 행동을 하면 차라리 다행이련만.



5.


따사로운 어제의 오후. 창문이 너머의 푸른 녹음이, 어느새 성큼 여름이 다가올 것이란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아 창문 너머를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 띤 얼굴로 앞만 보며 척척 걸어갔었다. 뒤에 또다시 병아리 한 마리가 붙었으니까. 사냥개? 사냥개라니. 틀림없는 병아리였다.


“내일 시간 되십니까?”


“아뇨. 내일은 고객사 쪽에서 회의가 있어서.”


환하게 웃어 보이며 다시 갈 길을 걸어가자 결제 서류철을 한 손에 들고 있던 그가 서류철을 들어 올려 자신의 어깨를 톡톡 치며 다시금 고개를 숙여 내 귓쪽에 가깝게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일모레는요?”


“바쁩니다. 숨 쉬느라.”


“저런. 글피는?”


“바쁩니다. 밥 먹느라.”


“그글피는?”


그의 물음에 앞서 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병아리 마냥 졸졸 따라오던 그를 향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한마디를 날렸다.


“급 똥으로 아마 바쁠 겁니다.”



6.


그것이 어제의 일이었지. 


오늘은 또 어떤 황당무계한 말들로 나를 고통스럽게 할지. 두 사람의 행보가 너무나 기대되어 눈물이 저절로 흐를 것 같았다.


두 사람 덕분에 상상만 하는것만으로도 순간 배가 저절로 지끈거리듯 아파지기 시작했다. 스트레스성인가. 미미하게 아파지는 배에 손으로 배를 문지르며 서류를 펼쳐 보았다. 입맛도 없고, 스트레스를 받으니 신 것이 당겨오기 시작했다. 한숨을 쉬며 서랍장에 몰래 숨겨두었던 히비스커스 차를 우려내 투명한 유리컵에 가득 담았다. 붉은빛을 띄는 차가 묘하게 마음을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였다는 것을.


나는 너무 늦게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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