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지금 목 디스크 예상 판정을 받았더니 모가지가 매우 아픕니다..흩..
* 봄 분위기 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몸이 안 따라주네요.. 당분간 글 업데이트도 늦어질 것 같습니다.
* 덕분에 글이 조금 짧네요 ㅠㅠ.. 몸 건강해져서 더 많이 연재하도록 하겠습니다!
1.
정말이지 바깥 날씨는 상상을 초월했다. 지금 시각 10시 30분. 정말 아침도 점심도 아닌 시간임에도 시내는 들뜬 연인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찼다. 우리 회사에서도 제법 바깥 풍경으로 볼만한 거리인 벚꽃 나무 거리에서는 쉴 새 없이 조잘거리는 연인들이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팔짱을 끼며 입을 맞추고 있었다. 이럴 때엔 애인 한 명 없는 외로움 몸뚱이가 아우성을 친다. 내 반쪽을 찾아달라고.
“..어떤게 취향이지?”
한참을 앞서 걷던 남자의 한 발짝 뒤에서 걷다가 멍하게 남자의 마지막 말을 듣고는 화다닥 정신을 차렸다. 주변 연인들을 돌아보는 눈치를 하고선 다시 나에게 시선을 주는 남자. ...뭐, 이상형이라도 물어봤었나? 이상형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상형에 대해서 고민해 보다가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저기 아기자기한 여인과 걸어가는 남자.
“..키는.. 저랑 비슷하거나 저보다 크면 좋고.”
벤치에 앉아서 쉴 새 없이 쪽쪽, 입을 맞추는 연인 중 단연컨대 잘생겼다 할만한 남자.
“외모도 좀 준수했으면 좋겠고...”
커다란 레스토랑의 입구에서 시계를 바라보며 잘 차려진 정장 매무새를 가다듬는 남자.
“능력도 좀 좋았으면 좋... 뭘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보십니까?”
한참을 주변 남자들을 스캔하다가 이쪽을 뚫어지라 쳐다보는 사람의 시선에 안경을 낀 체 미간을 찌푸리며 한 발짝 더 물러서자 그가 조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
“... 점심의 취향을 물어봤다만.”
“......”
“그래. 너랑 비슷한 크기의 외모도 준수한 능력 좋은 스테이크로 하지.”
그의 말에 나는 뻥진 얼굴을 서둘러 숨기고 안심으로! 안심 스테이크! 하고 외치며 그의 뒤를 쫓아갈 수 밖에 없었다.
2.
“뭐 하나만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정말 남자 둘이서 레스토랑에서 고급진 고기 한번 써는 게 이렇게 어색하게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레스토랑이란 곳을 결코 남자끼리 와본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과 내 행색의 차이가 너무나 뚜렷해 무언가 위축되는 분위기. 좀 분위기를 가볍게 바꿔볼까 싶어 접시 쪽으로 몸을 살짝 낮추며 작은 목소리로 그에게 물어보자 접시에 소리도 나지 않게 고기를 잘 썰던 그가 이쪽을 한번 쳐다보더니 마저 고기를 썬다.
“뭐지.”
어느센가 단정하게 묶어 하나로 늘어뜨린 그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화장실 다녀온다더니 금세 그렇게 묶고 온 건가. 아, 이게 아닌데. 서둘러 정신을 차려 그에게 아주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쫑알쫑알 열었다.
“...이름이 뭡니까.”
“...사장 이름도 모르는 회사 직원이 있다니.”
해고 감이다. 그의 말에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으며 그를 흉내 내듯 우아하게 고기를 썰어 보이며 하나를 쿡 찍어 입에 쏙 넣으며 말했다.
“딱히 술집에서 하룻밤 상대를 만나는 사람이셔서 그런지 저-언혀 무섭지 않습니다만.”
“이쪽도 딱히 말귀 못 알아 들어서 자기 이상형이나 말하는 남자에게 대답할 이유는 없다.”
한마디도 안 지는 그의 행동에 미간을 좁히며 넌지시 ‘그럼 몇 살이십니까.’ 하고 물어보니 그것 정도는 대답해 줄 가치가 있었던 듯, 26. 하고 나지막이 숫자를 읊조리듯 말한다. 26? 스물여섯? 나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사장직위까지 올라간 건가 싶어 갑자기 소심해진다. 이쪽은 33살의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회사원에 불과한데. 깨작거리며 스테이크 접시 한쪽을 돌아다니는 콩을 포크로 푹푹 찌르며 데굴거리며 굴리고 있으려니 어제의 일이 문득 떠오른다.
“혹시 그날.”
“그날?”
“안에다가 했습니까?”
그는 가만히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를 내려놓더니 냅킨으로 입을 가볍게 닦았다. 그리고는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듯 살짝 웃어 보이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이는 것이 더 답답함을 부추긴다. 결국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대고는 ‘어제. 안에다가 했느냐고 물어봤습니다.’ 하고 제자리에 앉자 그는 아주 당당하게 “뭘 안에다 했는지 제대로 설명해 주어야 대답을 할 것 아닌가.”하고 대답한다.
“웨이터!!”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 보여줘야 아는 건가. 서둘러 웨이터에게 샐러드 한 접시를 부탁하자 조그마한 그릇에 앙증맞은 채소들이 듬뿍 담겨온다. 포크로 잘 다듬어 궁둥이 모양을 만든 뒤 옆에 있던 조미료 중 마요네즈 소스 통 입구를 궁둥이 사이에 푹 찔러 넣고는 꾹 누른 뒤 그에게 건네 주었다.
“........”
“이제 좀 아셨습니까?”
“그래. 확실하게.”
그는 그렇게 내밀어 진 샐러드를 포크로 잘 버무려 마치 날 씹어 먹듯 천천히 아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샐러드 한 그릇을 말끔히 비우고 나에게 내밀었다.
“제대로 처리했지.”
그는 어딘가 변태적 기질이 있는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저 잘생긴 외모와는 달리.
3.
겨우 그에게 얻어먹은 스테이크 값 대신 커피를 산다고 하고서는 제법 비싼 카페에서 라떼 한잔과 아메리카노 한잔을 테이크아웃 해서 카페 밖을 빠져나왔다. 그린 톤으로 꾸며진 카페는 대학교 때부터 틈만 나면 방문해서 커피를 사 먹었던 곳이라 그런지 오랜만에 고향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여전히 미소 좋은 종업원이 갓 내린 커피의 맛은 고소하고 씁쓸한 게 딱 내 입맛. 커피 한잔을 호로록 마시며 난생처음 라떼란 것을 시켜본 것이 생각나 조심스럽게 단단하게 만들어진 종이컵의 플라스틱 리드를 열어 향을 맡아보았다. 고소한 우유향.
“......”
나한테도 이런 향이 나는 건가. 나도 모르게 겨드랑이를 들어 올리며 향을 맡아보았지만, 그저 그런 일반 사내 향이 난다. 몰래 들이켜본 라떼의 맛이란.
“순 계피맛...”
잘못 샀나. 시나몬 가루를 적당히 쳐달라 할 걸 그랬나. 온갖 고민이 몰려 오지만 일단 주고 마음에 안 들면 새로 사다 주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벚꽃 나무 사이사이에 하나씩 껴있는 나무벤치 하나에 자리를 잡혀있는 사장에게 다가가 다시 리드를 잘 닫아놓은 상태로 커피잔을 내밀며 “우윱니다.” 하고 옆에 털썩 앉았다.
“우유?”
“우유 좋아하신다고 노래 불렀잖아요.”
사장실에서도.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아메리카노 한잔을 마시자 따듯한 기운이 배를 타고 내려간다. 봄 냄새 나는 나무 아래에서 벤치에 앉아 커피 한잔이라. 책 한 권만 있으면 딱 맞는데. 아쉬움을 뒤로 하고 벤치에 몸을 기대자 잔잔히 불어오는 바람에 리드를 열어놓은 커피 속으로 꽃잎 한 장이 떨어진다.
“오.”
“... 애도 아니고.”
“훈장 터놓고 이야기한다면 내가 그쪽보다 한참은 연상이오.”
그에게 낮춤말을 하며 안경을 벗어 보이자 그가 그렇게 기분 나쁘지는 않았던 듯 나를 따라 벤치에 몸을 기댄다.
“그래서 이상형에 맞는 사람은 찾았나?”
“번번이 말하지만 찾으면 거기에 안 갔소.”
“저런.”
“그런 사람을 찾았으면 당장에 사귀자고 했겠지. 나랑 키가 비슷하거나 크고.”
크고? 그는 내 말을 따라 하듯 말하며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내 앞에 섰다. 왜 잘 보이던 시야를 가리는 거람. 결국은 벤치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뭐더라. 외모 준수하고.”
외모 준수. 그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뭐하자는 건지. 당장에라도 그를 밀어내고 싶은 찰나 어딘가 이상한 낌새가 느껴져 고개를 갸웃거렸다.
“능력도...좋...”
때마침 지나가는 연인들의 목소리에 저 집 스테이크는 값이 제법 나간다는 둥, 오히려 다른 집에 갔으면 같은 가격으로 상다리 부러져라 먹었을텐데, 하는 말을 나누며 지나간다.
모든 세상은 그의 편으로 돌고 있다.
자리에서 일어나 셔츠 한 장 차림과 검은 정장 바지 하나만 입어도 태가 나는 그의 몸 주변을 돌았다. 확실히... 키는.. 나랑 똑같고. 그의 주변을 한 바퀴 돌아 그의 앞에서 멈춰 서자 그제야 그의 푸른 눈이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날렵하게 뻗은 콧날과 잘 추켜 올라간 눈매. 사내치고는 제법 도톰하면서도 부드러워 보이는 입술. 게다가.. 사장. 거기까지 생각을 마친 나는 다시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당신이랑은 안 사귀어.”
“그새 이상형의 기준이라도 바뀌었나?”
“그대랑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연애를 해.”
게다가 그쪽은 상사고 나는 부하직원인데. 사내 연애라면 치를 떨어도 모자를 판이다. 지난번 같은 부서에서 일하던 갑 사원과 을 사원의 ‘천국과 지옥’을 한 번에 오가는 사내연애 이야깃거리를 들은 이후로 절대로 사내 연애는 하지 않겠다 마음먹은 찰나였다. 게다가 소문이라도 난다면 회사 전체가 떠들썩 해 질 것이 눈앞에 훤히 보이는데. 벌써 여러 직원에게 둘러싸여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질문 공세를 받을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찔해진다.
“시도도 안 해보나?”
“.......”
“그렇게 피하기만 해선 아무것도 되지 않아.”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오메가란 사실에 둘러싸여 연애를 피하고 있는 것일지도. 알파라고 속이며 같은 성향의 연인들을 사귄 적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코 끝이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는 않았으니까. 어느새 아메리카노는 차게 식었고, 꽃잎은 갈색 물이 들어 버렸다.
“봄은 짧다. 금방 여름이 오고 겨울이 올 텐데.”
그의 설득력 넘치는 말은 점점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여름 되기 전에, 한 번쯤은 나쁘지 않잖아? 또 어린 나이의 내가 속삭이듯 말을 건넨다.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컵 속에 담겨있던 벚꽃잎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드는 순간, 기적같이 입술 위로 꽃잎 하나가 툭 떨어졌다.
“네 스스로에게도, 기회를 줄 때가 되었지 않나?”
그렇지? 릭 톰슨. 커피잔을 벤치에 내려 두며 어느새 입을 포개는 그의 입술 온도는 잘 느껴지지 않았다.
입술끼리 마주한, 꽃잎의 향이 너무나 강해서. 나도 모르게 봄기운에 그에게 바로 ‘그래’라고 해버릴 뻔했지만.
괜찮지 않을까? 일생에 딱 한 번 뿐인 내 연애에도 봄날이 와도 괜찮지 않을까?
용기없는 입술 대신 눈을 감았다.
가슴 언저리 끝에서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듯, 조금씩 두근거림이 밀려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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