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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톰슨 능력에 조금 문제가 생겼다. 보급품은 없고, 우선으로 별도의 운송 수단이라고는.”
벨져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입을 열었다.
“자전거뿐이다. 따라서 자전거로 잠시 중간 베이스캠프에 이동하여 쉬기로 한다.”
질문 받는다. 벨져의 말에 사람들은 저마다 한숨을 푹 쉬며 허벅지가 터지겠군, 종아리에 드디어 닭이 부활할 때가 왔다며 알이 어쩌고 저쩌구를 입에 달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어수선한 분위기지만, 그도 그럴 것이 거의 8시간을 자전거로 이동하려면 꽤 체력 낭비일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근육에 무리가 갈지도 모르기 때문. 게다가 허허벌판에 고른 평지도 아니고 중간마다 자갈밭일지도 모르는 덕분에 아마 정말 힘든 여행길이 될 것이라며 사람들이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저.”
누군가 손을 들어 올려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벨져를 향해 질문을 던지는 것에 사람들이 떠드는 것도 멈추고 이내 숨죽여 손을 들어 올린 사람을 향해 시선을 주었다. 검은 코트에, 하얀 면 티. 이런 상황이 발생하게 된 원인지가 되어버린 릭 톰슨은 수많은 시선이 자신에게 쏟아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벨져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전거. 탈 줄 모르오.”
“.......”
“.......”
벨져 뿐만이 아니라 모든 기사단원이 침묵했다. 누군가가 릭을 뒤에 탑승시켜 한 사람의 무게를 짊어지고 가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에 그 누구도 벨져의 시선을 마주하지 않고 바닥만 내려다보거나 창문 밖을 쳐다보며 날씨가 좋다는 듯 희미하게 웃어버릴 뿐. 결국에 벨져는 일자로 다문 입을 열었다.
“릭 톰슨. 이번 일정에 너 또한 예외는 없다. 누군가의 뒤에 탑승하면 좋겠지만 꽤 장거리기 때문에 힘들겠지. 오후에 별도로 자전거 교육을 해주도록 하겠다. 그럼 더 질문 없으면 이만 정리하고, 내일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푹 쉬도록. 이상.”
벨져의 말을 끝으로 의자 끌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일어서며 문밖으로 어슬렁거리며 나갈 채비를 한다. 하나둘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릭 또한 일어서려 하자 벨져는 릭을 조용히 불러 새운다.
“왜?”
“진짜 탈 줄 모르나?”
33살이 될 때까지 뭐했나? 내 능력이 있는데 뭐하러 자전거를 타고 다니겠소? 질문과 질문이 충돌할 뿐 답은 나오지 않았다. 벨져는 이마를 감싸 쥐고는 기나긴 한숨을 푹 쉬었다. 어쩐지 도넛 때문일까. 릭의 운동실력은 형편없어 보였고, 그렇다고 해서 지구력과 인내력이 그렇게 큰 편도 아닌 것 같았다. 자고로 자전거라는 것은 넘어지고, 다치고, 깨져봐야 슬슬 실력이 늘어가는 것인데 하루 만에 과연 자전거를 타게 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찰나 릭이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벨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가까이 다가온 릭의 목에서는 벨져와 같은 스킨 향이 나는 것 같았다.
“잘 부탁해 벨져. 그대라면 잘 가르쳐 주겠지.”
오히려 그 스킨향이 오늘따라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벨져였다.
*
“정말 한 번도 타본 적이 없나?”
“누구 뒤에 타 본 적은 있는데.”
“그게 누군데.”
왜. 전 여자친구라고 하면 화낼 거지? 릭이 어딘가 골리는 듯한 목소리로 운을 띄우자 벨져의 눈이 가늘어 졌다. 이내 협박 반, 농담 반으로 대답 안 하면 걸어오게 하는 수가 있다는 말에 겨우 릭은 서둘러 ‘아버지 뒤에 몇 번 타본 게 전부요.’ 라고 대답하고는 자전거 핸들을 매만져 보았다. 정말 신기한 물체를 보는 것처럼 이것저것 눌러보고 만져도 보는 것에 우선 벨져는 안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자연스럽게 한쪽 다리로 자전거를 지탱하고는 페달에 다른 쪽 발을 올렸다.
“자전거의 핵심은 바닥에 디딘 발로 자전거를 앞으로 밀어줌과 동시에, 반대쪽 발로 페달을 밟는 것이 관건이다. 잘 보도록,”
고개를 끄덕거리는 릭을 향해 벨져는 시범을 보이듯 자연스럽게 한쪽 발로 바닥을 밀어내며 반대쪽 발로 페달을 밟고 나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바닥을 밀어낸 발이 반대쪽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가는 것에 릭이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자전거 타고 박수받아보는 상황이 생긴 벨져는 떨떠름하게 넓은 공터를 한 바퀴 돌고 와서 브레이크를 밟으며 릭의 앞에 다시 서자 아이처럼 양 볼을 붉히며 “나도 타보겠소! 나도!” 하고 들떠있는 릭을 보고서는 벨져는 피식 웃어버리며 자전거 핸들을 붙잡은 체 릭을 보며 타라는 듯 턱짓을 하자 서둘러 자리에 앉아버리는 릭.
“뭐하나.”
“응?”
시작부터 양발을 페달에 올려 놓은 체 출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릭의 행동에 벨져는 핸들을 놓아버리자 릭의 몸이 그대로 옆으로 누워버리며 자전거에서 쿠당탕 소리와 함께 넘어졌다. 정말 아픈 듯 팔꿈치를 매만지며 울상인 릭을 내려다보며 벨져는 입을 열었다.
“한번 말한 것은 알아먹도록. 양다리를 올리지 말고, 한 다리는 바닥을 딛고 지탱을 해라. 중심을 잡을 줄 알아야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말로 합시다. 말로.”
툴툴거리며 릭이 다시금 자전거 핸들을 잡고 일어서자 벨져는 조금 떨어져 팔짱을 낀 체 릭의 행동을 주시했다. 아까 말 대로 어느 정도 적당히 흉내를 내고 중심을 잡은 모습에 고개를 끄덕인 벨져는 대뜸 ‘그럼 출발.’ 이라고 말을 건넸고, 자전거 초짜 릭은 그 말을 같이 외치며 당차게 ‘출발!’ 이란 말과 함께 그대로 또 옆으로 쓰러졌다.
“.......”
“....개그 좋아하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몸개그까지 좋아할 줄은 몰랐는데.”
자전거 뒷바퀴가 혼자서 빙글빙글 돌아가고 또다시 아픈 팔을 매만지는 릭의 행동에 벨져의 한숨이 가면 갈수록 늘어가기 시작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포기하지 않는 성격 덕분일까. 서둘러 다시 일어나 핸들을 잡고 다시 자세를 취하는 릭의 행동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벨져는 이내 안장 뒤쪽에 물건을 받칠 수 있는 쇠 안장을 붙잡았다.
“자. 어느 정도까진 잡아 줄 테니, 너무 빨리 바닥을 디딘 발을 올리지 말고 2, 3초 정도 느릿하게 민다는 느낌으로 가라.”
“그 느낌을 좀 나도 알고 싶은데.”
그래도 뒤에 사람이 잡아주고 있다는 느낌 덕분인지, 릭의 목소리가 한층 편해졌다.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벨져, 잘 잡고 있지?”하고 물어보는 것에 벨져는 “한 번만 더 물어보면 놔버린다.” 란 대답을 하며 이내 중심이 잡힌 자전거를 천천히 밀기 시작했다.
“어어!! 잠깐!! 나 마음의 준비가!!!”
“핸들 붙잡아! 핸들!”
휘청 휘청, 좌우로 왔다 갔다 거리는 앞바퀴도 울고, 릭도 울고, 벨져도 울고 싶은 교육이 시작되었다. 중심을 제대로 잡으면 구태여 핸들을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균형을 잃지 않으려 좌우로 왔다 갔다 거리는 무의식의 습관이 그대로 나오기 시작한다. 이내 자전거가 고공 묘기를 부리는 듯 휘청거리고 릭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으악!! 넘어진다!!! 뒤에 잘 잡고 있소!? 놓으면 나 죽어!!!”
“뭘 죽어!!!”
덩달아 벨져의 언성이 높아지고, 고단한 여행길이기 때문에 최대한 실전에 가깝게 만들어 놓은 공터의 자갈밭 앞까지 어찌어찌 굴러가는 자전거는 이내 자갈밭 진입로에 들어서기 시작하며 덜덜덜 위아래로 비틀비틀, 좌우로 비틀거리며 겨우 벨져의 손아귀 힘으로 중심을 잡고 가기 시작했다.
“악!!! 벨져!!! 거기가 아파!!”
“풉.. 아니, 균형을 잡아야 덜 아프다.”
순간적으로 웃어버린 벨져는 이내 자신이 웃었다는 사실에 정색하며 다시 릭을 달래 보지만 거기만 아픈 게 아닌 듯 이내 ‘고... 고화... 고자 될 것 같다고!! 벨져는 사람 죽인다!!!’ 하고 온 동내 방 내에 다 들릴 정도로 소리치는 것에 벨져의 귀 끝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내 짜증이 난 것인지 부끄러운 것인지 손을 놔 버렸지만, 아직 이런 상황을 모르는 릭의 자전거는 아슬아슬하게도 잘만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으아아, 벨져 홀든 미워 죽겠다!!! 아프지 않게 해준다면서!!!!”
침대에서도 여기서도 약속 지킨 적이 한 번도 없지!!! 저놈의 입이 가만히 있지 않는 것에 벨져는 한마디 하려 했지만, 이미 이쪽도 충분히 초보가 처음 타보는 자전거 자갈밭 질주 묘기에 웃겨서 한쪽 팔로 다른 쪽 팔을 받친 채 웃기 바빴다. 물론 다른 사람이 혹여나 볼세라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지만.
곧이어 제2코스. 살짝 경사진 내리막길인데도 벌써 릭 톰슨에게는 절벽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1m 정도의 제법 널찍한 경사인데도 어어, 어어, 어어-. 점점 소프라노 톤으로 목소리가 올라가는 것에 벨져의 웃음이 짙어졌다.
“여차하면 브레이크를 잡아라!”
저 멀리 까지 들릴 수 있게 소리를 치지만 이미 공황상태인 릭 톰슨은 패닉 상태로, 브레이크!! 브레이크!!! 하고 외치며 정신없이 브레이크를 잡았다 놨다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자전거가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하며 균형을 잃어버리고 이내 경사진 언덕에서 넘어지려는 것을 보자마자 벨져는 달려가 릭을 받아 내고는 자전거에서 다치지 않게 안아 올렸다. 릭이 질끈 감은 눈으로 몸을 웅크리고 여전히 자전거에 탄 것인 줄 아는지 눈 뜰 기미가 없어 보이는 것에 벨져는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어?”
“브레이크를 잡으면 끝까지 잡아야 한다. 그렇게 잡았다 놨다 하는 순간 관성의 법칙 때문에 무게 중심이 틀어지면 넘어진다.”
묘하게 웃음기 담긴 목소리에 그제야 릭이 정신을 차리고 뒤에 놨느냐고 항의하는 것에 벨져는 잘만 탔으면 그만이라며 릭을 내려 주고는 언덕에 굴러떨어진 자전거를 집어 들었다.
“아... 거기가 너무 아파.”
“엄살은.”
“그대가 타봤소!?”
자갈있는곳에 한번 가봐! 자전거고 뭐고 천국과 지옥이 왔다갔다 할 테니까! 릭의 억울함이 담긴 목소리에 아까의 장면이 겹치는 것에 벨져는 큭, 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려 혼자 웃어버리는 것에 릭은 더 화가 나는 것인지 코트를 벗어 던졌다.
“다시!”
“호오, 무리하진 말도록.”
“혼자 탈 수 있소!”
이번엔 잡지 말아봐. 자신 있게 외치며 벨져의 손에 이끌린 자전거를 훔치듯 빼앗아 들고서는 다시금 천천히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다. 이젠 출발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은 것인지 조금 균형감이 생겼으나. 여전히 좌우로 춤을 추는 자전거는 춤추는 것을 그만둘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에 벨져는 또 소리 없이 웃어버렸다.
고통스러운 자갈밭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음성이 마구잡이로 튀어 나갔지만, 이젠 제법 내리막길에서도 천천히 잘 내려오고,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것에 벨져는 팔짱을 끼고 만족스럽게 쳐다보았다. 내일이면 제대로 출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
“.....풉.”
“웃지 마라.”
“단장님은 그래도 한사람 더 태워도 멀쩡하잖습니까.”
단원들이 웃어 보이며 벨져의 뒤에서 반쯤 졸고 있는 릭을 보며 입을 열었다. 실컷 자전거를 탄 덕분에 간만에 릭의 허벅지가 근육을 쓰게 되어 결국은 근육통이 와서 아침부터 앓고 있는 릭을 벨져는 뒷좌석에 태우고 가게 되었고. 또한 어제 모처럼의 운동에 체력이 방전되어버린 릭 톰슨은 고개를 꾸벅거리며 이따금 벨져의 등에 머리를 비비다가 다시 정신 차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릭. 그렇게 졸다가는 떨어진다.”
“...졸려 죽겠소.”
“...그럼 허리를 붙잡던지.”
허리. 아. 고맙소. 졸음이 넘치는 목소리로 벨져의 허리에 팔을 두르고 이내 완전히 벨져를 뒤에서 껴안은 자세로 자기 시작하는 릭의 행동에 단원들이 서둘러 페달을 촹촹거리며 밟아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어차피 벨져와 릭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은 알게 모르게 소문이 났으며, 저런 광경을 보았다가는 벨져로부터 어떤 뒤끝을 받게 될지 모르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생명을 부지하는 길이라며 뒤도 보지 않고 앞으로 서둘러 밟기 시작했다.
“.......”
등에서 느껴지는 따끈한 체온. 이따금 들려 오는 잠꼬대 소리에 릭이 떨어질까 봐 속도를 천천히 늦추며 달리는 벨져. 애초에 자전거와는 그렇게 어울리지 않음에도, 어딘가 다른 사람을 태우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것에 기사 단원들이 수군거리며 ‘단장님의 다른 모습을 봤다.’고 입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오늘 온종일 저 두 사람은 저렇게 있어야 할 예정이니, 서둘러 먼저 도착하는 편이 좋겠다며. 기사단원들과 벨져의 사이는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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