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12. 13. 19:53
작성자
you. and. me.

*미안.. 릭.. 






“부장님!! 생일 축하해요!”


“부장님~.”


그래, 이로써 모든 직원들... 그것도 여직원 남자직원 할 것 없이 거의 한 20여 개는 받은 것 같다. 향수부터, 일할 때 쓰라며 만년필을 주지 않나. 지갑부터 벨트, 넥타이까지. 있을 것은 다 있다. 브랜드 있는 상품들이라 난감하기 그지없다. 오늘이 생일 직 전날이라며 선물을 잔뜩 받고 있노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다. 


“하하... 하.”


웃으며 직원들에게 고맙다를 말하는 것도 힘들어 이젠 녹음기를 가지고 와서 고맙다만 녹음 한 뒤 직원이 오면 가볍게 재생 버튼만 누르고 입만 뻥끗 거리고 싶다. 지쳐가는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커다란 쇼핑백 하나를 꺼내서 퇴근 직전, 선물을 하나하나 담고 있다가 문득 생각나 버렸다.


‘릭. 가지고 싶은 것은?’


“...그러고 보니. 그가 생일 선물을 샀으려나.”


분명 거의 한 달 전부터 노래를 부르듯, 자꾸만 필요한 것이 없느냐, 가지고 싶은 것은 없느냐 물어보는 통에 왜 자꾸 물어 보냐 하니. 아주 정확하게 네 생일 선물. 하고 답을 해 준다. 별로 비밀도 없어 보이는 그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둘째고, 그가 사주는 생일 선물이라. 고민하다가 결국 그에게는 ‘당신밖에 줄 수 없는 것을 주면 좋겠소. 작은 것도 좋아. 당신이 주는 거라면.’ 이라고 답을 해 주고는 서둘러 일하러 나간 것이 기억난다.


“아니, 뭐. 딱히 기대하는 것은 아니고.”


듣는사람도 없는 말을 중얼거려 본다. 그의 성격상 엄청난 초호화 저택으로 갑자기 이사를 한다거나, 갑자기 비싼 캐시미어 코트 몇십 벌을 사 들고 와도 이상할 것은 없으니 이젠 기대를 넘어서 걱정이 된다. 작은 것이 좋다는 말을 기억은 했으려나. 


나이가 20살이 정확하게 된 12월 13일부터, 나는 더는 생일이란 것을 챙기지 않게 되었다. 간혹가다 친구놈들이라는 녀석들이 몇 번 생일선물을 주는 것이 전부였으니까. 케이크 같은 것은 없고 그저 형식적인 선물만 몇 번 오갔을 뿐. 


가장 핵심은 역시나 그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준다는 선물이 아마 핵심이겠지.



“주제가 그가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지 않을까.”


다른 사람 생일은 몇 번 챙겨 본 적도 없을 것, 아니 생일이란 것 자체를 아예 챙겨주지 않을 것 같은 그가 과연. 서둘러 선물이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퇴근을 했다. 과연 어떤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까?


설마, 자기가 선물이라고 하진 않겠지?



*



“그래서, 내가 선물이다.”


“...응.”


그럴줄 알았소. 싫은가? 아니, 좋아 벨져. 흐릿하게 눈을 떠 보이며 그를 바라보았지만, 정말로 그 이상의 선물은 없는 것 같다. 


“그럼, 내 선물은 내가 마음대로 해도 되겠지?”


“뭐. 하루 정도는 네 장단에 맞춰줄 의향은 있다만. 생각해 놓은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역시 네가 원하는 것으로 들어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의 말에 남몰래 뒤돌아서 한쪽 입꼬리만 올렸다. 보기 좋게 걸려들었구나, 벨져 홀든. 다시금 그에게 화사하게 웃어 보이며 그럼 우리 오래간만에 외식이나 할까? 하고 그에게 권유했다. 그가 확실히 속아 넘어오게끔 ‘대신 생일이니까 당신이 사줄 거지?’ 하고 말을 꺼내니 순순히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외투를 가지고 오겠다는 말을 하며 2층으로 올라갔다.


“...지난날의 수모.”


하루종일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부여잡고 일을 해야 했던 지난 몇 달간의 고통. 의자에 앉을 때도 마치 그것이 가시 방석에 앉는 것 마냥 조심, 또 조심하며 앉아야 후폭풍이 몰아치지 않는 그 인내. 오늘이야말로 그것들을 풀어낼 차례라 생각하며 조용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지.”


어느새 잘 차려입은 그의 모습에 잠시 헛기침을 하다가 으응, 먼저 나가시오. 하고 그와 함께 집을 나섰다. 


“어디로 갈지는 정했나?”


“응. 좋은 곳을 알고 있소.”


고개를 주억거리며 잠깐 집안에서 더워졌던 몸이 다시 차가운 바람과 마주하자마자 발갛게 달아오르는 볼을 감싸 쥐었다. 올 때는 추운 것도 모르고 왔는데. 그가 한숨을 쉬며 목에 두르고 있던 그의 목도리를 벗어 목에 둘러 준다.


“직장인이 자기 몸 정도는 챙길 줄 알아야 하는 게 기본이다.”


괜찮다 만류해 보지만 그는 다시 받을 생각이 없는지 단단하게도 목에 둘러주고는 앞을 보고 걷는다. 잘 펴진 척추라서 걷는 자세도 바르기 그지없다. 이내 눈을 내리깔고 붉은색의 목도리를 내려다보았다. 가만히 코를 파묻고 숨을 들이쉬니 목도리에 베인 그의 체향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좋다. 다른 의미로 볼이 붉어지기 시작한다.


“여기서 어디로?”


큰 사거리가 나오는 것에 그가 길을 물어보자 서둘러 왼쪽을 가리켰다. 커다란 건물의 패밀리 레스토랑을 가리키니 그가 눈을 찌푸린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이랑 트인 공간에서 식사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은 것 같다.


“벨져. 소원 들어준다고 했잖소.”


“.......그래.”


말은 그렇게 해도 그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지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는 그의 발걸음이 너무 무거워 보여 내가 열심히 등을 밀어주었다. 힘내시오, 벨져! 묘하게 자꾸 웃음이 입에 걸리는 것을 그에게 보이지 않기 위해. 


계단을 올라 입구 앞에 다다르니 가슴에 별명인 듯 ‘에이미’라고 명찰을 단 여직원이 웃어 보이며 자리를 안내해 준다. 


“몇 분이세요?”


“두 명이오.”


“네, 그럼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사근하게 이야기하는 여종업원에게 가만히 ‘아. 오늘 제가 생일인데.’ 라고 힘주어 말을 하자 여직원이 ‘어머! 생일이세요?’ 하고 답을 해 준다. 벨져가 알 수 없다는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 보는 것에 곧이어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며 여종업원이 ‘준비해 드릴까요?’ 라고 말하는 것에 고개를 끄덕여 보았다.


미안 벨져.


*


“고객님!”


잠깐 그와 한 접시를 돌리고 오자 기다렸다는 듯 여직원이 다가온다. 벨져가 무슨 일? 하고 물어보기도 전에 전 직원이 갑자기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한다. 한 손에는 탬버린과 활짝 웃는 미소. 그리고 올려진 손. 벨져가 이게 진짜 무슨 짓이냐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자 그것이 시작되었다.


“축하, 축하, 축하해요 당신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경쾌한 탬버린 소리와 단출한 미니 케이크에 꽂힌 초 하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엄청난 축하 노래. 벨져의 얼굴을 쳐다보자 미묘하게 귀 끝이 붉어져 있고 입을 한 손으로 가리고 있다. 게다가 이쪽을 바라보지 못하고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당황스러워하는 모습에 나도 직원들을 따라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더더욱 숙이는 고개. 게다가 다른 테이블에서도 ‘어머, 생일인가 봐.’ 라는 목소리와 함께 손뼉을 치며 노래를 불러준다. 


이제는 거의 머리카락만 보이는 그의 모습에 너무 웃겨서 나도 모르게 푸핫. 하고 웃어버렸다. 


아, 정말이지. 즐거운 하루다.



*



“푸하하!”


아이고, 웃겨. 아. 미안하오, 벨져. 그렇지만. 푸핫. 아니.. 풋. 자꾸만 그의 어깨를 붙잡고 진정해 보려 하지만 그의 붉어진 귀를 바라보니 정말이지 이제야 좀 연하답다는 느낌이 든다. 귀엽다. 이런 것 처음인가. 잔뜩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의 그의 옆에서 웃다가 이내 그의 앞으로 다가가 뒷걸음질을 치며 그와 얼굴을 마주했다.


“벨져. 화났소?”


“...릭 톰슨.”


나를 쳐다보는 그의 얼굴이 심상치 않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데 또 입을 가리며 조금 전의 당황스러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 스러워 하는 그의 표정이 정말이지.



“벨져, 소원 하나 더 있소.”


“...방금 것처럼 끔찍한 것만 아니면.”


“그래. 뽀뽀해 주시오.”


지금? 여기서? 그는 내심 당황한 눈치로 나를 쳐다본다. 왜. 아무도 없잖소. 달도 떴고, 다리 위고. 아래에선 물이 흐르고. 당신이랑 나뿐인데. 말할 때마다 올라오는 입김이 금방 공기 중에 사라진다. 해주기 싫으면 말고. 그렇게 말은 했으나 그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은 체 마주 보는 그 자세 그대로 눈을 감았다. 


차가울 것만 같은 그의 손이 따듯하게 볼을 감싸고, 얼어붙을 듯 차가운 입술 위로 따듯한 그의 입술이 덮어진다. 어차피 해줄 거면서. 닿아 있는 입술 그대로 입을 열며 말하니까 피식하고 웃어버리는 그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의 허리를 가만히 껴안고 등 뒤로 게이트를 열고는 그대로 뒤로 넘어가 버렸다. 이젠 한두 번이 아니니 익숙해진 그가 푹신한 침대에 등이 닿자마자 입술을 떨어트린다.


“이젠 레퍼토리를 바꿀 때가 되었지, 릭 톰슨.”


게이트로 하도 침대로 자주 이동하니 이젠 놀랍지도 않아. 뒤로 넘어간 덕에 침대에 완전히 대자로 누워있는 나에게 그가  양 팔을 내 머리 옆에 둔 채 몸을 지탱하며 미묘하게 웃어 보인다.


“그대랑 사는 동안에는 바꿀 생각 없소.”


아, 그런가. 평생 못 바꾸겠군, 그거. 그가 웃으며 다시금 입을 맞춰온다. 아까보다는 좀 더 길게. 아무래도 오늘은 정말 최고의 생일이라 생각하는 순간 문득 그가 생일 선물로 두 개를 준비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생각해 둔 건 두 개라 하지 않았소?”


“?”


“선물. 아니요? 하나는 내 소원 들어주는 거고.”


아아. 그는 또 그 사람 홀리는 미소 한번을 지어 보이고는 느닷없이 코트를 벗어 내렸다. 그리고 이내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내 몸도 일으켜 코트를 벗기고는 셔츠까지 벗기기 시작했다. 잠시만. 잠시만, 벨져 이게 무슨. 다급하게 시트로 몸을 칭칭 둘러 감으며 이미 다 벗겨져 그의 손에 들린 셔츠와 정장 마의를 쳐다보고 망연자실하고 있자니 그가 입을 연다. 


“생일 선물을 생각해 보았지. 네가 말한 나만이 줄 수 있는 것.”


“.......”


“그래서. 나는 ‘아이’를 선물할 작정인데.”


벨져, 당신 미쳤소? 심각하게 침대 시트로 돌돌 말린 누에고치 같은 모양새에서 팔만 빼서 그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는데. 그는 이내 손을 치워내고는 침대 시트 채로 이 무거운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어깨에 걸쳤다.


“벨져, 진짜 미쳤소!? 난 남자라고!”


“안다. 될 때까지 해보지. 네가 그렇게 아이, 아이. 노래를 불렀으니까.”


일단 씻으면서 먼저 한번 하지. 사람 살려!!! 릭 톰슨 살려!!! 아무도 못 듣는다. 버둥거리며 애써 팔을 뻗어 문을 꽉 쥐어 봤자 그가 어느새 시트 속으로 손을 넣어 버클을 풀어버리는 손길에 힘이 빠져 문을 잡았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벨져 내가 잘못했소. 응? 우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안녕하시오! 릭 톰슨이라 하오!”


“그런가? 그래. 만나서 반갑군, 릭 톰슨. 난 벨져 홀든 이다. 내가 안 그래도 지금 좀 급한데. 마침 잘 됐군. 이왕 이렇게 된 거 홀든을 이어라.”


“이게 아니잖소!!!”


마치 물가에 튀어나온 잉어처럼 몸을 퍼덕퍼덕 거리고 그의 등을 찰싹찰싹 내려쳐 보지만 단단한 근육은 아프지도 않은 듯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침실문을 지나쳐 다시 한번 욕실 문이 나오자 문을 꼭 잡고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듯 힘을 주니 또 시트 속으로 그의 손이 스멀스멀 들어오며 내 분신을 꾹 잡는다.


“벨져! 나 내일 출근 해야 하는데!”


“시작은 네가 했다. 선물이니 얌전히 받도록.”


오늘 내 생일 맞소? 울며 겨자 먹기로 말해도 그의 갑작스러운 침입으로 힘이 빠져버린 틈을 타 발로 대충 문을 닫아버리는 그에게 나는 결국 욕실로 납치를 당했다.


그래. 내 인생이 이렇지 뭘. 



* 벨져 홀든의 생일 (1월 12일) 에 이어집니다.


' 벨져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벨져릭] 당근캐러 갔다가 (수위)  (0) 2015.12.17
[벨져릭] 플로네타리움  (0) 2015.12.17
[벨져릭] 때로는  (0) 2015.12.11
[벨져릭] 게이트는 사랑을 타고  (0) 2015.12.07
[벨져릭] 짝사랑  (0) 2015.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