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15. 12. 7. 21:39
작성자
you. and. me.

 

 

 

*내일이 시험인데

*벨져릭 왜 결혼 안합니까

*의식의 흐름

 

 

“자, 여기. 이건 결제가 필요한 서류고, 이건 그냥 회의 때 제출할 거니까.”

“네, 부장님. 부장님, 요즘 기분 좋으신 일 있으신가 봐요?”

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회사 사원에게 물어보았다. 멀뚱멀뚱 눈을 껌뻑거리며 그녀에게 연신 나 말하는 것 맞나? 하고 물어보니 여사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어 보인다. 그녀 특허인 눈웃음과 함께.

“네. 예전에는 매일 이렇- 게. 무표정이셨잖아요.”

그녀가 눈의 양 끝을 쭉 늘리며 무표정한 얼굴을 만드는 것에 얼굴을 한번 쓸어보았다. 내가 그랬나. 그래도 제법 영업용 미소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녀의 말에 그저 말없이 얼굴을 자꾸 쓸어 보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글쎄. 잘모르겠는걸.”

그래도 좋아 보이시니 다행이네요. 연애 하시는 거 아니에요? 게슴츠레 눈을 뜨며 이쪽을 지긋이 바라보는 그녀의 눈길에 볼을 살짝 집게손가락으로 긁었다가 이내 웃으며 그만 놀리고 어서 나가서 마저 마무리하고 오시오-. 하고 말로 그녀를 돌려보냈다.

“변했다고?”

푹신한 가죽의 자에서 일어나 벽 한쪽에 걸린 거울을 쳐다보았다. 텅 빈 내 사무실 공간에서 왕자병 마냥 거울을 바라보니 그저 늘 보던 얼굴만 보인다. 그저 33세의 조금 동안이라고 입소문이 자자한 그 얼굴만. 샐쭉 웃어 보이니 거울 속의 남자도 웃긴 표정으로 따라 웃어 보인다.

흐음. 문을 살짝 열고 밖을 바라보니 다른 업무를 하느라 정신없는 직원들이 보인다. 서둘러 다시 문을 닫고 자리에 앉아 종이 한 장을 꺼내 볼펜으로 끄적거리며 글을 써 내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얼굴 하나 정도는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크기로 게이트를 열었다. 아, 예쁘게 쪽지 모양으로 접어야지. 마지막 센스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로 펜으로 이따금 접은 흔적을 다시 한번 죽 훑어내어 칼같이 접은 뒤 게이트 너머로 쪽지를 던졌다.

톡톡톡. 가볍게 책상을 두드리며 턱을 괴고 이미 다 끝나 버린 서류를 보고 있자니 뭔가가 툭 게이트 너머로 떨어진다. 정갈하게 딱 두 번 접힌 종이. 신 나게 종이를 펼쳐 보니 이제는 눈에 익숙한 그의 필체가 보인다.

[릭 톰슨. 또 업무 중에 이런... 일이나 해라.]

일이나 하라니. 일 다 끝났는데. 종이 하나를 또 꺼내서 그에게 글을 썼다. 또박또박 한 글자씩 적어 내리며 쪽지 하나에 정성스럽게 글을.

[그대가 너무 보고 싶어서.]

다급하게 게이트 너머로 종이를 던져 넣으니 얼마 안 가서 바로 똘똘 뭉친 종이 하나가 머리를 툭 치고 지나간다. 이게 뭐람.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꾸깃꾸깃해진 종이 뭉치를 펴 보니 그의 글씨가 보인다.

[퇴근한 다음에 매일 보는 얼굴이다. 일이나 똑바로 하도록.]

뭔가 점점 아이같이 들뜨는 기분으로 급하게 아예 메모지 하나를 옆에 두고 대충대충 글씨를 흘려 적으며 그에게 또다시 쪽지에 입을 한번 맞춘 뒤 게이트 너머로 그것을 던져 넣었다.

[그래도. 오늘 기분 좋은 일이 있느냐고 직원이 물어봤소. 별로 기분 좋은 일은 없었는데, 벨져, 당신이랑 만난 이후로는 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소.]

또다시 책상을 톡톡톡 두드려 본다. 그가 보통 쪽지를 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소 10초 안. 이번엔 어째 10초가 넘어도 답이 오지 않는다. 항상 이런 식으로 그와 이야길 나눈 쪽지를 잘 펴서 파일에 보관하고 있으려니 쪽지 하나가 툭 책상 위로 던져진다.

[그런가?]

그런가라니. 좀 더 뭔가 로맨스 있는 말을 원했건만. 그래도 ‘내가 잘난 덕분이지. 연인 하나는 잘 두었다 생각해라.’ 정도의 말은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웃어버리며 펜을 찾아 책상을 뒤적거리는데 어디에 뒀는지 펜이 보이질 않는다. 어라. 분명 책상 위에 둔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품속에서 그가 지난번 생일에 선물해준 만년필을 꺼내 글씨를 써내려 갔다.

[그렇지. 당신을 만난 뒤로부터 변하고 있소. 당신을 중심으로 지구가 도는 것 같은 기분이야.]

또 툭 하고 쪽지를 보낸 뒤 서류를 쳐다보았다. 검은 건 글씨고 하얀 건 종이라-. 도무지 게이트 하나를 두고 그가 옆에 있다 생각하니까 글씨가 뭔지, 내용이 뭔지 전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아무 의미 없이 서류 글씨에 밑줄을 죽 그어가며 한 번이라도 더 읽는 시늉을 해 보지만 여전히 글이 눈에 들어올 리는 없다.

 “...?”

답이 없는 게이트 너머. 그가 어디 나갔나? 쪽지가 다른 곳으로 떨어졌나? 팔만 쭉 뻗어 더듬더듬 책상을 더듬어 보자 종잇조각 하나가 잡힌다. 내가 보낸 건가? 종이를 들어 올리려는 순간 손을 부드럽게 잡아오는 따듯한 무엇인가가 느껴진다. 늘 잡는 익숙한 손. 굳은살과 자잘한 상처로 뒤덮였지만, 항상 뻣뻣한 가죽 장갑으로 가려져 있어 나밖에 모르는 그 손. 그리고 이내 손등으로 느껴지는 뜨거운 온기.

늘 입술 위로 닿는 그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얼굴이 급격하게 빨갛게 물들기 시작했다. 이 사람이 지금 게이트 조그맣게 해서 안 보인다고 지금 손등에 입을. 의자에 앉은 체 다른 손으로 입을 가리고 게이트 너머로 벗어난 팔을 바라보았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의 온기.

 벨져 홀든.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

가만히 게이트 크기를 좀 더 키워 보았다.

입을 가린 손으로 머리를 지탱한 체 책상에 삐뚜름하게 기대 열리는 게이트 너머를 쳐다보자 이내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는 그의 눈과 눈이 마주쳐 버렸다.

“.......”

“.......”

못 참겠다. 열린 게이트 너머로 몸을 내밀어 자유로운 한쪽 팔로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예전에는 거의 제집처럼 드나든 그의 기사단 집무실에 앉아있는 그. 책상 위에는 서류가 아닌 내가 보낸 쪽지가 펼쳐져 있다.

누가 그랬더랬는데. 사랑하면 닮는다나.

똑같이 서로의 말이 담긴 쪽지를 책상 위에 펼쳐 놓은 채 대답을 기다리고, 돌아온 대답에 웃어버리는 그와 나의 모습.

붙잡은 어깨에 힘을 주어 자연스럽게 손등에서 입을 땐 그의 고개가 이쪽을 향해 들리자마자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자연스럽게 포개지는 두 입술, 손등 보다 입술이 더 잘 아는 온기.

잔뜩 빨개진 얼굴로 눈을 덩그러니 뜬 체 그에게 입을 마주치고 있자니, 그 또한 감지 않은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아, 눈 마주쳤다. 그것이 또 좋아 마주친 입의 입꼬리를 올리자 내 입술을 따라 그의 입꼬리도 살짝 올라간다. 그가 웃는 것 같아 또 그게 좋아서 더 입꼬리를 올렸다.

똑똑.

‘부장님, 아까 말씀하신 서류 완성했는데. 들어가겠습니다.’

!

다급하게 서둘러 그의 몸에 닿았던 내 몸의 기관들을 다 떨어트리고 책상 위의 그의 쪽지를 다시 파일 철에 황급하게 끼워 넣었다. 어어, 문이 열린다. 맙소사. 게이트 아직 덜 닫쳤는데! 다급함에 게이트를 있는 힘껏 꾹꾹 손으로 눌러 본다. 닫히는 게이트 너머로 그가 웃는 것인지 뭐하는 건지 책상에 고개를 떨 군체 머리카락으로 얼굴이 가려 잘은 보이지 않지만 뭔가 부들부들 몸이 떨리고 있다.

지금 나는 일생일대의 위급 상황인데!!

문이 거의 반 이상이 열려도 닫히지 않는 게이트를 보고 이를 악물었다.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을 쭉 밀고 게이트를 등 진 체 떨리는 눈으로 열리는 문으로 들어오는 여직원을 바라보았다.

“부장..님?”

“아. 너무 앉아만 있더니 다리가 아파서 말이오.”

어색하게 웃어 보이고 그녀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뭔가 턱 하고 붙잡힌다. 설마. 고개를 끼릭 하고 돌려 보니 삐져나온 와이셔츠 뒤꽁무니가 게이트에 끼여버린 것. 지금쯤 그의 앞에서는 내 셔츠 뒤꽁무니가 공중을 둥둥 거리며 그의 앞을 떠다니고 있겠지. 그리고 그는 그걸 보고....

민망하다.

빨개지는 얼굴을 손으로 가려버렸다. 33세 릭 톰슨, 평범한 회사원. 오늘은 정말이지 너무나 얼굴 붉어지는 날이구나.

연신 여직원의 부장님? 부장님? 하고 부르는 소리에도 나는 결코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들지 못한 채 서류 책상에 두고 가 주시오.. 하고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이 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