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t는 - Final Fantasy XV OST 23 What Lies Within입니다.
* 에멧 히카 -6편입니다.
* 모험가가 7제해를 겪기 전에 있었던 일중 하나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 다음 편이 마지막입니다. 이거 끝나면 이제 바빠서 시간 날 때 아니면 뭐 쓰지도 못할 듯...
友 (벗 우)
1. 벗(비슷한 또래로서 서로 친하게 사귀는 사람) 2. 동아리(같은 뜻을 가지고 모여서 한패를 이룬 무리) 3. 뜻을 같이 하는 사람 4. 벗하다, 사귀다 5. 우애가 있다, 사랑하다 6. 가까이하다 7. 돕다 8. 순종하다
1.
약품에 절여진 몸을 겨우 느릿하게 씻고 나와, 황태자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고 싶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억지로 쫓기다시피 들어온 것이지만. 젖은 머리카락이 대충 물기를 뚝뚝 흘리게 두며 텅 빈 방에 걸음을 디디기 시작했다. 자신이 타고 있는 커다란 이 기계는 하늘을 높게 나는 대신 검은색으로 물든 듯 한 바다 위에서 조용히 배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환한 조명처럼 비치는 달 아래, 갑판마냥 트여있는 공간의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서자 차가운 바다 바람이 뺨을 쓰다듬고 지나갔다. 소금기 어린, 시원하면서도 눅눅하지만 기분 좋은 그 바람에 아젬은 모처럼의 미소를 뗬다. 가볍게 손짓을 하자 공중에 물방울이 조금 둥둥 떠다니며 자신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했고, 이내 자그마한 드래곤의 모양새를 만들어 냈다.
“호오. 마법이로군.”
어느새 다가온 건지 갑판 입구에 기대 서 있던 제노스의 모습에 놀라 아젬은 그대로 만들었던 형상을 터트리듯 사라지게 해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제노스는 느릿하게 와인이 담긴 와인잔을 아젬에게 내밀었다. 경계 어린 눈이 잔을 쳐다보는 것에 제노스는 밖에 보초를 서 있을 군인 한 명을 불러와 투구를 벗고 아젬의 몫이었던 와인을 마시게 했다. 군인은 시키는 대로 잠자코 와인을 들이켰고, 그대로 목을 움켜쥐더니 천천히 쓰러지기 시작했다.
“감이 좋은데. 그 노인네가 기를 쓰며 찾으려 하는 이유를 알겠군.”
“노인네라면, 하데-. 황제를 말하는 건가?”
“그래. 추격할 군대를 붙였던데.”
이내 쓰러진 군인을 치우라는 듯, 가볍게 손짓을 해 보이자 문 밖에 서 있던 다른 군인들이 서둘러 쓰러진 자신의 동료를 짐짝 끌 듯이 붙잡고 나가기 시작했다. 죽은 시체를 옮기는 듯, 아무렇게나 늘어진 팔다리를 붙잡고 끌고 가는 모습에 아젬이 눈을 찌푸리자 안심하라는 듯 제노스는 입을 열었다.
“안 죽었어. 가볍게 졸도할 뿐인 거지. 지금 이런 상황에선 방패로 삼을만한 것들은 하나하나가 귀한 상황이니까.”
기절하는데 제법 고통스럽다고 듣긴 했지만. 그렇게 말하며 잔을 기울이는 제노스를 잠시 쳐다보았던 아젬은 다시 바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지만, 도망쳐도 이 기계 안이니까. 게다가 자신은 목적지도 모르면서 불분명하게 움직여 소란을 일으키는 성격은 아니었다. 기다란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늘어져 흩날리는 것을 가만히 보던 제노스는 이내 옆에 다가와 아젬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려 했다.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곁눈질을 해가며 제노스를 힐끔 거리며 바라보던 아젬은 이내 당당히 고개를 올려 제노스를 바라보았다.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말 놓는 게 아주 자연스러운데.”
“딱히 당신에게 말을 이제 올릴 필요도 없으니까.”
“나 역시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해 줄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 관둬.”
괜히 왔다는 듯 아젬은 발길을 돌렸다. 아니, 정확하게는 돌리려 했다. 순식간에 뻗어 나온 검이 자신의 목 뒤에 겨누어져 있어 조금만이라도 더 앞으로 발을 디뎠으면 목에 검이 스스로 박히는 꼴이 되었을 것이다. 간발의 차로 멈춘 아젬은 이내 다시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한 손으로 느긋하게 와인을 홀짝이며, 다른 손으로는 검을 목에 들이대고 있는 제노스의 행태는 살인귀 같았다.
“비켜주겠어? 할 말이 없는 것 같은데.”
“싸울 줄 아나?”
금방이라도 검을 던져 줄 듯 구는 제노스의 행태에 아젬은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칼 끝을 손으로 조심스럽게 밀면서 제노스를 쳐다보고는 입을 천천히 열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지. 질문 하나에 대답 하나. 서로 답해주는 걸로.”
“호오. 하지 않는다면?”
“싸우지 않는 거지.”
일단 되는대로 내뱉긴 했으나, 이런 협박이 통할까 싶었다. 아젬은 초조한 기색을 숨기고 제노스를 숨죽이며 쳐다보았고, 이내 목에 들이밀어진 검이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심한 아젬은 제노스를 향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내가 먼저 질문하겠어. 우린 어디로 가는 거지?”
“어디? 이 땅에서 제국군을 제대로 피할 곳은 없어. 그나마 동맹을 맺고 있는-. 에오르제아. 신들의 사랑을 받는 땅. 그곳으로 가는 거지.”
에오르제아. 신들의 사랑을 받는 땅. 그래서인가. 제국을 조금 벗어났을 뿐인데도, 마력이 돌아오는 것이 느껴졌던 것은. 손을 쳐다보며 잠시 오므렸다 폈다를 반복하자 이번에는 제노스가 빈 잔을 느릿하게 바닥에 대충 내려놓고는 발로 툭 차며 입을 열었다.
“이번엔 내가 질문하지. 넌 황제의 무엇이지?”
“.......”
“지금 넬이 이끄는 군대가 아주 바짝 추격하고 있지. 멍청한 제1 군함선이 공중에서 찾는다고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서 다행이지만. 금방 알아차릴 거다.”
이렇게 뭐에 미친 듯이 구는 황제는 또 처음이라 말이야. 그래서 넌 뭐지? 황제의 무엇을 자극했지? 하고 다시 물어보는 제노스의 시선을 마주한 아젬은 이내 시선을 떨구고는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어둠을 먹어버린 바다 위에 달과 별이 반짝이고, 물결이 치며 은하수를 만들어냈다.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한참을 머릿속의 관계를 정리했다. 우린 때로 한 잠자리에서 서로를 껴안고 자기도 했으며, 눈이 마주치면 가벼운 입맞춤도 개의치 않았다. 입맞춤은 조심스러웠고, 맞잡은 손에는 서로 긴장을 해 틈만 나면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일수였다. 그러나 회의에 들어가면 우리는 서로에게 아낌없는 조언과, 직언을 했다. 그때의 우리는 결코 연인과의 관계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뒤에는 휘틀로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쳐다보곤 했었다.
“벗.”
“벗?”
“그래, 벗.”
친구라는 건가? 제노스의 다른 물음에, 아젬은 웃으며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질문은 내 차례잖아? 벗이 뭐라고 생각하는데?”
“친구.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할 수 있는 것. 그런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지만-.”
말을 더 덧붙이려는 순간 갑자기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옆에서 커다란 물줄기가 튀어 올라왔다. 첫 시작이 이뤄지자 마자 본격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하는 포격에 저절로 갑판이 물결을 따라 출렁거려 황급히 갑판의 난간을 붙잡았다. 그 순간 밖에 서 있었던 보초병들이 달려와 일제히 황태자인 제노스에게 달려왔다. 연이은 출렁거림에 군사마저 휘청거리며 다급한 소식을 내뱉었다.
“황태자 전하!! 공중에서 포격이 시작되었습니다! 어서 들어가셔야!”
“그래서? 네가 생각하는 벗은?”
“지금 한가하게 그런 이야기를 다시 나눌 때야?!”
난간을 부여잡고 외치자 의견에 동의라도 하듯 포탄 하나가 더 근방에서 수면을 뚫고 지나가 물보라를 만들어내었다. 물이 거세게 튀어 갑판 위까지 물벼락을 맞아, 아젬이고 제노스고 다 젖어버렸지만 제노스는 물음에 끝을 두지 않았다. 그는 아젬의 대답을 종용했다. 마치 그것은 먹잇감의 최후통첩만을 기다리는 맹수의 눈과도 같아 보여, 아젬은 하늘에서 서서히 붉은빛을 사정없이 띄우며 내려오기 시작하는 거대한 함선을 보고는 다시 시선을 제노스에게 주었다. 이 몸은 아젬의 온연한 몸이 아니다. 한 모험가의 몸을 투영한, 자신은 그저 그 혼일뿐.
“대답해라.”
“우선, 들어가서 이야기해. 저것부터 해결하고.”
“....... 좋아.”
그제야 한걸음 뒤로 물러난 제노스는 맞서 싸우기보다 더 깊게 잠수하는 쪽을 선택했다. 휘청거리는 부하직원에게 잠수를 명령하는 제노스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젬은 갑판에서 천천히 일렁거리는 바다를 쳐다보았다. 푸르게 변하는 눈동자와 함께 이내 잔잔했던 바다에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동자에도 온연한 푸른빛이 이내 더더욱 빛을 더해가며 맑은 수면을 나타내듯 일렁거리자, 소용돌이 안에서 거대한 드래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제노스는 그 장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인간이 가져다줄 수 없는 위압감. 야만신. 그것을 저 모험가가 소환해 낸 것이다.
“리바이어타.”
나지막이 아젬은 속삭였다. 과거에 분화구의 분출을 막기 위해 이데아를 통해 이프리타를 소환한 적이 있으니, 이 정도의 에테르로 비슷한 것은 구현할 수 있었다. 비록 실제로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환상체 였지만. 이 정도라면 시간 벌기에는 용이할 것 같았다. 푸른빛을 띤 드래곤은 이내 더더욱 몸채를 들어내어 기다란 목을 한껏 치켜올리며 공중의 함선을 향해 포효했다.
“제노스님!! 곧 물이 들어찹니다!!”
“재미있지 않은가?”
인간이 신이라니. 마치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떤 신이라도 소환할 수 있어 보이는 모험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제노스는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어 검을 틀어쥐었다. 당장이라도 저 모험가와 힘을 견주어 보고 싶었다. 싸움에 자신이 언제부터 구실을 만들었던가? 지금이라도 달려들어 검을 겨누거나 주먹으로 부딪히며 싸워봐야 그 강함이 자신에게 현실처럼 다가올 것 같았다. 이 지루한 인생에 대해 종지부를 찍어줄 사람. 제노스는 그것이 자신이 바라보는 아젬이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하며 입꼬리를 한껏 띄워 올리며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그 정도면 충분해.”
어느새 다가온 제노스가 아젬의 어깨를 잡는 순간 아젬은 그제야 자신의 발 밑을 바라보았다. 발목까지 들어찬 물이 출렁거리며 비공정이 잠수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젬은 서둘러 비공정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제노스의 팔을 붙잡고 제노스를 쳐다보았다.
“푸른 눈.”
“.......”
“궁금하군. 파 내어도 그 눈이 그대로 그 색일지, 네 색으로 돌아올지.”
그 말을 듣자마자 눈동자의 푸른빛이 가라앉으며 원래의 색을 띠고, 흩어져가는 정신에 리바이어타의 환영체 마저 흐려지기 시작한 것을 보고는 아젬은 이를 악물고 제노스의 팔을 끌어당겨 선실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며 외쳤다.
“그렇게 궁금하면, 나중에 알아봐. 얼마든지 싸워줄 테니까. 지금은 안 돼.”
“그래. 사양치 않고.”
제노스는 드디어 만족스러운 답을 받기라도 한 듯 오히려 역으로 아젬보다 더 성큼 거리며 안으로 들어가 물이 들어차 잘 밀리지도 않는 선실의 문을 가볍게 한 손으로 밀어 닫았다. 이미 흥건하게 물 바다가 되어버린 선실의 안에 들어오자마자 비공정은 더 깊게 잠수를 하며 바닷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젬은 초조하게 어두워지는 물속을 바라보았다. 하데스. 아아, 내 벗. 우린 어디부터 잘못되어버린 것일까.
2.
잔뜩 젖어버린 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군사들에 의해 말끔하게 치워졌다. 부드러운 수건을 받아 들고 젖은 옷과 머리카락을 대충 닦아 내니 제노스는 받은 수건을 대충 목에 걸치고는 의자에 기대었다.
“그럼, 이제 너도 내 벗인가?”
“이야기가 왜 그렇게 되는 건데.”
“어쨌든 우리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니까. 나는 너를, 너는 나를. 우리는 결국 싸우기로 약속했으니 말이지.”
“평소에도 친구 없단 이야기 잘 듣지?”
아젬은 옷을 조금 거두어 올려 물기를 쭉 짜내었다. 모험가 다운 잔 근육이 언 듯 배 위로 도드라지게 보이는 것에 제노스는 가늘게 실눈을 뜨다가 이내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오고는 입꼬리만 올렸다. 친구라는 게 있는 걸 자신에게 물어보는 것이 더 신기했다. 자신의 위치도, 자신의 지위도 아는 사람은 단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입에 올린 적도, 올리려는 생각조차도 해 보지 않았는데. 물에 젖어버린 긴 머리카락도 한번 짜내고는 폭신한 수건에 얼굴을 닦아 내다가 제노스가 이쪽을 주시하는 것에 아젬은 눈을 깜빡였다. 저 황태자는 어떻게 웃는 것 다음으로 아무 표정이 없는 것이 더 무서울 수가 있는가. 정말이지 거리를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 가벼운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제노스님, 보고 드립니다. 원래 목적지 었던 동부 라노시아의 카스트룸 옥시덴스가 넬 군단장의 군대에 의해 포섭되었다는 정보입니다. 예정했던 방향으로는 갈 수 없을 듯합니다.”
호오-. 그것이 제노스의 품평의 전부였다. 마치 남의 일이라도 듣는 듯 구는 제노스의 말에 이마를 짚어 버리고는 기억을 더듬었다. 자신의 몸의 주인의 기억을 되짚어보자, 가파른 절벽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진 것만 같은 요새가 떠오르는 것에 미간을 찌푸렸다.
“서부 다날란.”
“예? 서부 다날란이라면.......”
아차 싶었던 군인이 고민하는 듯 손가락으로 턱을 가볍게 받치더니 그제야 실마리를 잡은 듯 말했다.
“서부 다날란에 카스트룸 마리눔이라면 아직 넬 군단장의 입김이 닿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지만....,..”
“뇌가 안 돌아가면 말해. 피가 돌게 구멍 정돈 내줄 수 있으니까.”
제노스는 여유롭게 대답하며 다리를 반대쪽으로 꼬고는 팔걸이에 팔을 올려 턱을 괴었다. 그 모습에 놀란 군사가 허둥지둥 대답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선체가 노출되어 많이 파손이 되어 수리를 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당장은 괜찮지만, 서부 라노시아의 절벽까지 오를 정도로 비공정이 멀쩡하진 않고, 연료도 부족합니다.”
“.......”
이번에도 다시 고민에 잠겨버린 아젬의 모습을 보던 제노스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이고는 이 멍청한 자신의 수하를 살려놔야 할 지에 대해 고민했다. 애초에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숙제는 이 노예를 멀리 두고 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구태여 자신들이 나서서 데려다 놓을 필요는 없을터. 제노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고민에 빠진 아젬의 등 뒤로 다가가 고개를 숙여, 물에 잔뜩 젖어 도드라져 보이는 어깨를 붙잡고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아!”
“아쉽게 되었어. 약속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것 같군. 비공정 내에 비상용으로 쓰는 소형 비공정은?”
“아. 6 대중 2대가 정상 작동 가능합니다! 연료도 충분합니다.”
어쩐 일로 친절하게 대하는 자신의 상사에 환한 목소리로 대답한 군사는 ‘준비할까요?’ 하고 제노스를 향해 물어보았다. 제노스에게 잡힌 어깨가 으스러질 것만 같아 미간을 찌푸렸던 아젬은 이내 제노스를 향해 돌아보며 한소리를 해 주려다가 고개를 바짝 숙여 보인 그의 얼굴을 마주했다. 심연과도 같아 보이는 푸른 눈동자가 자신을 똑바로 주시하는 것에 묘한 기시감이 들어 얼굴을 조금 멀리 떨어트리자 눈이 초승달 모양으로 휜다.
“잊지 마. 너와 나는 약속을 했어. 다시 만날 날을 기대 하지. ‘벗’이여.”
그리고는 따라 가보라는 듯, 군사에게 아젬의 어깨를 밀어 보이고는 입을 열었다. 저 녀석을 별도로 소형 비공정에 태워서 보내라. 그리고 군사들은 전투 준비를 해라. 살고 싶으면 죽여서 비공정을 탈취한다. 흥미 없다는 목소리가 이어지는 것에 군사는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는 아젬을 향해 손으로 길을 정중히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가시지요.”
“.......”
정말 이대로 두고 가도 되는 걸까? 그래도 도와준 사람들인데. 망설이는 아젬이 연신 제노스를 돌아보자 제노스가 다시 한번 눈을 휘었다.
“왜? 싫으면 여기서 싸워. 당장이라도-.”
“됐어. 잠깐이라도 생각한 내가 멍청이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어 보인 아젬은 이내 덤덤히 말했다. 벗도, 살아야 되는 거야. 살고 나서 봐. 그 묘한 웃음기 담긴 목소리에 제노스는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무표정의 얼굴로 돌아와 대답했다. 당연한 소리를.
3.
절벽에 도착하면, 군사들이 사다리를 내려 줄 것입니다. 그 이후로 하늬바람 곶 동굴 입구까지는 바래다 드릴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저희도 에오르제아와의 분쟁 지역이라 더 갈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군사는 자신을 작은 비공정에 몸을 욱여넣게 했고, 밖에서 무언가를 조종하며 삑, 삑-. 소리를 내었다.
“고맙습니다.”
열려있던 문을 향해 인사를 해 보였지만, 군사가 쓴 투구 때문에 그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묘하게 웃고 있을 거란 생각에 자신이 먼저 웃어버렸고 이내 문이 닫혀버렸다. 순식간에 무언가 뒤로 당기듯 쏠리는 감각이 오자마자,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비공정 내부가 잠잠해졌다.
벗이라. 어쩌면 나는 숨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피하고 싶었던 걸까. 아주 솔직히 우리는 벗이라 부르기엔 연인이 더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었을까. 우리가 나란히 서 있을 때에, 휘틀로는 장난스럽게 늘 이야기했다. 연인끼리 다정하네. 귓가에서 들리는 듯 생생한 그 목소리가 다시 떠올라 웃어버렸다. 심해의 깊은 물속이 기계의 앞부분에 처리된 유리 벽을 통해 속속히 보였다. 보여도 캄캄한 어둠뿐이었지만. 유리벽에 손을 대어 그 흘려 가는듯한 물살을 만지려 하는 순간 자신의 등 뒤로 손이 겹쳐졌다. 놀라서 손을 때려했으나, 자세히 보니 손이 반투명하게 이루어진 것을 보고 알아차렸다. 이것은 자신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지금은 변한, 하데스의 옛 기억.
‘집중해. 이프리타에게 잡아먹히기 싫으면.’
화염이 불타 오르는 화산 위에 떠 있는 자신의 뒤로 다가온 하데스는 자신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손을 겹쳐 강력한 마법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하데스를 닮은 보랏빛의 마법진과, 자신의 색인 금빛의 빛이 뒤섞였다. 아, 가끔 휘틀로가 말했다. 아젬은 정말 태양을 닮아 눈이 부신 빛을 낸다면, 하데스는 우주를 닮아서 은하수가 뒤섞인 공간을 그려내는 것 같아. 그렇지 않아?
“그런 것 같아.”
웃으며 그때엔 휘틀로에게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넌지시 해 본다. 우리는 그때 아직 사랑이란 개념에 대해 잘 몰랐다. 부끄럽다는 감정이 더 앞섰던 것 같아 우리는 서로에게 솔직한 대답을 하지 않았으나, 휘틀로는 달랐다. 그는 우리에게 솔직한 감정을 전달하고 이끌어 냈었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더라. 하데스의 온기만이 머릿속을 헤집어서 어렴풋한 기억들이 모여들었던 것도 잠시. 다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자신의 손 위로 겹쳐진 하데스의 선명한 핏줄이 도드라진 손도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주먹을 살짝 말아 쥐어 보며 그 아쉬움을 달래려는 찰나, 쿵 하고 무언가 강렬하게 부딪히는 소리와 동시에 기체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내 유리창이 파지직 거리며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물줄기 몇 개가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놀라 옆면 벽에 바짝 붙었다. 아니나 다를까 폭탄이라도 터지는 소리와 함께 유리파편과 물이 뒤섞여 내부로 쏟아져 오는 것에 급하게 숨을 들이켰다. 원래의 몸이라면 물속에서도 자연스럽게 숨을 쉴 수 있겠지만, 이 몸은 아닐 수도 있으니. 내부가 물로 가득 차, 물건들이 둥둥 떠다니고 비공정이 가라앉는 것이 느껴져 황급하게 뚫려버린 유리창 너머로 헤엄을 쳐 나왔다. 어딘지 모를 수면에서 무작정 위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위로, 더 위로. 곧이어 수면 위로 환한 햇빛 같은 것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이자 더 발을 힘차게 움직이며 손을 뻗었다. 그리고 나의 급함을 아는지, 마치 하데스와 닮아 보이는 손 하나가 수면에 물보라를 일으키며 뻗어지는 것에 아젬은 눈을 크게 뜨며 그 손을 붙잡았다.
4.
“운명의 신이 인도한 물길에 가호가 있기를-.”
“그냥 무사해서 다행이라고 하면 되잖아.”
“산크레드. 언어에도 힘이 있는 법입니다.”
자신을 끌어당긴 남자가 이야기를 하자마자 불퉁한 목소리가 받아치는 것에 남자는 다시 조용히 입을 열고 타박을 잠재웠다. 부둣가인지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에 갓 건져 올린 생선처럼 콜록 거리며 숨을 거칠게 쉬려 하니 이내 몸 안으로 따스한 기운과 함께 숨이 덜 차오르는 것이 느껴진다. 멍한 눈을 들어 올려보니 눈을 이상한 것으로 가려버린 후드를 쓴 남자가 손에서 빛을 내며 자신을 치료하고 있음을 느끼고는 주위를 그제야 둘러보았다.
“여기는-. 하늬바람 곶이 아닌가요?”
“이런. 여기는 저녁별 만입니다.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서 다들 나와 봤는데, 물속에서 에테르가 느껴졌지요.”
에테르를 느낀다니. 그럼 여기는 제국군의 기지가 아니라는 소리다. 아무래도 기계가 잘못되었던, 좌표가 잘못되었던. 우연치 않은 결과물로 이곳에 당도한 것은 행운이라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하얀 머리카락을 보며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 가운데에 노란 머리카락에 한쪽을 땋은 여자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허리를 숙여 손을 내밀었다.
“어디서 오셨죠? 어쩌다 바다에 빠지셔서.......”
“아.”
제국군의 기지에서 왔다 하면 아무래도 일이 커지지 않을까. 눈을 데록 굴린 아젬은 이내 평소에 잘 써먹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원래는 배의 선원이었는데....... 먼바다에서 낚시를 하다 태풍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저런. 우선 들어와서 쉬도록 해요. 타타루, 담요와 입을 옷을 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당!”
손을 거두지 않는 여자의 태도에 아젬은 어색하게 젖은 손을 내밀었다. 치유술이 효과가 좋은지 숨이 찼던 폐가 차분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당겨지는 손을 따라 몸을 일으키자 이내 여인은 사람 좋은 미소를 뗘 보이며 말했다.
“어서 와요. 여기는 에오르제아. 신들의 사랑을 받는 땅이죠. 전 민필리아라고 해요. 좀 더 따듯한 곳에서 이야기해 봐요, 우리.”
그녀는 부드럽게 손을 이끌며 추위에 떨까 걱정하는 얼굴로 타타루라는 작은 여인이 건네준 담요를 몸에 두르게 해 주었다. 그녀가 낡은 문을 열고, 계단을 열어 내려가는 동안 많은 것을 물어보았다. 출신지와 이름, 나이 등을. 아젬은 그저 이 몸의 주인의 기억을 빌려 말했다. 적어도 일이 생겼을 때, 자신과 이 육체의 주인이 다시 분리되어도 혼란스럽지 않도록. 자신의 가벼운 이야기를 믿어준 여인은 이내 장작이 타들어가는 넓은 방에 의자에 앉게 해 주고는 따듯한 음료를 건네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대화 화두에는 전쟁도 껴 있었다.
“- 해서, 제국군은 에오르제아에 땅을 노리고 있죠. 에테르도 풍족할뿐더러, 식민지로 삼게 되면 적어도 마법을 못 쓰는 일은 해결될 테니까요.”
“그렇군요.”
“게다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예전보다 더 빠르게 제국군이 접근하고 있어요. 다들 조심해야 할 때죠. 제국군을 막으려고 에오르제아 각 국의 도시 국가가 동맹군을 맺어 막아 보려 하는 중이지만.......”
쉽진 않겠죠. 번개 관제탑에 대한 문제도 있고요. 또, 여전히 에오르제아에선 야만신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서....... 진퇴양난이 따로 없는 시점이죠. 덤덤하게 말하지만 사태가 심각한 듯 미간 사이를 좁히며 말하는 민필리아의 행동에 아젬은 눈을 내리떴다. 평소보다 더 빠르게 제국군이 움직이는 것은 틀림없는 자신의 탓 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전쟁을 막을 수 만 있다면. 우리가 사랑했던 그 땅, 아모로트처럼 평화로울 수 있다면. 하데스도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을까. 아젬은 이내 눈에 힘을 주었다. 막아야 한다. 하데스를 위해서라도.
“제가 도와드릴 일은 없을까요?”
“언제나 도움은 환영이죠! 정말 고마워요. 마침 에오르제아 동맹군이 모험가들을 모집한다고 들었어요. 그쪽으로 추천서를 넣어드릴게요.”
작은 도움이라도, 절실할 때 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민필리아는 자신에게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 무엇보다도 안심이었던 것은 그녀의 강인한 손이 믿음을 실어 주었다는 것. 그것뿐이었다.
5.
“죄송합니다. 놓쳤습니다.”
“이 멍청한-!!!!!”
무어라 고함을 치려는 황제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넬은 속으로 비웃었다. 중요한 것은 그 노예 따위가 아니다. 오직, 세상의 정화. 그것이 바로 그분이 바라는 일. 달라가브와 완전히 동화가 되어버린 넬은 투구 안에서 눈을 희번뜩이며 이를 갈았다. 이런 하찮은 일에 신경을 쓰다가는 좀처럼 진척이 없을 것이다. 황제가 이내 분을 삭이지 못하고 황좌의 팔걸이를 손으로 내려치고는 숨을 거칠게 쉬는 것을 듣다, 이내 적당히 흥분이 삭힘을 느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폐하, 대신 정보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노예가 불시착한 예비 비공정의 위치가 저녁별 만 인 것과, 인근의 제국군 기지인 카스트룸 마리눔의 군사들을 추궁한 결과. 노예는 에오르제아 동맹군 쪽으로 섞였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저녁별 만은, 배신자 시드와 접촉이 있는 ‘새벽’의 본거지니 까요. 그렇게 말한 넬은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렸다. 관제탑을 다룰만한 훌륭한 마도 기술자가 필요했다. 갈론드의 자식이라 해서 쓸모가 있을까 싶어, 에오르제아로 도망친 갈론드를 겨우 몰래 만나 충성을 다 할 수 있을지를 떠 보았으나, 아들은 아버지와 다르게 제법 잔머리는 굴렀다. 단호하게 거절을 한 시드에게는 볼 일이 없었다. 그대로 절벽에 밀었으니 죽었겠지.
“아젬-.”
들끓는 목소리와 함께 황제의 노여움이 느껴져 넬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하데스는 이를 갈며 먼 곳을 응시했다. 하필 그곳인가. 그리고 왜 하필 그 무리에 섞인 것인가. 동맹군은 제국군과 직접적으로 전투를 하는 놈들이 아니던가.
“야만신을 통해 에테르를 달라가브로 흡수시키면 더 빠르게 달라가브가 추락할 것입니다. 어차피 저희는 카르테논 평원을 사수해 에오르제아 동맹군을 막으며 달라가브의 위치를 조종할 것인데, 거기에 가면 노예를 다시 만나실 수 있지 않을까요.”
그 말에 하데스, 아니. 솔 황제는 분을 삭이던 것 마저 멈추었다. 그래, 다시 데려오면 그만이지. 다시 원래대로 모든 것을 돌려놓는 것이다. 이 지루한 장소도, 나의 아젬도. 결심이 서면 행동으로 보이면 그만이었다. 황제는 이내 황좌에서 일어나 느릿하게 계단을 내려오며 입을 열었다.
“넬, 제7군단을 카르테논 평원에 배치한다. 실수 없이 움직이도록. 그리고.......”
무릎을 꿇고 엎드린 넬을 지나치며 내려다본 솔은 자신의 본모습인 에메트셀크의 얼굴로 돌아오며 말을 내뱉었다. 얼굴과는 다르게 황제의 연식이 있는 목소리가 방을 울려댔다.
“두 번은 없다. 명령은 제대로 이행해. 네 목숨을 바쳐서라도.”
“네, 폐하.”
얼마든지요. 넬은 속으로 그렇게 떠올리며 황제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가면 속에 가려진 여인은 입이 찢어질 듯 웃고 있었다.
'[파이널 판타지14]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멧히카] Chain-8 (완) (3) | 2021.08.10 |
---|---|
[에멧히카] Chain-7 (수위) (0) | 2021.08.07 |
[에멧히카] Chain-5 (0) | 2021.06.05 |
[에멧히카] Chain-4 (0) | 2021.05.08 |
[에멧히카] Chain-3 (0) | 2021.03.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