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t는 - Old Sharlayan Night Theme (imagined piano version) (구 샬레이안 밤 테마 상상 버전 피아노) 입니다.
=> 비공식입니다. 공식 아니에용.
* 에멧 히카 -8편입니다.
* 모험가가 7제해를 겪기 전에 있었던 일중 하나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 라고 썼는데, 사실 모든 내용은 실화를 바탕으로 제가 몇개의 픽션을 더 해서 만든 설정일 뿐 입니다.
* 본 사람이 있기나 한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9
* 신생에오르제아 1.0은 한국 서버에서는 출시되지 않았습니다. 1.0에서 어떻게 2.0 신생 에오르제아에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공식 영상이 소설 중간에 껴 있습니다. 스포를 원하지 않는다면 보시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다만, 아래부터 나올 소설은 해당 영상을 바탕으로 글을 썼기에, 1.0에 대한 스포가 이뤄질 예정이니 참고 해 주시길 바랍니다.
1.
“하늘에 저건 뭐지?”
“오오, 이건 틀림없는 재앙이야!”
하늘에 둥글고, 점점 가까워지는 ‘태양’과도 같은 존재에 사람들은 서서히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좀처럼 마을 안까지는 습격하지 않았던 괴물들도 마을 안을 습격해 사람들을 공격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점점 공포에 질려갔고, 각 도시에서는 동맹군을 결성해 마을 내부로 들어오는 마물들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늘 뜬눈을 지세며 공포에 질려 했고, 그렇게 모험가들은 점점 지치고 지쳐,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오롯이 남은 몇 명만이 도시를 지킬 뿐이었다.
“자네가 그 모험가로군.”
그러던 와중 처음 보는 인자한 노인이 아젬에게 말을 건네왔다. 지식의 도시, 샬레이안에서 왔다는 그 노인은 머리에 특별한 문양을 새겨놓았었다. 자세히 보니, 모래의 집이라 불리는 이곳의 중요한 인사들은 다 그 문양이 새겨져 있던 것을 보고는 그들 또한 ‘샬레이안’이라는 곳의 출신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선한 미소에, 입가에 웃음을 띠면 주름지는 그 얼굴이 누구라도 믿음을 얻을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 노인의 이름은, 루이수아. 현자라고 했다.
“아젬이라고. 들었네, 자네 이름 말이야.”
노인은 무언가 다 아는 눈으로 웃으며 말해왔다. 그리곤 자신들의 세계라는, 이 ‘하이델린’이라는 행성에 관해 설명했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 땅, 에오르제아. 그 신에서 아젬과 닮은 느낌의 신이 있다 하며 그것을 소개해주기 위해 조금 멀리 떨어진 동부 다날란에 도착했다. 무언가를 손으로 떠받들고 있는 형상. 또 그 석상의 가운데에 흐릿하게 보이는 검은 음영은, 그 석상이 무언가를 들고 있었음을 증명했다. 게다가 낡고 낡은 석상은 깎인 탓인지, 아니면 조각한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듯, 눈 아래로 길게 파인 흔적이 보였다.
“다날란은 벨라흐디아 시대의 살아 있는 유적지이지. 벨라흐디아에선 태양신 아제마를 수호신으로 삼고 늘 인도해 달라며 기도하곤 했다네.”
아무래도 흔한 노인들이 하는, 친해지기 수법 중 하나인 것을 알기에 웃어 보이자 이내 자신의 의도를 알아챈 덕분인지 더 환하게 웃는 노인은 근처에 있는 현재의 세계를 다루는 신인 ‘날’ 신이 있는 사당으로 가 그 모습을 보여주었다. 어쩐지 이마에 박혀있는 보석은, 지금 보이는 하데스의 모습과 조금 닮은 것 같다 싶었더니. 이내 피곤함을 덜기 위해 쉬러 간 울다하에서 만난 ‘달’신 또한 똑같은 외형을 한 것을 보고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처음 오셨나요?”
우습게도 달 신이 있는 장소는 납골당이었다. 아젬은 그 의미를 원래의 기억을 가진 이 몸의 주인을 통해 알게 되었다. 죽은 사람의 뼈를 보관하는 장소. 어쩐지, 입구에서부터 풍겨오는 죽음의 향기가 짙은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풍채의, 하얀 로브를 뒤집어쓴 여인이 자신을 올려다보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 ‘아르자네스 납골당’에서는 사후 세계를 다스리는 ‘달 신’을 모시고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누구나 ‘달 신’ 곁으로 갑니다. 그곳에서는 살아생전 ‘덕’을 많이 쌓은 자일수록 큰 안식을 얻게 되지요. 자, 당신도 우리 교단에 기부하고 ‘덕’을 쌓아 다음 생에 행복해지기 위한 준비를 하는 건 어떠세요?”
결국은 기부로군. 돈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아젬은 절레절레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제야 납골당에 온 이유가 다른 이유인 것을 알아차린 마마네라는 여인은 고개를 숙이며 실례했다, 인사를 하고는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친구가 한 명 있는데, 그 애도 만약. 죽음이란 것이 도달한다면……. 그렇게 되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꼭 신의 곁에서 큰 안식을 얻었으면 하네요.”
“자네는 신을 믿나?”
문득,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하데스 원래의 모습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거대하고 웅장한, 검은빛이 감도는 왕관을 쓰고 커다란 손으로 모든 것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이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신’이란 존재의 모습 아닐까.
“믿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정하지도 않죠.”
“그래, 결국은 인간이 해내고 마는 것이지.”
“열 두신의 비석이 있는 모든 장소는, 어떤 지역이든 그 끝에 자리 잡고 있다네. 그리고 길을 잃은 여행자들과 인생의 끝자락에 있는 사람들은 그 비석에 기도하지. 신이 그 순간 바로 감응이라도 하듯 내려올까? 그렇지 않다네. 결국, 그들은 신이 실제로 자신들에게 도움을 바로 주진 않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준다는 그 믿음 하나로 다시 길을 걸어가지. 그게 바로, 인간이란 존재라고 생각한다네.”
“그럼, 만약 인간조차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마주했을 때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젬의 말이 마치자마자 갑자기 벌컥 열리는 문에서 뜨거운 열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사람들은 도망치라며 소리를 질렀고, 차분하고 조용했던 납골당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나가기 시작했다. 피의 향기와 불에 그을린 탄내가 바람을 타고 들어오는 것을 본 루이수아는 덤덤한 듯, 그러나 초조해 보이는 그 눈동자에 시선을 주고는 부드럽게 웃으며 아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곤 몇 걸음 나아가지 않고 다시 뒤를 돌아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럴 때엔 말일세.”
웃음기를 조금 지운 루이수아는 덤덤하게 입을 열고는 확신에 찬 눈으로 아젬에게 답하며 말했다.
“미래세대에 나는 그 일을 맡길걸세. 적어도 그들이 어려워하지 않게, 희망을 심어두고서 말일세. 그래, 미래도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의 바람이네.”
그것도, 자네와 같은 사람이 말일세. 하늘을 좀 봐. 하늘 아래 같은 ‘태양’은 둘이 있을 순 없지 않은가. 가짜 태양은 저물어야 하는 법이지. 아젬은 이내 불길 안쪽으로 사라져 들어가는 루이수아를 바라보며 눈을 깜빡였다. 모두가 두려워하며, 구석진 신의 석상 뒤편에서 모여 덜덜 떨고 있는 모습과 신의 석상 앞에서 다시금 밖으로 나가 모두를 구해 보려는 자신. 아아, 그렇구나. 아젬은 하나를 떠올렸다.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신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아젬은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로브를 고쳐 쓰지 않고 그렇게 루이수아의 뒤를 따라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바람에 흩날리는 로브는 결국 아젬의 하얀 머리카락을 감추지 못하고 그대로 내비치며, 붉은빛으로 점점 물들어 갔다.
2.
“정말 머리카락을 다시 물들여도 되겠어용?”
이런 머리카락은 흔하지 않은뎅. 타타루의 목소리에 아젬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 지나게 되면, 이 몸의 정신으로 지내는 것도 끝일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 들었기 때문이다. 알겠어용. 한숨 대신 단호함으로 대답한 그녀의 목소리에 아젬은 허리를 곧게 폈다. 이내 싹둑거리며 천천히 썰려 나가는 머리카락은 순식간에 짧아졌고, 원래 이 몸의 주인을 떠올리며 머리를 염색하자 무언가 자신과는 다른 얼굴이 보여 손으로 제 뺨을 더듬어보았다.
“이쪽이 훨씬 더 자연스럽긴 하네용!”
폴짝, 하고 라라펠 전용 발 받침대에서 내려온 타타루는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아 버리기 위해 가져갔다. 다들 아쉬운 듯 그 머리카락을 가져가는 타타루를 눈짓으로 따라갔지만, 아젬은 그러거나 말거나 찌뿌드드한 목을 풀어 줄 뿐이었다. 지난번, 울다하의 소란으로 루이수아와 함께 이프리타, 아. 여기에선 이프리트라 불리는 야만신을 토벌하러 다녀온 뒤에 새로 생긴 결심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익숙한 갑옷의 형태인 사람을 마주한 것은 의외의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다 가려진 은빛의 투구는 근처에서 불타오르는 화염을 그대로 비추어 붉게 달아오른 색처럼 보이기도 했고, 황금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네가 바로 그 노예군.”
황제가 그렇게 찾아 헤매던데. 단순한 노예가 아니었군? 투구 너머로 전해지는 단호한 여인의 음성에 아젬은 미간을 모았다. 하데스. 아직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뒷걸음질로 잠시 물러서는 것을 옆 눈길로 바라본 루이수아는 여전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을 꺼냈다.
“구면인 건 아닌 것 같고. 용건이 없으면 비켜주겠나? 아무래도 바빠서 말일세.”
“오, 얼마든지. 너희가 죽인 이프리트에게 담긴 ‘별의 힘’만 돌려준다면 말이야.”
“그렇게는 안-!”
서로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넬은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 강한 힘을 모았다. 그 순간 아젬과 루이수아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것은 마법이 아닌가? 제국군은 마법을 쓸 수 없다고 들었는데. 예상 밖의 결과에 놀란 아젬은 그대로 굳을 수밖에 없었다. 점점 커지는 마나의 파동에, 루이수아는 미간을 좁히고 급하게 텔레포트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미꾸라지 같으니!”
강하게 쏘아낸 마법이 아슬하게 닿으려는 순간, 루이수아의 마법이 발동해 급작스럽게 울다하로 다시 돌아온 아젬과 루이수아는 한동안의 침묵을 고수했다. 그렇게 처참한 침묵을 먼저 끊은 것은 역시 루이수아였다. 모래의 집에서 모인 현자들은 이내 머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국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인 시드라는 사람을 소개받았다. 그는 몸에서 늘 잔잔한 기계에서나 날법한 기름의 향기와 공구를 많이 잡은듯한 손에서는 가죽과 쇳덩이의 향기가 묻어나오는. 누가 보아도 기계를 좋아한다고 할 법한 사람이었다.
“위성 달라가브를 단순히 힘의 용도로 쓰는 건 아닐 거야.”
“그게 무슨 소리죠?”
민필리아의 물음에 턱을 손으로 받치며 고민에 빠져있던 시드는 이내 제 생각을 사람들에게 피력하기 시작했다.
“……. 내가, 제국을 나오기 전. 아버지가 웰리트라는 곳에 대해 이상한 논문을 써서 실행에 옮기려는 것을 본 적이 있어. 최근 에오르제아 곳곳에서 나타나는 번개 관제탑에 대한 논문도 그곳에 껴 있었지.”
잠시의 침묵 끝에 같은 방에 있던 타타루는 조심스럽게 차를 내오며 사람들이 앉아있는 식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문밖을 나서며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중요한 일로 들어갈 것만 같았다.
“좋든 싫든, 가이우스는 나의 아버지를 대신해 나와 함께 지내왔던 일종의 동료였어. 그러던 어느 날, 제국에선 큰 사건이 하나 일어났지. ‘보즈야 시다텔’ 사건이야. 솔 황제가, 야만신을 완벽하게 토벌하려는 계획을 위해 고대 알라그에서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위성, ‘달라가브’에 대해 알아내고는 이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실험을 했었지. 그중 하나가 바로 ‘달라가브’의 에너지를 ‘크리스탈 타워’에 쏟아 내는거였고.”
어쩐지, 조금은 더 진중해지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시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너무 집중한 나머지 사람들은 차를 마시는 것조차 잊어버린 채, 그저 시드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만 있을 정도였다.
“그때 당시에는 ‘크리스탈 타워’는 고대 알라그 문명의 기록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유적 중 하나였다고 생각했어. 지금도 어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적당한 ‘크리스탈 타워’를 대체 할 만한 것이 나타나기 전에 실험을 해본다는 게……. 보즈야 시다텔에 그 힘이 쏟아지게 된거야. 결국 보즈야는 한순간에 폐허처럼 되어버렸어.”
어쩐지 찻잔을 내려다보고 있는 시드의 얼굴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아아, 그때 만약 아버지를 막을 수 있었더라면! 결국 어깨를 나란히 하던 가이우스마저 바리스의 명령으로 인해 에오르제아에 대한 침략 작전을 시행했지. 그래, 난 그렇게 제국을 도망쳐 나왔어. 도저히 인간을 하나의 희생물로 바라보는 그 태도들이 너무나 싫증이 났고 무서워서.”
그리고 그때, 달라가브의 ‘크리스탈 타워’를 대신하려 했던 것이 바로 ‘번개 관제탑’ 이고. 시드의 말이 끝날 무렵에는 다들 심각한 상황에 미간을 좁히고 생각에 빠져있었다. 당장에 내려오는 위성 ‘달라가브’의 위력이 그 정도 일 줄을 몰랐던 사람들과 연이어 불안감을 조성하는 야만신의 출현을 동시에 막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도, 막아야 해. 너무나 많은 사람이 희생될 수 있네.”
루이수아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젬은 그들의 끄덕임에 잠시 바람을 쐬겠다며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나 모래의 집 옥상에 올라가 어느새 어두워진 밤하늘과 빨갛게 타오르는 위성을 바라보고는 눈을 찌푸리며 감아보았다.
‘솔 황제가 야만신을 완벽하게 토벌하려는 계획을 위해-.’
하데스는, 어디까지를 복수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어디까지를 되돌려 놓고 싶어하는걸까. 마치 지금의 그는, 완벽하게 깨끗한 도화지를 위해, 잘 그린 명화에 하얀 물감을 사정없이 쏟아 부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제국에서 지붕 위에 둘이서만 나누었던 대화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라는, 아젬이라는 존재가 없었을 당시에 우리들의 상황을. 그에게는 자신들을 분열시킨 ‘하이델린’도. 영원히 자신들을 지켜줄 것 같았던 ‘조디아크’도. 그 무엇도 싫었을 것이다.
“여기 있었네요.”
마셔요. 아직 밤공기가 차가운걸요. 민필리아가 내미는 잔에는 다시 따듯하게 데워진 차 한 잔이 김을 모락모락 내뿜으며 온기를 과시하고 있었다. 그 온기에 미소지으며 고맙다고 말하곤 잔을 받자, 민필리아도 옆에 앉아 달라가브를 바라보며 아무런 표정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말이죠,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
“적어도, 제가 만약 싸울 줄 모른다면. 조금은 모른 척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피하고 싶어요. 죽음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거든요.”
그녀는 자신이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곳에 올라온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잠자코 그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속내를 말한다는 것 자체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루이수아님을 만나게 된 건 산크레드 덕분이었죠.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저에게 말씀하시더라고요. 힘든 일을 부탁한다, 하고요.”
민필리아는 아무런 말 없이 잠시 달라가브에 주었던 시선을 벗어나 달을 쳐다보았다. 구름에 잔뜩 끼어 보일 듯 말 듯 한 달에서 루이수아의 모습이 겹쳐지는 것 같았다. 루이수아는, 마지막이 될 전투에서 자신을 희생할 것이라 아주 덤덤하게 말했다. 위성 ‘달라가브’가 떨어지는 순간 모두가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열두 신을 불러 모아 달라가브를 저지하는 대가로 목숨을 걸게 된 루이수아에게 다른 방법이 없는 거냐 말하자 노인은 가만히 웃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리곤, 정히 걱정이 된다고 하면 ‘구세시맹’과 ‘열두 기적 조사회’를 합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자, 그녀는 덜컥 두려움에 휩싸였다.
“두려웠어요. 하지만 루이수아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오히려 굳건해지는 것 같았죠. ‘결코 희망을 버리지 말게나. 아무리 어두운 밤이라도 반드시 해는 뜨고 새벽을 맞이하게 될 테니까.’ 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래서 만약, 이번 전투에서 살아남으면 우리들의 동맹을 ‘새벽의 혈맹’ 정도로 할까, 생각 중이에요. 멋쩍게 말하는 민필리아의 말에서는 오히려 두려움보다 기대에 부푼 마음이 들어 있었다. 무엇이 두려웠는지, 루이수아가 무엇을 부탁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대답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녀에게선 말하기 어려운 주제라고 생각했다.
“……. 영감님에게 들었어요. 황제가 찾고 있다는 사람이 당신이란 걸요.”
“아.”
“오,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할게요. 당신이 고민이 많아 보여서 한 번만 말을 걸어 달라 부탁드리길래 올라온 거거든요. 사실.”
그녀의 솔직한 말에 아젬은 눈을 휘고 웃었다. 제국보다 훨씬 더 편안한 분위기의 사람들은 자신의 울적함도 달아나게 하는 것 같았다. 이내 부드럽게 아젬의 손에 제 손을 겹치고 웃어준 민필리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가 제국군의 이중 첩자였어요. 민필리아라는 이름도 사실은 가명이죠. 제가 고아가 되었을 때, 저를 바르게 이끌어준 것은 프라민 덕분이었어요.”
엄마라고, 제대로 불러본 적은 없지만요. 그렇게 말하는 민필리아의 얼굴에서는 약간의 후회가 감돌고 있었다.
“프라민은, 강한 사람이죠. 흔들릴 때 저를 잡아주는 훌륭한 나침반과도 같은 사람이에요. 그건 지금도, 이후에도 변함없을 거에요. 아젬과 어딘가 많이 닮은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아젬이 제국에서 당신을 애타게 찾는 그 ‘친구’에게도. 그런 존재였으면 해요. 싸움을 떠나서요. 당신은 ‘태양’이잖아요? 아무리 어두운 밤이어도, ‘태양’이 뜨고 나면. 그렇게 새벽이 떠오르는 거라 생각해요. 전 이제 가봐야겠어요. 당신 옆에 서면 이상하게 말이 많아져서요. 더 쉬다 와요, 먼저 갈게요. 그렇게 다정히 말하는 민필리아의 뒷모습을 바라보고는 아젬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눈을 감았다. 루이수아가, 어째서 민필리아에게 미래를 맡겼는지. 이해가 가는 듯했다.
3.
짧은 사이에 수많은 일들이 지나갔다. 결국 야만신, 가루다의 소환으로 인해 한차례의 소란을 막아보았지만 ‘별의 힘’을 넬이라는 제국군의 군단장에게 빼앗겼다. 게다가 시드까지 이 일로 인해 절벽에서 떨어져 그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의 후퇴는 곤란했다. 야만신의 힘은 차곡차곡 달라가브의 몸에 흡수되었고, 달라가브를 막아보기 위해 ‘번개 관제탑’을 제거하는 작정에는 성공했으나, 오히려 넬은 관제탑 따위는 필요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며 스스로 그것을 제거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그녀의 투구 안쪽은 보이지 않아도, 그녀의 얼굴 근처에서는 푸른 빛이 감돌았다. 신도화. 사람들에게 그녀의 이상 현상에 대해 말해주자 입을 모아 그렇게 말을 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넬이라는 군단장이 스스로 달라가브의 ‘관제탑’ 역할을 자초하는 신도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완전히 압도적인 구형이 하늘의 검은 구름을 뚫고 붉은빛을 내며 운석을 떨어트리기 시작했다. 카르테논 근처의 지형들은, 사방에서 떨어지는 붉은 운석들에 그대로 파이고, 무너지고, 불타기 시작했다. 제국군은 그 시점을 기점으로 대대적인 전투를 감행했다. 제국군의 목표는 완벽했다. 완벽한 말살. 인간이 그것을 진행하든, 달라가브가 그것을 진행하든, 무엇이 작전을 진행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평원에서는 고함이 오갔고, 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 제국군의 마도 병기가 총을 쏘는 소리와 마법이 폭발하는 소리가 낭자하게 들려왔다.
“폐하, 이 이상 진입하시면 위험합니다. 이미 달라가브 위성의 착륙 궤도에 있습니다!”
“넬은,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 거지? 당장 아젬을 찾아오라고-.”
“넬 군단장님과의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폐하, 지금이라도 군함을 돌리셔야!”
“하, 비켜! 더 들어간다. 상관하지 말고 들어가!”
직접 군함을 조종이라도 하려는 듯, 지휘석에서 뛰어내려 조종사를 밀치려고 행동하는 황제를 군인들이 이를 악물고 막기 위해 네, 다섯 명이 뛰어들며 황제를 붙잡았다. 거의 반쯤 미쳐버린 듯 ‘두 번은 안 돼, 두 번은 안 돼’를 외치는 황제의 행동에 다들 진정을 하라며 황제를 다시 자리에 올리려는 순간, 달라가브에 박혀있던 석판이 그대로 꽂아 내려 카르테논의 정 중앙에 박혀 들어가기 시작했다. 거대한 연기와 함께 사람들의 비명이 들리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아젬의 기운에 황제는 그제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상 현상 발생! 달라가브에서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감지됩니다!”
“이, 이건……!”
하늘에서 달라가브의 위를 뚫고 거대한 드래곤이 포효하기 시작했다. 그 포효를 기점으로 터져나간 달라가브는 마치 그날의 ‘재앙’처럼 다시금 솔 황제, 아니. 하데스에게 같은 장면을 반복해 보여주기 시작했다. 강화유리 밖으로 붉은 혜성과 드래곤이 쏘아대는 포격들은 정확하게 ‘그날’을 연상시켰다.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황제의 행동에 군사들은 그렇게 황망하게 자리에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 황제를 바라 보았다.
내가, 다시 같은 일을 반복해 버렸구나.
황제는, 하데스는. 그렇게 마지막 말을 내뱉고는 강화유리 너머의 장면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4.
하늘에서 수없이 많은 별이 떨어졌다. 그것은 별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무서운 것들이었다. 인간이 손 쓸 도리가 없는 존재. 그것을 마주할 때의 위압감과 공포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선사하기 충분했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은 곧이어 절망으로 변질하였다. 아젬은 하늘을 바라보고 조용히 읊조렸다.
네가 봤던 하늘이 이런 거였구나.
어디선가 하데스가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까. 문득 든 생각에 하늘을 쳐다보자, 갑자기 사방에서 푸른 빛줄기가 올라와 각자 하나의 검 형상을 하며 하늘에서 포효하는 드래곤을 감싸기 시작했다. 설마, 루이수아님이. 급하게 루이수아의 쪽을 돌아보자, 지팡이 하나를 지지한 상태로 모든 힘을 짜내는 것을 보고는 아젬은 크게 눈을 뜨고 입을 벌렸다.
‘힘든 일을, 부탁한다. 하고요.’
‘미래세대에 나는 그 일을 맡길걸세.’
루이수아는, 자신을 희생할 셈이었던 것이다. 멈춰요. 그렇게 말을 하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목소리보다 더 크게 울리는 소리는 그 소리를 들리지 않게 가두어 버렸다. 게다가 갑자기 들리는 유리가 깨지는듯한 소리에 급하게 드래곤이 있는 쪽을 쳐다보자, 마법진이 서서히 열두 신의 형상들을 매개로 하며 견고해지려는 찰나, 커다란 폭발음을 내며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기대는 완벽하게 절망으로 번져 나갔다.
“아아……!”
누군가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얼핏 들렸던 것도 같다. 나는 그렇게 두 번째 삶에서도, 그를 구원해 주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는 여기에 없을 수도. 또 있다 한들 이러한 여파가 닿지 않는 곳에 있지 않을까.
다른 사람을 구원해도 너만큼은 구원해 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럽게 느껴졌다.
‘미래도 인간이 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진정한 나의 바람이네.’
다시 한번 귓가를 맴도는 목소리에 눈을 깜빡이자니, 서 있는 바닥 아래로 푸른 빛이 맴돌았다. 텔레포트. 아니, 이것은 그것보다 한 차원 높은 수준의 텔레포트였다. 시간과 공간의 초월. 이 정도까지 구현할 수 있는 거였나. 하지만 이 정도의 대규모 인원을 텔레포트 시킨다면 이 마법을 발동한 당사자는 전혀 움직일 수 없을 텐데. 눈앞에 점점 다가오는 화염에 아젬은 눈을 깜빡이며 점점 사라져가는 자신의 몸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만약, 기회가 있다면. 마지막 구원은 꼭.
생각을 마친 순간, 자신은 이미 깜깜한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5.
제7 재해. 에오르제아에 다가온 아픈 상처는 천천히, 사람들로 인해 아물어져 갔다. 사람들은 그때의 일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특히나, 역사 전서에서나 겨우 남아 알고 있는 ‘카르테논’ 전투에서 희미하게나마 ‘모험가’라는 존재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많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을 떠올리며 입에서 입으로, 노래에서 노래로, 시에서 시로. 그렇게 전해져 내려갔다.
“……. 여어, 여보게.”
나는 희미하게 들리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흔들거리는 몸 상태가 내가 무언가를 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듯했다. 목소리의 근원지를 찾자, 인자하게 웃는 노인이 이내 말을 다시 걸기 시작했다.
“아까 보니 가위눌리는 것 같던데, 좀 괜찮나?”
아, 그러고 보니. 잠깐 꿈을 꾼 듯했다. 자신은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과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 왠지 모를 익숙함이, 오히려 자신을 스스로 더 두렵게 했던 것도 같다. 공포일까 봐 조금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괜스레 목 뒤에 새겨진 문양을 한번 더듬어 보고는 손을 내렸다.
“도시 주변에는 에테라이트가 많으니까. 그 영향을 받아서 아주 가끔 에테르 멀미를 하는 사람도 있긴 하다네.”
노인은 능청스럽게 말하며 ‘우리’가 도착할 곳에 대해 말해 주었다. ‘우리’라고 칭한게 이상하다 할 수 있지만, 언제부터인지 모를 쌍둥이처럼 보이는 두 아이가 마차에 나란히 타고 앉아 눈을 감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정신은 또렷하게 날을 세우고 있는 듯했지만. 들리지만 듣지 않는 척하는 것이 가상해, 그냥 이쪽도 모른 척 해 주는 게 예의인 것 같았다.
“어이쿠. 벌써 도착했군. 자네의 여행에 축복이 가득하길.”
노인은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 자신이 가야 할 곳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나는 그렇게 모험가 길드에서 등록을 마치고, 시시때때로 몰려오는 의뢰들을 받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나갔다. 사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왜 혼자였고. 내가 왜 여행을 떠나는지는 잊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7 재해의 여파라고 했다. 기억의 망각. 그것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가 하면, 절망을 주기도 했다. 나로서는 그것이 희망인지 절망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신이 소문으로 듣던 그 모험가로군요.”
조금씩 해결해 나가는 문제들과, 문제들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만난 사람이 이내 ‘모래의 집’이란 곳에 가보라는 말을 근거로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신나게 콧노래를 부르는 접수원 ‘타타루’라는 여인의 안내로 ‘새벽의 집’ 안쪽, 맹주의 방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이곳의 사람들인 듯, 책상 앞에서 나란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던 시선들이 부담스럽기 그지없었다. 모험을 하다 만난 사람도 그 속에 있긴 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단체로 만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게다가 맹주라는 사람이 처음 만나자마자 내뱉는 말은 부담스러움을 두 배로 증가시키기 충분했다.
“나는 민필리아예요. ‘새벽의 혈맹’을 이끌고 있죠.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러나 묘하게, 어딘가. 부드럽고 따듯한 그 느낌에 조금 눈시울이 시큼해지는 것 같아, 나는 눈가를 비볐다. 오늘따라 이상했다. 마을에 도착하고, 이 사람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었는데.
어쩌면, 기억이 돌아올까. 내가 누구였고, 내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
한명 한명 소개해줄 때마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누르고 나는 혈맹에 들어오겠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여행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듯했다.
6.
“아아, 짜증 나 죽겠구만. 바우스리가 군대를 보낼 정도로 의욕이 남아 있었을 줄이야.”
남자는 이미 존재를 상실한 낡은 건축물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몇몇 사람들은 도망치듯 달리고 있었고, 자신의 바로 발아래에서는 두 남자가 팽팽한 대치를 이루는 것이 보였다. 멍청한 바우스리. 그냥 움직이라는 대로 움직이고, 실컷 처먹기나 했으면 아무런 일 없이 조용히 진행 되었을 텐데.
“아무리 멍청한 싸움이라도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가 움직인단 말이야. 나 참……. 이렇게 되면 계획을 다시 짜야 하잖아.”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들을 쳐다보며, 남자는 손에 깍지를 꼈다. 구부정한 허리는 언제부터인지 자신의 상징이 되어버린 듯했다. 모험가. 사람들은 그를 그렇게 불렀다. 에오르제아의 작고 큰 사건부터 시작해, 야만신 토벌, 그리고 용과 인간의 대립이었던 이슈가르드를 구원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만들어낸 ‘제국’의 영역까지도 해방해 버린 ‘영웅’ 이 빠르게 달려나가고 있었다.
“저 영웅 녀석도 대체 얼마나 우리를 방해해야 직성이 풀리냔 말이야!”
한숨을 푹푹 내쉬며 내뱉은 말을 누가 들어줄 리 없다. 그러나 더 답답한 것은, 저 모험가에게서 보이는 푸른 빛. 그 빛은.
“……. 게다가 그 혼의 소유자라니.”
아아, 자신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가 온 것일까. 과거를 되돌리는 기회. 그래, 너만 내 곁에 온다면.
“그렇다면……. 서로를 죽고 죽이 는 것 말고 다른 방법도……. 있으려나?”
다시 한번, ‘우리’에게 기회가 온다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웅장하고도 아름다웠던 아모로트 거리……. 높은 탑 위로 펼쳐진 하늘에선 햇빛과 바람이 쏟아져 내리는 그곳에서.
‘하데스.’
아젬.
기억해줘.
우리는 분명 살아 있었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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