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t는 니어 레플리칸트 -Ashes of Dreams 입니다.
* 에멧 히카 -2편입니다.
*모험가가 7제해를 겪기 전에 있었던 일중 하나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일어나야지.”
“........ 조금만 더. 오래간만에 왔잖아.”
미간을 찌푸린 상태로 눈을 뜨지도 않고 말하며 에메트셀크는 그 사람의 품을 파고들었다. 엉거주춤하게 일어나 앉아있던 그 사람은 되려 그 하얀 머리카락을 만져주며 물었다.
외로웠어?
에메트셀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말없이 길게 숨을 내뱉고 들이쉬길 반복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 행동이, 마치 '옆에 네가 있어 다행'이라고 하는 것 같아 머리를 만져주던 사람은 또 웃어버렸다.
왜 외로웠어?
에메트셀크는 그제야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네가 없었으니까.
그 사람은 다시 물었다.
지금도?
에메트셀크는 대답했다.
그래, 지금도.
죽은 네가 살아 돌아 올 수 없으니. 백일몽이잖아.
에메트셀크는 자조적으로 내뱉은 말과 함께 그제야 눈을 떴다. 숨을 들이켤 때 사람의 온기와 체향은 없었고 냉랭한 방 안의 공기가 들어올 뿐이었다는 것을.
길었던 은빛 머리카락은 꿈이 깨어지는 것을 알려주듯 점점 짧아지며 평범한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했고, 머리카락을 쓰다듬어주던 손은 이내 사파이어 가루를 부숴놓은 것 마냥 아스러져 갔다.
자신의 마지막 말을 들은 그 사람은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마저 파란빛으로 사라져 갔지만.
“폐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사라져 가는 사람을 쳐다보던, 젊은 에메트셀크가 다시 눈을 한번 깜빡이고 떴을 때엔, 노령의 노인이 옥좌에 앉아서,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금빛의 눈으로 그저 먼 어딘가를 바라볼 뿐이었다.
Chain -2
1.
요 며칠 에메트셀크는 눈꼽 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황제마저 바쁜 기색인지 좀처럼 일거리가 들어오지 않아 방 안에 지내던 나날이 길어졌다. 언제든 에메트셀크가 올까, 그의 옷가지들을 정돈해 두고 방 청소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던 매일. 이 커다란 성에서 유일한 말 벗이 되어주는 그 사람. 슬슬 추워지는 날씨에 벽난로에 장작을 더 집어넣자 사그라질 것만 같던 불길이 훨훨 타오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안 오는가 보지. 이럴 땐 황제라도 나를 불러서 뭐라도 시키면 감사할 것 같지만, 에메트셀크도. 보기 싫은 황제도. 오늘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한숨을 푹 내쉬고 침대로 다가가려 하니, 창문 너머로 무언가 떨어지는 것이 언 듯 스쳐 가듯 보이는 것에 침대로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건...?”
창문쪽으로 다가가니 밖에선 때아닌 고함이 들리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병기들을 관리하라는 상관의 지시들이 분명하리라. 갈레말은 에오르제아처럼 마법을 사용할 수 없으니 말이다. 다들 하늘을 가리키며 무어라 소리를 지르는데 도대체 이 조그마하고 하얀 덩어리들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알라미고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져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오며 뺨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창틀에 한 손을 올리고 허리를 쭉 내밀어 저 멀리서 떨어지는 하얀 덩어리를 잡아보기 위해 손을 뻗었다.
“너-.”
그 순간 아래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아래를 내려다보자 뭐하냐는 듯, 한쪽 눈썹만 올리고 이쪽을 올려다보는 에메트셀크의 모습에 오, 하고 인사를 해주려 손을 크게 흔들었다. 순간 창틀에 걸치고 있던 다른 손이 미끄러지며 천천히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아차-. 미끄러지는 그 모든 과정이 천천히 지나가며 놀란 눈을 해 보이는 에메트셀크가 시야에 잠깐 보였던 것도 같다. 이내 빠르게 바닥으로 추락하려는 내 귀로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머리에 피가 쏠리더니 공중에 그대로 무언가 내 다리를 붙잡은 것 마냥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것에 나는 버둥거렸다.
“아니, 이거!”
“넌 도대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취미인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심상치 않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에메트셀크에게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자 다시 손가락을 튕기는 경쾌한 소리가 들린다. 곧이어 풀썩, 하고 바로 아래에 있던 화단에 떨어져 버리자 추위가 온몸에 다가오기 시작했다. 잠옷 차림인 데다가, 맨발이 화단의 차가운 풀에 닿자 발끝이 얼어붙을 정도로 시렸다. 게다가 하얀 그 덩어리가 바닥에 소복하게 쌓여 발끝이 빨갛게 물들기 까지.
“추, 추워. 추워요.”
“가지가지하는군.”
에메트셀크는 기가 차단 얼굴로 성큼 다가와 내 몸을 안아 올렸다. 제법 무게가 있는데도 어린아이 안아 올리듯 가볍게 안아올 리는 것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뭐. 내 옷 벗어 줄 건 꿈에도 생각하지 말아라. 나도 추우니까.’ 하고 한마디를 내뱉고는 방에 다시 올려다 줄 생각인 것인지 익숙한 길로 걸음을 옮기는 것에, 나는 손끝에 입김을 살살 불며 얼어붙을 것 같은 손을 달래 보며 에메트셀크의 얼굴을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왜 이리 오늘따라 부담스럽게 자꾸 쳐다보는 거지?”
“왜 그동안 안 왔어요?”
“........”
한참 말이 없던 그가 이내 ‘바빴다.’ 하고 가볍게 대충 둘러대자 나는 그렇구나, 하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성을 돌아다니며 그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사람들 모두 모르는 사람이라고만 대답할 뿐이었다. 우리 같은 계층이 모를 정도로 상당히 높은 사람인가 싶지만. 이내 에메트셀크의 어깨 위에 소복하게 쌓이는 하얀 덩어리들에 손을 올려 털어내자, 손이 닿자마자 물처럼 녹아버리는 것에 헉, 하고 손을 쳐다보았다.
“뭐야, 눈을 처음 보나?”
“눈?”
당신 눈은 자주 봤는데요. 하며 이마에 달린 눈을 가리키자 에메트셀크는 또 한숨을 푹 내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를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에서는 마치 밀가루를 털어내기라도 하는 듯 끊임없이 하얀 덩어리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저것이 눈이다. 날이 추우니 물이 얼어 눈이 되는 것이지.”
“오.......”
신기하다, 신기해. 그의 품에 안겨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열심히 하늘에 떨어지는 눈을 붙잡아 보려 하자 그게 그렇게 신기하냐며 말하는 그의 물음에 나는 대답했다.
“네. 이런 맛에 여행하거든요.”
“........”
“멀리멀리, 떠나면 떠날수록 새로운 것을 보게 되는 재미가 있어요.”
그는 갑자기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고 나를 내려다보고는 아무런 표정 없이 입을 열어 물어보았다.
“그럼, 널 기다리던 네 고향 사람들은?”
“....... 그것까진 생각 안 해봤어요. 다들 무사히 다녀왔으면 한다라고 말했지만.”
“그러니까 네가 족쇄를 벗지 못하는 거야.”
“네?”
그는 마지막으로, 그러니까 네가 떠나면 불안해지는 거야. 다시 돌아오지 못할까봐. 하고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더니 이내 방 안으로 처음의 그 느릿한 발걸음보다 조금 더 빠르게 속력을 내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한 번 더 물어볼 기회를 놓쳤다.
제국인은 마법을 못 쓰는데, 당신은-.
이렇게 비밀이 많은 당신은 도대체 누구냐고.
차마 마지막 말 이후로 어딘가 물에 잠긴 듯 슬퍼 보이는 눈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의 품에 안겨 그대로 방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
“황제 폐하께서 무기를 배울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다루고자 하는 무기가 있으십니까?”
“음.......”
아침부터 사람이 갑자기 방문을 두드린다 싶어, 누가 일이라도 시키는 건가 했더니. 번지르르하게 옷을 입은 남자가 가슴팍에 손바닥을 가볍게 올리며 고개와 허리를 숙여 보이는 것에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대충 같이 인사를 해 주어 보였다. 그 뒤, 남자는 간단한 자신의 소개를 했지만, 제국의 서열이나 직위를 알 리가 없는 나에게는 알아들을 수 없는 정보였다. 그저 그러려니 하며 고개를 끄덕거리자, 잠시 따라오라는 말과 함께 지하에 있는, 병사들이 지키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빼곡히 온 벽에 걸린 무기들과 방어구가 있는 곳에서 던진 첫마디가 바로 저것이었다.
무기라 해도, 기본적으로 제국에서 본 것과 고향에서 보았던 무기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유일하게 어색한 무기인 총을 쳐다보았다. 마법을 쓸 수 없는 제국군은 인간의 손으로 되려 ‘마법’을 창조해 내었다. 어떨 때는 인간이 만든 ‘마법’은 인간에게 이로운 부분을 주지만, 어떨 때에는 그 마법이 되려 인간에게 해를 주게 된다. 그렇다면 총은?
총은 인간에게 해가 되는 것인가, 이로운 것인가?
한참을 그런 생각을 하고 쳐다보니, 그것으로 고르겠다는 의미인 줄 알았던, 제법 높으신 신분처럼 보이는 사람이 나에게 총을 양손으로 들어 건네주었다. 가벼울 줄 알았던 총을 넘겨받자 묵직하게 손 위로 올라오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몸의 털이 다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매끄럽게 빛나는 총신을 만져 보고 있자니, 옆에 서 있던 총을 준 사내가 옆으로 비켜서며 '폐하.' 하고 말하는 것에 시선을 돌리니 느릿한 걸음걸이지만 소리조차 나지 않게 걸어온 황제가 나이와 맞지 않는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음을 알아차리곤 마른침을 삼켰다.
“검, 창, 도끼. 원한다면 마법을 부릴 수 있는 도구 정도는 사 줄 수 있는데. 총이라.”
“손에 지금 막 쥐어보기야 했지만, 쓸 줄 모르는 것입니다.”
다시 어색하게 총을 옆 사람에게 돌려주려 하자 황제가 다가와 어디 한번 자세나 취해 보라는 듯 턱으로 총을 가리켰다. 쥐는 법이야 여기에 눌러 산 이후로 군사들이 들고 다니는 것을 줄 곳 보았으니. 흉내를 내듯 한 손으로 총을 들어 올려, 어딜 둬야 할지 모르는 총끝을 어색하게 창문을 향해 두었다.
“그대로 쏘면 네 이마가 정통으로 맞을 텐데.”
“앞으로 쏘는데 왜 제가 -.”
말을 마치려 하기가 무섭게 등 뒤로 다가온 황제가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겹쳤다. 어딘가 익숙한 향이 맡아지는 것 같아 저절로 힘이 조금 빠지려 하자, 그가 엄지로 총 뒤의 무언가를 당겼다. 끼긱거리며 무언가가 손 끝에 걸리는 느낌이 나는 것과 동시에 가볍게 손가락으로 총 배 부분에 있는 걸쇠 같은 것을 손가락 하나로 당기자 ‘콰직-’ 하고 유리가 좀처럼 낼 수 없을 것 같은 소리를 내며, 두꺼운 유리창문에 흉한 구멍 하나가 만들어졌다. 안에 들어간 탄약과도 같은 것이 쏘아져 나간 자리에는 매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벼락같은 소리는 덤으로. 게다가 황제의 손을 더해 붙잡고 있던 총의 반동이 심해 온 팔이 덜컥거렸고, 총의 반동으로 손목이 위로 살짝 꺾일 뻔 한 것에 너무 놀라서 눈만 휘둥그레 뜨고 있으려니 총끝에서 제법 뿌연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비릿한 쇠 달군 향이 난다. 어딘가에서 맡아본 피 향기와도 같은 그 향기가.
“.... 이마가 정통으로 맞을 만하네요. 반동이-.”
“그래. 이마가 말이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잠시 내려졌던 총이 다시 한번 황제의 손과 겹쳐 올려지며 아까 총을 건네준 시종에게 총끝이 겨누어지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한 번 눈을 커다랗게 떴다. 지금 무슨-.
“잘 관리한 총은 말이지.”
끼릭- 하고 총 뒤의 무언가를 다시 엄지로 당긴 황제가 여전히 감정 없는 목소리로 입을 열지만, 그 무엇도 집중할 수 없었다. 지금 왜, 이 총을 사람에게 겨누는 것인가.
“이 정도로 연기가 나지 않지. 총알이 제대로 발사되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나? 특히, 이렇게 총을 한번 쏠 때마다 해머를 당겨줘야 하는 수동식 총의 경우는 말이야.”
오발로 총알이 나가 죽어도, 전혀 의심스럽지 않거든. 누가 그전에 총에 손을 댔는지 전혀 모르게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다시 한번 내 손가락과 황제의 손가락이 겹쳐 무언가를 당겼다. 다시 한번 맹렬한 불꽃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며 찰나의 순간들이 느릿하게 흘러갔다. 총을 준 당사자가 털썩 쓰러지는 소리와 함께 내 다리의 힘도 풀려 그대로 주저앉으려 하자, 그런 내 몸을 한 손으로 가볍게 부축하고는 총을 내린 황제가 입을 열었다.
“손주가, 이제는 발톱 숨기는 법도 잊어버린 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는 잘 모릅니다. 저는 모릅니다, 폐하.”
죽은 게 아닌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남자의 다리 사이로도 연기가 살짝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몸에다 쏜 줄 알았더니, 다리 사이로 쐈구나. 안도인지 모를 한숨이 그대로 내뱉어지고 나서야 숨이 쉬어졌다.
“그래, 모르겠지.”
황제가 픽 웃고는 그대로 자신이 쥐고 있던 총 끝으로 남자의 옷깃을 벌려 검집에 검이라도 꽂아 넣듯 푹 밀어 넣고는 좀처럼 보기 힘든 웃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것이 진심으로 웃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잘 전하도록 해라. 총구가 어디 사람을 가린다더냐. 아군이고, 적군이고. 일단 쏘고 뚫리면 한낱 고깃덩어리 아니더냐,라고.”
넌 따라오고. 황제는 그렇게 말하며 덜덜 떨고 있는 남자를 향해 시선도 주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섰다. 나는 풀린 다리를 애써 추스르며 황급히 황제의 등 뒤를 따랐다. 다리에 매달린 방울 소리가 오늘따라 텅 빈 복도에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3.
완전히 정신이 나갈 것 같은 하루가 어찌 지나가는지도 모르는 체, 어둑한 방에 전등 하나만 의지한 채 침대에 걸터앉아 고민에 빠져들었다.
“황제의 손주면, 바리스란 사람인데... 총에서 평소보다 연기가 많이 났다는 건, 총에 대해 관리가 허술했단 거고.”
만약에 총 안에 든 탄약이 총 안에서 폭발하거나, 미숙한 내 솜씨로 잘못 쏴졌다면? 순식간에 황제와 겹친 손으로 느껴진 반동이 떠올랐다. 총의 반동은 상당했고, 분명히 총이 쏘자마자 하늘을 향해 한번 고개를 젖히듯 튕겨 꺾였다. 만약, 황제가 제대로 손을 고정하지 않았더라면, 다음 총알은 보나 마나. 이마에 나 스스로 총을 겨누는 장면이 떠올려지자 아찔한 감각이 밀려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누군가 나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그럼, 황제가 구해준 건가?”
“호오, 그럴 땐 머리가 잘 돌아가네.”
익숙한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자 언제 올라온 것인지, 창문 턱에 기대앉아 있는 에메트셀크가 능청스러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더니 내가 걸터앉은 침대에 잠시 시선을 주더니 늘 자신이 누웠던 자리에 그냥 벌러덩 누워 버렸다.
“아니, 도대체 어떻게 저길 올라온 거죠?”
“잘.”
“창문도 안 열고?”
“왜 ‘올라왔다’라고 생각하는 거고, 창문을 ‘열어야’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넌 거기부터 틀렸어. 에메트셀크는 그렇게 말하며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는 피곤한 듯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그런 그를 돌아보고는 답답한 마음에 그의 옆으로 몸을 조금 움직여 서둘러 그가 깊은 잠에 빠지기 전에 입을 열었다.
“당신, 제국 사람 아니죠.”
“반은 맞고 반은 틀렸지.”
“지금 당신이랑 수수께끼 할 기분이 아니에요. 오늘 하마터면 사람을 죽이는 줄 알았다고요.”
“저런, 죽이지 그랬어. 흔한 경험은 아닐 텐데.”
태연하게 말하는 에메트셀크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때려 주려 하자 그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니 마치 온몸이 무언가에 속박이라도 걸린 것 마냥 옴짝달싹도 못하고 버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얌전히 침대에 툭 하고 눕혀버린 에메트셀크의 행동에 한숨을 푹 쉬고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은 함부로 죽이는 게 아니에요.”
“오, 함부로라. 과연 어디까지 ‘사람’을 그렇게 관용적으로 감싸줄까.”
잘 들어. 네가 사랑해 마지않는 그곳, 에오르제아. 신들의 사랑을 받았다, 소문이 난 땅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나? 산란을 위해 물 위로 올라온 사하긴족을 흑와단 녀석들이 암암리에 없애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 참으로 불쌍하기도 하지. 그저 사하긴족은 산란을 위해 물 위로 올라온 것뿐인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혀까지 차 보이는 것에 나는 할 말을 잃고 입을 꾹 다물었다.
“불완전한 인간은 위선적이고, 자기중심적이지. 생긴 것이 조금만 달라도 그들에게는 ‘위협’이라 생각하며 칼을 겨누고 학살을 시도해. 잘 생각해봐. 생존을 위해 올라온 사하긴 족은 죽어도 되는 건가?”
“물론, 죽여서는 안 되겠지만-.”
“그래, 안 되겠지만 이 아니라 안 되는 거다. 사람만 숨을 쉬고 사는 게 아니야. 그들도 말을 하고 그들에게도 가족이란 개념이 있겠지. 그런 거다.”
알겠으니 일단, 이것 좀 풀어주고-. 버둥거리며 몸을 갓 물가에 올라온 생선처럼 퍼덕거리는 게 부산스러웠는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순식간에 몸을 옭아매던 것들이 사라졌다. 답답함이 사라지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사람의 죽음이란 것을 코앞에서 느꼈을 때의 그 불안함과 공포심이 마음에 자리 잡자 속절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했던 모험이란 것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는데. 침대에 발을 올려 무릎을 끌어안다가 발에 걸린 족쇄와 방울을 만지작거리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황제의 손주가 저를 죽이려 하는 것은 알겠네요.”
“원래 가진 자의 옆에 있다는 것 자체가 늘 그런 것이지. 인간은 권력과 물욕에 절어있잖아. 정히 죽고 싶지 않으면 그 황태자한테 가서 황제에 대한 어떠한 정보라도 캐 올 테니 살려 달라 하면 그만이잖아.”
어딘가 비아냥이 가득 담긴듯한 목소리에 에메트셀크를 돌아보고 화를 내려 하자, 어딘가 공허해 보이는 그 눈동자 한 쌍이, 컴컴한 어둠 속에서 나를 마주 보고 있는 것에 나는 또 ‘왜 당신이 그런 눈을 하느냐’ 물어보고 싶었다. 한참을 서로 눈을 마주 보다가 먼저 한숨을 푹 내쉬며, 에메트셀크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 먼저 자라. 난 할 일이 있으니. 그렇게 말하고 또 자리를 떠나려는 에메트셀크의 옷자락을 강하게 붙잡고 당겼다. 붙잡을 줄 몰랐는지, 뒤를 급하게 바라보며 넘어지려는 그의 몸을 자연스럽게 눕혀지도록 하고선, 침대에 덜렁 누워 버린 그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것보단 더 좋은 방법이 있죠. 총은 다룰 줄 아나요?”
“.........”
에메트셀크가,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눈으로 잠시 눈을 한 바퀴 도륵 굴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그의 하얀 이마에 박힌 갈레말 족의 상징을 검지로 살짝 꾹 누르고는 ‘덜 익은 청포도 같네’ 라고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묘한 표정으로 바뀐 에메트셀크를 아랑곳 하지 않고 되려 내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침대 위에서 당당히 서서 허리만 숙여 그를 내려다보곤 입꼬리를 올렸다.
“내 몸 하나는 내가 지켜야죠. 도와줄 거죠, 에멧?”
“....... 애칭 같은 거로 부르란 기억은 없는데.”
“뭐 어때요. 당신도 비밀이 많고 알려줄 생각은 없어 보이는데. 이거 말고 우리가 친해질 것이 또 있나요?”
“.......”
그러니 이렇게라도 친해지는 게 좋지 않겠어요? 보아하니 에멧도 친구는 없어 보이는데. 아주 장난스러운 미소까지 띄워 보이자 팍삭 찌그러지는 그의 미간을 또 한 번 꾹꾹 눌러주고는 서둘러 옷장에서 커다란 검은 로브를 꺼내 뒤집어썼다. 지금 가려고? 한밤중이란 걸 잊은 거냐는 식으로 대답하는 에멧에게 나는 옷장 문을 닫으며 이야기 화답했다.
“총구가 사람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시간도 가리진 않을 것 같거든요.”
4.
“조금 더 왼쪽.”
이건 조금 억울한 면이 있다. 나는 양 손으로 붙잡고 총을 쏴야 하는데 어째서 에멧은 한 손으로 총을 쏴도 흔들림이 없는 거지? 이를 악물고 왼쪽으로 총을 겨누어 쏘자 그제야 정확하게 과녁 중앙에 박히는 총알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제법 많이 쏴서 그런지 뜨겁게 달아오른 총을 그제야 쉬게끔 나무 상자 위에 올려두었다.
“좋아. 그나마 많이 괜찮아졌군.”
“너무 쏴서 손목이 시큰거려요.”
“넌 항상 적당히를 모르잖아.”
또 그 소리. 도대체 날 언제 또 봤다고 자꾸 저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총알이 들어 있던 실린더가 비어 갈수록 실력은 반대로 늘어가는 것에 만족해하며 총알을 넣으려는데, 에멧이 와서 총을 쳐다보더니 6개의 구멍에 있던 총알 중 하나를 빼내곤 다섯 발만 장전한 상태로 돌려주는 것에 멀뚱히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네 ‘성격’에 맞춰서 만든 거라, 그것도 아주 급하게 말이지. 안전장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니까. 혹시 모르니 한발 정도는 빼 두는 거야.”
총알 하나를 못내 아쉬운 눈으로 쳐다보니, 총알을 내 손에 쥐어는 줬지만 절대 넣어선 안 된다는 얼굴을 해 보이는 에멧에게 들릴 듯 말 듯,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자기는 6발도 다 넣고, 한 손으로 쏘면서. 그렇게 말하니 가소롭다는 듯 ‘다 들린다-.’ 하고 대답하고는 어깨를 가볍게 으쓱인 에멧이 말했다.
“나는 뭘 해도 절대 ‘죽지 않으니’까. 부러우시다면, 나처럼 되면 그만이지.”
“어떻게 하면 에멧처럼 되는데요.”
궁금해? 나는 네가 원하는 걸 다 알려 줄 수 있지. 그렇게 말하며 가볍게 내 턱을 검지를 굽혀 살짝 받치듯 들어 올린 에멧이 이어서 입을 열려는 찰나에, 절대 들어오지 말라는 침묵을 깨고 어딘가 묘하게 바리스, 그 사람을 닮은 듯한 사내 한 명이 사격장 안까지 들어오기 시작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것과 동시에 에멧의 손도 동시에 올라가려는 것을 급하게 그의 손을 붙잡아 내리는 것으로 저지시키고는 다가와 인사조차 하지 않고 가만히 쳐다보는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네가, 그 시종이로군.”
서늘한 시선이 닿자 등 뒤로 식은땀이 저절로 난다. 무어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에멧이 먼저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느긋하게 입을 여는 것으로 시선을 빼앗아 갔다.
“하. '황제'의 증손주께서 여긴 어쩐 일이실까. ‘황제’가 분명 여기 안으론 아무도 들이지 말라 했는데 말이지.”
“... 아버지께서, 어제의 무례를 사과하는 자리를 저 시종에게 마련하시겠다고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오, 이거 어쩌나. 그 시종은 지금 ‘황제’의 지시로 일정이 제법 바쁘거든. 그러니-.”
“좋아요.”
에멧의 말을 끊고 나는 총을 가죽으로 만든 총집에 집어넣고선 다시한번 웃어 보이며 에멧에게로 간 시선을 다시 거두어 나에게 돌리게 했다. 파란 시선이 뚫어지라 쳐다보지만-.
“고작 시종인데 그런 자리를 마련하는 데엔 이유가 있겠죠.”
“호오. 그럼 오늘 저녁 식사 때 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며 증손주라는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려 인사조차 없이 밖을 향해 걸어나갔다. 상당히 젊은데 시선은 거의 몇백 살 묵은 고룡 마냥 사나운 것이 잊히지 않아 몸을 가볍게 떨고는 총이 잘 집어 넣어졌나 확인하려는 찰나에 나를 내려다보는 에메트셀크의 따가운 시선에 결국은 그를 마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너. 저게 함정이거나 뭔 짓이라도 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럴 순 없겠죠. 저쪽에서 바라는 건 황제에게 타격을 줄 만한 정보를 원하는 것 같은데. 가장 가까이에서 황제를 모시고 있는 나에게 물어보기야 물어보지, 죽이진 못할 거고...”
그리고, 그쪽의 제안이 좋다면. 나 역시 받아들일 의사가 있고요. 그렇게 말하며 총집을 잘 간추려 두곤 그만 가자며 하려는 순간 손을 붙잡는 강한 손길에 앞으로 몇 걸음 가지도 못하고 멈추고 말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받아들이다니?”
“말 그대로예요. 바리스는 분명히 이 족쇄를 벗길 방법을 알 수도 있을 거라 생각하거든요.”
“족쇄?”
네. 가볍게 발을 들어 올리자 청아한 방울이 한번 더 울리는 것을 보고는 푸른 창공 너머로 멀리까지 날아가는 새를 쳐다보았다. 바람 흘러가는 기류를 따라 활짝 펼친 날개는 너무나도 자유로워 보여서. 다시금 마음을 들뜨게 했다.
“황제는 풀어줄 것 같지 않거든요. 나는 그에게 정보를 주는 대신 자유를 얻는 거죠.”
그리고 이 지긋지긋한 제국에서 나가는 거에요. 팔을 쭉 펼치고 기지개를 켜다가 혹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를 돌아보고는 나는 물었다.
이거, 풀어 줄 수 있나요? 있으면 풀어주고 나랑 여행이나 떠날래요? 에멧이라면 내 좋은 동료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나는 여유로웠던 에메트셀크의 얼굴이 아닌. 어딘가,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길 잃은 어린 아이 같은 얼굴을 해 보이는 에멧을 보고 나는 설마 하는 얼굴로 그의 손을 되려 붙잡았다.
“푸는 법을 모르니까, 내가 묶여 있는데도 풀어주지 못한 거죠? 내가, 얼마나 여기서 나가고 싶어 하는지 알잖아요.”
그리고 나는 에멧이 한참 뒤에서야 ‘....... 그래, 몰라.’라고 하는 답을 듣고 나서야. 그의 손을 놓을 수 있었다.
보이지 않는 총이 서로를 겨누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언제든 쏘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5.
“폐하, 예정대로 달라가브 위성과의 접촉에 성공하였습니다.”
“........”
“폐하?”
걱정보다 자신의 말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를 물어보는 시선에, ‘황제’인 솔은 그녀의 눈을 쳐다보았다. 자신의 아버지 덕분에 유능한 군사 중 한명이었던 넬 다르누스인 자신의 오빠를 잃었고, 그 때문인 복수심에 불타 아버지를 죽이고 스스로 ‘넬 다르누스’가 되기를 자처한 여인. 그런 여인과 이야기를 해도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솔은 상념에 빠졌다. 이것은 그가 오래간만에 겪은 가장 큰 고민거리였으니 말이다.
“폐하,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래, 메테오 계획은 그렇게 진행하도록 해. 가이우스 그놈은 이미 바리스에게 손을 들어 줄 예정이니. 그놈이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손을 써야 한다.”
“알겠습니다.”
은빛의 찬란한 갑옷이 빛에 따라 비치며 절그럭 소리를 내며 이내 자리에서 물러나려 하는 넬을 향해 솔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잠깐-. 불러 세우는 목소리에 물러가려던 걸음을 다시 돌려 공손히 고개를 숙여 보이는 것에 솔은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가 겨우 말문을 트기 시작했다.
“이 계획이 성공하게 된다면, 모든 것은 ‘무’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인간인 너에게도 소중한 것 쯤 하나는 있지 않나? 그걸 포기해도 괜찮겠나?”
“소중한 것 말씀이십니까.”
가면에 가려진 목소리가 희미하게 상념에 잠기는 듯했으나, 이내 뚜렷한 목소리로 그녀는 대답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화’. 그저 탐욕스럽고 치욕과도 같은 ‘인간’들을 정화 시키는 것. 그것뿐입니다.”
가볍게 그리 말하며 고개를 들어올린 그녀는 마저 입을 열었다.
“소중한 것은. 그 이후에 생각하면 될 일입니다. 일에는 순서가 있으며, 대의를 위해 작은 희생쯤은. 어찌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은 이내 그녀의 가면을 뚫어져라 쳐다 보았다. 가면 너머, 그녀의 시선은 어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정말 ‘제국’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죽음에 대한 강렬한 갈망에 사로잡힌 ‘신도’의 의도일까. 전자가 되었든, 후자가 되었든. 어차피 달라가브는 이 지상으로 떨어질 것이다.
달라가브와 접촉하는 것. 고대 알라그 문명의 중축인 그것과 접촉을 하게 되고, 성공적으로 일이 마무리 된다면. 알라그 문명의 힘을 바탕으로 야만신을 제어하는 것 또한 가능하리라. 그래-. 궁극적으로 야만신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하이델린과 조디아크를 우리 손으로. 죽어간 동포를 다시금 우리 품으로.
아니야, 하데스.
“그래. 그렇지. .......이만 물러가라.”
“예. 폐하.”
너라면 말릴 수 있어. 지금이라도 말이야.
‘우리’는 너무나 쉽게 본 거야. ‘생명’의 가치를.
위원회를 말려야 해.
솔은 이내 언제든 앉아도 늘 불편한 왕좌에 몸을 기대었다. 가볍게 손을 튕기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솔-. 아니, 에메트셀크는 이내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그래, 너무나 쉽게 보았다. 너무나 쉽게 보아, 여기까지 일이 틀어지게 된 것이다. 조디아크를 소환하면 그 모든것이 해결되리라 생각했지만. ...... 단 한 번만 성공하면 된다. 그렇게 된다면 너도, 아니.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아모로트의 찬란한 태양 아래에서-.
‘하데스’인 네가 제일 잘 알잖아.
이렇게 생명의 순환을 거스른 희생의 결과가 초래 하는 것.
‘죽음’을 관장하는 너라면 제일 잘 알잖아.
그렇게 네 얼굴을 보고 다시 네 입에서 내 이름을 들을 수 있다면-.
푸는 법을 모르니까, 내가 묶여 있는데도 풀어주지 못한 거죠?
완벽한 악역 정도는 얼마든지 자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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