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 1 이후에 연결되는 스토리 입니다.
-집착 1 다시 보기
https://luwen12.tistory.com/115
*해당 수위글은 오픈 공개합니다.
*파이널판타지14 암흑기사 퀘스트 50~80까지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 영미판 대사를 인용한 것도 있습니다.
- 칠흑 메인 음악 ending 버전인 tomorrow and tomorrow도 인용한 부분이 있습니다.
- 일부 대사를 각색, 첨삭한 부분이 있습니다.
* 브금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9EkzHqq5vVk
오늘도 어김없이 나는 낡은 주머니에 길을 두둑이 담았다.
나와는 닮은 듯 했으나 닮지 않은 사람에게 그 돈을 건넸다.‘
나를 대신해서 고맙다.’ 라는 화대를 내 돈으로 지불하고
나는 낡은 로브를 뒤집어 쓴 상태로 또 그 방문 앞의 문을 두드렸다.
“프레이.”
나는 항상, 당신을 기대한다.
“어서와.”
나의 목소리가. 당신에게 들리길.
“.........”
당신의 굳은살 잡힌 이 손이. 결국은 나의 손을 붙잡길.
“요즘 따라 자주 보는 것 같아.”
“그렇습니까?”
차마 밤마다 당신 에테르가 내 몸 안을 다 채울 정도로 가득 들어와, 앞으로 이렇게만 한다면 더 오래 버틸 수도 있다는 말은 입 안에서 맴도는 것으로 끝나 다행이었다. 약속 장소와 약속 시간은 아직 남았기에, 그에게 충분한 여유는 주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야 나도 마음이 편할 것 같았으니까. 게다가, 언제까지 그 얄궂은 밤놀이를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맴돌았다. 내가 없어지면? 또 다른 사람을 찾는 건가?
“밤에.”
“응?”
“........밤에 잠은 잘 주무십니까.”
나도 모르게 밤에 하는 일에 대해 말을 하려 했던 것을 서둘러 회피하곤 눈을 바닥으로 내리떴다. 낡은 나무 바닥이 제 발을 디딜 때 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것에 잠시 집중을 하다,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아 고개를 들어보니 조금 놀란 눈이었던 당신이. 나를 쳐다보곤 다시 웃어버린다. 어떤 의미일까. 눈을 깜빡이자 더 눈매가 깊어지며 눈주름이 조금 생길 정도로 웃어 보이는 당신의 행동에 오늘도 나는 마음이 아프다.
“왜? 많이 피곤해보이나?”
잠은 충분히 자는 것 같은데. 나른하게 몸을 이리저리 푸는 행동에 나는 그저, 그렇습니까. 그냥 예의상으로 물어봤습니다. 항상 당신은 당신 몸을 챙기지 않으니까요. 하고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갑작스런 침묵이 찾아오기도 전에, 낡은 주점의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빈민인 듯, 구걸을 하는 남자와, 그 뒤의 작은 여자 아이가 남자를 따라다니며 인사를 하는 것에 시선을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서슴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에게 주머니 속의 길을 한줌 쥐어 가득 주며 아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 주는 행동에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할로네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나는 또 한 번 실소하고 말았다. 아이가 연신 고개를 숙여 가며 인사를 해 낸 그 말. 이슈가르드의 수호신인 할로네. 그 상징 또한 3개의 창이 날카롭게 빛나는 문양을 가지고 있다. 평화를 누구보다 원하는 사람인데도 불고하고 전쟁신의 축복을 빌어주는 그 모양새가 웃겨 나도 모르게 픽 웃어버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남은 청동 잔의 있던 술을 다 비워버리고는 밖으로 나서려 몸을 돌렸다.
“어디가?”
“잠깐, 속이 좋지 않아서요.”
“따라가지.”
계산을 하려 주머니에서 길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두고는 내 뒤를 따라 나서는 모습에 나는 웃었다. 당신이 내가 하는 행동과, 말에 집중하는 것 보다 좋은 일은 없었으니까.
“아까, 그 아이도 엄마가 있겠지?”
“어떻게 압니까.”
“아버지를 쏙 닮은 아이였으니까. 분명 아이의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결실일거라 생각했어.”
결실이라. 그 말에 차가운 이슈가르드의 돌바닥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곤 입을 열었다. 투구 밖으로 하얀 입김이 부서지듯 나왔지만, 무슨 말이라도 해야 그와의 어젯밤 일을 잊을 수 있었을 것 같았으니.
“언약식에 대해 아십니까.”
“알지. 혼례 같은 거잖아.”
해본적은 없어서 모르지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움찔 했다. 당연히 하지 않아야지. 나도 모르게 누구랑 할 생각이라도 있냐, 물어보려 했지만 침착하게 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나란히 마주하고 걷는 그의 손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이내 앞을 주시하며 걸었다.
“에오르제아에는 열두 명의 신이 존재했다고 하죠. 언약을 하려면 그 신들의 비석 앞에서 기도를 올리며, 허락을 받는 과정을 거친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안 해서 잘은 모르지만. 당신의 말을 따라 하기라도 하듯 말하며 처음 당신과 내가 만났던 장소에 발을 디뎠다. 신은 믿지 않지만, 당신과 나만 아는 증표라도 여기에 새겨 넣으면. 당신이 내가 그리울 때 만나러 와 줄까 하는 생각이 불현 듯 스쳐지나갔다.
“전쟁과, 싸움은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기에. 영혼을 묶는 언약식을 하는 것이죠. 죽음과, 시간이 그 두 사람을 갈라 놓을 때 까지.”
“그래?”
아마 아이의 엄마는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을 해줄까,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의 손에는 반지를 꼈던 흔적도 없을뿐더러. 있었다 해도 생계를 위해 팔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이를 남편 쪽이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생계와 육아를 남편이 다 해야 했다는 소리니 아마도 없거나, 죽었거나. 추측의 끝은 정해진 답을 내렸지만, 나는 내 옆에 서서 어느새 내 손을 붙잡고는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을 마주보곤 눈을 작게 깜빡였다.
“분명 좋은 일이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나는 현실적인 답을 내는 대신 당신이 원하는 대답을 해 주었다. 그러자 당신의 눈이 초승달처럼 환하게 휘기 시작한다. 그렇게 나는 또 당신의 마음을 변호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잘 모르겠지만. 열두 신의 비석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존재하지요.”
더 이상, 길이 없을 때. 그때 마지막으로 간절한 염원이 있다면,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그러니 아마 할로네의 가호를 빌어 준 것이겠지요. 희망이란 걸 품고 말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당신의 손을 더 힘을 주어 잡았다. 그러자 그저 마주 잡았던 손이 잠시 풀리며 얽히듯 깍지를 껴 오는 것에 나는 그저 말없이 그 손을 마주 잡아 주었을 뿐이었다.
*
“흐으, 그만. 이제 더는.”
잔뜩 내 지른 신음과, 그에게 들킬까봐 부러 연하게 내는 목소리가 뒤섞여 방 안에 울렸다. 차가운 이슈가르드에서 유일한 난방장치라고는 벽난로뿐이었는데. 창문 밖으로 김이 더 뿌옇게 서릴 정도로 방안의 열기가 가득 차버렸다. 하필 침대도 아니고, 들어오자마자 손목을 당겨 창가 앞의 책상에서 그대로 바지만 내려 박는 행동에 기함을 했다. 혹시 몰라 뒤를 풀어둔 것이 천만 다행이라며 뒤에서 쳐올릴 때마다 덜컹거리며 유리창과 벽에 부딪히는 책상을 어떻게든 붙잡고 버텨 보려 했지만, 퍽퍽 거리며 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책상위에 아무렇게나 올려져 있던 술병들이 나뒹구는 것이 먼저였다.
“부족해……. 조금만.”
조금만 더. 그렇게 말하며 더 안으로 파고 들 듯, 아예 책상위에 내 한쪽다리까지 들어 올리게 해 박아대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창문에 손바닥을 올리고는 창문 위로 조금 더 두툼하게 겹쳐진 창살을 붙잡다 유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아, 아, 아. 흐읏. 아. 신음이 내뱉을수록 죽죽 창문에 기댄 손바닥이 밀려 내려가며 손바닥 자국을 남기는 것을 쳐다 보고는 이내 강하게 허리를 쳐박고 안으로 정액을 내뱉는 그의 행동에 빠듯하게 차오르는 에테르를 느끼며 그대로 눈을 감아버렸다.
“네 이름은 뭐야?”
“프레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건 내가 지어준 이름이고.”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당황해 눈을 조금 굴렸다. 프레이 미스트. 그에게 풀 네임을 알려준 적은 없지만. 그저 프레이라고만 해 줬을 뿐이니. 입에서 웅얼거리듯, 미스트. 라고 대답을 해주자 그가 되물어 본다. 미스트? 하고.
“미스트는. 그냥 저처럼 구름안개거리의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붙이는 이름이지요.”
나른함을 가장하며 그의 허리 위로 올라타고는 허리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절한 순간에도 박아댄 것인지, 아래가 다 헌것만 같지만. 온전히 그를 품고 있을 수 있다는 것만큼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저도 모르게 아랫배를 꾹 눌러 보니, 그의 것이 느껴지는 것 같아, 약간 부른듯한 배를 문지르듯 만져보고는 허리를 들썩였다.
“그러는, 읏, 당신이 자꾸 부르는. 그 프레이라는 사람은, 흐응.”
어떤 사람이죠? 그렇게 말하며 그의 뺨을 가볍게 매만지자 허리를 붙잡는 손이 거칠어졌다. 그는 어딘가 화가 나 보였다. 왜? 내 이름이 그렇게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가? 그의 눈동자를 보고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며 그를 끌어 안듯 허리도 낮추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눈을 감고 내 쪽으로 손을 뻗어 줘요. 당신의 코안으로 깊은숨을 들이쉬어, 공기로 폐를 가득 채우고, 입술 사이로 스치듯 내뱉고. 천천히, 천천히.
속삭이듯 내뱉는 내 말에 우습게도 그의 거친 허릿짓이 부드럽고 느릿하게 바뀌어 갔다. 아, 그래. 나는 여기서 당신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낀다. 내 말 한마디가 당신에게는 구속구며, 중재자지. 나는 그의 것을 품은 채로 그의 가슴에 나른하게 머리를 기대었다.
내 목소리를 듣고, 당신 심장 소리를 들어. 그다음 또 목소리를 듣고...
그는 무언가 빠져버린 사람처럼 내 눈을 쳐다보았다. 눈 안에 그를 담아보려 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그의 뺨을 쓸어 만지자 안도한 사람처럼 이내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며 눈을 천천히 감기 시작했다.
잘 자.
그게 ‘미스트’가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이니까.
*
“얼굴에서 광이 날 것 같다. 아주 밤에 여관이 떠나가라 해 대나 보지.”
“......닥치고 식사나 하시-.”
“다들 여기 있었네.”
능글맞게도 책상 위에 턱을 괴고 다 안다. 같은 표정을 해 보이는 시두르구의 입으로 빵을 강제로 집어넣어 주려 하자 그가 타이밍도 좋게 여관에서 나와 우리가 있던 테이블로 왔다. 당연하게도 내 식사거리는 없지만. 그를 위해 식사 1인분을 더 주문하고 다시 테이블로 앉자니 그가 시두르구의 등에 달린 검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암흑기사는 왜 기사 치곤 방패가 없지?”
“그거야, 최초의 암흑기사가 그것을 거부했기 때문이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빼앗겼기에 그저 버려버린 것뿐이야.”
나는 그들의 대화에 잠자코 끼어들지 않고 그의 몫으로 나온 식사의 고기를 먹기 좋게 조금씩 잘게 나눠 내밀었다. 그는 이제 그것마저 익숙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받아서 포크로 고기 한 덩이를 입안에 밀어 넣기 시작하며 얌전히 시두르구가 닭고기를 발라내는 것을 보며 듣기 시작했다.
“태초의 암흑기사는 매우 강직한 기사였지만. 어느 날, 빈민 아이들을 희롱하던 사제를 베어 죽인 일로 그 나라에서는 성직자를 살해한 죄에 관해 기사에게 죄를 물었지. 그는 ‘성직자’니까,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성직자를 해친 나쁜 사람으로 판단했는지, 그 기사에게 ‘암흑’의 길에 물든 자라며 매도하기 시작했고.”
그가 우왁스럽게 닭 다리 부분을 쥐어 비틀자 커다란 닭의 다리 한 덩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칼로 썰면 될 것을.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자 시두르구는 내 쪽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내 자기 앞 그릇에 넝마가 된 고기를 두고, 리엘 쪽으로는 칼로 조심스럽게 고기를 발라 깔끔하게 잘린 다리 한덩이를 접시에 올려 주었다.
“그 과정에서 시작된 결투재판에서 승리해 처형은 면했지만, 권력자들이 그의 작위며 영지며, 문장까지 빼앗게 되었지. 그 이후로 그는 문장이 그려진 방패를 버리고 검만으로 약자의 편에서 싸웠다. 그렇게 암흑기사가 시작된 것이지. 그런데 사실 암흑기사가 쓰는 ‘어둠’은 말이야...”
“프레이는요?”
어둠에 대해 딱히 궁금한 게 없었던 걸까. 말을 돌린 그의 말에 조금 움찔하며 옆을 쳐다보았다. 언제부터인지 부드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그의 시선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획 돌려 책상만 쳐다보다가 시두르구가 한숨을 푹 쉬고 입을 열어 자신이 말을 대신 해 주려 할 찰나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는, 시두르구의 후배로 들어왔습니다. 저는 배우는 것을 좋아했죠. 그렇기에 암흑기사뿐만 아니라 환술사의 길도 가고자 했고요. 이 사람들이 자꾸 다쳐서 오는데 별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만둘 수는 없지요.”
그리고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저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당신의 마음속에서 공명하듯 말하는. 당신이 지켜야 할 그 사람에 대해 더 고민하십시오. 나는 당신에 대해 잘 알지만, 당신은 나에 대해 너무 모르는데. 이제 와서 알려주면 우리가 무언가 변할까요. 난 항상 진심으로 당신을 대하고 있어요.”
눈치를 보던 리엘이 깨작거리며 식사를 하는 게 신경이 쓰였는지 시두르구는 이내 헛기침을 했다. ‘진심’을 무슨 의미로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내 말을 멈추고 그의 귓가에 가볍게 속삭였다.
‘나는, 당신과 함께라면 이런 영웅놀이가 아닌, 정말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
식사가 끝나고 한참 뒤에, 그는 지난번 약속과 같이 그 시간, 그 자리에 나와 얼굴을 마주했다. 나는 그가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조금 많이 기뻐했던 것 같다. 그래, 여행을 떠나자. 이런 영웅 놀이와, 가면 놀이에는 이제 지쳤다. 그와 함께 다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리라. 누군가의 눈치도, 누군가의 부탁도 들어줄 필요 없는. ‘나’를 위해서. 에테르야 주기적으로 흡수했지만 죽어간 육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것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구멍 뚫린 항아리에 물만 퍼부어 대는 격 수준이니. 금방 바닥이 보이는 건 당연지사였다.
“대심판의 문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도착하면 제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렇게 말하며 나와 마주한 그의 얼굴은 어딘가 아련해 보였다. 나는 그 얼굴을 외면했다. 당신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돼. 나는 그렇게 빠져나가는 에테르를 힘겹게 부여잡고는 그와의 여행 물품을 챙기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기다릴 대심판의 문 앞으로 가기 위해.
*
그래, 믿지 말았어야 했는데. 애써 마음을 다잡고 간 대심판의 문 앞에서 보는 건 그의 뒷모습뿐이었다. 기병들과 함께 달려나가는 그의 뒷모습에 나는 어딘가 분노와 격양된 감정이 들끓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고는 그를 붙잡을 생각도 없이 이를 악물었다.
다 죽여야 해.
이 보잘것없고, 구해줘도 고마운 줄 모르는 놈들에게는 그가 필요 없다. 다 죽여 없애던지, 그를 빼앗아 도망가든지 해야 하는데. 도망은 그가 이미 버린 선택지가 되어 버렸다. 내 말을 더 진중히 들었다면. 그는 나를 선택했겠지. 나는 말없이 등을 돌려 성벽 안으로 들어갔다. 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할 일을 했고, 이내 수상하게 느꼈던지 나에게 접근해 말을 걸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투구 안으로 웃어 보였고, 그의 머리를 붙잡은 건 동시였다.
*
“프레이!!!!!!!”
“.........”
내 이름을 부르며 달려온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누구의 피인지 모를 것이 옷에 다 묻어 버렸지만 개의치 않고 그를 돌아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오셨군요. 약속 장소에는 안 왔으면서 말입니다. 당신은 또 제 충고를 무시하고 영웅이라는 이름의 심부름꾼이 되었지 않습니까. 그러니 당신이 휘둘리지 않도록 주변을 청소하는 수밖에요.”
“너, 그렇다고 사람을 아무렇게나-.”
“사람들?”
나는 기가 차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아아, 무대 위의 가장 불쌍한 내 영웅. 나보다 남을 챙기는 것이 하나의 습관이라도 되어버린 양. 들으세요. 당신은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그냥 여행을 떠났던 여행자뿐이었어. 그런데 일이 이렇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이지. 인간은 어리석게도,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강한 자에게 의지하려는 버릇이 있지. ‘내’가 바다 위에서 겪었던. 리바이어선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그 괴물을 상대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면서!”
“너.”
“그래, 나는 너야. 영웅이 될 때마다 마음속에 억눌러온 공포와 증오. 그런 어두운 감정들의 환영이지. 애초에, 당신은 프레이가 죽은 사람인 줄 알고 있었잖아. 하지만 신경도 쓰지 않았지!”
나는 서러움에 눈에 힘을 주며 입을 열었다.
“넌 그런 사람을 찾고 있었잖아. 자유롭게 할 말을 하고 네가 하지 않을 일들을 대신 해 줄 사람. 내가 널 나쁘게 대한 적 있었나? 내가 네게 약속한 것들을 지키지 않은 적 있었나? 내가 우리 영혼이 속삭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던가?”
“.........”
“그런데, 왜?”
그런데 왜, 단 한 번이라도 당신의 인생을 살기 위해 떠나고자 하는 나를 외면해? 왜?
나는 당신을 자유롭게 할 권리가 있어. 나는 당신이니까.
내가 그림자고, 당신은 빛이니까.
지긋지긋한 내일을 결정하자. 어느 쪽이 되었든, 우리는 결국 하나니까.
나는 천천히 프레이의 육신을 버리고 ‘내’모습으로 마주해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의 표정에서 당혹감보다는 외면했던 것을 마주한 진실을 본 자의 안타까움이 더 깃들어져 나는 같은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암흑’은 말이야. 방패 대신 자신의 내면에서 소용돌이치는 어두운 감정을... 그리고 그 감정을 낳는 사랑을 힘으로 바꾼 것. 그것이 암흑이지.
문득 시두르구가 마지막에 하려던 말. 내가 프레이였을 적의 기억에 남아있던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검 끝을 겨누며 말했다. 묵직하게 손에 잡히는 검은, 늘 곁에 달고 다녔던 환술봉보다 더 익숙했다.
“당신은 좋은 스승을 원하기도 했잖아요.”
“.........”
“제가 당신을 잘 가르쳤을까요. 암흑기사로서 말입니다. 전 늘 의문이었는데. 오늘 그 결과를 알 수 있겠네요.”
프레이는 그가 시두르구의 후배일 적, 그것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마음을 사랑으로 바꾸는 것이죠? 전 이해가 안 됩니다. 하고. 나는 검을 고쳐 쥐었다. 그도 이내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검을 빼 들었다. 당장의 피를 더 보지 않겠다는 마음이리라. 과연 영웅답기도 하지. 가볍게 도약해 검을 크게 휘두르며 그의 검을 향해 내려 치자,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나며 그가 뒤로 조금 밀려 났다. 악력 하나는 좋은지 와중에 검이 튕겨져나갈 일도 없이 버티는 그의 행동에 눈을 가늘게 뜨고는 웃었다.
“슬프네.”
“..........”
“너무 잘 배워서 슬퍼. 당신에게 필요한 그 ‘암흑’이란 것이, 결국은 당신을 위해서 쓰이는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해서 쓰이는구나. 그게 당신의 사랑이구나.”
“..........”
“그런데 왜, 나는 사랑해 주지 않아?”
나는 이를 악물고 그의 심장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파동을 쏘아 보냈다. 그가 그림자 장벽으로 느릿하게 손을 뻗으며 파동을 막아 내는 것을 보며 빠르게 돌진해 장벽을 사정없이 그어내며 외쳤다.
“그렇게, 사랑하길, 원했으면!!!! 밤마다 괴로워할 거면!!! 진작 사랑해 주지 그랬어!!!!”
악에 받쳐 하는 말에 그의 눈동자가 가늘게 접히고는 강하게 검을 휘둘러 나를 밀쳐 내는 것에 서둘러 뒤로 빠르게 도약하듯 뛰쳐나왔다.
“너, 그게 무슨 소리야.”
“왜요. 밤마다 그렇게 달래 주었잖아요.”
나는 검을 끌고 그에게 느릿하게 다가가 한쪽 입꼬리만 올리고는 느릿하게 속삭였다. 내 목소리를 듣고, 당신 심장소리를 들어. 그 다음 또 목소리를 듣고... 나는 거기까지 말한 뒤, 그를 마주 보고는 들리지 않을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미스트는 좋았나요?”
그렇게 말하자마자 바로 검을 휘두르며 그의 심장을 노렸으나 그가 빠르게 검으로 막아내는 것을 보고는 웃어버렸다. 잘도 막네. 검끼리 강한 힘으로 마주하고 있으니 검날이 끼긱거리며 부딪히는 소리를 낸다. 덜덜 떨리는 검을 마주한 상태로 그의 눈을 쳐다보며 가볍게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기우뚱 숙이며 입을 열었다.
“난 좋았는데. 난 당신이 나를 원하는게 좋거든. 저런 보잘 것 없는 것들 말고. 난 항상 당신을 걱정했어. 내 암흑의 정의는 당신이니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
“........”
“돌려 말하니까 어려워? 그럼 다시 한번 물어볼게. 나를 사랑합니까?”
그의 표정을 읽기도 전에 나도 모르게 더 입을 열었다.
앞으로 한 번. 딱 당신과 더 만날 수 있다면. 그럼 좋을 텐데. 내가 버틸 수 있을까.
채념과 후회의 말 안으로 그가 기회다 싶었는지 강하게 검을 비틀어 튕겨 내었다. 그래, 이제와서 검을 마주하는 것이 후회될 리 없다. 그가 죽는다면, 내가 그의 육신을 차지하리라. 그렇게 내가 그가 못한 것들을 해주리라. 그리고 내가 죽는다면-.
눈 앞으로 빠르게 검을 고쳐 쥐고 달려드는 그의 행동에 나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내가 죽는다면.
*
검이 날아가 땅에 박히는 순간 나는 무릎을 꿇고 헉헉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 쉬었다. 에테르 고갈도 심해 더는 검을 들 힘도 없어 나를 쳐다보는 그에게 하염없이 말을 내뱉었다.
“그 힘이 널 계속 영웅으로 만들고, 고통스럽게 할 거야. 언젠가 그로 인해 목숨마저 잃을지 모르는데도.......”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을 등지고 선 그의 얼굴을 보다가 이내 한숨을 내쉬고 바닥을 쳐다보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그 돌들이 마치 내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 이제 됐어. 넌 앞으로도 사람들을 위해 계속 싸워나가겠지. 누군가에게 강요받지 않더라도, 자신의 의지로. 아아, 참으로 ‘암흑기사’다운 삶이로구나. 당신에게....... 정말 잘 어울려. 당신은 앞으로도 점점 더 강해지겠죠.”
하지만, 당신에게 도움이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렇게 말을 하는 순간 그가 나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에테르로 돌아가리란 걸. 나는 거절했다. 이런 내가 당신 옆에 있어봤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리라. 그의 결심 안에 내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죄악이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 손을 내밀었다.
“사랑하느냐며.”
“..........”
“버리고 가려고? 네가 있어야, 내 ‘암흑’도 완성되지.”
낯간지러운 소리를 하는게 어색한지 그가 눈썹을 찡그리며 웃어보이곤 말하는 것에 나는 천천히 그의 손을 붙잡았다. 기어이 끝까지 자기 입으로 ‘사랑한다.’라고 확정도 못 하는 사람인데, 참으로 많이 발전했다고 생각하며. 참, 당신이란 사람은. 어이없음에 웃어버리고는 에테르계에 들어가기 전 그의 등을 지고 입을 열었다.
“고마워.”
또, 함께 여행을 떠나자.
*
‘기사님에게도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모험가는 말 없이 그가 주었던 꽃 한 송이를 챙겼다. 처음엔 무슨 꽃인가 했더니, 가만 보니 붓꽃이다. 붓꽃의 꽃말이 뭐더라. 자신이 옛날 옛적 구해주었던 한 사람이 준 거라 받긴 했는데. 사실 프레이가 더 떠올랐기 때문에 받아 온 것이지만. 니메이아 꽃이야 하도 많이 보았기에 익숙했지만, 붓꽃의 꽃말이 무엇이었는지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가만히 커르다스의 험한 눈밭 위를 올라가며 그와 제대로 싸워버렸던 하얀테 전초지가 잘 보이는 언덕에 꽃을 내려놓았다. 잔소리할 사람이 없네. 근래 빠듯하게 싸워왔던 나날들을 그가 알고 있다면 분명 한소리 하겠지만. 쓴웃음을 지어 보이다가 하늘을 쳐다보려 하자니 바람이 강하게 불며 붓꽃이 하늘 위를 부유하며 바닥으로 사라진다. 춤을 추는 것처럼 떨어져 내리는 붓꽃에 시선을 주려 하니 문득, 잊었던 꽃말이 기억났다.
붓꽃의 꽃말은-.
“이렇게 결말에 피는 꽃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면-.”
익숙한 목소리에 모험가는 웃어버렸다. 오래간만에 잊어버렸던 그 잔소리가 귀에 박히는 것 같아서. 아, 붓꽃의 꽃말은.
“끝까지 살아남아 줘. 내일도, 또 그 내일도. (Tomorrow and tomorrow)"
좋은 소식.
“참, 당신이란 사람은!”
'[파이널 판타지14]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멧히카] Chain-3 (0) | 2021.03.13 |
---|---|
[에멧히카] Chain-2 (1) | 2021.02.02 |
[에멧히카] Chain-1 (0) | 2020.03.26 |
[파이널 판타지 14] 프린세스데이 (2020년 3월) 이벤트 영상 (0) | 2020.03.10 |
[모험수정] 다음 녹취록을 듣겠습니까?(수위) (0) | 2019.12.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