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st는 King's Raid OST Pandemonium - Not A Hero 입니다.
* 에멧 히카 -1편입니다.
*모험가가 7제해를 겪기 전에 있었던 일중 하나라는 느낌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가둬.”
짧고 간결한 옛, 소리와 함께 얌전히 잡혀가는 내 발목에는 묵직한 금덩어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마저 수군거릴 정도로 화려한 금으로 된 발찌가 방울까지 달려 움직일 때마다 딸랑거리는 소리를 낼 정도였다. 발 한걸음을 디딜 때마다 오가는 수많은 시선. 그리고 어울리지 않게 발을 옭아매고 있는 발찌의 뒤쪽으로 검은 사슬이 절걱거리며 딸려온다. 누군가에 손에 아마 쥐어져 있겠지, 사슬의 끝은.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붉은 융단의 끝, 첨탑처럼 솟은 의자에 그는 다리를 꼬고 삐뚜름하게 앉아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백발의 노인으로 보이는 남자는 틀림없이 이 제국의 황제 이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모두를 내려다보는 위치에 앉아 저렇게 거만하고도 형형한 눈을 빛내며 이쪽을 쳐다볼 수 있을까. 그를 등지고 돌아가도, 고개를 돌려 다시 그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군인 한 명이 등을 떠밀며 빨리 가라는 듯 재촉 하기 시작했다. 나는 결국, 고개를 돌려 그렇게 그 사람과 거리를 두며 멀어지기 시작했다.
청아한 방울 소리가 크고, 사람이 가득 찬.. 그러나 허전한 그 방과 복도를 매우기 시작했다.
Chain
1.
“신분 최 하위, 안(Ann, 제국의 비 시민 계급으로 대부분 노예 계층)을) 부여한다.”
너는 오늘부터 여기서 마구간 청소를 하면 된다. 도망갈 생각은 하지도 말도록. 어차피 그렇게 된다면 사형 말고는 면할 게 없겠지만. 그렇게 말하며 제국군의 군복을 입은 남자가 물이 가득 차 있던 나무로 만든 물통을 발로 차내어 버렸다. 추적해진 마구간의 바닥이 엉망이 되었고, 바닥의 더러운 흙먼지가 덕분에 옷에 물과 뒤섞여 튀어버렸다. 잡혀 왔을 때는 옷을 다 벗겨 버리고 치렁한 잠옷과도 같은 기다란 드레스 형식의 옷에 발에 발찌만 차게 했더니, 이제는 그나마 인간다운 행동이라도 가능한 옷을 입혀 놓고 저런 추태까지 부려주신다. 어이가 없어 발찌고 뭐고 빼서 부숴버릴까 싶었지만, 금의 가치는 상당히 높다. 언젠간 탈출에 분명 도움이 되겠지. 군복을 입은 남자가 낄낄거리며 마구간을 벗어나는 것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도대체 뭐야.”
한쪽 구석에 잔뜩 쌓인 지푸라기 더미에 털썩 앉으려니 마구간에서 검은 말 하나와 흰 말이 이쪽에 시선을 주는 게 느껴진다. 검은 말은 내가 자신의 지푸라기에 앉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머리카락을 뜯어먹으려 하는 것에 기겁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버렸다. 아, 이젠 말까지 무시하네. 별 생각이 다 들어 한숨을 푹 내쉬고는 다 먹어 비워져 버린 여물통에 대충 아무렇게나 건초를 무더기로 쏟아 넣어주곤 한숨을 쉬고 말을 쳐다보았다..
자신은 뭐, 대단할 것도 없는 모험가였다. 그저 국경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잠깐의 호기심이 들었던 것뿐이다.. 그래서 조금 국경선을 남몰래 넘어 제국의 식민지라 불리는 알라미고에 도착했던 것뿐이다.. 물론 그것이 위험한 일인 것은 알고 있지만 보다 큰 도전엔 큰 모험이 함께 할 것이라는 내 신념에 따라 행동한 것이기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문제는 변방지대에서 높은 돌 바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다가 황제의 행렬을 구경하게 되었고,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본 황제와 눈이 마주쳤던 것이다. 언제 다가온지도 모를 마도 손아귀에게 붙잡혀 그대로 덜렁 옮겨지기까지 했으니. 발버둥을 치기에는 너무나 인원이 많았다. 그렇다고 내 몸 하나 구사하기엔 아직 제대로 배운 마법이나 호신술, 무기 다루는 것들이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엇도 할 수 없던 것이 더 문제였다. 이렇게 잡혀 올걸 생각이나 했겠냐만은.
“아, 여물을 먹으라고, 여물을!”
머리카락 한 움큼이 또 말 입안으로 질겅거리며 뽑히려 하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붙잡고는 서둘러 상념에서 빠져나와 오물로 더러워진 바닥을 쳐다보았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살아야, 나갈 구멍이라도 발견했을 때 찾을 때, 도망이라도 치지. 이런 슬픈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슬처럼 생긴 팔찌가 또 쩔렁거리며 방울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
“다 좋은데, 말을 탈 때는 영 불편하단 말이야. 마도 아머가 훨씬 편하다고.”
이젠 제법 친해져 어느 정도 말까지 터 놓는 병장이 투덜거리며 말 위로 올라탔다. 말이 느릿하게 움직일 때마다 아래쪽이 아픈지 알 수 없는 소리만 잔뜩 내고는 결국 말 위에서 다시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꾹 참았다. 모른 척, 제법 깨끗해진 마구간의 청소를 마무리하고는 커다란 솔로 검은 말의 갈기를 쓸어내려주며 빗질을 해 주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말을 잘 타지 않은 건지, 처음에는 보기에는 그냥 그러니 저러니 수준에서 그쳐버린 말이 이제는 덩치뿐만이 아니라 몰래 타고 돌아다닌 보람이 있을 정도로 근육이 붙었다. 하얀 말이 이내 투레질을 하는 것을 보고는 알았다며 뺨을 쓸어 만져주곤 웃자, 병장이 말고삐를 쥐고는 결국 마구간 안으로 말을 다시 집어넣어버렸다..
“이건 아니야. 일단. 중요한 부위가 너무 아프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균형을 못 잡겠어.. 중요 부위야 어떻게 하면 된다지만.”
결국에는 웃음을 터져버리자, 자신이 한 말도 스스로 웃겼는지 어깨를 으쓱이고는 가볍게 내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 나가버렸다.
갈색 말은 영문도 모르고 밖에 나선 지 몇 분 되지도 않게 그냥 들어온 것이 서러운지 연신 투레질을 하며 앞발로 바닥을 박차기 시작했다. 까만 말의 등을 연신 쓸어주며, 제국군들이 타고 다니는 마도 아머라는 기계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푹신해 보이진 않았지만, 의자도 있어서 균형뿐만 아니라 능숙하게 조절할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구조였다.
“........ 하다 못해, 초코보 안장이라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 하고 잠시 빗질을 하던 손을 멈추었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을까. 손을 움직이는 것을 멈추자 검은 말의 투명한 검은 눈동자가 내 눈을 마주한다. 어쩌면 더 움직이라는 신호였을 수도 있겠지만, 마치 ‘답을 이제야 알았냐.’하는 눈으로 쳐다보는 것 같아 환하게 웃고는 가볍게 말의 뺨에 입을 맞추고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왔다.. 분명 노예들이 있던 곳에 전문적으로 가죽 공예를 했던 노예가 있다. 어떻게 해서든 가죽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빠르게 바람을 가로지르며 풀 밭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어느새 이 생활에 익숙해져 버린 나 스스로를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말이다.
3.
“흐음. 분명, 여기가.......”
말안장은 딱 한번, 그리다니아에서 스쳐 지나가듯 보았다. 워낙에 숲에서 사는 지역 주민들이다 보니, 총사령부에서는 말을 잘 타고 다녔는데 그때 철갑을 입은 말의 등에 말안장이 올려져 있던 것을 보았다. 겨우, 당분간 저녁식사분의 빵을 대신 주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한 움큼 가져온 통가죽을 조심스럽게 칼로 자르며 그 모양을 떠올렸다. 초코보의 것과 크게 차이가 나진 않겠지만, 말의 체형을 고려해서 조금 더 폭을 좁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또, 말 타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제국의 사람들에게는 발 디딤판도 있으면 좋겠다 싶어 근처에 마도 아머 수리를 하는 곳에 일하는 노예에게 철판을 구해 가죽에 박아 발 디딤을 할 등자를 만들었다.
“....... 제법 잘 만들었네.”
내 스스로가 봐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결과 -비록 가죽이 좀 모자라 오리고 남은 자투리로 더 꿰매서 이것저것 만들어야 했지만-를 이룬 것에 이마에 맺힌 땀을 쓸어내렸다. 마구간 바로 옆의 작은 오두막집에서 살던 나의, 초라하고 낡은.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진 집의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달 하나가 구름에 슬며시 가려져 밤을 비추고 있는 것을 보며 안장을 집어 올렸다. 워낙 말을 타는 사람도 없거니와, 말에 관심도 없던 터라 주변의 경계가 생각보다 허술했기도 했으니 말 타기에는 최적의 조건이었다. 조심스럽게 집을 나서 마구간 안에 들어서자, 선 채로 졸고 있던 검은 말과 하얀 말이 발소리에 눈을 떴다. 검은 말은 이내 귀찮다는 듯 다시 눈을 감고 모르쇠로 일관하기에 결국은 하얀 말을 꺼내 안장을 씌우고 배 아래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등자에 발을 끼고 가볍게 뛰듯이 말안장 위로 올라타니 예전과 전혀 다른 안정감에 스스로 만족하며 웃어버렸다. 늘 그랬듯 고삐는 탈 사람에게만 지급되어, 나는 별다른 고삐를 가지고 있을 수 없기에 말의 갈기를 쥐고는 천천히 말을 타고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마구간을 나서자 시원한 밤바람이 이마를 적시던 땀을 앗아가는 것을 느끼고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다각 거리는 말굽 소리조차 크게 들리는 것만 같은 한적함에 약간의 안정감과, 언제 들킬지 모른다는 불안함이 겹치자 조금 마음이 다급해졌다. 말 갈기를 쥐고 다시 얼른 돌아가야겠다며 고개를 돌리려 하며 옆구리를 가볍게 걷어차자 말이 순식간에 앞으로 박차 달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갈기를 쥐고 옆으로 꺾어 보려 해도 말을 안 듣고 앞으로만 달리기 시작하는 말의 행동에 놀라며 몸을 최대한 낮추고 침착하게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을 가르며 말을 침착하게 하기 위하여 워, 워 하며 연신 소리를 내보았다. 마치 미친 것처럼 들리지도 않는지 달리는 말에 당황스러워 하자 이내 성 안쪽에 마련된 숲 속 길까지 달려가며 나뭇가지를 아무렇게나 헤쳐 나가는 것에 이를 악물었다. 팔이며 다리며, 잔가지에 쓸려 아프기까지 한데 멈출 기미가 없어 눈을 질끈 감으려는 찰나, 천천히 속도가 늦추어지는 것을 느끼곤 감았던 눈 한쪽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
이제는 터벅터벅 소리까지 낼 정도로 꽤 속도가 가라앉아서 양쪽 눈을 다 뜨고 돌아보자, 숲 가운데에 누군가 관리한 듯 깨끗한 수질의 연못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곤 주변을 둘러보았다. 말은 익숙한 듯 고개를 숙여 물가에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고, 나도 천천히 내려 얼마나 긴장했는지 땀까지 나버린 손을 옆에서 씻었다.
“잘 훈련된 말은 귀화 본능이 뛰어나지. 예컨대, 장수가 죽어버리면 가끔 말 위에 장수가 쓰러진 상태로 다시 본진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이 아이도 그런 거겠지.”
딱 한번. 그것도 딱 한 단어만 말했지만, 그 목소리가 잊힐 리가 없었다. 넝마가 된 옷을 추스를 생각도 없이 옆을 쳐다보자, 나만큼 편안한 옷을 입은 황제가 언제 왔는지도 모르게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런 황제를 쳐다본 말은 익숙하게 황제의 옆으로 다가가 머리를 숙이며 고개를 살짝 흔들기까지 했다.
“이건, 안장이군. 네가 생각해낸 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이 생긴 노인의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하얗게 세어버린 - 원래 백발인지는 모르겠지만 - 머리와 수염이 무색하게도 빛나는 눈동자에 침을 삼키며 대답도 못하고 서 있으려니 말안장에 익숙한 듯 타고 올라가는 황제의 행동을 보며 눈을 감았다 떴다.
“그래, 쓸모는 있구나. 이 정도면 마도 아머가 필요 없을 때 대책 정도는 되겠지.”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어쩐지 비웃음과 조롱끼가 담긴 것 같은 웃음 섞인 말에 고개를 숙여버렸다. 물어보고 싶은 것도 한가득이었고, 그렇다고 물어보았다간 저 눈매보다도 날카로운 검날이 목을 스쳐 지나갈 것 같았다.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자니, 말이 내 근처까지 다가오는 게 느껴져 고개를 들고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내린 황제가 말을 내게 돌려주고는 말없이 먼저 등을 돌려 떠나기 시작했다. 걸어 가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 것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나는 연못을 등지고 서, 그의 등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4.
“... 해서, 다음 계급인 센(Cen. 상급 시민) 계급 중 제작업을 부여한다.”
이례적으로 목욕탕을 제대로 쓰거나 한 적은 처음이었다. 연못 덕분에 평소에도 몰래 가서 씻곤 했지만, 제대로 더운물에 목욕을 한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사람 두세 명이 갑자기 처소에 온 것이 사건의 발달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마구간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군인 두 명과 아무래도 시녀로 보이는 여성 한 명이 와서 어딘가로 따라오라며 손짓을 해 보여 따라 가자 마자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완벽하게 새 단장을 하고선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홀에서 계급의 승격을 받게 되었다. 씻을 때 발에 걸린 사슬로 만들어진 발찌가 방울소리를 청아하게 내는 것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는 에오르제아인이기 때문에, 이것이 얼마나 파격적인 행 보였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적어도 갑자기 날아오는 따가운 시선 덕분에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안 그래도 황제와 마주친 이후로부터 일진이 사나운 것 같았는데, 더 사나워지는 것 같다며 그저 고개만 꾸벅 숙여 인사했다.
“숙소는 어떻게 하겠나. 지금 쓰고 있는 숙소도 사용은 가능하지만, 제작 전문인들의 숙소로 배치해 줄 수 있다만.”
여전히 오만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황제의 목소리에 한참을 고민했다. 황성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게다가 이제는 말들 또한 자신에게 익숙해져 다른 사람의 말은 듣지 않을 것도 새삼 염려되었다. 정이라도 든 것인지. 고개를 저어 보이며 원래 쓰던 숙소를 쓰겠다 하니 그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러도록 하던지. 하는 짧은 말만 건네고 황제는 가보라는 듯 손을 꺼떡였다. 황제의 단상 앞을 빠져나가려 하니 가면을 써도 잘 들리는 그들의 대화가 귀에 꽂히기 시작했다.
“뭐야, 저 야만족은. 황제가 아끼는 애첩이라도 되는 건지. 나원 참.”
“천한 것을 위로 올리다니. 이런 일은 전례에 없던 일 아닌가요?”
“이렇게 되면 제국 공화당파 입장으로서 황제에게 한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저마다 한입씩 말을 하자 순식간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변하기 시작했다. 이내 남자 한 명이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 까지 보았으나, 그것까지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꽂혀있었다.
가시밭 위를 거니는 기분이었다.
5.
“황제가?”
“예. 발에는 심지어 제국 문양이 새겨진 발찌까지 달고 다니고 있었습니다.”
“....... 감시 해 두도록 해. 그 작자가 데리고 온 놈이다. 틀림없이 무언가 있겠지.”
남자는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창문 너머의 풍경을 바라보곤 말을 했다. 바리스 예 갈부스. 다음 황제로 뽑히는 유력한 후보 중 하나. 유난히 황제와 사이가 서먹하기로 소문난 그 손자의 눈동자의 색은 황제와 아주 유사하게 닮아 있었다. 바리스는 주먹을 쥐었다. 그 무엇도 더 이상 내주지 않으리라. 그의 정체도 알았거니와 더 이상 그 늙은 황제가 자신을 인정하지 않고 휘두르는 것에 대한 복수는 꼭 해 주어야겠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우선은 급한 불을 먼저 꺼야 했다. 자신이 황위를 가지기 위해선 수많은 피와 희생은 물 보듯 뻔한 것이었다. 황제에게 들키기 전에 남몰래 군사를 키워야 한다. 그래야, 이 시작부터 잘못된 제국의 역사를 바꿀 수 있으리라. 자신은 그렇게 하고 말리라. 바리스는 저물어 가는 태양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제국의 태양은,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며.
6.
“행동이 빠르군.”
황제가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으나, 소수의 사람들 중에서 그 누구도 웃는 사람이 없었다.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시종을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순차적으로 다 먹은 접시와 음식을 내놓았다. 잘 익은 양 갈비가 연한 갈색빛을 띠고 있었지만 솔 황제는 느긋하게 나이프를 들어 고기를 갈랐다. 레어로 익혀진 고기에서는 핏물처럼 육즙을 흘렸다. 선홍빛의 육즙이 떨어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솔은 고기를 잘 썰어 한입에 털어 넣고는 느릿하고 천천히 씹었다.
“내 손주가.”
말을 마칠 때마다 고기가 조각나는 것을 사람들은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점점 뭉개지듯 갈라지는 고기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더 숙일뿐이었다. 낭자하게 도륙된 고깃덩이를 보고 솔 황제는 냅킨으로 입술을 가볍게 닦았다.
“덤벼들겠구나. 재밌겠군. 쉽게 이기려 하면 재미가 없는데 말이지.”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솔은 이내 손가락을 가볍게 까딱였다. 늘 따라다니던 수행원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자 수행원은 놀란 기색도 없이 고개를 숙이며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자신이 맡은 임무를 다 하기 위해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황제의 심기가 좋지 않은 것을 알면.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는 모두가 아는 이야기니까.
7.
“아,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명령대로 할 뿐입니다. 갈아입으세요.”
제법 수요가 늘어난 안장을 만들고 있었는데, 계급이 올라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계급이 올라가 버렸다. 게다가 심지어 이번에는 숙소의 선택권도 없어졌고, 황제의 직속 시종 계급인 “더스 (Dus)까지 올라가 버렸으니 주변의 시선이 예전보다 나빠졌으면 나빠졌지 더 좋아질 리 없다. 사람들이 이제는 거리까지 두기 시작하는 것을 보니 김까지 빠질 지경이었는데 더없이 완벽하게 외톨이가 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새로 배정받은 방에 집사복처럼 보이는 연미복을 입고 장갑까지 꼈다. 발찌에 대해 물어봤으나 그저 발찌는 계속 착용하고 계셔야 한다는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다 좋은데, 그 소리가 너무나 거슬렸다. 마치 무언가에 귀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나로서 상당히 거슬리는 것이었다. 나는 모험가였기 때문에.
“허리를 더 세우세요.”
폐하의 직속 시종은 다른 시종과는 급이 다릅니다. 누를 끼치지 않게 행동하세요. 자, 허리를 피고 어깨에 힘을 푸세요. 식기를 내려놓을 때에는 항상 손가락으로 소지(새끼손가락)로 쿠션 역할을 해 준 뒤,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지 않게 내려놓아야 합니다. 걸을 때에는 구둣발 소리가 들리지 않게 걸어야 합니다 등, 아주 시종일관 잔소리에서 떠나질 못하니 머리가 다 아파질 지경이다. 다림질에서부터 식기의 놓는 간격까지. 모든 것을 다 외우고 암기하려 하니 머리가 터지다 못해 사라질 것만 같았다. 연습기간 중에는 황제에게 누가 되면 안 된다며 직속 상사에게 미리 몇 달간 연습을 해 보는 것으로 대체하는 것 같았지만, 차라리 황제가 더 나을 것 같을 정도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틀린 부분에 대해 지적을 하니 죽을 맛이었다.
“아, 차라리 마구간에나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하지.”
침대에 널브러지자마자 서둘러 다시 일어나 셔츠가 구겨지는 것을 확인했던 제 스스로에게 더 실망하며 한숨을 내 쉬곤 테라스의 유리문을 열고 밖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새가 푸드덕 거리며 날아가는 것이 보여 한숨을 쉬고 비스듬하게 테라스 난간에 걸터앉으려니 다리에 달린 방울이 딸랑거린다. ...황제를 만나면 적어도 이 방울만큼은 때내어 달라 말할 생각이었다. 지난번에 억지로 한번 벗어 내려하니 전류가 통하는 느낌과 함께 거부반응으로 울렁거리는 증상까지 더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벗는 것을 포기한 지 오래였다. 적당한 울렁거림이면 괜찮겠지만, 균형을 잃어버릴 정도로 어지러운걸 보아하니 애초에 도망가는 것을 막는 용도의 장치인 것 같았다. 방울을 손 끝으로 살짝 매만져 보자 청아한 소리가 아닌 덜그럭 소리를 내며 방울 안의 구슬이 굴러다닌다.
“....... 거지 같네.”
떨어지면 그 그리움이 배가 되어 돌아온다. 이제는 이 제국에서 탈출할 기회를 엿보는 것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마음이 생겼다. 그러나, 이따금 떠오르는 야영지에서 먹었던 고기의 맛이라던지.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했던 여행이라던지. 자유롭게 거리를 노닐다가도 숲 속의 새소리에 평화롭게 숨을 들이켜는 생활들이 그리웠다. 난간에 걸터앉은 상태로 다리 하나를 들어 올려 난간에 올리고는 팔짱을 껴 그 위에 올리고 고개를 파묻었다. 지쳤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은 그 모든 것에. 이제는 여행을 떠난 것이 후회가 될 지경이었다. 그때 그와 마주하지 않았으면 이런 곤경까진 처하지 않았겠지. 이젠 스스로에 대한 서운함보다 제대로 설명도 안 하고 끌고 와 버린 제국에 대한 증오가 조금씩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 하아.”
고민의 끝은 없었고, 답해주는 이 또한 없었다. 그저 스스로의 고민거리에 스스로가 짓눌리는 기분에 나는 깊게 숨을 내 쉴 수밖에 없었다.
8.
“오늘은 이 방을 치우면서, 제국의 역사와 오늘 본인이 잘못한 점에 대해서 스스로 반성하세요.”
뭐, 사실 별달리 치울 것도 없는 방이었고. 사실은 자신의 상사가 모처럼의 포상을 주는 거라 생각했다. 오늘은 실수한 것도 거의 없었으니 말이다. 평소 보이지 않던 미소까지 지으며 오늘은 여기만 치우고 쉬어도 좋다며 복도의 맞은편으로 걸어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다가 낡고 오래된 서재들의 책을 훑어보았다. 이미 누군가 관리를 잘해 놓은 오래된 책들은 그 빛이 바래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곰팡이의 눅눅한 향기도 조금 났고, 햇볕에 책들이 덥혀져 나는 특유의 목제 향기 같은 냄새도 나는 듯했다. 하얀 장갑이 더럽혀질까, 혹여나 책을 뽑아보지 않으려 했지만 별달리 할 것도 없어 순서가 맞지 않은 책들 몇 권을 뽑아 다시 정리하며 모처럼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 그래. 그래도 이 정도면 사는 거지. 조심스럽게 익숙해진 방울소리를 무시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벽 한쪽에 걸린 황제 일가의 초상화를 보게 되었다. 아무래도, 현시점에 맞게 초상화를 다시 정기적으로 그려 넣는 듯. 많이 바뀌지 않은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아직 직접적으로 마주한 적 없는 제노스라는 인물은 고사하고,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바리스. 그리고, 아무래도 현 황제의 아들인듯한 두 남자와, 그런 사진들 제일 위를 군림하듯 걸려있는 황제, 솔 조스 갈부스.
“아, 이거 눈이 잘못됐네.”
이렇게 웃는 사람은 아닌 거 같은데. 마치 인자하게 어디 옆집 할아버지 같은 은은한 미소를 띤, 성격 좋아 보이는 황제 한 명을 그려 놓았으나 내 눈에는 그저 우스워 보였다. 실제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긴장 좀 했겠다며.
“그래. 눈이, 조금 더.”
어차피 보는 눈도 없겠다, 황제의 그림 앞에 높은 책을 꺼낼 용도로 쓰는 사다리를 끌고 와 눈썹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고는 조금 각을 세워 보았다. 강한 인상. 항상 무언가를 누를 준비가 되어 있는 얼굴. 그래, 이 얼굴이지. 혼자 만족스럽게 웃으며 낄낄 거리며 웃었다. 하여간 성격도 더러워서, 아주 누구를 어디 공 굴리듯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이 아주 그냥.
“그렇게 인상이 더럽나?”
“맞아. 입꼬리도 조금 더 내려가야 할 것 같.”
“호오.”
싸한 느낌에 뻣뻣하게 굳어 뒤를 돌아보자, 아래쪽에서 이쪽을 올려다보는 남자의 모습에 놀라 벌떡 일어나 버렸다. 덕분에 뒤로 넘어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느릿하게 그려지는 것만 같아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을 꾹 감아버렸다. 내심 잡아 주겠지 하는 기대감과 함께. 그러나 쿠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대짜로 뻗어버린 내 모습과, 그것을 혀를 차며 쳐다보는 이상한 머리카락에 부분적으로 하얀 머리가 염색된 남자. 그리고 싸하게 밀려오는 고통에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아, 민망해.
“여기는 이미 청소가 다 끝났을 건데.”
“어째서 안 잡아 주셨습니까.”
“내 손에 권리라도 맡겨 두었나? 누가 들으면 당연히 도와줘야 하는 줄 알겠군.”
“돕는다고 뭐가 나빠지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 황제의 초상화 눈썹을 가지고 장난치는 시종 치고는 입이 좀 긴데. 그는 어깨를 으쓱이면서 이내 무릎을 굽혀 쭈그려 앉고는 내 뺨을 장갑을 낀 손으로 두어 번 두드렸다.
“세상은 냉혹하지. 누군가가 당연히 친절을 베풀거라 생각하는 네가 이상한 거야. 내가 암살자였어도 도와달라 했을 건가?”
“.........”
거 보라지. 그래도 그렇게 널브러진 꼴이 웃겼으니 손 정도는 내밀어 줄게. 그는 몸을 일으키곤 손을 뻗어왔다. 어서 잡으라는 말이나 표정도 없었다. 그저 ‘선택은 네 몫’이라는 표정밖에 보이지 않아 눈을 깜빡였다.
“제가 암살자이면 어찌하려고 도와주십니까?”
“너처럼 허술한 암살자가 있을 리 없지.”
그것도 그렇지요. 나는 손 내민 것을 거절하고는 가볍게 장갑 낀 손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일어나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는 ‘이것 봐라?’ 하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사다리를 치우기 시작했다. 오늘은 좀 쉬엄쉬엄 일하나 싶었더니 저런 이상한 사람이 또 엮여버린다.
“발에 뭐라도 달린 건가, 아주 소리가 잘 들리네.”
그 말에 나는 움직이던 것을 멈추고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사실 노려본 것이 더 가까운 것이라 생각될 정도지만. 또 어깨를 으쓱이는 남자는 나른한 눈으로 발찌가 달려 있을 발을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불편은 해 보이는군. 소리가 나서 어딜 가나 눈에 띄니 도망은 칠 수 없겠지만.”
“그래요. 왜, 안타까워 보입니까? 풀어라도 주시려고?”
“풀어줘? 내가?”
웃기는군. 내가 그걸 왜 해줘. 피식 웃으며 그는 손가락으로 발찌가 달려 있는 곳을 가리켰다. 뭔가 나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왜지? 그냥 당연히 그가 마법을 쓸 것 같다라는 본능적인 촉이 느껴졌다 해야 하나.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한 반응속도에 다시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남자는 이미 눈치챈 듯 손가락을 내리곤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네 이름이 뭐지?”
“지나가는 시종 이름까지 기억하실 생각이십니까. 알고 싶으셨으면 진작 도와주시지 그러셨습니까.”
“네 입이 네 명줄을 갉아먹을 수도 있겠군.”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네요.”
가볍게 발을 구르자 방울이 쩔렁 소리를 내며 흔들린다. 봤냐는 식으로 남자를 쳐다보고는 창문 밖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나가고 싶어도 못 나가는데. 그렇게 해서라도 여기서 떠나면 나야 좋지요.”
“..........”
그런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내 발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거북해 뒷걸음질을 치며 고개를 숙이곤 나가보려 했지만, 그의 말이 잠깐 발목을 묶어두는 듯 멈추게 해 버렸다. 그 발에 걸린 사슬. 검은색과 붉은색이 금사슬과 뒤 엉킨 이유를 아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초상화가 걸린 곳을 쳐다보았다.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황제를 쳐다보는 그의 모습이 이질감이 느껴졌다.
“모릅니다. 애초에 제국에 대한 정보는 들어본 적도 거의 없어서요.”
“사슬은 구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때론 강한 결속을 의미 하기도 하지.”
그는 나지막하게 옛날이야기를 하듯 입을 열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또다시 나른한 감각이. 낯선 사람과 함께 있는데도 편안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 오래간만이라 이상하게 느꼈지만,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사슬은 ‘단결’을 의미하며 중앙의 붉은 사슬은 제국을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말한다는 것에 바지를 조금 당겨 발에 걸린 발찌를 쳐다보았다. 그런 거구나.
“그렇지만, 바리스 예 갈부스. 지금 황제의 손주의 이마를 보았나?”
그가 손으로 바리스의 초상화를 가리키자 나는 그의 이마를 조금 더 자세하게 쳐다보았다. 그의 이마에는 마치 제국의 국기와 비슷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역대 황족들에게는 그런 문양이 보이지 않았는데.
“바리스. 귀여운 손주분은 황제를 싫어하지. 그래서, 그 붉은 사슬 부분을 새기지 않았다.”
“어째서죠? 그것은 ‘희생’을 나타낸다 했지 않았습니까?”
오, 그건 간단해. 바리스는 ‘희생’한 자를 구분하거든. 황제가 말하는 ‘희생자’와 그가 생각하는 ‘희생자’는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빼버린 것이겠지. 황제는 ‘희생자’를 아꼈으니까. 그건 당연한 거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 황제를 떠나 그것 자체가 숭고함을 담고 있으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시선을 조금 내려 다른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그나마 현 황제의 모습을 어딘가 조금 닮았지만, 아주 젊은. 그러나 남들보다 앞쪽에 위치한 그림에 시선을 머물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황제에겐 아들 둘이 있었지. 첫째 아들에게서 바리스 예 갈부스라는 손주를 보았고, 그 아래로 제노스 예 갈부스가 태어났지. 둘째 아들도 있었지만.. 원래대로라면 첫째 아들에게 황위를 물려줄 생각이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이 죽자, 황제는 모두를 한심하게 여겼지.”
아, 인간은 나약하구나. 아주 나약하구나. 하고 말이야. 그는 마치 황제의 이야기를 책을 읽듯 설명하고는 내 쪽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황제는 생각했다. 가장 강력한 인류를 만들자고. 그래서 그는 젊은 시절부터 모든 나라를 정복하기 시작했지. 강한 결속력! 그것만이 이 모자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으니 말이야. 그렇지만 순탄하진 않았다. 그의 이름답게 말이야. 그의 이름은.. 솔 조스 갈부스.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Solus. 솔루스.”
유일한, 혼자라는 뜻의 단어이기도 하지만, 외톨이. 고립된 이란 뜻으로 쓰이기도 하는 단어지.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한참을 말없이 그렇게 서 있었다. 깊은 침묵에 그가 새삼 황제에 대해 너무 잘 안다는 느낌을 지우지 못해 물어보았다.
“황제와 친하십니까?”
그 말에 그는 무뚝뚝한 표정에서 미소를 조금 지어 보였다.
“친하지. 아주. 우린 아주 가까운 관계거든.”
“그래서, 존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기꺼이.”
그는 과장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한 팔을 높이 들고 안으로 굽히며 심장에 가져다 대고는 인사를 해 보였다. 마치 연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는 듯 행동한 그가 숙였던 고개를 들고는 입을 열었다.
“에메트셀크. 그게 내 이름이지.”
9.
그는 꽤나 해박했다. 제국의 역사는 줄줄 외우고 있을 정도였지만, 꽤 오랜 역사들 중에서도 중요도가 덜 한 사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런 게 있었나? 하며 잘 모른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어쩐 일인지 그가 나에게 ‘사슬을 손목으로 옮겨주는 일 정도는 가능해.’라고 대답하는 것에 솔깃해 고개를 연신 주억거리며 부탁하겠다 하자, 다음날 황제가 직접 와서 구속 마법인듯한 것을 풀고는 다시 팔에 연결해 주었다. 그나마 발보다는 낫지.
“아니, 그래서. 그 이상한 시종이 자꾸 못된 말을 뱉는 거 아닙니까.”
“저런.”
그는 제법 내 말을 잘 들어주었다. 잠이 들지 않아 창문을 열고 늘 그랬듯 테라스에 걸터앉자 황궁 숲 안으로 들어가려는 그를 발견한 것은 우연이었다. 다급하게 그에게 들릴 정도로 쇳소리를 내며 그를 부르자 그는 고개를 돌려 발걸음을 멈추고 나를 쳐다보았다.
거긴, 황제가 가끔 가는 곳이니 가지 마세요.
그는 내 말에 아, 하는 얼굴로 숲 안쪽을 바라보았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알았다는 표시인지 뭔지. 그날 이후로 저녁에 종종 마주치는 일이 더 잦아졌다. 나를 피하는 모든 사람과는 다르게 그는 꽤 자주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내가 제국에 있는 것이 당연하고, 그것은 별일 아니라는 것처럼. 그 덕분에 좋은 차를 우릴 줄 알게 되었고, 유난히 기계가 발달한 제국의 역사도 더 깊게 알게 되었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시종장은 나에게 부쩍 실력이 좋아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물론 저녁마다 책을 머리에 얹고 그가 놓아준 바닥의 끈을 따라 밟는 노력 덕분에 그렇게 된 것이지만.
혼자였던 시간에 익숙하게 사람이 끼게 되자, 늘 마시던 찻잔은 두 개가 되었고, 베개도 늘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그도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자야 할 것인데, 지난번 와인을 실수로 잘못 따른 일 때문에 호되게 혼나서 홧김에 그가 가져온 와인을 병나발을 불며 마신 게 실수였다. 몸을 가누지도 못할 정도로 한창 마셨다가 그에게 어렴풋이 외롭다느니, 슬프다니 그런 말을 한 것이 기억났지만. 그가 겨우 그런 말 정도에 돌아가지도 않고 옆에서 같이 자기까지 했다는 것은 생각 외의 일이었다.
“네가 말하지 그랬나. 억울하다고 말이야. 평소에 나한테 하는 만큼만 말하면 문제없을 텐데 말이지.”
“아, 그거야 에멧이니까.”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애칭에 잔을 들어 올렸던 손을 멈추고는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항상 모든 것이 익숙해 보였다. 그리고 나의 몰랐던 습관들도 알고 있었다. 샐러드를 먹지만, 토마토는 안 먹는다거나. 머리를 긁적이는 버릇이 있다거나. 고민을 하면 미간을 찌푸린다거나. 이번에도 애칭으로 불렀는데도 미동도 없이 나를 쳐다보는 그의 행동에 나는 괜히 머쓱해져 그의 머리카락을 가리켰다.
“왜 머리가 다 갈색이 아니죠?”
“........”
그는 잔을 내려놓고는 자신의 앞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아, 그런 게 있었지 하는 느낌으로. 그는 덤덤히 원래는 틀림없는 하얀색이었다고. 그저 어느 순간부터 이렇게 갈색 머리카락으로 점점 변했다고 말이다. 하얀 머리카락이라.
“뭐, 백발은 에오르제아에서 흔하니까요.”
“제국에선 그렇게 흔하진 않지만.”
인간을 닮아 가는 건가. 나도 모르게 말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며 찻잔을 다시 들어 올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민트차의 향기가 기분을 좋게 했다. 꽃 향기보다는 이쪽이 좋으니까. 꽃은 너무 향기가 짙어 숨이 막혔다. 민트 정도가 딱 좋았다. 차를 한참 마시다가 이내 그가 무언가 떠올랐다는 것처럼 입을 열고는 물어보았다.
“내일 황족 연회가 열린다지. 알라미고 외부에서 열렸던 소규모 전쟁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말이야.”
“예. 그리고 저의 첫 실전이죠.”
“저런. 하필 첫 실전이 중요한 행사로 시작할 줄이야.”
“뭐....... 그거야 이젠 제법 이 일도 익숙해져서 잘할 것 같지만요. 그래도 당분간은 못 보겠네요.”
“왜?”
그는 정말 순수하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나는 그 당황스러운 물음에 되려 내 스스로 떨떠름하게 대답을 하며 눈을 깜빡였다.
“왜냐니. 황제의 옆에서 직접 일을 하는 시종이니. 당연히 이렇게 저녁에 여유롭게 만날 일은 이제 없겠죠, 거의.”
“흐음. 그것도 그렇군.”
그는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창문 밖으로 들리는 종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자정이 되었다는 그 소리에 그는 당연하게 잔을 다 비우고는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는다며 옷걸이를 뒤적거렸다. 이젠 뭐, 거의 내 방을 자신의 방처럼 이용하는 그의 행동에 익숙해졌지만. 자신의 옷을 한 무더기 내 방에 가져다 놓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식겁했다. 도대체 얼마나 여기에 같이 있으려고? 게다가 누가 알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놀랍게도 이렇게나 자주 들락날락거렸지만 황성 어디에서도 누군가 이 일에 대해 언급하는 일이 전혀 없어 더 놀랐다. 진짜 황제와 친하다는 말이 사실이긴 한가보다 하며 잊어버리긴 했지만.
“내일 실수 안 하게 기도해 주세요.”
“기도?”
“예. 그럼 좀 마음이 편할 수도.”
“기도는 함부로 하지 않는 게 좋아. 특히 간절할수록 말이야.”
그럼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나는 먼저 편한 옷으로 빠르게 갈아입고는 털썩 소리를 내며 대짜로 침대에 뻗어 이불 안으로 꼬물거리며 들어가 말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옷 안에서 뒤적거리며 작은 상자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게 뭐예요?”
“오르골.”
“오. 어릴 적엔 좀 들었죠. 제가 오르골을 좋아했거든요.”
그래, 그랬지. 그의 알 수 없는 대답에 미간을 찌푸리고 다시 물어보자 그가 ‘넌 그렇게 살았을 것 같다고.’ 하고 다시 대답해 주고는 오르골 옆구리에 태엽을 감기 시작했다. 제법 큰 오르골에, 종이 오르골도 아니고 쇠판을 튕기는 오르골이라 소리가 청아했다. 어딘가 익숙한 노랫소리에 어, 하고 눈을 깜빡이고는 그의 손에 들린 오르골을 가져가 가만히 쳐다보았다.
“뭐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그런가?”
다 좋지만, 그게 목적이 아니잖아? 적어도 내일을 위해 일찍 자는 것이 우리의 긍정적 목표겠지. 얼른 자도록 해.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 옆자리에 누워 탁상 위에 있던 램프를 껐다. 순식간에 어둠이 찾아오고, 조금 열린 창문으로 바람과 함께 나뭇잎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쏴 - 하고 폭포 소리처럼 들려왔다. 잔잔한 오르골 소리까지 더해지자, 졸음이 밀려와 자세를 조금 고치고는 머리맡 위에 아슬아슬하게 오르골을 올려두고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별 일 없을 것 같아요. 내일은.”
“그래, 그러길 바라.”
그의 말에 안도하며 눈을 감아버리곤 천천히 수면에 빠져들었다. 무언가 볼을 스치는 감각도 있던 것 같고. 머리를 만지는 손길도 느껴진 것 같지만, 바람의 탓으로 돌리며 나는 깊은 잠에 들기 시작했다.
10.
별 일 없기는. 나는 곁눈으로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는 미동도 없이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건, 음료를 가져오겠다는 말도 못 하겠어서 입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기만 하려니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모습이 다 보인다. 거의 장식장에 진열된 인형이라도 된 것 같아 고개를 숙이려 하니 황제가 그제야 입을 연다.
“목이 마르군.”
“음료를 가져올까요?”
“그래.”
“어떤 것으로 가져올까요?”
“........”
그걸 물어? 그는 그런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 그럼 어떻게 알아. 어떻게 알아! 속으로 울며 계단을 내려가 음료 앞에서 멈추었다. 과실주? 아니야. 과실주는 도수가 약해서 음료로 마시기엔 적합하지만, 그가 단 음료를 좋아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역시 차 종류가 좋을까. 한참을 또 차 중에서 무엇을 가져갈까 고민하다가 한쪽에 잘 놓인 나무 상자 안에 들어간 민트 찻잎에 시선을 주었다. 에멧은 곧 잘 마셨는데 황제도 마찬가지일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따듯하게 덥히도록 만들어진 기계에서 찻잔을 꺼내 티 스트레이너(찻잎을 거르는 망) 또한 따듯한 물에 넣어 덥히고는 점핑 팟(찻잎을 우리는 전용 포트)에 민트 찻잎을 조금 티 캐디 스푼으로 덜어 뜨거운 물을 따라내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이내 서빙 팟(본격적으로 차를 따르기 위해 찻잎을 우린 포트에서 찻잎만 걸러 물을 따라낸 포트)에 차를 따라 찻잔과 함께 트레이에 담아 가져 갔다. 조심스럽게 황제의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 위에 트레이를 올리고는 차를 찻잔에 따라내고 찻잔 받침을 들어 올려 조심스럽게 건네자 그가 익숙하게 받아 들고는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
그는 말없이 차를 마셨고, 생각 외로 거부하지 않아 더 놀란 나는 마음을 추스르고 앞을 쳐다보았다. 이미 수많은 시선들이 움직일 생각도 없이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것을 정통으로 마주하고는 침을 삼켰지만. 황제는 지루한 듯 턱을 괴었고, 이내 눈치를 보던 시종장이 음악을 연주하게 지시하자, 홀 가득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파티의 기분이라도 나는지 조금씩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공식적으로 황제가 먼저 황후와 춤을 추고 그다음에 단체로 춤을 추는 것이 보통이지만 지금의 황후는 공석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유롭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황제는 이내 그 모습을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곤 나를 쳐다보았다.
“먼저 들어가지. 모처럼의 연회이니 사람들 얼굴이나 익힐 겸 너는 여기 더 있다 오도록.”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꾸벅 숙여 보이고는 그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벽으로 붙어 최대한 테라스로 나오고는 한숨을 돌렸다. 창문 안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 느껴졌지만, 아까보다는 훨씬 덜했다. 아, 커튼을 쳐둬야지. 테라스에 커튼을 쳐 두면 그때부터 테라스 공간에 누가 있다는 표시가 되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다는 일종의 규칙이 있다. 커튼을 치고 돌아 테라스에 팔을 올리고는 한숨을 쉬고 있자니 저 아래로 정원에서 돌아다니는 익숙한 뒷모습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에메트 셀크!”
그러자 그는 당연하게도 주변을 돌아보지도 않고 바로 나를 쳐다보았다.
“거기서 뭘 하는 거지?”
“아, 황제가 나가서 잠시 쉬러 나왔어요.”
“저런. 이왕 거기 있는 김에 춤이라도 춰보지 그래.”
“춤, 출 줄 몰라요. 차라리 뭘 만드는 게 훨씬 낫지.”
내 말에 그는 한쪽 눈썹을 올렸다. 춤도 출 줄 모르냐는 그의 시선을 애써 회피하자 그가 팔을 벌려왔다. 저건 또 뭐람. 나도 같이 한쪽 눈썹을 올리며 고개를 갸웃거리자 그가 손가락을 까딱였다.
“뛰어내리라는 건 아니죠?”
“맞는데.”
“아니, 지난번처럼 안 받아 줄 거잖아요.”
아, 이번에는 그래서 친히 받아주겠다 이 말이잖아. 춤도 출 줄 모르는 시종이라니. 황제 직속 치고는 너무 모르는 게 많네. 그렇게 말하며 받아주겠다며 테라스 아래쪽에서 팔을 벌리는 그의 행동에 머뭇거리며 테라스 난간을 붙잡고 발을 디디고 올라섰다.
“여기서 떨어지면 일단 즉사인데!!!!”
“아, 되다 만 게 말이 많네.”
“죽는 게 중요하지 말이 많은 게 문제예요!?”
진짜 받아야 한다! 어!? 연신 그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치며 알겠다며 미간을 찌푸리는 그를 향해 냅다 팔을 벌리고 뛰어내렸다. 진짜 받아주려나!? 눈을 질끈 감고는 이내 벌렸던 팔을 움츠리려 하니 바닥에서 무언가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과 함께 익숙한 향기가 났다. 그제야 안겨 있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뜨자 그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닥에 내려두었다.
“춤을 못 춰?”
“출 일이 있어야지요.”
“....... 자, 어깨 잡고.”
그가 허리를 붙잡게 하려 하는 것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설마 리드당하는 역할? 그렇게 말하자 그가 그럼 내가 하리? 춤도 모르는 네가? 나를?이라고 대답하는 것에 군말 없이 얌전히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연스럽게 허리에 손을 올린 그가 입을 열고는 조심스럽게 음악 박자에 맞추어 리드하려 하기 시작했다.
“자, 왼쪽으로 한 발짝.”
꽈악.
그의 신발에 선명하게 내 발자국이 찍히는 것을 보며 나는 숨을 삼켰다. 왼쪽으로 한 발짝 디뎠는데 거기에 당신 발이 있었어. 애써 그렇게 말하며 책임회피를 하고는 그가 한숨을 쉬며, 이번엔 오른쪽 발을 디디라며 말을 나지막하게 읊조리듯 말하였다.
꽈아악.
“.........”
“허허. 거 이상하다.”
오른쪽으로 가려해도 다시 밟혀버리는 그의 왼쪽 발에 애도를 표하자 그가 ‘벗어.’ 하고 명령조로 이야기하는 것에 눈을 깜빡이곤 입을 크게 벌리며 미간을 팍삭 구겼다.
“아니, 신발 좀 밟았다고 거 옷을 벗으라 하면.”
“아! 옷 말고! 신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의 말에 나는 머쓱해하며 신발을 조심스럽게 벗어 그의 앞에 섰다. 그가 이내 내 발 위에 발 올려. 하고 말하자 나는 눈치를 보며 이미 다져진 왼쪽 발 위에 내 발을 올리고 오른쪽 발에도 마저 발을 올렸다.
“봐. 여기서 왼쪽으로 돌고, 다시 오른쪽으로 반 바퀴.”
“오, 이거.”
재미있는데. 비록 그가 다 움직이는 것이긴 하지만. 그가 움직이는대로 따라 움직이자 그제야 노래 박자에 맞추어 움직일 수 있었다. 신기하게 그의 발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노래가 끝날 때쯤 되어서야 겨우 그의 발 위에서 내려와 잔디밭을 밟으며 그의 발에 맞추어 직접 춤을 출 수 있었지만. 노래가 끝나자 그가 자연스럽게 손을 놓고는 인사를 해 보였다. 나도 그를 따라 인사를 하고는 땀 투성이인 이마를 쓸어내리자 그가 혀를 찼다.
“그거 좀 움직였다고 땀은 무슨.”
“아, 운동을 평소에 했어야죠.”
“황제한테 말해. 운동하게 해 달라고.”
“아니, 시종이 어떻게 그런 걸 부탁해요.”
“그럼 내가 부탁해 주지.”
그는 선선히 웃으며 손을 내밀어 이마에 덜 닦여버린 땀을 손수건으로 닦아내주었다.
“.......”
“....... 왜.”
아냐, 그냥. 자상하다고요. 나는 그렇게 얼버무리며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처음 때보다 분명, 그의 얼굴에 찌푸린 인상이 조금씩 덜어지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처럼 평온해 보이는 건 또 처음이다. 그의 이마에도 조금 땀이 나 있는 것에 옷소매로 그의 땀을 닦아주자 그가 얌전히 눈을 감고는 손길에 그대로 몸을 맡겼다. 그것이 또 귀여워 웃어버리니 그가 눈을 뜨고는 시선을 마주한다.
“그래도. 고마워요.”
“.......”
당신 덕분에 조금이라도 제국이 좋아져서 말이죠. 나는 그렇게 말하곤 신발의 뒤축을 손가락으로 걸어 신발을 들고는 조금씩 발을 옮겼다. 가요. 황제도 쉬러 갔다 했으니 내가 여기 있을 필요는 없죠. 그러자 그는 잠시 멈추어 있다가 이내 내 뒤를 따라 움직였다. 뒤를 돌아보자 그가 나를 따라오는 모습이 보여 또 웃어버렸다. 너 왜, 자꾸.
좋아서요. 그냥요.
그렇게, 밤이 되어버린 정원을 벗어나며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대화를 하지 않고 숙소로 돌아왔다.
'[파이널 판타지14] -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멧히카] Chain-2 (1) | 2021.02.02 |
---|---|
[파판14] [히카프레] - 집착 2(수위) (0) | 2020.07.26 |
[파이널 판타지 14] 프린세스데이 (2020년 3월) 이벤트 영상 (0) | 2020.03.10 |
[모험수정] 다음 녹취록을 듣겠습니까?(수위) (0) | 2019.12.31 |
[모험수정] Good night, G'raha Tia. (수위) (0) | 201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