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ck's diary
-(음악과 함께 하는 소설입니다.
-(음악 재생 후 빗소리가 끝나고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Hier schicke ich diese Geschichte für meine erste und letzte Liebe.
xxxx. 8월의 어느 푸른 여름.
“벨져. 보시오. 벌써 가을이 오려나봐.”
“아직 한창 더울 때다.”
그의 눈부신 머리카락은 녹음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에 더 아름답게 빛났다.
그와 오랜만에 거닐어 보는 오솔길은 녹색 향연으로 잔뜩 빛나고 있었다. 저기에 뛰어 들어가면 나도 나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그를 앞질러 녹색에 물들기 위해 뛰어가 보았다. 그러나 변하는 것은 없어서 멋쩍게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도 말이오. 낙엽이 옷을 갈아입고 있어. 보이시오?”
그래, 오늘은 평범했던 하루,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는 않았던 하루. 8월의 중순이다.
벌써부터 붉어지는 아기 손 모양의 단풍잎 손끝을 잡아 보았다. 아기가 손을 그러쥐듯 따듯한 기운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그 붉은 손이 마음마저 덥혀주는 것 같아서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이제 그대와 겨울을 지내고, 다시 계절이 돌아와 봄이 오면 그대랑 마주쳤던 그 날이 다시 돌아오겠소.”
“..시간이 제법 빨리 흘렀군. 계절감을 잊을 뻔 했어.”
덤덤히 추억을 되새기듯 눈을 감고 가만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그. 그것이 그의 애정표현인 것을 안다. 사랑한다, 좋아한다. 말로서의 표현이 서툰 그는 나와의 추억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변한 모습을 돌이켜 보는 것 이니. 틀림없이.
“그대와 같이 낙엽 앞에서 고구마도 구워먹고…….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니까 책하나 두고 둘이서 같이 보아도 좋고. 겨울에는 따듯한 침대에서 당신이랑 하루 종일 겨울잠도 자고.”
“애로군.”
그렇게 말은 해도 이쪽을 보며 가만히 웃어 보이는 그가 너무나 사랑스러워 잡았던 아기 손을 놓고 그에게 다가가 또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았다. 아이라 하기엔 투박하고, 잔뜩 갈라지고 오랫동안 검을 들어, 살이 튼 흔적이 보이는 딱딱한 그 손은 벌써 그가 어른이란 걸 알려주는 것 같아서.
“당신 옆에 라면 항상 애가 되어 가는걸.”
“그래. 항상 그렇게 옆에서 애처럼 있어라. 차라리 넌 그게 나아. 그런 전쟁보단, 그게 나아.”
조금은. 슬퍼졌다.
그의 손을 꼭 잡고 이마와 이마를 마주대고, 코와 코를 부볐다. 바람이 우리를 감싸고 지나갔다. 그대, 느껴지시오?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전쟁을 두고서도, 그대를 사랑해서 그대 온기를 붙잡는 내 손이.
그대를 기억하려고 사진을 찍는 두 눈이.
그대 향기를 기억하려 자꾸만 들이쉬는 내 코가.
그대의 숨결을 느끼려는 내 입술이.
다 그대를 향하고 있어.
느껴지시오?
그렇게 하고 싶은 말을 다 목으로 삼켜버리고 표정을 숨긴 체 눈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웃어버렸다.
“..전쟁이 끝나기 전에.. 꼭 그대랑 같이 겨울을 보내고 다시 봄을 맞이했으면.”
“…….”
왜 그제야 알았을까. 그날의 침묵. 당신은 그날부터 이별을 준비했다는 것을. 나는 그대가 준비하는 이별을 몰라서 계속 그대만 좋아하고, 사랑하고 자꾸만 손을 뻗어 그대를 안으려 하지만, 그대는 나를 밀어내고, 막아내고 손을 쳐내고 있다는 것을. 아주 조금씩 익숙해지게끔.......
-xxxx. 10월의 온기를 잃어버린 그날.
시월의 그날은 시린 바람이 부는 것도 멈추고 고요한 정적만이 남은 날이었다. 우리는 처음 만났던 그 거리에서 멈추어 서서 서로의 온기가 닿을 거리로 마주 닿아 있는 것이 아닌. 외로움이 지나간 자리가 보일 만큼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았다. 보았다. 라, 정확히 말하자면. 보지 않으려 애썼다. 우리는 서로의 눈을 피하고, 서로의 감정을 숨기려 애썼던 것 같다.
“그래, 끝이다.”
“…….”
“네 어린아이 같은 그 행동에 질렸다. 딱히 더 이상 할 말은 없어.”
잠시 숨을 고른 너는 그렇게 말했지.
“그거면 충분한 이유가 되겠지.”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너는 그렇게 말했지.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
아.
눈이 내렸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눈이 내렸다. 눈이 뺨과 눈초리에 달라붙어서 이내 소리 없이 차가운 온기에 녹아 뜨거운 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잘 모르겠어, 벨져.
10월의 마지막 날, 그렇게 당신이 이별을 고하는데, 아직 잘 모르겠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무슨 의미오?
내가 사랑이란 것을 처음 느껴보아서 잘 모르겠어.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잊는다는 것이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를 그대 없는 고아로 만든다는 것이오?
그대도 처음이란 걸 알지만, 그대 지금 나와 같은 기분이오?
그대도 이렇게 슬프오? 이렇게 가슴이 아파오고 있소?
우주가 무너지고 있어.
지금 말하는 그 말이 그대의 진심이오?
“.......”
“....... 그럼.”
당신은 그렇게 나와 이별을 고했다. 난 당신에게 한마디의 변명도 못하고.
그렇게 그대에게 하나의 기억만 되어 잊히겠지.
난 그대를 우주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는 날 그 수많은 별 중에 하나인걸로 생각했던 걸까.
그대랑 같이 겨울 지나 봄을 보고 싶었는데.
그대랑 아직 해보지 못한 게 이렇게 많은데.
항상 계절의 마지막은 겨울 끝자락에서 윤회하여 봄을 맞이하는데.
그대와 나의 계절은 여기가 마지막인가 봐. 그대랑 같이 이루지 못한 꿈들이 그렇게 눈이 되고, 눈물이 되어 녹아내린다. 오늘따라 별빛이 너무 슬프게 보여. 그렇게 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끝으로, 우리는 헤어졌다.
xxxx. 3월. 아픔이 꽃이 되던 날.
늘 가던 익숙한 거리를 다시 걸어가 보았다. 마치 타임머신이란 것을 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늘 가던 방향에서 반대로 간다는 것은 참으로 묘한 기분이야. 웃으면서 거리의 블록 문양을 하나하나 밟아 가면서 길을 걷다가.
눈부신 빛을 보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고리타분한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듣는 빛이 보였다. 이리저리 내밀어지는 서류를 빠르고 세심하게 훑어본 뒤 그의 이름을 서류 한 구석에 적어주는.
빛이 보였다.
문득 네가 뒤를 돌아보는 것에 난 서둘러 많은 인영 사이로 숨어 버렸다. 날 본걸까. 그대가 자꾸 뒤를 돌아보면서 무언가 찾는 눈을 해 보이는 것 같은 기분은. 그 이유가 나 인걸까.
그러나 너는 다시 앞을 보며 갈 수 밖에 없었지. 나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겠지.
난 별이고 넌 우주니까.
난 릭 톰슨이고, 넌 벨져 홀든 이고.
난 여행자고 , 넌 섬광이고.
무거운 발걸음을 때어 좀 더 너를 지켜보기 위해 인영들에게 벗어나 앞을 향해 걸어가는 너를 보았어. 나 없이도 잘 살고 있소, 당신? 입속에서 자꾸 나쁜 말이 나오려 해. 우리 거리가 멀어질수록, 나쁜 말이 입 밖으로 튀어 나오려 해. 이제 겨우 잊은 것 같은데 가슴이 다시 아파오고 있어.
눈을 감으니 다시금 네가 웃는 모습이 보이고,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 떠오른다. 오래된 영화 필름이 지나가는 기분이 들리고, 화면의 주인공은 당신과 나. 그러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치 이제 다시는 그런 장면을 볼 수 없다는 듯 필름은 이내 잔인한 말을 내 뱉는 당신의 입 모양에서, 자꾸만 같은 장면을 보여주며 틱틱 소리를 내. 영화는 끝났다고 말이야.
감은 눈을 뜨자 다시금 발걸음을 멈춘 네가 보인다. 뒤를 돌아보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다시 영화가 시작 되는 듯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점점 보이지 않고, 당신과 나 둘만 있는 것처럼. 다시 영화가 시작되려 한다.
결코 사랑에 대한 영화는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간 추억을 되돌아보는 영화였다.
가만히 그에게 또 웃어보였다. 입 꼬리를 애써 올렸지만, 눈이 자꾸만 일그러졌다. 그를 보면 마음이 아파서 웃을 수 가 없어.
눈앞이 흐려져 당신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당신은 어떤 표정일까.
당신의 표정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 체 너는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름다운 빛이 떠나가고 있다.
그래, 이번이 마지막일 거라는 걸. 당신과의 우연도 이번이 마지막이란 걸 알고 있소. 아마 우리는 더 이상 같은 거리에서 마주칠 수 없겠지.
발걸음을 돌려 그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여행자는 여행자 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우연히 돌아본 그는 생각보다 괜찮아보여서. 그게 더 미웠다. 그게 더 슬퍼졌다. 잔뜩 이나 무거워 진 발걸음이 그를 향해 가려하고 있어. 마치 처음에 그를 붙잡았던 그때처럼. 마치 빨간 구두 이야기처럼, 자기 멋대로 움직이려 하는 것 같아.
그렇지만, 잡을 수 없었다.
그대를 잡는 것이 더 그대가 나를 미워하게 될 일이란 것을 잘 알아.
만약 우리가 그렇게, 서로 미움과 증오로 가득 차 헤어졌다면. 정말 끔찍한 악몽이 되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말이지 벨져, 사랑하는 벨져.
여전히 가슴 깊숙이 그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말이야.
너는……. 너는 그 거리라면 들리지 않겠다. 생각했겠지만.
마지막, 바람을 타고 내 귓가에서.
“사랑했다.”
그 말 한 자락이 슬픈 내 마음 다독여 주어서.
가장 아름다웠던 추억이 되었다.
다시금 별이 되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 져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 잊혀진 계절 ,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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