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작성일
2017. 2. 19. 23:36
작성자
you. and. me.





*고민하다가, 일단 수위본은 두분 허락 하에 공개 할지 안할지 정하도록 하겠숨니다.



*픽션 많아요 따흐흑


*노뷰님도 출현하십니다- 픽션 투성이




*재..재미로만 봐주세요 ㅠㅠㅠㅠㅠ


*수위 커플링은 날렙(렙날x) 입니다. (혹시몰라서)








어떠한 과정도 이유 없는 것이 없다.

모든 생성은 그 원인을 가지며 그러기 때문에 필연이다.

-레우키포스; 단편-

 

 

Lifefly & Rephellford

 

 

 

 

-.”

 

주인님.”

 

“.......호칭이 영 어색한데.”

 

 

하룻밤 사이에? 내 이름이 꽤 마음에 들었나 본데. 그렇게 주인님 이란 말이 어려운걸 보니. 렙헬의 말에도 챠리는 여전히 그 어색한 단어를 최대한 입 밖으로 내 보려고 입을 우물거렸지만, 쉽게 말이 나오지 않는다. 어찌 보면 이쪽이 구해준 처사니 적어도 호칭만큼은 좀 관대 해 질 수 없냐, 물어보고 싶었지만. 장난인건지 진심인건지 좀처럼 읽을 수 없는 표정에 한숨을 푹 쉬곤 주인님, 주인님. 속으로 읊조렸다. 한참을 그렇게 바닥을 보고 그의 발뒤꿈치만 보고 종종 걸음으로 쫓아가니 어느덧 림사에 도착했다. 익숙하지 않은 바다 냄새가 코를 스쳐 지나 가는 것에 콧잔등을 한번 긁적인 챠리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전히 복작복작한 거리. 그 중에서도 단연코 렙헬은 눈에 띄었다. 멀리서도 알아보겠다며 조금 거리를 두고 그의 뒤쪽에 서서 한걸음 차이로 떨어져 걷자니 렙헬의 등에 그대로 이마를 찧었다. 갑자기 우뚝 멈추어 선 렙헬 덕분에. 그도 둔탁한 느낌을 받았던 건지 뒤를 돌아보곤 아무렇게나 챠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곤 바로 앞에 있던 항구로 마저 발걸음을 디뎠다. 항구로 나선 곳에 대기하고 있던 커다란 배. 그냥 봐도 고급선 이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정도의 큰 배가 항구를 차지하고 있는 것에 챠리가 눈을 크게 뜨고 조금은 신기한 듯 배를 바라보자, 항구에서 배를 지키던 사람에게 돈을 한가득 건네준 렙헬은 이내 어서 오라는 듯 챠리에게 손짓을 했다.

 

무슨 배가 이렇게 커.”

 

내 밴데.”

 

“.......이제 좀 부자라는 단어가 와 닿네요. -.”

 

주인님.”

 

 

 

그래요. , 인님. 한 템포 느린 대답이지만 만족스러웠던 듯 입꼬리를 올리는 그의 행동에 저절로 웃음이 난다. 곧은 자세로 앞장서는 렙헬, 그의 뒤를 따라 챠리가 발걸음을 옮겼다. 아까보다, 조금 더 가까운, 반걸음 정도의 거리를 두고.

 

 

*

 

바다 바람은 유난히 소금기가 많았다. 그래도 사람의 손때가 타지 않은 바다는 비취빛으로 물들어 이름 모를 물고기 때들이 가끔 배 근처를 뛰어다니는 그림을 보여주기도 했다. 배가 조금 작았더라면, 바닷물에 손을 담글 수 있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 손을 뻗자 허리춤에 느껴지는 단단한 팔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놀란 건 오히려 렙헬 본인이었다. 딱 봐도 바다엔 거의 가보지 않은 것 같은 녀석이, 높은 곳에서 아래쪽으로 손을 뻗으려 몸을 기울이고 있자니 금방이라도 바다에 빠질 것 같아 불안해서 못살겠다며 속으로 혀를 찼다.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아이였다.

 

열일곱 살. 호기심이 왕성한 때란 건 알겠지만, 귀한 일꾼을 잃을 순 없으니까 조심해.”

 

참나, 잠깐 팔만 좀 뻗은 건데.”

 

위험하니까. 그래도.”

 

바다는 위험해. 그렇게 말하는 렙헬의 표정을 보고 챠리는 입을 다물었다. 무언가 미묘하게, 슬픈 듯, 그렇지 않은 듯. 갖은 생각을 다 품고 있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려니 뭐라 말하고 싶어도 입이 열리지 않는다. 저도 모르게 그의 뺨에 손을 얹고 들릴락 말락. 미안해요. 하고 사과해 버리자, 렙헬의 시선이 마주한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의 어두운 감정이 이내 장난기 넘치는 얼굴로 변해 버렸다. 마치 방금 건 꿈 이였다는 것 마냥.

 

미꾸라지처럼 도망갈지도 모르니 붙들고 있어야겠다.”

 

여기서 도망 가 봤자 배 안인데요?”

 

그래도. 혹시 몰라. 바다에 인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뛰어 내리면 내 손해지.”

 

 

말도 안 돼. 그래도 구태여 허리춤에 단단하게 감긴 팔이 딱히 나쁘진 않아 몸에 긴장을 푸니 허리를 감은 손에도 느슨하게 힘이 풀린다. 이렇게 힘 좋으면, 본인이 혼자 다 해도 될 건데, 구태여 이쪽을 고용할 생각을 하는걸 보니 꽤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일 일거라 생각하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어디 가는 거예요?”

 

잠깐 그리다니아로. 거기서 물건을 받기로 했으니까.”

 

잠깐?”

 

그래봤자 정말 잠깐이야. 그 이후엔 다시 림사 로민사로 와야 해. 거기에 내 집이 있으니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들어 렙헬을 올려다보았다. 머리 정수리가 렙헬의 가슴팍 정도에 닿게 뒤쪽으로 기대고 올려다봐도, 날렵한 턱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쪽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곧 고개를 내려 눈을 마주 했지만.

 

얼마나 오래 있어야 하는 건데요, .”

 

글쎄. 기간은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꽤 오래.”

 

오래?”

 

 

그제야 석연치 않은 기분이 맞아 떨어졌음을 깨닫게 된 챠리는 바다를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며칠 전만 해도, 근처에서 자신이 일하던 것을 바라보고 있던 엘레젠. 꽤 오래라면, 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지경이었다. 처음에 잡았던 따듯하고, 큰 손이 갑자기 떠올라 시큰거리는 코를 무시하고 눈을 한번 감았다 떴다.

 

인사해야 할 사람이 있어요.”

 

누구?”

 

 

제 아버지요.

 

챠리는 그렇게, 본인 앞에서라면 좀처럼 해본 적 없을, 아버지란 단어를 처음으로 입에 담아 보았다.

 

 

*

 

 

만나야 할 사람이 울다하에 있다는 것에, 렙헬은 잠깐 처음 자신이 쓰러진 곳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울다하에서 빈민가에서 살았었다 했으니. 거기에 아는 사람이라도 있는가 보다 싶어서, 최대한 빨리 일을 정리하고 다시 울다하로 돌아왔다. 혹시 모를 노동력의 사라짐을 막기 위해 챠리가 가는 곳을 자신도 따라 나선다 했지만, 머뭇거리며 뭔가 안가면 안 되겠느냐 물어보는 챠리의 말에 렙헬은 눈썹을 씰룩거렸다. 아버지가 아니라 어디, 애인이라도 두고 온 건지. 갑자기 급하게 기분이 더 별로 좋아지지 않아, 고집을 부려 따라 간다 하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따라오라며 자신이 먼저 앞장서는 챠리를 보고 렙헬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물론, 챠리가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이다. 그리곤 당연히 자신도 거래 때문에 자주 들락날락하던 빈민가 쪽으로 발걸음을 돌리려 했는데, 그 부분은 관심도 없다는 듯 스쳐 지나가는 챠리의 발걸음에 의아해 하며 멈추었던 발을 부지런히 움직였다.

 

 

“...여기?”

 

.”

 

 

전망 좋은, 해변 근처에 자리한 대형 하우스. 넓은 정원에 보기 힘든 식물이 잘 심어져 있는, 딱 봐도 누군가 공들여 손을 써 놓은 듯 한 집에 챠리가 먼저 발을 내딛는 것에 렙헬도 대문을 지나 저택의 입구에 들어섰다. 도대체 이런 집에서 사는데 왜 그런 막노동을 하는지. 커다란 달 모양과 별모양으로 조각 된 샹들리에가 저택 중앙을 밝게 비추고 있었고, 가운데에 크게 난 계단은 중간에 양 갈래로 뻗어 2층으로 올라 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 놓은 집. 게다가 사용인들이 입구 앞을 들어서자마자 반기는 것에 느릿하게 눈짓으로 인사했다.

 

챠리.”

 

노뷰님.”

 

표정 변화는 크진 않지만, 한눈에 봐도 반갑다는 느낌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노뷰라고 불린 사람이 챠리의 손을 부드럽게 잡고 있었으니.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몰라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던 렙헬은 이내 챠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에 몸을 굳혔다. 꽤나 젊어 보이는 엘레젠. 그러나 챠리의 입에서 나온 것은 뜻밖의 대답이었다.

 

소개할게요, 제 양아버지인, 미노뷰님이세요.”

 

안녕하세요.”

 

 

 

*

 

 

안돼요.”

 

“.......”

 

“.......”

 

 

자세한 설명과 함께 나온 대답은 칼과 같이 날이 선 대답이었다. 대충 분위기상 그럴 거라 생각했지만.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부정의 뜻을 표하는 미노뷰의 행동에 맞은편 소파에 앉은 렙헬과, 챠리는 몸을 굳혔다. 특히나 챠리는. 가장 먼저 허락을 해 줄 거라 생각했던, 뭘 하던 딱히 말리지 않았던 미노뷰가 그렇게 단호하게 나오니 더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무릎 위에 올린 주먹을 꼭 쥐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어 보려 했지만, 노뷰의 눈을 마주 하는 순간 어차피 다시 한 번 안 된다는 말이 나올 것 같아 고개를 숙이고 무릎에 놓인 자신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아드님 쪽엔 큰 무리가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당연한 거죠.”

 

렙헬씨라 하셨죠. 챠리는 제가 어릴 적부터 같이 지냈던. 제 피가 섞인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다름없는 아이니까요. 그렇게 말하는 노뷰의 대답은 끝까지 확고할 것만 같았다. 확실히. 미성년자의 문제도 있고, 보호자의 허락 없이는 챠리를 데리고 갈 수는 없으니. 남은 방법은 최대한 설득 해 보는 것밖엔 없었다.

 

여기 있는, 대부분의 가구들과, 조경들은 거의 챠리가 다 꾸며 놓은 거죠.”

 

항상, 늘 앞장서서 뭔가를 하는 아이니까. 더 소중하죠. 그렇게 말하는 노뷰의 말을 잠시 듣고 있던 렙헬이 입을 열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던 챠리의 손을 잡고.

 

책임지겠습니다.”

 

“.......”

 

“.......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그리고 자신에 찬 렙헬의 말은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숨을 멈출 만 했다.

 

언약 하겠습니다. 저희 둘.”

 

 

*

 

 

이건, .”

 

이거 아니면 다른 방법이 없었어.”

 

 

아무리 그래도 언약은. 자꾸 그 말만 되풀이 되는 것에 챠리는 잔뜩 달아 오른 귀를 감추려고 고개를 푹 숙였다. 질 좋은 면장갑의 느낌이 얼굴에 닿으니 이것이 꿈이 아니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느껴져 도대체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노릇인지, 다시 한 번 생각 해 볼 여지가 있었다. 그러니까, 분명 어제. 렙헬의 말 한마디에 잔잔한 호수에 파문이 일었던 것 까지는 떠올랐는데. 미간을 부여잡고 어제 일을 다시 한 번 돌이켜 보았다.

 

 

[언약?]

 

[. 언약.]

 

[17살인데?]

 

[나이는 중요하지 않으니까요. 중요한건, 책임지는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아무래도 당했다는 기분이. 생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말하는 노뷰의 말에 이때다 싶어 더 박차를 가했다. 한참의 설득 끝에 내린 결론은, 챠리가 정하는 뜻에 따르자는 말 이였고, 두 사람의 시선이. 4개의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는 순간, 어느 쪽을 택해야 하는지의 갈림길에 선 챠리는 숨을 들이켰다. 어쩌면, 자신이 미노뷰와 떨어져 다른 사람이랑 지내는 것보다, 오히려 성인이 되어. 혼자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손 위로 덮어진 커다란 손에 힘이 들어갔다. 덕분에 나란히 앉은 렙헬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입을 열었다.

 

 

언약. 할게요.

 

 

“......해서, 있다가 그렇게 해야 해.”

 

“.......”

 

듣고 있어?”

 

. 미안해요. 다시 설명해 주세요.”

 

나 원. 혀 차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언약식 순서를 알려주는 렙헬의 말에 귀를 기울인 챠리는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였다. 입장 순서, 방법. 언약식 진행 순서. 반지 교환 등의 절차를 머릿속에 담아 두자니, 마음에 걸리는 게 하나 생겼다. 어쩌면 그건, 본인 스스로에게도 해 봐야 할 질문일지도 몰랐다. 커다랗고 낡은, 언약식 장의 문이 열리자 문과는 다르게 깨끗하게 순백색으로 채워진 언약식장이 보였다. 고급스런 카펫에, 화려한 꽃들로 장식된 언약식장. 입장하라는 언약식 도우미의 말에 얼떨결에 부케를 받아 들고 렙헬, 그의 곁에 나란히 서서 앞을 주시했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발걸음이 조금 떨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들릴 듯 말 듯 조금 조용한 목소리로, 가장 중요한 질문 하나를 던졌다.

 

이렇게 까지 절 데려가고 싶어 하는 이유가 뭐에요?

 

그리고 화답하듯, 들릴 듯 말 듯 앞을 주시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모르겠다. 너는? 너는 왜 내가 그렇게 갑자기 언약 하자 한 말에, 선뜻 그렇게 하겠다 한 거지?

 

그리고 그 질문에, 예식장의 선단 앞에 설 때 즈음에서야 챠리의 입도 열렸다.

 

, 모르겠어요.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요.

 

 

 

*

 

 

괴롭히면. 꼭 연락해요.”

 

그럴 일 없습니다, 아버님.”

 

“.......”

 

 

노뷰는 마지막 까지 말했다. 언제든 다시 오라고. 대신 주어가 챠리로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챠리와 렙헬 두 사람 다 와도 된다는 의미란 것에, 세 사람 다 표정이 느슨하게 풀렸다. 대문 밖을 나서는 두 사람을 직접 배웅하던 노뷰는 먼저 앞장 서 가던 챠리를 그대로 둔 체 렙헬을 불렀다. 꼭 잘 부탁하노라고. 언약 반지가 껴진 손을 붙잡는 노뷰의 손길이 따듯해 그대로 잠시 있던 렙헬은 알겠다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손을 풀었다. 어쩐지 언약 반지가, 조금 더 묵직하게 느껴지는 것은, 괜한 착각일까. 저 멀리서 뭘 하냐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는 챠리의 시선에 렙헬도 발걸음을 옮겼다.

 

어쩐지, 책임이란 말이 묵직하게 와 닿는 기분이었다.

 

 

“....... 살다 살다, 반지 재료는 캐봤어도, 반지를 껴 보는 건 처음이네요. 이렇게 큰 보석이 달린 건.”

 

배로 한참을 이동하다가 마차를 타고 자신의 집으로 향하는 와중에, 나란히 마차에서 마주보고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손을 유심히 바라보는 챠리의 행동에 렙헬은 몸을 일으켰다. 잘 포장되지 않은 도로에서도 꽤나 균형을 잘 잡고 챠리의 옆에 앉는 것에 챠리가 몸을 움찔 했지만, 개의치 않고 반지를 낀 손을 쳐다보았다. 노동으로 단련된 몸만큼 약간은 거친 손. 자신의 손 보단 한참 작은 손이지만.

 

어쨌든, 무사히 데려 갈 수 있어서 다행이군. 곤란했는데.”

 

사람이 많이 필요 한가 봐요.”

 

뭐가? 일하는 거요. 그러니까 힘 좋은 사람 데려가는 거 아니에요? 하고 물어보는 것에 렙헬은 픽 웃었다. 힘 좋은 일을 꼭 밖에서 노동하는 것에 쓸 필요가 있나.

 

보통은, 내 집에서 일하게 될 거다.”

 

으응?”

 

집에 일할 첫 고용인으로. 그게 바로 너지.”

 

고용인으로 쓰기엔 조금, 많이 힘들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왼쪽 손에 낀 반지가, 잘 생각했다는 듯 반짝거리며 빛을 내었다고 생각하며 렙헬은 밖을 바라보았다. 늘 혼자 가던 거리. 익숙한 풍경에 다른 사람 한명이 더 껴 있다는 것은. 혼자가 되고 난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어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나이,

 

렙헬포드 25, 챠리 17살의 일이였다.

 

 

 

*

 

 

 

그 이후로 5년 동안, 꽤 많은 일이 있었다. 커다란 중형 하우스에 단 둘이서 살려고 하니 이것저것 혼자선 일손이 바쁘기 때문에 감당하기 벅찼던 것인지. 좀처럼 말 없던 챠리가 결국은 입을 열었다. 이사를 가는 게 어떻겠냐는 말과 함께. 이제는 서로 왼 손에 낀 반지가 익숙해졌고, 거의 뺀 적이 없었던 탓이었는지. 가끔 씻을 때 반지를 잠깐 빼면 손가락엔 반지 자국이 그대로 나 있을 정도였다. 반지를 잠깐 바라보고 샤워를 한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말리며 가운 차림으로 침대에 누운 렙헬은 입을 열었다.

 

이사?”

 

. 둘이 살기엔 좀.”

 

다른 건 몰라도 샤워만큼은 다른 방에서 꼭 하겠다며 고집을 피운 덕분에 다른 방에서 샤워를 마친 챠리도 머리카락을 말리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고급스런 침대는 폭신하기 그지없었고, 베개가 하나였던 것이 무색하리 만큼, 이제는 베개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것에 렙헬은 시선을 주었다. 생각해 보면, 식기들도 두 배가 되었고, 양치할 때 쓰던 칫솔도 두 개가 된지 오래되었다. 어디선가 음식을 사 오는 대신, 둘이 마주 앉아 식사를 하는 시간이 늘었고, 혼자였던 때엔 주말이란 것이 없이 움직이고 돈을 벌었지만. 이제는 휴식이란 단어가 기다려 질 만큼 그 달콤함을 알아버렸으니. 자신과 같은 비누향이 풍기는 챠리에게 시선을 준 렙헬은 옆으로 삐딱하게 누워 손바닥으로 얼굴을 받치고 입을 열었다.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여기보다 더 작은집은.”

 

나쁘진 않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천장의 조명을 끄고 스탠드의 불을 약하게 킨 챠리는 렙헬의 옆에 누워 그를 마주 보았다. 그리곤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잠에 취해 웅얼거리듯, 웃으며 말했다. 정원에 말이죠. 초코보 축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초코보가 꽤 까다롭긴 한데, 주인님 초코보랑은 잘 지내니까, 거기선 잘 지내겠죠. 그 옆에 작은 텃밭도 하나 놓고. 정원 구석에 모닥불을 크게 하나 피워 놓고, 그 주변을 평평한 돌로 꾸미는 거죠. 언제든 앉을 수 있게. . 벚꽃나무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봄이면 꽤 예쁘겠다. 그리고.. 마당 한켠에 작은 연못도 도마 풍으로 꾸며 보고도 싶고. 요즘은 모그리 장식이 달린 우편함이 유행이래요. 그런 것도..... 점점 작아지는 목소리에 렙헬은 픽 웃었다. 어느새 깊은 잠에 빠져든 챠리가 고단했는지 눈을 감고 작게 숨을 들이 쉬고 있었으니.

 

많이 컸네.”

 

이젠 어른 티가 난다. 예전엔 좀 작은 편이였는데. 지금은 큰 차이가 안 난다 싶을 정도로 많이 컸다. 챠리의 턱에 손을 올려 살짝 엄지손가락으로 턱을 쓸어보며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예전 같으면 조금 먼저 양보하려던 것도 이젠 다 옛날 일이라며. 지금처럼 뭔가 필요할 때 자신의 의견을 꽤 고집하고 내미는 것도 귀엽게 느껴져 웃어버렸다. 그의 왼쪽 손에 끼워진, 조금은 낡은 반지를 쳐다보았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반지.

 

집이라.”

 

 

렙헬은 침대 옆 협탁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 들었다. 집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있으니. 그쪽을 통해 알아보는 것이 제일 빠르니까. 침대 맡에 기대 한손으론 느긋하게 챠리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다른 손으론 급하게 잉크 펜을 움직였다. 조금이라도 더 기대에 보답할 수 있도록.

 

 

*

 

 

생각보다 챠리는 더 기뻐했다. 거의 반쯤 졸다 시피 하며 그냥 말해 본 것일 뿐인데. 자신이 생각한 것과 거의 일치하는 집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티를 안내고 싶어도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 갈 수밖에 없었다. 원래 있던 집은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아무래도 일손도 부족하고, 혹시 모르니 작은 부대를 하나 만들어 거기에서 활동 하도록 하게 했다는 말에 챠리는 고개를 선선히 끄덕였다. 그 많던 이삿짐들을 부지런히 렙헬과 같이 옮겨 꾸미고 나니 훨씬 아담하고 적당한 게 딱.

 

뭔가, 신혼집 분위기네.” “뭔가, 신혼집 분위기네요.”

 

 

동시에 같은 말을 내뱉는 두 사람은 서로 놀랐다는 듯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주 잠깐 눈을 마주쳤는데 신혼집이란 단어가 어찌나 부끄럽던지 곧바로 어색하게 고개를 돌렸지만. - 피곤하다. 좀 쉴까. 하고 자연스럽게 집 안에 다시 들어간 렙헬의 뒤를 따라 챠리도 따라 들어갔다. 하루 종일 거의 집 꾸미는 것에 정신이 없었으니 피곤 하긴 이쪽도 마찬가지라 생각하며. 커다란 침대에 옆으로 누워 피곤한 듯 하품을 조금 하는 렙헬의 옆에 챠리도 누워 기다란 하품을 시전 했다.

 

고생했다.”

 

수고했어요.”

 

그래, 그래.”

 

신혼집이라. 만약에, 아주 만약에. 이 사람에게 다른 연인이 생긴다면. 그땐 어떤 느낌일까. 자신은 이 집에서 나가야 하는 걸까. 괜한 생각에 챠리는 점점 말똥해 지는 정신을 느끼며 답답한 가슴을 쓸어 내렸다. 영 불편한 느낌. 속이 딱 막히는 느낌에 연신 가슴을 쓸어내리고 옆을 돌아보니 자기처럼 다른 생각을 하던 것인지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렙헬이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이고 있는 것에 그를 불렀다.

 

주인님.”

 

?”

 

“...아니에요. 이사 와서 좋다고요.”

 

“.....그래. 나중에 너 참한 신부 데려오면. 그때 이 집 줄게.”

 

뭐라고요?”

 

자신도 모르게 급하게 말이 튀어 나갔다.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챠리는 그를 쳐다보았다. 신부라니. 갑자기 아까 느껴진 가슴의 통증이 올라오는 것 같아서 미간을 찌푸렸다. 인상 안 좋기는 렙헬도 마찬가지지만, 이내 챠리를 쳐다보고 그 표정을 보고는 놀랐다는 얼굴을 해 보인 뒤 입을 열었다. 열려고 했다. 정확하게는.

 

농담이였-.”

 

싫어요.”

 

다급하게 렙헬의 위로 올라타 가슴 옷깃을 쥐어 잡은 챠리는 입을 부딪혔다. 다급한 탓인지 이 끼리 부딪혀 따닥 거리는 소리가 났지만. 개의치 않고 입을 맞추었다. 다른 사람이라니. 생각 해 본적도 없다. 이렇게. 같은 반지도 끼고 있는데. 흐릿하게 눈을 떠 렙헬의 왼쪽 손을 마주잡은 챠리는 고개를 살짝 틀었다. 아래쪽에 깔린 렙헬은 미동 없이 멍하게 이게 무슨 일인지를 파악 하려다가 얼굴을 붉히곤 그제야 챠리를 밀어 내려 했지만, 더 움직이지 말라는 듯, 몸에 무게를 실은 챠리가 렙헬의 양 손목을 붙잡고 머리 위로 올렸다. 완전히 구속당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솜씨도 좋게 침대 머리맡 기둥에 자신의 허리춤에 차고 있던 장식용으로 찬 가죽 끈을 풀어 헤쳐 묶어 버리는 것에 손에 힘을 주었다.

 

잠깐, 이거 풀.”

 

싫어요. 당신 아니면. 싫어요.”

 

뭔가 심장 한켠을 간질이는 듯, 알 수 없는 기분에 표정이 누그러진 렙헬은 괜히 다시 질문을 던졌다. 뭐가 싫은데. 하고. 그러자 생각 외로 대답은 빨리 돌아왔다. 당신이랑 언약 했잖아요. 하고. 이제 주인님이란 단어는 눈을 씻고 찾아볼래야 찾을 수가 없는 것에 헛웃음을 날리고 렙헬은 입을 열었다.

 

일단 이거 풀고 이야기 하지. 아이 장난은 여기까지면 충분-.”

 

장난 아니에요.”

 

나른하게 눈을 내려 뜬 챠리는 렙헬의 셔츠 단추에 손을 올렸다. 간만에 짐을 옮긴다고 정장 안에 입던 셔츠 하나만 입은 덕분에 아래에서부터 위로, 보통 셔츠를 입을 때 단추를 잠그는 방향과는 다르게 아래에서부터 천천히 셔츠 단추를 풀어내자 보랏빛 살에 보기 좋게 잡힌 근육이 천천히 보이기 시작한다. 잠깐 멈춰 보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는 듯, 셔츠를 풀어 헤친 챠리가 렙헬의 배에서 가슴까지 손으로 밀어 올리듯 셔츠를 열어 마치 예술 작품이라도 감상 하는 듯 시선을 주었다. 어쩐지 그 시선이 부끄러워 렙헬은 몸에 힘을 줘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잘 묶인 손목 덕분에 다시금 침대에 누워 버리고 말았다. 이거만 풀면 어떻게 될 거 같은데. 하고 위를 잠깐 쳐다보는 순간 가슴에 따듯하고 습한 무언가가 닿아 저도 모르게 읏-, 하고 신음 소리를 낸 렙헬은 고개를 내려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성인군자에게 입맞춤을 하는 것이라도 되는 듯, 가슴에서부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며 입을 맞추는 챠리의 행동에 몸을 움찔거린 렙헬은 얼굴을 확 붉혔다. 안 그래도 그와 같이 산 이후로 남자건 여자건 간에 거의 밖에서 뭔가 욕구를 해결 한 적이 없으니.

 

..... 하지 마.”

 

싫어요?”

 

그의 물음에 렙헬은 고개를 들었다. 갈색 머리카락. 동그란 녹색 눈. 거의 몇 년을 같이 한 얼굴이 오늘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에 렙헬은 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후회할거라면. 하지 말라고.”

 

그리고 챠리는 아주 다행이라는 듯 대답했다.

 

그런 거. 할 리가 없잖아요. 하고.

 

 

 

*

 

 

 

담배에 손을 댄지가 몇 년 만인지. 엉망이 된 이불 시트를 치운 건 결국 허리가 아픈 자신이었다. 어찌 어찌, 챠리가 뒤처리를 해 준 모양이지만. 어지간히 피곤해던건지. 게다가 조금은 울었었는지 눈가도 살짝 부어있다. 어차피 나중에 일어나서 한 번 더 씻을 것 같으니. 뭐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둘 다 이불 속에 있으려니. 묘한 감정이 든다. 이내 손에 집어든 담뱃대를 재떨이에 털어 놓곤 챠리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누구한테 보낼 생각도 없고.”

 

이렇게 버젓이 반지가 있는데. 가볍게 그의 반지가 걸린 손을 붙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자, 챠리가 눈을 부스스 뜨는 것이 느껴진다. 이쪽을 보고 눈을 크게 뜨고 어딘가 한 번 더 미안한 표정을 지을 것 같아 그의 목에 팔을 둘러 품에 안으니, 허리를 감싸듯 마주 끌어안는 그의 행동에 웃음이 났다.

 

미안해요.”

 

뭐가.”

 

손목......”

 

. 그러고 보니. 잔뜩 묶인 체 움직였으니. 붉게 살이 쓸린 흔적이 손목에 보였지만 개의치 않았다. 그것보단. 이쪽이 먼저니까.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주니 어깨 위로 턱을 올리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았다. 어쩐지, 어제 저녁만 해도 느껴졌던 공허함과, 쓸쓸함이 거짓말 같이 사라진 느낌에. 그제야, 언약식장에서 챠리가 물어봤던 질문에 답할 준비가 되었다 생각 했다.

 

많이 좋아했던 거 같아.”

 

“,,,,,,,”

 

처음 봤을 때는 잘 모르겠었는데.”

 

그땐 이렇게 마음이 커질 줄 몰랐는데. 많이 좋아 하는 것 같아. 이제 주인님 호칭은. 그만 해도 되겠다, 챠리. ? 그렇게 말하고 가볍게 몸을 토닥여 주니, 허리를 껴안은 힘이 더 커진다. 또 우는 건 아닌지. 괜히 걱정이 되어 얼굴을 보려 몸을 떨어트리려 했지만, 굳게 감긴 팔은. 어렸을 적, 배에서 그가 떨어질까 난감해 한 제 팔만큼이나 단단했기에.

 

많이 좋아해요.”

 

그래. 나도.”

 

때 이른 아침 햇살이. 창문가를 타고 침대를 비추었다.

 

 

 

 

 

*

 

 

 

챠리.

 

 

.

 

 

시트는. . 빨아라. 그거까진 못하겠다.

 

... 진짜. 분위기 하난, 최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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