博學審問(박학심문)
카테고리
작성일
2021. 8. 14. 18:37
작성자
you. and. me.

출처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1052120114095635

I paint objects as I think them, not as I see them.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그린다.

 

-피카소-

- 들어가기에 앞서-

내가 현장에 도착했을때, 이미 많은 인파가 즐비하게 줄을 서 있었다. 카페는 당연히 만석이고. 코로나로 인해 들어가는 인원수도, 열 체크도, 입장 QR코드도 모두 직원분들의 안내 하에 철저하게 이루어 졌다. 나와 나의 큰언니는 다행인지 큰일인지 모를 정도로 약 2시간 정도의 기다림 끝에 마지막 관람 순서에 겨우 들어 갈 수 있게 되어 느긋하게 전시를 관람 하고 왔다.

파노라마로 찍은 전시회 대기라인 줄 사진. 전시회가 끝난 뒤라 사람들이 각자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기 바빴다. 이번 피카소 작품에서 중점으로 다룰 두 점의 대표 그림이 전시회의 대기 라인에 조심스럽게 전시되어 있다.

근처 카페에서 찍은, 내 생의 첫 명화 전시회 관람표 ​

하도 대기줄이 길어 카페는 사람이 빠듯하게 차 있었다.

 

- 전시회 요금 및 안내 설명 -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2021-04-30(금) ~ 2021-08-29(일) <br /> 한가람미술관 제1전시실, 한가람미술관 제2전시실<br />센터뮤지엄랩

www.sac.or.kr

- 참고 링크: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 (서울 예술의 전당)


전시 안내 (Exhibition Information)
전시기간 Date 2021. 05. 01 (토) - 2021. 08. 29 (일) 매주 월요일 휴관 Closed on Monday
전시장소 Venue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Seoul Arts Center HangaramArtMuseum
홈페이지 Website www.picassoseoul.kr
전시문의 Enquiries 1661-1670
관람시간 Opening Hours
화요일 - 일요일 Tuseday- Sunday 10시부터 오후 7시 10a.m. - 7p.m
휴관일 Closed 매주 월요일 휴관 Closed on Mondays
(* 관람 종료 20분 전까지 입장권 구매 가능 Last entry 40 minutes before closing)
관람요금 Admission Fee (주민등록번호 기준)
구분 Division 개인 Individual 단체 Group (+20)
성인 Adults (만 19-64세) \ 20,000 \ 17,000
청소년 Students (만 13-18세) \ 13,000 \ 11,000
어린이 Children (만7세-12세) \ 11,000 \ 8,000
특별요금 Special Rate 현장판매 균일가: \ 8,000 (증빙자료 지참)
- 경로우대 (만 65세 이상) 본인
- 장애인 1~3급 본인 및 동반 1인, 장애인 4~6급 본인
-의상자, 국가유공자 및 유족
-36개월 이상 - 만 7세 미만

Walk- in Admission \ 8,000 (With valid ID)
- Seniors (65 and over)
- disabled (Grade 1-3) and plus 1 guest, Disabled (Grade 4-6)
- Veterans, Bereaved families of military casualty
- Children between 36 months - 7 years
무료입장 Free Admission 36개월 미만 Children under 36 months

예술의전당한가람미술관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 전시회 순서 설명 -


[연대기적 테마 구성]

1. 바르셀로나에서 파리, 혁명의 시대

2. 질서로의 회복,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3. 볼라르 연작

4. 새로운 도전, 도자기 작업

5. 피카소와 여인

6.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7. 마지막 열정


- 감상 후기 -

나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줄을 선 사람들 사이에서 피카소에 대해 이리저리 이야기 하는 사람들을 쳐다만 보았다. 이후에는 큰언니와 함께, 예정했던 대로 각각 3000원을 주고 작품 설명을 해 주는 기계를 구매해 관람을 시작했다. 리모컨처럼 앞에 인식하는 기계가 있어, 작품 근처에 가면 알아서 해당 작품의 설명으로 바꿔 나가기도 했지만, 나는 그림을 느긋하게 보며 귀에 들리는 안내를 음악 감상하는 느낌으로 천천히 듣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나는, 내가 미술시간에서나 배웠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카소의 그림들이 아닌, 우리가 잘 모르고 있던 피카소의 예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피카소 전시회 가이드온 - 담당 배우 :이정진 -

 

※ 저는 비 전문가이기 때문에,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평이란것을 꼭 알아주세요!

1. 고전주의와 초현실주의

작품명 : 편지읽기 , 1921, 캔버스에 오일

 

그림속의 청년들은 편지를 읽고 즐거워 하지 않고 있다. 어두운 옷을 입은 사람이 편지를 읽는 것으로 보아선, 편지는 그를 향해 쓰여졌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밝은 옷을 입은 남자는 친구의 옆에서 애도를 표하는듯, 모자를 벗어 바닥을 향해 힘없이 팔을 내려놓았고, 그들의 어두움을 대비하듯, 뒷 벽과 사람들의 얼굴로 비추어지는 하얀 조명은 오롯이 두 사람만을 위해 공간을 밝혀준다.

이 그림은 피카소가 죽은 뒤에 스튜디오의 그림 목록중에 이 작품이 있다는것을 알게 되고 나서야 공식적으로 피카소의 그림으로 올라오게 된 작품이다.

사람들은 이 그림에 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피카소와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기욤 아폴리네르라고 추측하고 있다.

기욤 아폴리네르는 시인이었다. 그는 피카소와 영감을 주고 받으며 시에 대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약간의 에피소드도 있는데, 옛날 1900년대에 한번 '모나리자'그림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때에 두 사람인 피카소와 아폴리네가 동시에 용의자 선상에 한번 오를 정도로 묘한 인연은 늘 계속되어 왔다. 이 그림은 기욤이 죽은지 3년이 지난 1921년에 그려진 그림이다. 이때 당시만 해도 피카소는 입체파에 입각해 그림을 그렸는데도 불구하고, 이 그림만큼은 그가 입체파 그림을 그린 시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신고전주의로, 사실적인 묘사를 해 둔 것이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예술을 떠나, 왜 피카소는 그런 그림을 그렸을까 하며 저 커다란 (거의 2.5m 수준으로 보이는 큰 그림이었다. 실제 그림 크기는 184cm X 105cm) 그림 앞에서 다들 스쳐지나가는 동안 나 혼자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추구했던 입체파로도 감당하지 못할, 친구의 죽음으로 인한 그리움으로 인해 당장이라도 그림 속의 친구가 튀어나와 자신을 위로해 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2. 볼라르 연작

볼라르 연작에서는 난생 처음 보는 그림들이 튀어 나왔다. 이 그림들은 펜으로 그린것이 아니다. 동판에 에칭(Eching)이란 기법을 이용해 찍어낸 것이다. 어째서 이 그림들은 '볼라르 연작'이라 불리는것일까.

볼라르 연작의 마지막에, 초상화로 보이는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그의 이름이 볼라로 인것을 보고 추측 할 수 있었다. 이것은 피카소가 당대에 영향을 받았던 볼라로라는 의뢰인을 위해 그려진 그림이라는 것을. 자칫, 단순하게 보이는 그림일진 모르겠으나 이 시기에 마리 테레스 윌터라는 연인을 만나게 되며 그의 인생도 달라졌고, 유난히 이 에칭 기법을 만든 그림들은 미노타우로스를 그린 그림이 많았는데, 왜 그 그림을 그렸는지에 대해 궁금해 찾아보게 되었다.

Minotauromachia, Pablo Picasso 1935

 

오른쪽에는 미노타우르스, 왼쪽에는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 남성은, 뒤를 훔쳐보며 사다리를 타고 도망가기 바쁘다. 그 앞에 선 아이는 평화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한 손에는 꽃을, 다른 손에는 밝게 타오르는 초를 지니고 높이 들고 있다. 말은 이 혼란스러움을 상징하듯, 미노타우르스와 싸우던 여전사를 급하게 업고 도망치기 바쁘고, 그 뒤를 미노타우르스는 악마의 모습을 하며 뒤쫓기 시작한다.

자세히 보면 남자가 타고 올라가는 사다리 위에서는 여인 두명이 이것을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어린 아이는 이 공포스러운 상황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덤덤한것을 보아 앞이 보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말에서 쓰러진듯한 여인의 발은, 말 앞발에 이미 반토막이 나 뒹굴고 있는것을 알 수 있고, 칼은 미노타우르스를 향한것이 아닌 죽음에 대한 고통과 절망으로 인해 자신을 향해 칼날을 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그림 이후에도 피카소는 많은 미노타우르스를 그렸다. 구태여 작품명을 미코타우로마키아 라고 지은것은, 미노타우르스(Minotauros) + 투우(tauromachy)를 합한 단어다. 미노타우르스가 마치 투우사에게 조련당하듯 앞만 보고 달려 나가는 위협적이면서도 불안한 요소들을 이끌어내는 제목이다.

이 시기에 피카소는 자신의 다른 연인이었던 마리 테레즈 (17살밖에 안됐는데 우리나라에선 거의 위험한 수준의 범죄.)가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던 시기이며, 또다른 혼선으로 스페인에서 발생한 내전의 직전년도 이기 때문에 전쟁에 대한 불안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다.

전쟁인 시기에 도망치는 사람과, 이를 모르고 순수함으로써 전쟁과는 대비되는 모습을 가지는 소녀. 그리고 전쟁에 대해 묵시하며 지켜만 보는 여인들과, 전쟁을 위해 싸우다 죽어버린 여인. 그것들을 모두 무시하며 달려나가는 미노타우르스는, 자신을 괴물에 비유해 삶을 나타내보고 싶었던 피카소의 자화상은 아닐지 생각해본다.

만일 내가 걸어왔던 모든 길이 지도에 표시되어 있고 선으로 결합되어 있다면,

그것은 미노타우로스를 나타낸 것이다.

If all the ways I have been along were marked on a map and joined up with a line,

it might represent a minotaur.

- 피카소 -

 

아무래도, 어린 아이를 임신시키고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했던 가장의 무게를 느낀 피카소와 전쟁에 대한 두려움, 연민 같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나타나서 그런것 같다. 자신을 그런것을 이겨내는 영웅에 비유하지 않고 괴물에 비유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이런 일들에 대해 무시하고 앞만 보고 달려 나가고 싶었는지가 은연중에 나타나는것 같았다.

6. 전쟁과 평화, "한국에서의 학살"

한국에서의 학살 ,1951,  합판에 유채

 

6.25 당시에 희생되었던 황해도 신천군의 학살 보도를 듣고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다. 왼쪽에는 여인들이 자포자기한 얼굴을 하고 알몸으로 서있다. 몇몇을 뺀다면, 여인들은 임신을 하고 있고 남자 아이인지 여자 아이인지 모를 아이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아이는 엄마에게 붙어 있기도하고, 엄마의 뒤로 숨어 있기도하며, 바닥에서 천친하게 아무것도 모른 채 돌을 가지고 놀거나, 총구를 겨눈 군인들을 피하기 위해 도망치려 하는 모습도 보인다.

오른쪽에는 상대적으로 무채색이고 무장한 군인들이 보인다. 갑옷을 입고, 아무것도 입지 않은 여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칼을 겨눈다.

상대적으로 왼쪽의 여인들에게는 살았던 세계의 평화로움을 상징하고 싶었던 것인지, 땅과 풀을 상징하는 녹색과 황토색이 많이 깔려 있는 반면. 군인들이 서 있는 땅쪽은 갈수록 어둡고 회색과 하얀색의 바닥으로 변해져 있다. 그들은 전쟁의 아픔과 무서움을 그대로 몰고 여인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이 그림은 피카소가 전쟁 상황을 듣고 묘사한 것이기 때문에 아직도 이 전쟁에서 칼과 총을 겨눈 주체가 누군지에 대해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았다. 군인들이 북한사람들이란 주장도 있고, 미군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그런 확실한 범죄의 주체에 대해서 피카소는 말하고 싶은것이 아닐것이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전쟁이란것은, 결국 아픔을 몰아붙이는 참극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을 극명한 대비를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모든 긍정의 가치는 부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비범함은 히로시마를 이끌고 간다.

Every positive value has its price in negative terms... the genius of Einstein leads to Hiroshima.

- 피카소-

 

전쟁은 사실, 누군가를 죽여야 한다가 목적이 아닌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것이라고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전쟁을 함으로써 영토를 넓히고, 생존의 확률을 높일 수 있고,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발상은 결국 무언가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 땅을 일구기 위한 일꾼을 죽여야 하고, 그 나라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던 관료들을 죽여야 한다. 그것을 피카소는 '아인슈타인의 비범함 (핵) 은 히로시마를 이끌고 간다.'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핵을 만드는것에 직접적인 참여를 한것은 아니지만, 훌륭한 에너지원이 될 수 있다고 말 하기 위해 실험에 대해 함께 해 왔다. 그러나, 그의 긍정적인 의도와는 다르게 일본은 완벽하게 폐허가 되었다. (그 앞전에 일본이 우리나라나 식민지배를 하던 나라에 대한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파악하지는 않겠다. 어쨌든 목숨이란것은 늘 소중하기 때문에.) 전쟁은, 항상 옳을 수 있을것인가.


- 마치며 -

나는 피카소가 한국 전쟁에 대한 그림을 그린줄도 몰랐다. 피카소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딱히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부분을 차지 하지 않을거란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예술가라는 명칭을 제외한다면, 피카소도 그냥 평범한 사람이고, 자신의 생각을 그림이나 예술작품들로 승화 하는 사람이란것을. 우리는 직접적으로 전쟁에 대해 겪어보지 못했고, 피카소가 겪었던 아픔에 대해 직접 보지도 못했다. (당연하지만.)

그는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직접 전쟁의 잔혹한 사진을 보여주는 대신 그림을 통해 아픔과 고통에 대해 표현하고 나누고자 했다. 이런것이 예술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생각'하는 시간인것 같았다.

좀처럼 경험하지 못한것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그 감정을 받아보는것. 그리고 그 그림을 지날때엔 또 잊어가는것. 그런것들이 좋았던 전시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