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수위로 쓸까 말까 했다가.. 한 17금쯤에서 멈추었습니다.
* 노래는 Michael Giacchino - Married Life (Pixar's Up Soundtrack) [Piano Version]입니다.
* 원작: 피너툰 - 불가항력 그대 진호와 민석편 :https://www.peanutoon.com/ko/comic/detail/1840
“형, 강아지 키우게요?”
“어? 아니, 그냥.”
급하게 보고 있던 책을 덮어 보지만 대문짝만하게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내밀며 금방이라도 멍! 하고 짖을 듯한 표지의 제목은, ‘강아지와 함께하는 십계명.’ 잠깐 본다는 게 그만 민석이 있는 줄도 모르고 하나하나 소제목까지 꼼꼼히 읽어보며 고개를 주억거린다는 것이 들키고 말았다.
“강아지라…. 형은 어떤 종이 좋아요?”
“종?”
“뭐, 푸들이라든지. 그런 거 있잖아요.”
민석의 말에 진호는 무언가 생각난 것처럼 책의 제일 마지막, 부록처럼 딸린 강아지의 종류를 실어 놓은 책자를 펼쳤다. 옆으로 같은 자세로 서 있는 멍멍이들 사이에서도 유독, 까맣고 윤기 나는 털의 개를 보자마자 그 밑의 이름을 찬찬히 읽었다.
“플랫 코티드 리트리버.......”
“와, 이름이 꽤 전문적이네요. 리트리버도 종류가 다양하구나.”
어느새 바짝 침대에 붙어서 책을 같이 쳐다보는 것을 쳐다보니 영락없는 멍멍이 한 마리가 자신의 옆에서 책을 보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그 귀여움에 손을 들어 웃으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자,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하며 휘어진다. 모든 것이 다 투영되는듯한 맑음. 한참을 그렇게 쓰다듬으니 쑥스러운 듯 눈썹을 조금 휘어 내리곤 말하는 것에 진호는 눈을 깜빡였다.
“형은 꽤 큰 종을 좋아하시는구나. 지난번엔 작은 강아지랑 같이 있으셔서 그런 쪽이 더 좋으신 줄 알았거든요.”
언제 검색한 것인지, 자유롭게 풀밭을 뛰어노는 검은 털의 강아지의 사진에 저도 모르게 ‘네가 어때서. 귀엽고, 좋구만.’ 하고 대답하자 예? 하고 반문하는 민석의 행동에 진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곤 아무 일 없는 듯 거칠게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곤 넘마, 귀엽다고. 하고 모른 척 우물우물 대답을 삼키며 갑자기 마라탕이 먹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눈에만 보이는 검은 귀와 꼬리가 쫑긋거리며 자신의 말에 온 신경을 다하더니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마라탕 맛집을 검색하며 전화를 거는 것을 보곤 책으로 입을 가리며 큭큭 거리고 웃었다. 영락없는 멍멍이.
“그래도, 역시 신경 쓰인단 말이지.”
요즈음이야 자주 붙어 있긴 했지만. 서로 바쁜 기간, 즉 복학을 앞두고 있자니 좀처럼 같이 무언가를 할 일이 줄었다. 자신이야 뭐 바빠서 정신이 없다지만, 아직 복학을 앞둔 학생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넉넉할 것이다. 덕분에 뭘 할지 고민인 차에 학과 사무실에 들렀던 애들이 두고 간 책. 강아지를 꼭 키울 거라며 다짐의 다짐을 했지만, 무능한 주인이 되기엔 충분했던게지.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버려 분실된 책을 잠시 빌려왔다. 그냥 강아지 사진이 귀여워 읽어볼 요량이었건만, 그 안의 내용은 진호의 눈과 머리를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강아지가 귀엽다고 무턱대고 예뻐 만 해주면 함께 생활할 수 없을 정도로 버릇이 나빠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지켜야 할 예의와 규칙이 있듯이 사람과 강아지 사이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이에 대해 알아보자.]
진호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근처에 놓인 방울 토마토를 하나 쏙 입에 넣고 꼭지를 때 도로 유리그릇 한쪽에 집어넣고는 토마토를 입안에서 굴려 어금니로 깨물곤 우물거렸다.
그래, 안 그래도 요놈이 요즘 말을 자꾸 놓으려 하지. 특히, 섹스할 때.
‘아, 형. 형 안이 너무 좁아.’
‘그래도 여기는 기뻐하잖아, 그렇죠? 오물거리면서 놔주기 싫다는데.’
“.......하는데, 형?”
“어? 어!? 뭐라고?”
멍하게 천장을 올려다보는 모양새로 그때의 추억 아닌 추억을 떠올리느라 얼굴까지 붉히고 있는데 차 키를 손가락에 끼우곤 재킷 주머니에 넣은 민석이 이쪽을 보고 빙그레 웃어 보이며 이마에 입을 맞추곤 허리를 일으켰다.
“마라탕 집에서 배달이 안 된다고 해서요. 제가 픽업해 올게요.”
“응, 조심해서 다녀와. 아니면 같이 가줄까?”
말을 마치기 무섭게 허리를 일으키려 하자 뿌득 거리는 진통이 오는 것에 흡,하고 숨을 몰아쉬었다. 어어, 하고 유리라도 다루듯 다시 몸을 안아주며 침대에 기대게 하는 민석의 행동에 진호는 책을 덮어버리곤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붉어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애를 썼다. 맞다. 어제 휴일이라 진탕 해댔지. 허리 아래로 감각도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이 오래다. 그냥 혼자 다녀와도 될 거 같아요. 침대에서 절대 나오지 마요, 형. 은근히 협박 같은 말이지만 표정 자체가 온화하기 그지없는 민석의 얼굴에 픽 웃고는 손을 까딱였다.
“이리와.”
“?”
“아, 우리 차 기사님 배달료가 비싸니까. 미리 선불 해드리려고.”
환하게 웃으며 민석의 뺨을 손으로 살짝 감싸곤, 고개를 숙인 녀석의 입술에 입을 맞추자 꽃봉오리라도 피는 것처럼 환하게 웃는 얼굴 덕분에 자신도 웃어버렸다. 금방 다녀올게요. 말을 마치기 무섭게 서둘러 다녀오겠다는 듯 구두칼로 구두를 신지도 않고 대충 구겨 신으며 발을 비비적거리며 뒤꿈치 부분도 들어가게 하는 모양새에 웃고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마자 책을 펼쳤다.
여기에는, 분명 차민석을 온순한, 아주 순종적인 강아지로 만드는 비책이 적혀 있을 것이다!
*
[1. 접촉 시간을 많이 가질 것.]
- 개가 마음먹은 대로 안된다고 해서 멀리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30분쯤은 개를 위해 할애하도록 합니다. 불가능하다면 5~10분이라도 좋습니다. 친밀히 접촉함으로써 개의 친화 및 의사소통이 생기고 그 속에서 상부상조하는 즐거운 생활이 이루어 지지요!
“손 줘봐.”
“예.”
마라탕도 먹다 말고 덥석 내민 손에 아무렇지도 않게 알겠다며 손을 내미는 모양새가 흡사, 오른손, 왼손을 가르치는 멍멍이의 훈육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아서 웃어버렸다. 가만히 보니, 어렸을 때의 그 작은 손은 어디로 갔는지. 내민 손을 들어 올리게 해 손바닥끼리 맞대어 보자 제 손보다 한마디 안되게 조금 더 큰 손에 놀랐다. 이렇게 컸나?
“형, 다 식기 전에 먼저 먹어요.”
“어, 잠깐.”
민석의 말에 손에 깍지를 잡고 마저 먹으려 했는데, 잡았던 손이 하필 오른손이라, 젓가락 자체를 쥐는 것이 고역이 되어 버렸다. 어린아이가 첫 젓가락질을 하듯 모양새만 대충 잡고 어기적어기적, 젓가락질하려 하니 청경채 하나가 눈앞에 들이밀어 지는 것에 진호는 눈을 깜빡였다.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당연하게도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이 가능했던 민석이 교본 같은 젓가락질로 청경채를 집어 내밀고 있었다. 이런 서비스는 환영이지. 아- 하고 입을 벌리려니, 장난기가 돋았는지 자신의 입으로 쏙 넣어 버리는 것에 눈을 흘겨 뜨곤 입을 열었다.
“맛있냐. 혼자 먹으니 맛이 끝내주던.”
“줄게요, 줄게요.”
웃으면서 다시 이번에는 면을 젓가락에 돌돌 말아 아- 하고 입을 벌리라는 듯, 제 입까지 벌려가며 소리 내는 것에 입을 벌리며 얌전히 받아먹자 환하게 웃으며 잘 먹는 것을 뿌듯하게 바라보는 민석의 반응에 진호는 픽 웃었다. 한참을 그렇게 손만 붙잡고, 먹여주면 먹고, 먹으라고 말하며 먹이고 하는 것에 재미를 들이다 텅 비어버린 마라탕이 든 그릇을 보곤 입맛을 다셨다.
“늦었으니까 먼저 양치해요. 제가 치울게요.”
“아니. 내가 치울게.”
얻어먹은 양심이 있지. 게다가 기름기가 많아서 그냥 치우기엔 고역일 것이다. 몸을 일으키려 하다가 이내 붙잡은 손이 여전히 떨어지지 않은 것을 쳐다보고는 씨익 웃곤 입을 열었다.
“이참에 내기라도 하던지. 먼저 손 떨어트리는 사람이 지는 거야.”
“좋아요. 뭘 걸건대요, 형은?”
뭐든. 대신 너무 비싼 건 안된다. 혹시 모르니 가격에 미리 제한을 걸어두고. 감당 안 되는 거라도 사달라고 하면, 당분간은 초졸한 밥상으로 연명해야 할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둘 다, 협동이라도 하는 듯, 빈 플라스틱 그릇들을 차곡차곡 모으고, 안에 있던 국물이나 잔반을 한곳에 모아 싱크대로 걸어가 물로 한번 씻어내기 시작했다. 마라탕은 기름기가 도니, 그래도 한번 세제로 닦아내고 분리수거 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 수세미에 세제를 주욱 짜내곤 닦으려고 열심히 손을 휘저었다. 물론, 플라스틱 그릇은 비웃듯 손짓에 따라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고. 싱크대 위의 아이스 스케이팅이 따로 없는 것에 이를 악물고 그릇을 구석에 몰아붙여 닦으려니 웃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온다.
“붙잡아 드릴까요.”
“기다려봐. 이 정도 쯤이야.”
빠르게 북북북, 한쪽을 닦아 내고, 다른 쪽 방향도 닦아 내려니 또 그릇이 빙글빙글 돈다. 하는 수 없이 옆을 쳐다보니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추며 그릇을 붙잡아 주는 손에 만족스럽게 설거지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물론, 조금 물이 튀어버려 옷이 좀 젖긴 했지만.
“치우는 건 다 했는데…….”
양치하려고 막상 세면대 앞에 둘 다 서서는 멀뚱히 칫솔과 치약을 바라보았다. 하는 수 없지. 칫솔 두 개를 한꺼번에 뽑아든 진호가 이내 치약을 짜라는 듯 까딱거리며 칫솔을 두어 번 흔들자 자연스럽게 민트향이 나는 치약이 주욱 짜지는 것에 만족스럽게 웃으며 자신의 입에 제 칫솔을 물고, 이내 민석의 입에도 칫솔을 물려 주었다. 칫솔질하며 곁눈질로 서로를 쳐다보다가, 눈이 동시에 마주치자 둘 다 컥-소리를 내며 얼굴을 붉히곤 입안 가득 거품을 세면대로 내뱉었다.
“아니, 갑자기 쳐다봐서.”
“......양치 잘하나 확인 하려 했지, 나는.”
제대로 못 한 쪽은 여전히 진호 쪽이었지만. 왼쪽 이를 닦으려 하니 손이 조금 힘이 덜 들어 가는 느낌에 어금니 쪽은 닦은 것인지 안 닦은 것인지 감도 안 온다. 한 번 더 닦을까 싶어서 칫솔과 입을 물로 헹구고 다시 치약을 짜달라 하자, 양치를 제대로 마친 민석이 칫솔을 낚아챘다.
“제가 해드릴게요.”
“뭐? 아냐, 내가 할 수 있.”
“제가 해드릴게요. 한번만요.”
이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어요. 웃으며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의 모습에 결국은 천천히 입을 벌렸다. 어금니만 잘 닦으면 돼. 나머진 제대로 닦았는데. 웅얼거리며 말을 하는 것에 민석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가볍게 이를 칫솔로 닦아내기 시작했다. 열중하는 듯 자신의 입안을 더 밀착해 쳐다보려는 것에 입을 꾹 다물어 버리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해하는 얼굴을 해 보였다. 형, 입 좀. 당황하는 모양새가 또 귀여워 고개를 저어 보이자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을 하더니 칫솔을 손에서 놓아 버리곤 옷 안으로 손을 밀어 넣어 손끝을 천천히 더듬어 가며 위로 올리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네요.”
이러면 벌리겠지. 위든, 아래든. 그 말에 진호는 당황해하며 칫솔을 서둘러 손으로 붙잡고는 무어라 한마디 하려 하는 순간, 유두가 손끝에 붙잡혀 조금 당겨지는 것에 신음을 내뱉어 내고야 말았다.
“너, 이.”
간사한 멍멍이 같으니.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워 왔나. 또 질 나쁜 녀석에게 잘못 꿰인 건 아닌가 싶어 깍지를 끼던 손을 풀어내곤 볼을 잡아당겼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그냥, 어디선가.”
그렇게 말하며 환하게 웃는 멍멍이의 표정에 진호는 눈을 가늘게 떴다. 웃음으로 무마하려고! 요놈의 콩깍지. 요놈의 콩깍지. 머리를 꾹꾹 눌러가며 강하게 쓰다듬어 버리자 양손이 제 손 위로 겹쳐 잡아 지는 것에 침을 삼켰다.
아차.
“생각보다 내기는 쉽네요, 형.”
소원은 침대에서 천천히. 그럼 되겠죠? 속삭이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귓가에 조곤조곤 말을 하니 저절로 몸이 움츠러든다. 간지러움이 온몸을 타고 훑어 내려가는 기분에 당했다 싶어서 녀석을 밀어 보려 했지만 단단한 손이 가볍게 그것을 제지하곤 몸을 안아 올린다.
“잠깐만. 다시 하자. 나는 왼손밖에 못 쓰고! 이건 불공평하지!”
“형이 먼저 시작했는데, 번복하는 건 아니죠?”
오늘은 살살 할게요.
말은 그렇게 해도. 제 윗옷을 천천히 거두어 올리며 가슴 이곳저곳에 입술을 촉촉 거리며 맞추는 행동이 영 미덥지가 않다. 이거 봐라. 기어이 배며, 문신이 있는 곳이며. 입을 크게 벌려 한 움큼 깨물어 버리는 것에 저절로 신음을 내뱉고는 달뜬 얼굴로 민석을 쳐다보던 진호는 이내 앓는 소리를 냈다. 얼른, 그만 화나게 하고. 넣어줘, 응? 보채는 듯한 말투로 허리를 다리로 감아 당기자 바지 지퍼를 내리던 손이 멈추고는 나지막하게 웃는 목소리가 들린다.
“저도 못 참겠는데.”
밤은 기니까요, 형. 달큼하게 귀에 속삭이듯 말하는 행동에 진호는 얼굴을 붉히곤 허리를 붙잡고 내리는 손길에 침대 시트를 움켜쥐었던 손을 조금 풀어 버렸다.
흔들리는 시야에 문득 생각해 보니, 이미 충분히. 접촉시간은 많이 가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
책 제목, 1번에 붉은 줄을 죽죽 그었다가 이내 동그라미를 다시 쳐 보았다. 과했다. 아직도 아려오는 허리에 담배를 줄로 피워대며 책을 다시 쳐다보곤 몇 가지 목차를 건너뛰기 시작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고. 책을 대충 훑어 보다가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담배꽁초를 재떨이에 비벼끄곤 다시금 목차를 쳐다보았다.
[4. 정다운 말을 쓰는 습관을 가질 것.]
- 멍멍이에게 말을 할 때는 짧은 단어로 뜻에 맞는 어조로 정답게 합시다. 멍멍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해도 경험과 습관으로 그 속의 악센트로 뜻을 알게 되지요. 쓸데없이 긴 단어보다 어조가 뚜렷한 짧은 단어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면, 칭찬할 때는 ‘좋아, 옳지.’로 하고, 혼낼 땐 ‘안 돼, 못써.’ 등으로 길들이는 것이지요.
“어허.”
“형.”
“어허, 안 돼.”
“형, 요즘 무슨 일 있어요? 저야 좋다, 싫다가 확실해진 느낌이라 더 좋긴 한데.......”
기어이 지금은 제철이 아니라며, 두 송이가 담겨있던 포도 상자를 내려놓고는 사과 한 봉지 10개 들입을 카트에 집어넣고는 눈을 흘기며 민석을 쳐다본 진호는 진열대의 가격표를 두어 번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제철 과일이 아니면 비싸다고. 비타민은 사과도 충분히 있어. 비타 400도 사과 짜내서 만든 거 아냐.”
기어이 시식코너까지 끌고 가서는 자취 생활의 완벽함, 시식코너 맛보고 요령껏 회피하기 기술까지 선보이며 어깨를 나란히 맞대고는 카트를 끌며 장을 보기 시작했다. 마침 마트 안에 약국도 있겠다, 파스도 사다 가야지. 생각해보니 요리를 직접 해서 먹이는 것은 또 간만이라, 건강식으로 차리면 좋겠다 싶어 마침 떨어진 간장을 떠올리며 근처의 두부를 집어 들었다.
“차 기사님. 가서 간장 좀 가져오겠습니까.”
“간장이요. 알겠어요.”
고개를 끄덕이곤 성큼성큼 비율 높은 걸음으로 소스류가 있는 코너를 기웃거리며 간장을 찾는 것을 보곤 웃어 보이곤 찌개용 두부 한 모와 콩나물 한 봉지를 골랐다. 그래도 건강하면 역시 유기농이니, 오래간만에 과감한 식비 투자를 해볼까 싶은 찰나에 무언가 옷깃을 당겨내는 감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가, 이내 뒤를 돌아보곤 헉 소리를 내며 두부와 콩나물을 아무렇게나 카트에 집어 던지곤, 간장 가지러 갔다가 세상 잃은 표정이 되어버린 민석의 뺨을 붙잡았다.
“뭐야, 무슨 일 있어? 아니면, 그건가? 약은?”
“아.”
아뇨, 형. 그게 아니라. 고개를 푹 숙이곤 이내 말없이 카트와 진호의 손을 붙잡고 끌고 가기 시작하는 것에 진호는 어어, 얘가 왜 이래 하며 속절없이 끌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간장의 향연에 민석의 표정에 얽힌 이유를 눈치채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간장이, 무슨 간장을 가져와야 할지 몰라서.”
크기도 천차만별이고요, 형. 상표도 너무 많은데, 같은 간장인데 왜 값이 다를까요. 재료가 더 좋나? 이내 신중한 얼굴로 아래쪽의 간장 두 개를 집어 들곤 서로 성분 표시를 뒤적거리더니, 국산 천일염이 들어갔다며 흥분해서는 이게 더 맛있을 거 같다는 말을 하는 것에 입을 가리고 웃어버렸다.
도련님은 도련님이지. 어떤 간장이 필요한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이쪽의 잘못도 있다만. 이내 천일염이 들어갔다는 민석이 들고 있는 진간장을 카트에 담고, 근처에 같이 놓인 할인 쿠폰 종이를 한 장 빼 들었다.
“이 정도 크기면 되겠다. 둘만 먹을 거라,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잘했어요, 우리 강아지. 옳지, 옳지. 배운 것은 제대로 써먹어야 한다며 민석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묘한 표정으로 뚫어지라 쳐다보더니 이내 그대로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려는 듯 가까이 다가오는 행동에 입술을 그대로 손끝을 모아 막았다.
“어허.”
“형, 진짜.”
“야, 아무리 그래도 밖인데.”
“지금 아침이라, 사람도 거의 없는 데요.”
낮말은 두부가 듣고, 밤말은 콩나물이 듣는다는 말도 모르느냐. 가자. 이 정도면 살 거 다 샀다. 그렇게 말하며 또 꿍해져 있는 강아지의 턱을 살살 쓰다듬어 주며 잘했어요, 잘했어요. 하고 진호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다루기 마련이지. 책이 아주 틀린 건 아니라며 회심의 미소를 휘날리며 장본 것을 계산하곤 박스에 담아 차로 실어 나른 뒤, 조수석에 타곤 벨트를 매기 위해 어깨너머를 손으로 더듬거리자, 짐을 정리해서 다시 실어둔 민석이 운전석에 타며 이내 손을 뻗어 벨트를 당겨 내려 매주었다.
“아, 땡-.”
큐, 하고 대답하려는 순간 막혀오는 입술에 진호는 흡, 하고 숨을 급하게 들이켰다. 숨을 내뱉음과 동시에 얽혀오는 혀에, 얼굴을 살짝 돌리며 거친 키스를 받아 내려 애를 써보지만, 벨트 때문에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응, 잠.”
말 좀 하자, 말! 꽤 많이 참았던 듯 입술에서 떨어질 기미가 안 보여 어깨를 붙잡고 힘을 주어 밀어내고는 색색거리는 숨을 내뱉었다.
“집에서. 집에서 해. 응?”
“좋아요.”
요즘 형이 자꾸 이상하게 행동하니, 저까지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벨트도 매며,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하는 행동에 진호는 이를 악물었다.
그날 침대에선, 좋아, 거기, 옳지, 안돼. 에 대한 복습이 이루어졌고. 진호는 다음날 책을 조용히 버렸다. 과사에서는 잃어버린 책에 대한 행방을 찾느라 분주한 어느 한 청년의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
“밥 다 됐어. 먹으러 와.”
“예, 금방 가요.”
진호는 흘깃 몸을 뒤로 조금 빼, 느릿하게 대답하는 민석이 무엇을 하나 어깨너머로 쳐다보았다. 무슨 책을 보고는 있는데. 잘 보이지는 않는다. 워낙에 어깨가 점점 넓어져서. 이상한 동물 사진도 있던 것 같기도 한데. 고개를 갸웃거리며, 갓 끓인 된장찌개를 조심스럽게 냄비 받침대에 올리곤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찬도 훌륭하고, 국도 간이 얼추 되었으니. 이 정도면 먹을 만 하겠지.
“빨리 안 오면, 국물도 없다-.”
“가요!”
급하게 책을 덮으며 근처 선반에 책을 뒤집어 올려놓은 책은 이내 힘없이 바닥으로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너구리 대 백과사전]
“헉, 진짜 맛있어요!”
떨어진 책은 말없이 다음에 일어날 일을 암시하듯, 조용히 그렇게 방 한쪽에서 따사롭게 빛나는 햇살을 내려받으며 늦은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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