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건 픽션!!!! 픽션!!! 이렇게 난 또오오오 픽션~~ 픽션!!!(현란한 발춤)
*편집본 입니다. 수위본은 밑에 글!
사랑의 법은 치외법이다.
-J. 가우너-
Tatsuya & Yotshui
스승은, 자신의 말을 듣고 표정을 굳혔다. 스승, 자신이 들이 부어버린 양동이의 물을 잔뜩 머금은 타츠야의 머리카락에서 물이 뚝뚝 떨어질수록, 어쩐지 그의 근처에서 풍기는 에테르 가루들이 반짝이는 것이 자신의 눈에도 보였기 때문에. 어디서 저런 에테르를 덮어쓰고 왔는지는 몰라도, 모든 속성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 않아 보이겠지만. 이것도 타츠야가 말한 ‘공간 이동’ 의 영향일까. 아니면……. 노인은 생각에 잠겼다. 타츠야와 수련을 끝낸 것이 고작 해봤자 몇 시간의 일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다른 곳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라. 혹시 몰라 에오스를 불러내 이것저것 물어보며 추궁했지만, 입을 다물고 아무런 대답이 없는 소환수의 모습에 스승과 제자는 골머리를 앓았다.
“이번 한번 뿐이겠지.”
“.......”
그러면 좋-. 하고 거기까지 말을 끝낸 타츠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자신을 안심 시키려는 듯, 다음은 없을 거라는 그 말에 대답을 하려다가 말았다. 좋다고? 말을 꺼내려 하니 갑자기 입이 열리지 않는다. 무의식 적으로 좋다는 대답을 하면 안 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심장을 쓸어내리자 답답함이 도리어 더 올라 오기 시작하는 것에 타츠야는 헛기침을 하며 눈을 감았다. 언뜻 손에 들린 책에 걸린 열쇠가 자신의 손바닥에 닿는 것이 느껴져 시선을 내렸다. 한낱 꿈인 줄 알았더니. 어색하게 다른 사람은 안아보지 않았다는 그런 느낌으로 자신을 안아 들어 초코보에 앉힌 슈이가 문득 떠올라 열쇠 끝을 만지작거렸다.
“게다가, 네가 거기서 뭘 하고 왔는진 몰라도. 에테르 반죽이 되어서 돌아왔으니. 이걸 털어 낼 수도 없고.”
스승의 말에 타츠야는 자신의 몸을 돌아보았다. 미묘하게 반짝 거리는 무언가가 자신의 몸 구석구석에 달라붙어 있는 것이 눈을 깜빡였다. 그쪽 세계에서 만난 이후 접촉을 한건 단 한사람 밖에 없었다. 시바라는 그 야만신을 마주 했지만, 거기선 이렇게 다채로운 속성의 에테르는 느껴지지 않았으니. 어째서 바로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일까. 이제까지 책으로 배웠던 것이 영 실전에선 먹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머리카락을 양 손으로 움켜쥐고 맥없이 놔 버렸다. 홀린 게 분명해. 그 슈인가 뭔가 하는 사람한테. 눈을 감으면 자꾸 떠오르는 붉은 눈동자와 보랏빛 눈동자가 아직도 코앞에 있는 것처럼 선하게 느껴지는 것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끼곤 얼굴을 양 손으로 덮고 고개를 숙여 버렸다. 뭐하자는 건지. 다른 세계를 왔다 갔다 했다는 것이 중점이 되어야 할 텐데 머릿속이 단 한사람으로 물들어 버려 좀처럼 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아무튼 그 근처는 가지 않는 게 좋겠구나. 네가 설령 다시 그 꿈속의 세상으로 들어가도 말이야.”
“예?”
그 근처라니. 자신의 머릿속 질문을 읽은 것처럼 스승은 대답했다. 그 에테르들의 근원지 말이다. 조만간 에테르가 더 달라붙는다면 그 주변엔 야만신이 나올지도 몰라. 새로운 야만신 말이다. 하고 스승이 대답하는 것에 타츠야는 입을 다물었다. 그 주변이, 차마 어떤 공간이 아닌. 사람 한명의 몸이라는 사실을 대답했다간 스승은 어떤 방식을 고수해서라도 자신을 이곳에 묶어 둘 것이 분명 했으니까.
그렇게 된다면. 어쩌면 슈이, 그 사람을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타츠야는 입을 더 이상 열지 않았다.
*
“혹시 모르니 내가 곁에 있는 편이 좋지 않겠냐.”
숲속에 마련된 임시 천막. 모험가들이 잠시 쉬기엔 또 이만한 곳이 없지만. 자신의 스승은 쉬기는커녕 무언가 불안함을 눈치 챈 것인지 근처를 한참 서성이다가 자신의 천막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부드러운 풀 위에 더 푹신하도록 짚을 가득 깔아 놓은 뒤 그 위로 두꺼운 천을 깔면 나름대로 모험가에겐 근사한 침대가 된다. 노인과 이야기를 마치고 나니 별이 떠오르는 것이 보여, 서둘러 준비한 잠자리치곤 꽤 괜찮게 만들어 졌다며 누우려 하니 노인이 저렇게 물어보는 것에 타츠야는 입을 열었다.
“아무 일도 없을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 넌.”
내 자식이랑 다름없는 놈이잖냐. 하고 대답하는 노인의 대답에 타츠야는 웃으면서 책을 들어 보였다. 노인이 선물해준 책. 자신이 하도 사용하고 넘겨서 조금은 낡은 이 책이, 노인이자 스승의 말에 대한 답이 될 거라 판단했으니. 그제야 노인의 표정이 조금 풀리고는, ‘쯔쯔. 귀여움이라곤 없는 녀석.’ 하는 장난스런 너스레를 풀어 놓았다. 타츠야도 픽 웃으며 책을 근처 나무둥치에 올려 두려다가 이내 품에 책을 껴안았다. 눈을 감자 머릿속에 저울 하나가 떠오른다. ‘현실’ 과 ‘꿈 속’. 한쪽 저울에는 낡은 책이. 다른 쪽 저울에는 책에 달려 있던 열쇠가 올려져 있다. 그리고 머릿속에 속삭이듯, 질문 하나가 불현듯 떠오르는 것에 타츠야는 숨을 멈추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뭘, 고를래?]
그리고 타츠야 자신이 어둠 속 공간에서 저울에 올려진 책과 열쇠 하나를 선택하려 팔이 뻗는 장면이 보이는 것에 타츠야는 억지로 눈을 뜨려 했지만, 몸이 물을 잔뜩 머금은 솜처럼 움직이지 않고 늘어지는 것에 당황했다. 다시금 목소리가 속삭이기 시작하는 것에 타츠야는 침을 삼켰다.
‘어차피.’
어차피 여기엔. 여기의 인연이 있는 것이고 저쪽에는 저쪽의 인연이 있는 것이리라. 거의 일 평생을 같이 한 노인. 아까의 선한 미소가 떠오르는 것에 타츠야는 자신 있게 손을 뻗었다. 일단. 지금은.
[.......재밌구나. 너.]
움켜잡은 열쇠에 힘이 주어진다. 억지로 자신을 뒤에서 끌어당기는 듯 한 느낌이 들어 미간을 좁히자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옅어졌다. 알 수 없는 힘에 뒷걸음질 쳐지며 멀어지는 책을 보고 타츠야는 눈을 감았다. 노인이라면. 이해 해 줄 거라며.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타츠야는 솔직해 져 보기로 했다. 이 느낌이 도대체 무엇인지. 그리고 만약 돌아간다면. 노인에게 돌아간다면, 모든 것을 솔직하게 고하리라. 그때가 된다면 두 세계 중 어느 한 세계를 선택할지. 좀 더 확신이 찰 것 같았기에.
그러나 생각보다, 이 고민은. 아주 빠르게 타츠야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
“.....헉!!”
“........ 놀래라.”
갑작스럽게 눈을 뜨고 일어난 타츠야의 얼굴 가까이에 있던 슈이는 갑자기 떠진 두 눈에 놀라서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가 혀를 씹었다. 아파! 저 뭐랄까. 죽은 듯이 자는 타츠야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한 것뿐이다. 심장에 귀를 기울였는데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자신이 잘못 하는 건지 의심까지 가서 잠깐 숨을 불어 넣어 주려 한 거다. 갑자기 머릿속에 나쁜 악마 한 마리가 툭 튀어 나와, 그건 간접 입맞춤이잖아. 하는 탓에 억지로 악마의 멱살을 잡아서 울그락 붉으락 한 얼굴로 악마의 콧구멍에 손을 쑤셔 넣는 상상까지 하고 나, 비장하게 아니다. 그런 것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단순한 인공호흡이란 것이다. 하고 벽 구석에 코피를 흘리며 쓰러진 상상 속 악마를 힐끗 쳐다보며 승자의 미소를 짓곤 고개를 숙인 것인데. 갑자기 두 눈이 번쩍 뜨이고 푸른색과 노란색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하는 것에 코앞까지 다 와갔던 얼굴을 확 붉히곤 서둘러 떨어진 것이 화근이었다.
“....여긴.”
“뭐야. 하도 안 일어나서 깨워 주려 했는데.”
“내가 얼마나 잤지?”
“거의 열 두 시간.”
아예 하루 종일 눈 못 뜨는 건줄 알고 걱정했다고. 하고 어색하게 대답하자 테오는 자신의 뺨에 손을 올려 참 잘했다는 듯 볼을 두어 번 쓸어 주었다. 그것에 꽤 기분이 좋아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나른하게 뜨자, 자신의 볼을 만진 테오가 마치 손에 더러운 것이라도 묻은 것 마냥 손바닥을 펴보고 미간을 찌푸리는 것에 덩달아 얼굴 표정이 굳어진다. 얼굴 잘 씻었는데. 마치 뭔가를 닦아내는 듯 침대 시트에 손바닥을 문지르는 그의 행동에 덩달아 자신의 볼을 자신이 매만진 슈이는 입을 열었다.
“뭐 묻었어?”
“.... 너, 야만신. 많이 죽여 봤다고 했지.”
“그...랬지.”
이젠 가지마. 하는 난데없는 말에 슈이는 머릿속에 의문표를 가득 띄웠다. 갑자기 자다 일어난 사람이 난대 없이 야만신을 물어보고. 더 이상은 가지 말라는 말에 좀처럼 실마리가 잡히질 않아 슈이는 타츠야의 침대 옆에 걸터앉아서 왜? 하고 물어 보았다. 좀처럼 뭔가 생각이 안 나는 사람처럼 미간을 좁힌 타츠야는 이내 입을 열고 그 이유에 대해서 아주 제대로 설명 해 줄 필요가 있다 생각했다.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 몇 가지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라면 방지 할 수 있겠다 하고. 침착하게 슈이의 양 뺨을 손으로 감싸고 입을 열려던 순간 갑자기 급하게 열리는 방 문에 그쪽을 주시했다. 얼굴이 잡힌 슈이도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문이 열리는 곳을 바라보자 다급하게 들어온 흑와단 병사 옷차림의 남자 한명이 헉헉 거리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곤 흑와단 식으로 경례를 해 보이는 것에 슈이가 짜증을 내며 입을 열었다.
“뭔데.”
“슈이 준위님! 어제 포획했던 야만신으로 변환이 가능한 여성이 탈주 했습니다!!”
“미친.”
“........슈이. 잠시만.”
가지마. 라고 대답하는 타츠야의 말에 슈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은 마치 자신이 저울에서 책과 열쇠를 택했을 때의 표정이 저랬을 것만 같아 타츠야는 얼떨결에 잡은 슈이의 손에 힘을 주었다. 나는 너를 택했다. 몇 십 년의 인연을 어쩌면 버리고 온 걸지도 몰랐다. 안경을 쓰지 않아 뿌옇게 보이는 시야에도. 슈이의 손을 잡고 가지마. 하고 한 번 더 말을 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일단 안경부터 쓰고. 서둘러 안경을 쓰고 타츠야는 슈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뇌와, 고통. 그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가름이 나지 않은 슈이의 얼굴은 그랬다. 그리고 그는. 영웅과도 같은 대답을 내 놓았다.
“이대로 뒀다간 림사 로민사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어.”
“.......”
“테오.”
그래. 알고 있어. 하고 대답해 주자 슈이의 표정이 조금 풀리는 것에 타츠야는 얼굴을 숙였다. 잡은 손이 너무나 뜨거운데 이렇게 차갑게 느껴질 줄이야. 급하게 병사에게 출전 준비를 시키는 슈이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리지만 타츠야는 이내 슈이의 팔을 끌어 당겼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당겨지는 자신의 팔에 슈이가 얼떨떨하며 딸려 오는 것에 타츠야는 슈이의 뺨을 붙잡고 말했다.
“나도 가.”
“.......”
나도 갈 거야. 말리지 마. 가지 말라 해도 따라 갈 테니. 테오의 결의에 찬 대답에 슈이는 ‘그래.’ 하고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
“위치는?”
“모르도나의 이른서리 고개지역입니다!! 두 개의 부대가 먼저 선발 출발 했지만 아직까지 별다른 소식은 없습니다. 보고 올까요?”
바보냐. 바보인가. 어쩐지 묘하게 닮은 두 남자가 병사에게 그렇게 동시에 대답하자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았다. 어쩐지 묘하게 귀 끝이 서로 붉어져선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헛기침을 하며 서로의 반대편을 보며 딴청을 피우는 슈이와, 테오의 행동에 병사는 머리를 열심히 굴리며 어째서 자신이 바보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별다른 답은 나오지 않았지만. 자신의 고민을 알아차린 건지 슈이가 검 집으로 병사의 머리를 한 대 통 내리치며 한심하단 어조로 말했다.
“연락이 없으면 하나뿐이잖아. 무려 7시간이 지났으면.”
“죽은 거지.”
둘이 죽이 꽤 잘 맞는 듯, 고개를 서로 주억거리며 그거밖에 답이 없다고 말하는 두 남자 덕분에 병사는 무릎을 쳤다. 죽었구나. 아니 잠깐만.
“죽었어!?!?! 아.. 아니 그럼 준위님. 우리 부대 밖에 안 남았는데요?”
“두 부대가 아무 손도 못쓸 정돈 아니였을거다. 시바, 그 여자 쪽에도 적지 않은 피해가 갔겠지. 들어가려면 지금이다.”
가장 힘이 빠졌을. 지금. 근처가 사방이 빙결의 에테르로 다 차 있으니 체력을 다 회복하기 전에 빨리 치는 것이 가장 올바른 판단이라 생각한 슈이는 테오를 보았다. 테오 또한 그것이 맞는 판단이라 생각한 건지 표정을 굳히고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는 것에 슈이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하게 창을 내미는 병사. 슈이는 한참을 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검과 방패를 골라 쥐곤 잘 적응이 안 되는지 손잡이들을 손으로 쥐었다 폈다 하며 그 느낌을 최대한 빠르게 몸에 익히기 위해 움직였다.
“혹시 모르니 지난번처럼 최악의 사태는 막아야지. 미리 대위한테 연락을 넣어. 지금부터 3시간 뒤에 아무런 연락이 가지 않으면 숙련자로 구성된 후발대를 보내라고.”
정 그렇게 모험가들을 쓰기 싫으면, 그 알량한 흑와단 자존심을 지키고 싶어 이렇게 때죽음을 시키는 거면. 모험가들한테 억지로라도 흑와단 옷이라도 입혀서 보내라고 말이야. 꼭 그렇게 전해. 하고 병사의 어깨를 검을 쥔 손으로 두어 번 주먹을 쥐어 두드린 슈이는 이내 방패를 쥔 손에 검도 같이 쥐었다. 그리고 여유로워진 한쪽 손으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긴 테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가자.”
지난번처럼. 날 구해준 것처럼. 이번에는 자신이 테오를 지킬 거라며. 슈이는 다심을 하고 손을 뻗었고, 마치 테오는 그것을 아는 사람처럼 부드럽게 슈이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얼음 바람이 두 사람의 뺨을 가르는 것 같았다.
*
“회복 역할은 최대한 회복에만 집중해!!”
그렇게 답해봤자, 이미 상황은 지난번과 마찬가지였다. 더디게 회복을 하고 있던 시바는 갑작스런 3번째 공격에 서둘러 공격할 준비를 했고, 이때다 싶은 슈이가 먼저 전진해 바닥의 시체 잔해 근처에 있던 도끼를 던져 시바의 허벅지를 베어 버리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나마도 야만신좀 잡아 봤다는 녀석들을 불러 만든 부대임에도 불구하고 만만히 본건지, 아니면 당황한 건지. 제대로 회복에 집중하지 못하는 녀석들과, 가까이 갈수록 냉혹한 추위에 버티지 못하는 녀석들 덕분에 그나마 테오의 역할이 부대의 꽃으로 성장했다. 에오스라는 요정의 적절한 치유 능력과, 빠르게 캐스팅을 하며 틈틈이 방어 역할을 담당하는 자신과 다른 한명의 나이트에게 고무격려를 해 주는 덕에 예전보단 더 버틸 만 했지만. 무언가 치명상에 죽어나가는게 아니라, 과도한 마법력 고갈로 다들 헉헉 거리는 꼴이 대단했다. 아주 좋은 부대라 저절로 욕이 나온다며 슈이는 혀를 찼다.
“4부대 3시간 뒤에 오라 했는데, 무슨 3년이 걸릴 거 같냐!!”
“슈이!! 뒤!!!”
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서둘러 뒤쪽으로 몸을 돌려 방패를 올리자 얼음 칼날 하나가 자신의 방패에 박히는 것에 몸에 전율이 흘렀다. 순간적이지만 치명상을 입을 뻔 했지 않았나. 시야를 막은 방패를 내려 서둘러 바닥에 얼음 칼날을 나뭇가지 부러트리듯 밟고 으깨 부수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테오.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치유력을 올리는 행동에 안도 하려던 찰나 시바가 눈을 번쩍이며 마지막 사력을 다하려는 듯 자신의 몸 자체를 얼음으로 변환시켜 테오에게 돌진 하려는 것을 보고 전력으로 질주 했다. 테오도 무언가 잘못 되는 것을 느낀 것인지. 순간 슈이와 눈이 마주 치자마자 빠른 속도로 달렸다. 자신 쪽으로 올 줄 알았지만. 정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행동에 슈이는 눈을 크게 떴다. 반면 테오는 아주 다행이라 생각하며 시바가 자신의 쪽으로 향하도록 최대한 회복력을 자신에게 써 가며 앞을 향해 달렸다.
‘에테르가 더 달라붙는다면 그 주변엔 야만신이 나올지도 몰라. 새로운 야만신 말이다.’
스승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번이 마지막 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테오는 시체를 밟아 가며 달렸다. 그 순간, 빠르게 전진하는 냉기가 느껴져 뒤를 돌아보자, 생각했던 거 보다 더 빨리 돌진하는 야만신의 모습에 타츠야는 이를 악물었다. 한 대. 한 대 정도는, 야전치유진으로 버틴다면 살 수는 있다. 약속했던 3시간이 다 와 가니 후발대가 와서 구해준다면 다치는 것쯤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멈추려던 순간 등 뒤에서 검은 물체 하나가 시바의 등 뒤를 향해 창을 휘두르는 것에 눈을 크게 떴다.
“슈이!! 안-!”
뭐라 말릴 사이도 없이 커다란 파편으로 얼음이 갈라져 가기 시작했다. 창에 꿰뚫린 시바가 고통스런 얼굴로 일그러진 것과 동시에 슈이의 눈 한쪽으로 작은 얼음 파편 하나가 파고들어 슈이는 얼음이 들어간 눈을 찡그리며 그대로 시바의 몸 위에 올라가 창을 비틀었다. 곧 이어 기력이 다한 것인지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시바의 몸에 꽂힌 창을 빼 내자 에테르가 흩날리며 여인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것에 테오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다.
“하.”
온다는 흑와단 녀석들은 오지도 않고. 창을 아무렇게나 내 던진 슈이는 그렇게 비척거리며 테오 앞에 다가갔다. 어쩐지 무언가 몽롱하게 흐려진 눈으로 슈이는 눈을 힘겹게 깜빡이며 테오를 바라보려 애썼다. 무언가 안개 낀 것만큼 뿌옇게 흐려진 눈. 게다가 정신없이 흔들리는 시야. 아. 시야가 흔들린 다기보단. 자신의 몸이 좀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네가 안 다쳐서 다행이야. 그렇게 겨우 테오 앞에 도달한 슈이는 그대로 양 무릎을 털썩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몸이 못 버틴다며. 아득하게 멀어지는 정신을 잡고 싶었으나. 몸에 아무런 기운이 들어가지 않았다. 테오가 이쪽을 향해 무어라 소리치며 자신의 어깨를 흔들고 치유술을 하는 것이 보였으나. 차마, 자신은 괜찮다는 말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슈이는 까마득한 잠에 빠져버렸다.
*
“.... 괜찮다니까.”
“괜찮은데 눈이 그럴 리가 없지.”
“쳇.”
낮게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슈이는 테오를 바라보았다가 이쪽을 쳐다보는 눈동자에 시선을 회피했다. 시선을 피하자마자 마주한 거울 속에는, 완전히 양쪽 두 눈이 붉어진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게다가 요 근래에 제대로 수염을 깎아 본 적이 없기에, 거뭇하게 자란 수염이 보기에 좋지 않아 미간을 찌푸렸다. 많이 난 건 아니지만. 시바는 결국 다시 붙잡혔고, 그 신변은 흑와단을 벗어나 모래의 집에 있는 현자들 쪽으로 인계 되었다. 거기까진 다행 이였지만. 문제는 자신의 눈에 있었다. 쓰러진 이후, 병사들의 도움을 받아 집에 도착했으나, 일어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거울 속에 자신의 양 두 눈이 붉은 것. 무언가 이물감이 느껴지긴 했으나, 크게 불편하진 않았지만. 그때 눈에 들어간 얼음 파편이 문제가 된 것인지 좀처럼 색이 돌아가지 않는다. 게다가 더더욱 큰 문제인건.
“슈이. 이쪽 봐. 그래야 치료 하지.”
“.......”
좀처럼 타츠야 얼굴을 못 보겠는 것이 화근 이라면 화근이랄까. 슈이는 최대한 눈이 마주 하지 않게 눈을 내리 깔았다. 테오의 눈과 마주 하면 급하게 심장 박동이 올라간다. 아주 격하게. 몸이 뻐근할 정도로 느껴지는 심장 박동. 이것은 자신이 평소에 테오에게 느꼈던 작고, 무언가 떨리는 두근거림과는 달랐다. 정확하게는.
“... 이쪽은 괜찮아?”
지독한 독점욕이. 눈을 잠깐이라도 오래 감으면 몸 구석구석 까지 테오를 탐하려는 감정이 몰아치는 덕분에 제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큰일날것만 같아 눈을 아예 돌려 엉뚱한 곳을 쳐다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허벅지에 난 상처 위로 손을 올려 치유력을 넣어 주는 것에 숨을 깊게 내 쉬었다. 평온하다. 아까는 정말 끔찍했는데. 테오가 쓰러지는 것 보단 이쪽이 다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서 근처의 창 하나를 집어 들고 꽂아 내린 거지만. 무너지는 시바의 앞쪽으로 가려졌던 테오의 얼굴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절망, 내지 혼돈. 아주 그것과 잘 어울리는 표정 이였으니. 무엇이 잘못인진 몰랐지만.
“넌 여기서 자. 오늘은 밖에서 자야겠다.”
“마땅히 갈 곳도 없잖아.”
갈 곳이 있었으면 내가 먼저 갔겠지. 테오의 말에 자신이 예전에 대위가 거처가 생기면 그쪽으로 바로 옮겨주겠다고 말 했던 것이 생각나 슈이는 혀를 찼다. 기억력 하나는 끝내준다며. 오늘은 어깨에 담이 와서 한 방에서 못자겠다. 갑자기 어머니의 손맛이 그리워 여관에서 자야겠다, 하고 대답했지만. 어깨랑 담이 무슨 상관이냐는 테오의 대답과, 어머니의 손맛이 그립다는 자신에게 직접 자신이 요리를 해서 뭔가를 먹여주겠다는 대답까지 들으니 더 이상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뭔가 이상함을 눈치 챈 건지 테오가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슈이의 뺨을 억지로 고정시켜 자신을 바라보게 하자 이내 슈이가 질끈 눈을 감는 것에 테오는 미간을 좁혔다. 뭔가 불편한가.
“내가 불편해?”
“...조금.”
“그래.”
그럼 오늘 하루만 버텨. 내일은 내가 나갈 테니까. 테오의 말에 슈이는 눈을 뜨고 테오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마주친 눈에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 테오의 얼굴은 어쩐지 조금은 슬퍼 보였다.
*
슈이가 이상한 건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침대 옆, 창가에 떠 있는 달을 보고 타츠야는 생각했다. 지금 자면,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 갈 수 있을지도. 하지만 좀처럼 그 두 붉은 눈이 머릿속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 것에 타츠야는 몸을 일으키고 협탁의 불을 아주 약하게 켰다. 에테르. 어쩌면 테오의 에테르를 중화 시킬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보통의 모험가가 에테르가 피부 점막에 직접 닿는다고 바로 저렇게 몸의 변화가 오진 않았다. 자신도 그랬고, 모험가 집단들과 함께 다녔을 때, 다른 모험가들도 그랬으니까. 테오의 눈이 바로 변할 정도라면. 이제 슬슬 한계에 오지 않았을까. 서둘러 노인의 책을 펼쳤다. 에테르. 에테르 중화. 속으로 중얼거리며 거의 갈겨쓰다 시피 기록된 책을 뒤적거리다가 어느 페이지 중간. 모서리에 ‘에테르 순환’ 이란 단어를 보았다.
“에테르 순환.”
그래. 어쩌면. 자신에겐 아주 간단한 원리지만.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몰랐다. 에테르를 중화 하진 못하지만, 에테르를 순환시켜 배출 시키면 될지도 몰라. 애초에 슈이는 학자가 아니니. 조심스럽게 책을 집어 들고 불편하게 잠에 빠진 슈이의 몸 위로 조심스럽게 올려 탔다. 그리고 책을 가슴에 올리고 에테르를 끌어 올리려 하자, 갑자기 슈이가 눈을 뜨며 고통을 호소하는 것에 타츠야는 당황했다.
“윽.”
“이런. 괜찮아?”
“지금 뭐하는-.”
그리고 슈이는 이내 자신의 몸 위로 올라탄 타츠야를 바라보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뇌를 가르는 듯한 고통. 무언가 몸에 변화가 일어나려 하고 있다. 슈이는 급하게 타츠야를 밀어 내려고 손을 뻗어 힘을 주려 했으나 자신의 팔을 내치고 책을 올려 다시 무언가를 하는 그 덕분에 머릿속 고통이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몸이 부자연스러운 것을 막아내려 발버둥 치려하고 있다. 점점 숨이 가빠 오고, 아까와 같이 심장이 미칠 듯이 두근거리는 것에 가슴팍의 옷깃을 쥐어뜯을 듯 손으로 옷을 움켜쥔 슈이는 이내 흐릿하게 시야에 잡힌 타츠야를 주시했다. 안 돼. 위험해. 입으로 말을 전하려 했지만, 말보다 신음이 더 먼저 튀어 나가는 것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너무 고통스럽다. 그만해. 도망쳐. 그렇게 말하려고 손을 타츠야에게 뻗어 타츠야를 다시 한 번 밀치고 일어나 도망치려는 순간 온 시야가 붉어졌다. 마치 아주 잘 익은 석류 열매에 물들 듯. 슈이는 타츠야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주 강하게.
“테오.”
“읏, 잠깐-. 슈이. 조금만 더!”
억지로 부어 넣은 자신의 에테르 덕분에 슈이의 몸속에 있던 에테르가 조금씩 순환하는 게 느껴졌다. 남은 건 에테르를 빼내는 것만. 어떻게 한다면. 그 순간 자신의 손목을 붙잡은 슈이의 손에 악력이 심해져 타츠야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절로 고통에 찬 신음이 나오려 해 슈이를 바라보는 순간 아주 붉게 물든 눈빛을 한 슈이가 달빛에 비추어 보이는 것에 숨을 들이켰다.
“테오.”
아아, 테오. 마치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일으키는 슈이를 향해 타츠야는 흔들리는 눈빛을 애써 참으려 하며 고개를 들었다. 테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슈이. 애초에, 슈이가 맞는가. 눈앞에 있는 이 자는.
“슈이.”
정신 차려, 슈이. 그렇게 말하며 자신을 허벅지에 앉힌 채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슈이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려 하는 순간 그대로 허리가 붙잡혀 시야가 회전하는 것에 타츠야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바닥의 이불 위에 자신을 눕히고 양 팔을 붙잡고 부드럽게 웃어 보이며 자신의 위로 올라 탄 슈이. 그의 눈이 자신을 직시 하는 순간 타츠야는 숨을 들이켰다. 자신의 귀 가까이로 얼굴을 내려 은근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날 위해 치료 해 주려고? 응? 테오.
난 알거 같아. 어떻게 하면 내 몸이 정상으로 돌아올지. 도와 줄거지? 완연한 악마의 속삭임과도 같은 그 목소리에 타츠야는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의견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듯. 억지로 셔츠를 쥐어뜯자 단추가 어지럽게 틱틱 거리며 방안을 돌아다니는 소리가 흘러 나는 것에 타츠야는 황급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셔츠가 다 벌어져 훤하게 속살이 보이는 것에. 좀처럼 타인과 맨 살로 접촉하는 일이 없었는데. 아니, 슈이는 있긴 있었지. 그때, 커르다스에서. 잠깐의 옛 감상에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벗어나려 하니 순간 마주친 눈빛에 천천히 얼굴을 내려 입을 맞추는 슈이의 행동에 타츠야는 생각이란 것을 잠시 멈추었다. 부드럽다. 그리고 어쩐지 턱에서 살짝 느껴지는 까끌한 느낌에 간지러워 몸을 움츠리자 테오가 한 번 더 속삭여 온다.
도와 줄거지?
타츠야는 떨리는 턱을 애써 가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어떻게?
그리고 아주 좋은 먹잇감을 발견 한 것처럼. 슈이의 눈이 가늘게 초승달 모양으로 접히며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타츠야를 향해 웃어 보였다.
*
“......”
“....미안, 테오.”
다음날 아침. 완전히 자신의 흔적으로 온 몸이 순흔 자국으로 만들어진 멍에, 잇자국까지 나 있는 것을 보고 슈이는 아침부터 무릎을 꿇고 연신 사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가 기억이 안 났으면 좋으련만. 완벽하게 모든 것을 다 인지하고 움직였기에 더더욱 할 말이 없었다. 어느 정도 잔뜩 하고 난 뒤에 점점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멈추기엔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는 나쁜 생각이 들어 다시금 허리를 숙여 보이며 사과를 했지만 침대에 누운 테오의 등만이 자신을 봐 주는 것에 한숨을 푹 쉬었다.
“눈은.”
완전히 새벽 내내 시달린 덕에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가 들려 슈이는 얼굴을 붉혔다. 허벅지 안쪽에 완전 잇자국이랑 입술 자국 도배를 해놨는데. 애써 나쁜 생각을 지우려 애쓰며 서둘러 슈이는 입을 열었다.
“괜찮아.”
“그럼 됐어.”
허리나 주물러 줘. 하고 말하는 테오의 옆에 슈이는 얼른 다가가 허리를 주물렀다. 자신의 눈동자는 다시금 원래의 색을 찾았지만, 어쩐지 어제의 일을 그냥 사고로 넘길 수는 없었다. 만이 아프지 않게 허리를 꾹꾹 누르며 주물러 주자 굳어진 근육이 풀어지는 느낌이 들어 슈이는 웃어 버렸다.
“테오.”
“......타츠야.”
“응?”
“타츠야, 라고 해봐.”
그의 말에 슈이는 픽 웃으며, 타츠야. 하고 이름을 불렀다. 그제야 얼굴의 굳은 표정이 사라진 테오, 아니 타츠야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다시금 그의 입술에 입을 내리려 하자 입술의 온기와는 완전히 다른 무언가가 자신의 입술을 가로 막는 것에 눈을 떠 보았다.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술을 막아버린 타츠야의 행동에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해 보였지만 단호하게 안 된다며 고개를 저어 보이는 타츠야의 행동에 그럼 이마. 하고 웅얼거리듯 대답하자 한참을 망설이던 손이 사라진다. 그것에 기뻐하며 이마에 입을 짧게 맞추니 못 말린다는 듯, 그도 나지막하게 웃는 것이 들려 그의 이마에 이마를 대고 코를 부볐다.
타츠야.
..그래.
아니, 그냥. 많이 좋아한다고. 좀 늦은 것 같지만.
타츠야는 그 어색한 고백에, 참 일찍도 말한다고 대답해 주고선, 말없이 웃으며 슈이의 손을 붙잡아 주었다. 그것이 나도, 라는 대답인 것을 알기에. 슈이는 그를 따라 웃으며 기습적으로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아침의 따듯한 햇살이 두 사람의 어깨를 감싸 주듯 비추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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