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출처 : https://www.youtube.com/watch?v=138E39Cobgw
* 이 이야기는 103화 다음의 내용을 상상해서 각색한 이야기입니다. 대충 거울 세계라 칩시다.
* 실제로 심원이나 타비기가 죽은 내용에 대해서는 픽션을 사용하였습니다. 허구의 사실로 각색한 내용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앞부분이 조금 길며,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상처가 다 본인을 위한 것이냐 물어보는 말에 청추는 입을 다물었다. 자신은 왜 항상 이렇게 낙빙하에게만 마음이 여려지는 것인가. 이미 수차례, 주인공은 죽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지 않았나. 그런데도, 마음이 먼저 가는 것이 아니라 몸이 늘 먼저 앞서 움직였다. 그 점들이 항상 자신을 의문에 빠지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앞서 나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촛불 하나가 겨우 밝힌 석도 안에서 가뜩이나 좋지 않은 몸을 이끌자니 눈앞이 흐려졌다 맑아지기를 반복한다.
“사존, 사존!”
다급하게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추는 줄줄 흘리던 피가 옷에 스며들어 질척거리는 것을 느끼고는 신음했다. 이대로 가다간 더 못 버틸 것이다. 지금 천랑군과 죽지랑이 묶여 있을 때야 말로 이곳을 탈출하기엔 적기였다.
“우선 나가야, 욱!”
피를 하도 쏟아내었더니 이제는 어지럼증까지느껴지는 것에 입을 막고 몸을 굽히자 그제야 상황을 알았는지, 빙하가 자신을 안아 올렸다. 말 그대로 안아 올렸다! 마치 책에서 보았던 여러 여인을 안아 올리듯 말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안겨 본 적이 없어 어지러운 와중에도 몸을 움찔거려 보았지만 이미 탈출을 감행하기로 한 낙빙하의 몸은 단단히 품 안에 놓은 자신을 놓지 않겠다는 듯 힘주어 안고 달리는 것에 청추는 아련해지는 시야 너머로 빠르게 바람이 흐트러져 제 뺨을 간질이며 지나가는 것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
‘....존.’
무언가 귀를 상당히 간질이는 소리가 들리는 것과 동시에 머릿속에서 강렬하고도 익숙한 경고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경고. 에러 코드 발생. 수치 활성화 진행. 낙빙하의 가슴 아픔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이다 수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이다 수치?! 사이다 수치가 떨어지면 난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갈 거고 죽을 건데!? 그 익숙한 목소리에 심청추는 아픈 몸의 쓰라린 통증들을 이겨내고 눈을 번쩍 떠버리고 말았다. 눈을 뜨자 익숙한 풍경에 심청추는 안도의 한숨을 뱉어내었다. 청정봉이로구나. 뻣뻣하고 무거운 몸을 비틀어 주변을 돌아보자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이제는 조금 낯설어 보이는 뒷모습을 보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가 떴다.
‘낙빙하.’
불러볼까? 그럼 반드시 돌아볼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에 소리를 지르던 그의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그들과 함께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단단히 화가 나도 화가 난 소리에 자신도 얼마나 서러웠는지. 다 널 구하려 했던 것이다, 이 무정한 녀석아. 하고 무어라도 던져서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입술만 달싹거리기도 힘들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낙빙하는 무어라도 느낀 사람처럼 정리하던 손길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는 눈을 찌푸리며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 침상에 누워 있는 청추의 손을 붙잡았다.
“사존, 괜찮으십니까.”
아니, 안 괜찮아. 나 죽을 것 같아. 정말로.
“무탈, 하다.”
거칠거칠한 음성으로 겨우겨우 뱉어 내자 낙빙하는 청추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다 대고 눈을 내리떴다. 마치 이것이 다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구는 것이, 아까 소리친 것과는 대조되어 습관처럼 힘겹게 마성의 힘을 가진 빙하의 머리통을 가만히 쓰다듬어 주었다. 그것마저 힘이 없어 청추는 침상 안으로 손을 거두지 않고 손을 가만히 툭 떨구었다. 그러자 그 모든 행동이 마음이 아프기만 한지 금방이라도 정말 눈물을 흘릴 것처럼 굴어 청추는 눈을 살포시 찌푸렸다.
“여기에 어떻게-.”
“........ 청정봉 사람들 몰래 들어왔습니다. 사존은 제 의복을 좋아하지 않으시니까요.”
지난번에 자기 옷을 벗어놓고 갔다고 트집이라도 잡는 듯 구는 행동에 어이가 없어 한마디를 덧붙이려 하자, 빙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매 시진, 매 시각마다 사존을 생각했습니다.”
이거, 어디서 들어본 대사인데. 잠시만 이거. 이거, 낙빙하가 사매에게 고백할 때 썼던 대사가 아니던가!? 쿵덕거리는 마음을 다스리지도 못하고 침만 삼키려 듣고 있자 하니 대나무가 바람과 뒤섞여 비가 오는듯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소리에 맞추어 달빛과 초 몇 개에 의존해 방 안을 밝힌 낙빙하가 붉은 눈을 심청추와 마주했다.
“연모합니다, 사존.”
“아니다.”
아니야! 아니라고! 너는 남성향 하렘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이거 떡밥 회수하라고 만든 거지, 장르가 바뀌라고 만든 건 아니지 않았어!? 단호하게 말했던 심청추의 쉰 목소리에 욱 한 것인지 낙빙하가 이내 손을 떼고는 주먹을 말아 쥐었다.
“어째서 제 마음이 아니라 하십니까?”
“네가 착각한 것이다. 내 어느 말이 네게 사존의 범위를 넘었단 말이냐.”
“그럼 어찌하여 그렇게 저를 구해주셨습니까!? 마도를 쥐 쳐다보듯 보셨던 분이 말입니다!”
“그래, 말 잘했구나. 나는 네 사존이니 그리했다. 나는 내 제자를 지킬 의무가 있어. 너야말로 어디서 연모지정(戀慕之情)을 운운하며 이리도 괴롭게 하느냐?!”
잔뜩 흥분한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기 무섭게 안 그래도 쌓여왔던 섭섭함과 분노가 치밀어 올라 쉰 목소리로 연신 침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쳐 가며 청추는 입을 열었다.
“어찌 그럴 수가 있어. 네가 마도의 길을 걸어가는 것도, 네가 그 길을 걸어 다른 문파에 들어서며 나를 멀리 한 것도, 네가 내 옷자락을 찢어 욕을 보이던 그 모든 것들을 내가 감내해 왔는데.”
낙빙하는 참담하다는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무어라 외치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부릅뜬 심청추의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리는 것이 더 빨랐다. 투명한 무언가가 눈에서 흘러내리자 달빛이 창문을 넘어와 처연하게 빛을 반사했다.
“그게 정말 연모라고.”
“..........”
“네가 말했지. 후회하느냐고.”
[경고. 낙빙하의 가슴 아픔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사이다 수치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이다 수치가 0이 될 경우 원래의 세계로 자동 송환됩니다.]
쿨 수치고 뭐고 간에, 지금 당장은 할 말은 하고 싶었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는 대화가 부족했는지도 모르겠지. 청추는 그렇게 생각하며 가쁜 숨으로 대답해 주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아주 후회하고 있다.”
[경고. 현재 사이다 수치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낙빙하의 가슴 아픔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이다 수치가 0이 될 경우 원래의 세계로 자동 송환됩니다.]
“빙탄지간(氷炭之間)이야. 태양과 달이 어떻게 하나의 하늘에 같이 있을 수 있겠느냐. 너는 내 재자고, 나는 네 사존인데. 네가 앞으로 다가올 것들을 어찌 다 감당하겠느냐.”
[경고. 현재 사이다 수치가 급속도로 하락하고 있습니다! 낙빙하의 가슴 아픔 수치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이다 수치가 0이 될 경우 원래의 세계로 자동 송환 됩-.]
청추는 들려오는 경고음의 말들을 무시하고 속마음을 그대로 읊었다.
“밉구나, 네가.”
“..........”
“후회스럽구나. 내 한 몸 던져 네 정신을 살렸던 그 날.”
“.......사존.”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어야 했다.”
[시스템 종료. 사이다 수치가 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원래의 세계로 자동 송환됩니다.]
시스템의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갑자기 어지러움이 밀려오더니 눈앞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얼핏 보였던 시선 너머에는 쓰러지는 자신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던 그의 눈에서 미적지근한 눈물방울이 떨어졌던 것도 같았다. 상처 받은 건 난데, 본인이 울건 뭐람. 그렇게 다짜고짜 고백이라도 하면 누가-. 심청추는 이내 생각을 멈추었다. 차마 할 말이 없었다. 그래, 은연중에 제법 커 보였던 녀석이 대견해 보이기도 했던 것 같다. 게다가, 고백을 받아본다 한들 자신은 그런 경험이 전무후무 했다. 그, 사내가 사내와 입을 맞춘다거나. 그런 거. 애초에 이 소설을 보았던 것도 그런 내용이 전혀 아니었기에 보았던 것이 아닌가!
‘.......아.’
갑자기 무엇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까맣게 보이지 않는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조금 더 선명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심원은 눈을 찌푸렸다. 그러자 저 끝 너머로 하얀빛이 일렁거리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무언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는 것을 알아차리곤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원아.’
익숙한 중년의 여성의 목소리.
‘오빠.’
흐느낌이 조금 있는 익숙한 미성의 여자 목소리.
‘어머니, 좀 쉬고 계세요. 저희가 보고 있겠습니다. 식사라도 하고 오세요.’
‘그래요, 어머니. 며칠 동안 제대로 끼니도 못 챙기셨는데. 병원 안에 식당이 있으니, 멀리 가시기 싫으시면 거기라도 들려서 드시고 오세요.’
항상 듬직했던 남성 두 명의 목소리에 느릿했던 발걸음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심원은 끝없이 이어지는 빛을 향해 달리고 달렸다. 그 순간 뒤에서 커다랗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 뛰어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
‘사존!!!!’
대단하다. 목소리 하나로 발걸음이 그대로 멈추어 굳어버린 것 같았다. 말을 마치자마자 걸어왔던 반대편에도 빛무리가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에게 오라는 듯, 검은색과 붉은색의 빛무리가 얽혀 일렁거리는 것이 누가 부르는지 모를 수 없게 하는 것에 심원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머뭇거림이 이어지자, 이내 다시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낙빙하는 어차피 소설의 주인공이야.”
‘사존,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자가 잘못했습니다.’
“저 애는 내가 없어도 잘 살 거야. 결말이 그랬잖아. 결말엔 어차피 내가 없었지.”
‘다시는 사존을 잃기 싫습니다. 저를 버리지 마세요…….’
가족들의 목소리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천천히 발아래에서부터 빛이 부서지듯 청색 빛으로 의복이 조금씩 바뀌었다. 청포가 사그라들 듯 빛 무리로 흐트러져 가며, 자신이 살아 있을 적 신었던 신발이 보였고, 어머니가 단정하게 입으라 했던 검은 정장 바지가 드러났다.
‘사존, 저는-.’
“괜찮아.”
누구한테 하는 말일지도 모르면서 심원은 그렇게 자신을 다독였다. 괜찮아. 바람에 따라 흐트러져 갔던 커다란 청포의 소맷자락이 하얀 셔츠로 변했고, 잠시 뒤를 돌아보았을 때 흩날리던 긴 머리카락이 빛과 함께 짧게 타들어 가듯 일렁거렸다. 괜찮아. 뒤돌아보지 말자. 괜찮아. 그렇지만 마지막으로 빛무리를 건너려 할 때 들렸던 낙빙하의 사존을 찾는 목소리에 심원은 자신에게 물었다.
‘정말?’
그러나 이미 빛이 심원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이미 기회는 지나갔다는 듯 말이다.
*
무겁다 못해 가라앉을 것만 같은 몸에 손가락을 꿈틀거리자, 갑자기 사방이 조용해졌다.
“엄마. 엄마, 오빠 손가락이 방금!”
“응!?”
“원아!!! 정신이 들어!?”
“원아!”
사방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자 뿌옇고 꺼끌꺼끌한 시야에 사로잡히는 것은 익숙한 얼굴들과, 낯선 천장이었다. 괜찮아,라고 말을 하려 하자 무언가 입가에 걸리는 느낌에 눈을 아래로 내리깔자 산소호흡기가 숨 쉴 때마다 김이 서리는 것을 보고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가 이내 입 모양으로 ‘엄마.’ 하고 뻐끔거렸다. 그러자 입 모양을 알아차린 것인지 심원의 형들이 서로 조심스럽게 어머니를 불러주었다. 푸근한 인상의 여인이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이, 마지막의 낙빙하를 연상 캐 해 자신도 모르게 눈을 또 깜빡인 심원은 눈가가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엄마. 왜 이렇게 울어.’
“이 나쁜 녀석아, 나쁜 녀석아. 엄마가 얼마나 애가 탄 줄 알아!! 아니야, 말하지 마라. 더 쉬렴. 의사를 불러와야겠구나. 많이 아프지? 울기까지 하고.”
횡설수설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던 심원이 눈가를 휘며 웃자, 여동생이 덥석 와서 손을 붙잡고 화를 내기 시작했다. 아주 잘하는 짓이라며. 온 가족이 걱정했다는 말을 늘어놓는 것과 동시에 어머니를 모시고 서둘러 의사에게 향하는 형들의 뒷모습을 보며 심원은 그제야 현실을 깨닫게 되었다.
돌아왔구나.
더는 머릿속을 울리지 않는 경고음에 심원은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오빠, 자? 다시 눈 떠야 해, 오빠! 속살거리듯 말하는 여동생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지금은 그저 이 편안함과 익숙함에 기대어 자고 싶었다. 이왕이면 조금 오래 말이다.
*
“학교는 쉬어도 되지 않겠어? 몸도 좋지 않은데.”
“이미 오래 쉬었어요. 다녀올게요!”
최대한 싹싹하게 말을 하며 심원은 괜스레 어머니의 볼에 뽀뽀를 과장되게 하고서는 손을 흔들어 보였다. 차에 타고 출발할 때까지 손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던 어머니를 백미러로 쳐다보았던 심원은 차 창틀에 팔꿈치를 올려 턱을 괴었다. 한 손으로는 오랜만이어도 익숙한 핸들을 붙잡고 액셀을 부드럽게 밟아 앞으로 나아가니 시간이 벌써 이만큼 흘렀나 싶어 주변 풍경을 둘러보았다. 벌써 벚꽃이 만연하게 피어 연인들이 사진을 찍거나 먹을 것을 나누어 먹는 장면들이 빠르게 눈에 잡혀 지나갔다.
“거진 한 다섯 달 누워만 있었나.”
심지어 재활 치료로 한 달 정도는 걷는 연습만 할 정도로 근육이 제법 빠졌다. 몸은 또 어찌나 무거운지. 소설 속이라지만 영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느껴질 정도로 현실의 무게가 바로 느껴지는 것도 우스웠었다. 별달리 집에만 있어도 할 것도 없고. 사고 이후에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육신은 쉬이 죽지 않았다. 병상에 오래 있던 것치고는 이 정도면 빨리 나은 거라며 스스로 힘을 내자는 말을 해 보이며 앞에 보이는 커다란 간판을 새삼 쳐다보았다.
OO대학교.
이 얼마만의 학교인가! 파릇한 청춘! 넘쳐나는 학구열과, 피어나는 연애의 향기! 심원은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나서 차에서 내리자마자 팔을 활짝 벌려 기지개를 켰다. 살이 제법 말라 셔츠가 헐렁해졌지만, 그렇게 못 봐줄 건 아닌 것 같아, 가방을 차에서 꺼내 무게를 잡았다. 좋아, 오늘부터 새 마음 새 출발이다! 우울한 과거여, 바이바이! 희망찬 오늘이여, 하이!
“-해서, 한무제는 정복 전쟁의 필요 자금을 경제정책 중 균수법과 평준법을 통해 얻었는데.”
희망차긴. 졸음만 가득했다. 심원은 두꺼운 전공 서적을 가림막 삼아 휴대전화를 열심히 놀려 간만의 서칭 라이프를 즐기기로 했다. 이렇게 늘어지는 수업을 들을 때에는 역시 소설이지. 신나게 스크롤을 죽죽 내리면서 평점이 좋은 소설들을 찾아보고 있자니, 갑자기 문득 자신이 읽었던 광오선마도는 어떻게 되었나 싶어 빠르게 검색을 하려 획수를 꾹꾹 눌러가며 검색을 하려던 찰나, 깊은 교수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이미 절반가량은 깊은 역사 숙면에 잠들어 전공 서적을 베개 삼아 자고 있었고, 그나마 앞쪽에 있던 성실한 친구들은 교수를 쳐다보며 애써 몰려오는 잠을 떨쳐내려 애를 쓰고 있었다.
“완전히 빙탄지간(氷炭之間)이로구만. 누구는 자고, 누구는 안 자고.”
그 말에 심원은 휴대전화의 자판을 터치하던 손을 멈추었다. 교수는 잠을 자는 학생들을 둘러보며 혀를 끌끌 차며 말을 이었다. 마치 다들 자니까, 이럴 때 시험 나올 것을 알려주는 듯 구는 행동에 자고 있지 않던 학생들은 조용히 필기도구를 달그락거리며 필기할 준비를 했다. 심원까지 그 소리에 움찔거리며 이내 펜을 꺼내 들어 적을 준비를 하였다. 탁탁, 하고 분필이 녹색의 칠판을 두드리고 그어가며 만드는 글자는 자신도 이미 아는 글자였다.
“빙탄지간. 얼음과 숯은 서로 같이할 수 없다는 뜻이지. 여기에는 얽힌 이야기가 있다.”
교수는 뒷짐을 지고 짐짓, 마치 자신이 왕이라도 되는 듯 위엄 있는 얼굴로 학생들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 한 무제 시절, 동방삭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그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하여 무제의 좋은 이야기 상대가 되어 주었지. 그 때문에 항상 어전에 들리게 되었고 무제도 이를 아껴 음식을 주곤 했는데, 왕이 하사하는 음식은 다 먹어야 함에도 집으로 가져가거나, 왕이 하사한 옷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어깨에 대충 들춰 매고 갔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미친 사람이다. 왕이 내린 것을 어찌 저리 다루냐 하며 입을 모았지.”
그리곤 교수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웃으며 물었다.
이 이야기는 지어낸 이야기일까, 아닐까.
교수의 물음에 심원은 잠자코 모르는 척 글을 끄적거리는 시늉을 해 보였다. 당연히 이것은 가상의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단순히 왕이 하사한 물품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하여 그런 사자성어가 생겼을 리 만무하니까. 그러자 이제까지 조용했던 자신을 쳐다보는듯한 시선에 심원이 흠칫하고 고개를 들어 올리자 교수가 자신의 눈을 마주하며 빙그레 웃는 것 같은 게 아닌가! 설마, 나에게 질문하는 것인가 싶어 심원은 입을 열어 대답하려다가, 교수가 먼저 입을 열어 이름을 불렀다.
“그래, 빙하가 이야기해 봐라.”
그 말에 심원은 온몸에 소름이 돋아나는 기분을 느끼며 뻣뻣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그랬다. 교수는 자신을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실제로는 굴원이라는 자가 자신을 모함한 간신을 비유하여 그렇게 지은 말이라 알고 있습니다.”
“역시. 낙빙하는 교수를 실망하게 하지 않는구먼.”
검은 옷으로 무장이라도 한 저 시커멓고 자신이 익히 알던, 그저 머리가 짧을 뿐인 익숙한 사내에게 보였던 미소임을 알아차린 심원은 돌아본 고개를 다시 돌릴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의 바로 뒷사람을 입을 벌려 빤히 쳐다보았다.
“너, 네가 어떻게-.”
말을 마저 하려 하자 칠판에 다시 분필 부딪히는 소리가 나는 것이 들린다. 이내 낙빙하는 자신에게 시선을 주던 청추를 잠시 쳐다보다가 필기 소리가 나는 것에 다시 펜을 들고 필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시선이 떠나지 않음에 필기를 멈추고 심원의 시선을 마주하자 이내 심원이 딸꾹질을 하기 시작하는 것을 보곤 웃어버렸다. 반대로 심원은 눈이 마주치자마자 더 소름이 돋았다. 어떻게 저렇게 웃는 것마저 똑같지!? 결국, 수업시간에 지속해서 딸꾹질을 하던 심원의 소리마저 거슬렸던 건지 교수는 단축수업을 진행해 버렸다.
한숨을 푹푹 쉬며 교탁에 있던 낡은 전공 서적을 옆구리에 끼고 나가는 교수를 쳐다보던 심원은 벌써 짐을 다 싸서 밖으로 나가고 있던 ‘낙빙하’라고 불렸던 남자를 서둘러 뒤쫓기 위해 딸꾹질을 하는 입을 손등으로 가리고 아무렇게나 책을 대충 챙기고 필기구도 뚜껑만 닫아 가방 안으로 쓸어 넣어 자리를 뛰쳐나갔다.
‘어딨지!?’
좌우로 두리번거리자 저 복도 끄트머리의 자판기 앞에서 메탈 시계를 끼고 음료를 신중하게 고르는듯한 그의 옆모습에 심원은 수업에 끝나 우르르 나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날이 조금 더워서 그런지 다들 근처 편의점으로 가려는 발걸음 때문에 덩달아 자신도 앞으로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거 생각 외로 빨리 붙잡을 수 있을지도! 심원이 뒤꿈치를 빼꼼히 들어 앞을 바라보자 여전히 자판기 앞에서 고심하는 검정 아우라에 나이스를 외치며 손을 조금 뻗었다. 다 좋은데, 이러다가 인파에 몰려서 그냥 지나쳐 버리면 답도 없다 싶어 손을 뻗어 자판기를 붙잡으려 했으나 사람들이 이내 우르르 몰려나가는 바람에 심원을 사정없이 툭툭툭 치기 시작했다.
“잠깐, 자판!”
기- 하고 외치려는 순간 무언가 턱 하고 자신의 손목을 붙잡아 확 끌어당기는 것에 심원이 살았다를 외치며 붙잡아준 손에 감사 인사를 하려 하자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검둥이가 자신의 앞에 있는 것을 보곤 다시 딸꾹질하기 시작했다.
“자판기 쓰시려고 하셨습니까.”
“아.”
딸꾹. 감, 딸꾹. 사, 딸꾹.
아 말 좀 하자고!!! 속으로 울부짖던 심원은 이내 빙홍차(冰紅茶)를 뽑아내 자신에게 내미는 빙하의 행동에 눈을 깜빡였다.
“저 때문에 놀라신 것 같아서요. 아까 강의실에서도.”
사죄의 의미라는 듯 내민 음료를 받아들이자, 이내 같은 걸로 자신의 음료를 뽑아낸 빙하가 플라스틱병의 뚜껑을 따서 시원하게 목울대를 울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한 다섯 모금쯤 마시니 이미 반이 없어진 음료를 보고, 녀석 거 참 시원하게도 마시네. 하고 생각하고 있자니 잊고 있던 딸꾹질이 다시 튀어나가기 시작했다. 아, 맞다. 딸꾹질. 심원은 주변을 이내 둘러보았다. 다들 편의점 방향으로 사라진 지 오래라 복도에는 몇몇 통화하거나 대화하는 사람만 있을 뿐, 자판기 앞에선 자신과 낙빙하 둘 뿐이란 사실에 긴장하기 시작했다.
“딸꾹질.”
“예?”
“멈추려면 음료 한 모금 마시고 숨을 참으시면 됩니다.”
“아, 감사함, 딸꾹.”
이번에도 어이가 없는 듯 웃어버리는 낙빙하의 행동에 심원은 병뚜껑을 따려 낑낑거렸다. 아직 제대로 낫지 않은 몸에 힘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만무할뿐더러, 혹시나 진짜 낙빙하가 아닐까 싶어 손에선 긴장으로 인한 땀까지 나와 자꾸 미끄러지는 것이다. 결국은 보다 못한 낙빙하가 자신의 음료수를 심원에게 잠시 건네 맡아 달라고 한 뒤 힘을 주어 한번에 병뚜껑을 돌려 따서 들려주자, 그제야 겨우 고맙다는 말을 내뱉고 한 모금을 하고 한참을 숨을 다스렸다.
“그런데 아까 저에게 하실 말이 있지 않으셨습니까.”
“응?”
오늘이 분명 초면일 건데도 자신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반말이 튀어나온 심원은 아차 싶어서, 물병을 든 손의 손등으로 입술을 가렸다. 낙빙하는 아무렇지 않은 듯 고개를 까딱이며 대답했다.
“제가 어떻게 - 다음에 뭐라 하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아.”
심원은 이내 한참을 음료를 두고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혹시, 광오...선마도라고 아세요?”
*
“그랬군요.”
“응, 그래서 내가 사람을 착각한 거지 뭐.”
광오선마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보았으나,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로 갸웃거렸던 낙빙하의 얼굴에 심원은 침착하게 말라가는 입술을 애써 오물거리며 말했다.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심원은, 심청추는? 그것도 몰라요? 같은 의미 없는 질문만 던지다 이러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다 싶어서, 낙빙하라고 내가 좋아하던 소설 중 한 명인데 마치 그 안의 주인공이 튀어나온 것 같아서 그렇게 말해 보았다며 완전히 팬심의 마음처럼 이야기하는 것으로 둘러대었다. 알고 보니 낙빙하의 성인 낙은 같은 성을 썼지만, 빙은 기댈 빙(憑: 중국어 발음으로는 핑에 가깝다.) 연꽃 하(荷)를 쓴다고 했다. 좀처럼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아니, 어울릴 수도. 백연화 하면 낙빙하였고, 흑련화 해도 낙빙하였으니. 나이 어린것 까지 똑같았는데.
“그렇게 닮았습니까?”
“정말로.”
나이도 자신보다 한참은 어린데, 기골은 장대한 것이 영락없는 낙빙하의 조건과 일치하는 것에 심원은 의심을 거두지 못하고 애써 의자에 앉아 음료병만 만지작거렸다. 이야기하다 보니 식사까지 하게 되어버렸고, 벌써 다음 수업시간이 다 되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럼 그, 청추라는 인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신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지 제법 진지하고 재미있게 들어주는 낙빙하의 모습에 심원은 입을 다물었다. 소설에서야 낙빙하에게 모진 고문 끝에 죽는 것으로 나오지만.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답한 마음에 심원은 살짝 이야기를 비틀어 보기로 했다.
“마지막은 아직 나오지 않았어. 다만 낙빙하가 심청추에게 연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고 이야기했지만 심청추는 끝내 거절해 버렸지. 마도와 마도를 제압하는 사람과의 사랑이 어떻게 이어지겠어. 게다가, 둘 다 남자고. 오늘 교수님 말이 딱 어울리지. 빙탄지간.”
“......... 그런류의 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심 선배님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알겠습니다. 농담해봤어요. 해사하게 웃으면서 다 먹은 음료수통을 저 너머의 쓰레기통에 농구공을 집어넣듯 가볍게 던진 낙빙하는 텅 빈 플라스틱 소리가 튕기며 쓰레기통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안타깝긴 하네요.”
“뭐가?”
“결국은 그 심청추란 사람도 자기 할 말만 한 거잖아요. 제대로 낙빙하라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았고요.”
“..........”
낙빙하는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아 심원에게 웃으며 입을 열다가, 가방에서 필기도구와 포스트잇을 한 장 뜯어내 무언가를 허벅지에 대고 적기 시작했다.
“이 사자성어는 아십니까.”
노란 포스트잇에는 [빙탄상애(氷炭相愛)]라 적혀 있었다.
“빙탄상애?”
“어, 아시는 줄 알았는데. 빙탄지간은 아시는데 이건 모르셨습니까. 얼음은 숯으로 인해 녹아서 물이 되고, 숯은 얼음 때문에 더 타들어 가지 않고 보존된다는 뜻입니다. 결국은 서로 사랑하며 그대로 그 자리를 지킨다는 거지요.”
그렇게 말하며 낙빙하는 포스트잇을 심원에게 건네주었다..
선배님, 그런 사랑도 있는 법입니다. 서로 다르더라도 곁을 지킬 수 있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낙빙하는 심원이 한참 자신이 준 포스트잇을 들여다보는 것을 보고 나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얼마 안 가면 오후 강의가 있을 것이고 술 약속도 잡혀 더 이상 시간을 내기에는 무리였다. 손에 묵직하게 자리를 잡은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두 시를 가리키고 있는 것에 느릿하게 눈을 뜨던 낙빙하는 입을 열었다.
“슬슬 갈까요.”
“어디로?”
“각자 가야 할 곳으로요.”
청추는 그 말에 입을 조개처럼 다물어 버렸다. 가야 할 곳. 갑자기 심각해진 심원의 행동과 ‘가야 할 곳’이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빙하는 잠시 바라보다가 먼저 가보겠다고 입을 열려는 찰나, 심원이 의자에 앉아 그를 올려다보았다.
“가야 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
자신은 강의실을 들어가자고 말을 하려던 것인데 어찌 된 것인지 질문의 심도가 제법 높아졌다. 빙하는 그 말뜻을 짐작해 보았다. 아무래도 심원이라는 이 선배는 소설을 핑계로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것은 아닐까.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이내 낙빙하는 웃으며 대답했다.
“가야 하는 곳에 이유가 필요합니까. 마음이 끌리는 대로 가는 거지요.”
“..........”
“마음이 끌린다는 것은, 단순히 애착, 의무감, 슬픔 등의 감정으로는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미련이 마음을 이끌게 하지요.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했다는, 미련이요.”
심원은 그 말을 듣고 검은 심연의 어둠 속에서 반대편의 빛을 떠올렸다. 자신을 애달피 불렀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만 같아 귀를 막고 싶었다. 그렇지만, 현실의 낙빙하가 하는 말이 어지간히 마음에 걸렸다. 정말 자신은, 하고 싶은 말만 했던 것뿐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 그 이유일 것이다. 마음이 끌린다라. 소설의 낙빙하도 자신에게 미련이 있었을까. 한 번쯤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어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모진 말만 골라서 했을 때마다 시스템의 경고음이 울렸던 것이 생각났다.
“선배, 일단 수업을-.”
“나.”
제법 비슷한 키지만, 심원이 조금 더 올려다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쳤다. 평범한 갈색의 눈인데도 불구하고 어딘가 묘한 청빛이 감돈다고 낙빙하는 생각 했다. 자신도 모르게 한번 더 보고 싶어 지는 그 눈의 빛깔에 빠져들 찰나에 심원은 마저 입을 열었다.
“가야 할 곳이 있어.”
“.......... 수업은요?”
“수업엔 마음이 안가. 다른 곳이 생각났어. 오늘 고마워.”
이내 눈꼬리까지 접어가며 화사하게 웃는 심원의 행동에 낙빙하는 가슴 어딘가가 묘하게 찔리는 듯한 느낌을 받고는 웃었다. 예, 별말씀을. 다음에 또 뵙죠. 그렇게 말하며 낙빙하는 돌아서려 했다. 그러자 심원이 돌아서려는 낙빙하의 손목을 붙잡고는 시계를 잠시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시원한 심원의 손에 놀란 낙빙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을 내려다보았으나, 시계에 집중하고 있던 심원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원이 보기엔 그렇게 대단히 비싼 물건은 아닌 것 같아, 자신의 시계를 쳐다 보고 시계를 풀어 낙빙하에게 건넸다.
“자.”
“뭡니까.”
“선물이야. 가져.”
“...........”
“그럼 정말 간다! 잘 가!”
낙빙하의 손바닥에 자신이 끼던 시계를 강제로 선물해 버리곤 아까보다 훨씬 가벼운 발걸음으로 주차장이 있는 쪽을 향해 뛰어가는 모습을 보던 낙빙하는 '이게 진짜 선물이라고 주는건가.' 싶어서 눈을 가늘게 떴다. 선물을 해도 시계를 선물해 주다니. 시계를 선물하다의 ‘송종(送鐘)’과 장례를 치른다 라는 ‘송종(送終)’이 같은 뜻이니, 다시 만난다는 말에 ‘절대 만나지 못할 것이다.’라는 대답을 한 것과 다름없는 것 아닌가.
“심원이라.”
여러 의미로 재미있는 선배라고 생각한 낙빙하는 이내 시계를 쳐다보다가 자신의 시계를 풀어 가방 안쪽에 넣어두고는 심원의 시계를 찼다. 째깍 거리며 돌아가는 시침의 소리가 마치 조잘거리던 심원의 목소리와 어딘가 비슷해 보이는 것 같다고 생각한 낙빙하는, 이내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시계를 선물 받았으니, 뒤돌아 그를 붙잡아 가보려 해도 이미 거절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잡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
“판매 중지!?”
서둘러 집에 돌아와 컴퓨터로 종점문학망에 들어가 ‘광오선마도’를 검색했으나, 안내 문구와 함께 조그마한 팝업 창으로 ‘작가님의 사정으로 인해 판매 중지가 되었습니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본 심원은 엄지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물었다. 자신이 넘어왔으니, 타비기 또한 넘어올 가능성이 높지 않은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심원은 서둘러 핸드폰으로 종점문학망의 고객 센터 번호를 꾹꾹 눌렀다. 잠깐의 안내멘트가 가득 담긴 여성의 목소리가 다 끝나기도 전에 굵직한 남성이 최대한 친절함을 담아 전화를 받았다.
[예, 종점문학망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아, 안녕하세요. 저 죄송한데 혹시 ‘광오선마도’ 소설이 판매 중지가 된 이유를 알 수 있을까요?”
[아, 다름이 아니라. 서버 오류인지 자꾸 안의 내용물이 바뀌어서 업로드 되더라구요. 작가님은 뭔가 아시는 눈치인데 본인이 하신 게 아니라 하셨고, 내용을 바꾸실 생각도 없으신 것 같아서 일단 회사랑 협의 하에-.]
“지금 작가님이 계신가요!?”
[예? 아, 네네. 잠시 잠수를 타신 지 시간이 꽤 되셨는데, 갑자기 다시 연락을 해주셨거든요.]
“그게 언제쯤인가요!?”
[한, 여섯 달쯤은 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왜 그러시죠?]
“죄송한데 혹시 연락을 연결하거나 전화번호라도 받을 수 있을까요. 아주 급한일인데.”
[저희가, 사정상 작가님 전화번호를 알려드릴 수가 없어서요.]
난감한 듯 한숨을 푹 쉬었던 남성은 이내 머뭇거리면서 수화기를 손바닥으로 가려 소리가 안 들리게끔 해두곤 옆의 선임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작가 팬인 것 같은데, 연락처를 원한다고 말하자 선배는 눈을 찌푸리며, ‘연락처 공유는 안되지. 이름만 물어보고 작가님한테 전화해보던지.’ 하고 대답했다. 이내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전화기를 받고 최대한 다시 친절한 음색으로 입을 열었다.
[이름이랑 전화번호를 남겨주시면, 저희가 작가님쪽이랑 연락은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아, 저는 심.”
심원이라 대답하려 했던 심원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심원이란 이름을 타비기가 알 리가 만무하지 않은가. 이내 한참을 멍하게 고민하던 그는 눈을 꾸욱 감고 입을 열었다.
“절세.”
[절세?]
“오이.”
[........]
“절세 오이라고 하시면 아실 겁니다.. 번호는-.”
다음번부터 닉네임은 건전한 것으로 꼭 바꾸고 말리라고 다짐하는 심원이었다.
*
“잠깐만, 진정해봐. 진정, 이봐.”
“너, 어떻게 돌아왔어. 네가 이번에도 한 거야?!”
그날 늦은 저녁, 심원의 핸드폰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대뜸 ‘타비기?’ 하고 물어보니, ‘절세 오이!’ 하고 대답하는 그의 행동에 심원은 다급해져 서둘러 주소를 불러달라 말하고는 차를 허둥지둥 몰아 그의 오피스텔로 쳐들어갔다. 쳐들어가자마자 멱살이 잡혀버린 타비기는 이것좀 놓아 보라며 심원의 손등을 탁탁 두들겼다. 잔뜩 잡힌 멱살을 씩씩대며 겨우 놓아주자 잡힌 모양 그대로 주름이 잡혀 버린 탓에 우스꽝 스러운 몰골이 되어버린 타비기는 빽 소리를 질렀다.
“진정하라니까 멱살부터 잡네!!!!”
“시스템 에런가 뭔가, 분명 그랬어!”
“그거, 내가 한 게 아니고. 내 담당 출판사 직원이 그렇게 한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그제야 흥분을 가라앉힌 심원은 차분하게 타비기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책상에 기절하듯 쓰러진 자신이 피곤한 줄 알고 있던 담당자가 자신을 깨우지 않고 컴퓨터에 잘못 꽂아진 선을 자신이 도로 제대로 꽂아 넣어 컴퓨터를 활성화시키고 급하게 미리 써둔 소설의 완성본을 빼낸다고, 다시 정상적으로 모든 것이 돌아온 것 같다고 설명한 것이다.
“무슨 담당자가 집을 함부로 들락날락 거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마감 기일에 뭘 맞추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라고.”
가끔은 와서 식사 거리도 두고 가. 좋은 직원이지. 그렇게 말하며 타비기는 책상에 다리를 턱턱 올리고는 이미 뜯어져 있던 해바라기 씨 봉투에서 해바라기를 한 줌 쥐어 쏙쏙 먹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갈 방법은 없는 거야?”
“다시? 장난해? 너야말로 그런 걸 왜 물어봐. 너 다시 쓰러지고 나서, 낙빙하가 얼마나 날뛰어 다닌 줄 알아? 미친 사람처럼 너 살려보겠다고 얼마나 뛰어다니던지. 지금 가면 너도 안 봐주고 죽을 수도 있-.”
“그러니까!”
그러니까 가겠다고. 그게 마음에 걸린다고. 그렇게 웅얼거린 심원은 눈을 내리떴다. 자신의 말에 혹시라도 타비기 선생이 이상한 마음을 느낀 건 아닌지 내심 겁이 났던 것도 사실 이리라. 타비기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심원을 바라보았다.
“만약 다시 들어간다 해도, 못 나올 수도 있어. 너야 말로 네 가족을 두고 다시 가는 게 좋아?”
“.........”
“저긴 소설 속의 인물에 불과해. 물론, 아주 대단히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긴 해. 내가 썼던 소설이 네가 겪은 일들로 자동으로 바뀌어 가고 있더라고. 나야 좋지만.”
좋긴 뭐가 좋다는 거야. 심원은 고민을 하던 찰나에 들리는 헛소리에 주먹을 말아 쥐었다. 그러고 보니, 혹시나 이쪽의 낙빙하도 설마 정말 진짜 낙빙하인데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닌가!? 또 심원은 다짜고짜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것 마냥 다리를 책상 위에 올린 타비기의 그곳을 발로 탁 내리눌러 꾸욱 힘을 주기 시작했다.
“잠깐, 잠깐만요! 또 왜 그러는-.”
“여기에 낙빙 하가 있어.”
“뭐!!!”
의자에서 발딱 일어난 타비기는 잠시 생각을 하다가 다시 의자에 앉아 책상에 검지를 툭툭 두드렸다. 자연스럽게 일어난 덕에 치워진 심원의 발에 자신의 고간이 눌렸다는 생각은 이미 날아간 지 오래였지만. 한참을 고민하던 타비기는 이내 여전히 같은 자세를 고수하며 입을 열었다.
“낙빙하의 이름이 완전히 똑같았어?”
“낙은 분명 같은 낙 자를 썼지.”
“너는?”
“나?”
“심청추, 심원. 그냥 겹치기엔 애매하지 않아? 너도 같은 심 자를 쓰는 게 아니고?”
그 말에 심원은 이마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을 했다. 그러고 보니 심청추의 심자 또한 자신의 성과 같은 것 아닌가. 그럼 이 타비기 선생의 이름도 설마? 손가락으로 타비기를 조심스럽게 가리켜 보이며 모니터도 쿡쿡 찌르는 시늉을 한 뒤 고개를 갸웃거리자, 타비기도 고개를 끄덕였다. 같은 성을 쓴다는 의미가 되었다.
“한마디로 거울 세계 같은 느낌이네. 너도 원작의 심청추와 크게 막 벗어난 얼굴 외형은 아니었잖아.”
“그렇긴 했지만.”
“나도 마찬가지고.”
그것까진 모르겠고. 심원은 타비기를 곁눈질로 쳐다보며 실소했다. 적어도 낙빙하 정도는 되어야 비빌 수 있단 말이다. 낙빙하는 정말 눈동자 색과 머리 길이만 빼면 너무나 흡사하게 생겼던 터라 놀랄 수밖에 없었다. 거울세계라. 납득이 안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막상 또 가자고 하니 가족들이 울며 자신을 반겼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게다가 네가 여기서 그 세계로 간다 한들, 네 육체는 넘어가는 게 아니니 결국 죽은 판정이 될 건데.. 내 집에서 시체를 치우라고!?”
“.........”
“이유나 제대로 들어보자. 너, 낙빙하 좋아하는 거야?? 사존으로서 가는 것 치고는 너무 메리트가 없잖아.”
심원은 돌직구로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스러워했다. 좋아하냐고? 내가? 낙빙하를? 심원은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침착하게 정리해 보려 했다. 마지막으로 들렸던 애달픈 목소리를 다시 뒤쫓아 시간을 역행하자, 그와 제법 부딪혔던 입술을 저도 모르게 만지작거렸다. 그게 기분이 나빴나? 입술을 손끝으로 더듬다가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어보자 다 알 것 같다는 깨달음의 얼굴을 한 타비기 선생의 표정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도대체 뭘 한 거야.. 이거까지?”
그는 오른손으론 고리를 만들고 왼손 검지로 푹푹 고리 안을 들쑤시는 시늉을 하는 것에 급하게 다시 그의 고간을 발로 팍팍 밟아 주었다. 괴로워하는 타비기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심원은 침착하게 숨을 가다듬고 허름한 4평 남짓의 방, 컴퓨터 바로 옆의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열었다.
“실은, 현실로 넘어오기 전에 낙빙하가 부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어. 길은 없지만, 출구처럼 보이는 빛이 두 개가 내 앞뒤로 나오더라고. 낙빙하가 뒤에서 부르는데, 내가 그냥 앞으로 걸어갔어. 무서워서.”
“낙빙하가?”
“아니. 다시 현실로 못 돌아올까 봐. 낙빙하랑 있으면 모든 게 다 처음이잖아. 무서웠어.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으로 도망쳐서 모른 척하고 싶었는데.”
심원은 가라앉은 눈빛으로 타비기를 바라보곤 입술을 달싹였다. 자그마한 목소리로 ‘싫지 않았어. 입맞춤이.’ 하고 말을 하자 타비기는 이내 컴퓨터 의자에 등을 푹 기대고는 뒤로 젖혔다. 금방이라도 의자가 넘어갈 것 같은데 용캐도 넘어가지 않게 잘 버티는 것이 신기해 쳐다보고 있으려니 타비기는 한참을 그렇게 의자에 기대 누워 천장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심원을 바라보았다.
“나도 어떻게 넘어가는지 몰라. 단지, 그때 코드를 잘못 꽂아서 난 사고로 넘어온 것만 기억해. 안될 수도 있어.”
“괜찮아.”
“정말 결심한 거야?”
심원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짧게 말한 타비 기는 이내 서랍장을 뒤적거려 뜯어 쓰는 스프링 수첩과 잉크펜을 하나 꺼내 내밀었다.
“네 가족들이 오해하지 않게 마지막 편지라도 써둬. 나도 네 가족에게 설명은 해야지.”
고개를 끄덕인 심원은 수첩을 받아 들고는 한참을 수첩을 쳐다보다가, 첫 말머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하며 펜을 든 손을 움직였다. 어차피, 첫 죽음 때에도 심청추에게 빠르게 이입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현실의 삶에 별로 미련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가족이 이해를 해 주길 바라며. 미안한 마음을 꾹꾹 눌러 심원은 한 자 한자 정성 들여 글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한 삼십 분 정도가 지나서 심원은 제법 길게 쓴 글을 다시 한번 읽어 보고는 타비기에게 수첩과 펜을 건네주었다.. 타비기도 내용을 보고 납득한 듯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침대와 컴퓨터 사이의 좁은 공간에 콘센트 부분을 가리켰다.
“바로 여기지.”
실제로 조금 그을음이 생긴 콘센트 구멍에 심원은 침을 삼켰다. 이미 타비기는 심원의 손에 컴퓨터 선을 뽑아 옮겨주고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정말 여기에 꽂게 되면 나는 이제 이승탈출인가. 심원은 조심스럽게 콘센트 구멍에 코드를 맞추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으아악!!!!”
팍- 하고 콘센트가 들어가는 소리가 났고.
“와아아악!!!!”
타비기가 그 기합에 놀라 덩달아 소리쳤지만.
“아아아악....악?”
한쪽 눈을 슬쩍 떠 콘센트를 내려다본 심원은 이내 식은땀을 흘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
심원은 시무룩한 얼굴로 달이 휘영청 뜬 밤하늘을 쳐다보고는 차에 올라탔다. 팍팍팍, 여러 번 콘센트를 들쑤셔 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심원이 이러다 집 벽이 부서지겠다며, 코드를 하도 쑤셔대 벌겋게 달아오른 심원의 손등을 팍팍 때렸다. 별 소득 없이 가자니 허탈함이 몰려왔다. 기껏 연락도 닿아 차로 밟아 가며 왔는데! 이왕 나온 김에 조금 더 있다 집에 들어갈까 싶어 심원은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들고 차에 올라탔다. 한 손으로 운전을 하며 달빛을 받아 운전을 하자니, 입이 심심해 커피를 들어 한 모금 빨아올리고는 오른손으로 커피를 차 안의 컵 홀더에 끼워 넣으려 하는 순간 오른손이 미끌 하며 커피를 허벅지에 다 쏟아 버렸다.
“아, 차가-.”
그 순간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앞쪽의 하얀 불빛 두 개와 커다란 트럭의 소리가 들리는 것에 심원은 시발시발시발시발을 연속으로 외쳤다.
이렇게 죽는 건 좀 아니지 않냐!?
그리고 앞의 유리창이 깨지고 트럭이 자신의 차를 뒤엎으려는 순간 심원은 덜컹이는 차에 이리저리 부딪혀 까무룩 기절하며 떠올렸다.
‘사존의 이 손은 참으로 다사다난합니다.’
그랬다. 늘 재앙을 불러오는 오른손이었다.
*
“아.”
심원은 눈을 번쩍 뜨곤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또 한 번 검은 심연의 어딘가에 잠겨 혼자 덩그러니 서 있었다. 시선을 내려 자신의 몸을 훑어보자, 죽기 직전 입었던 옷 그대로 옷을 갖춘 모양인 것을 보니 소설 속으로 들어오지는 못했던 것 같다. 죽었는데 실패해!?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
“게다가, 어디로 가야 하는 거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하니 발을 떼기가 어려웠다. 심원은 그래도 가만히 있기보다 걷는 것을 선택했다. 걷다 보면 무어라도 나오겠지. 한참을 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 심원은 결국 입을 열어 외치기까지 시작했다.
“아무도 없습니까!!!!!”
허공에 외친다 한들 누군가 달려올까. 그 순간 희미한 검회색의 불길이 자신의 주변에 나타나 떠돌기 시작함을 느끼고는 심원은 눈을 깜빡였다. 이 연기는!
“네 놈을 죽였어야 했어.”
이내 몽마가 불꽃에서 재가 흩어지듯 것처럼 사그라들더니 그 재가 사람의 모양을 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주 괘씸하다는 얼굴로 심원을 내려다보는 몽마는 단호한 말투로 고개를 돌렸다. 하얀빛이 세어 나오며, 또다시 익숙한 가족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에 심원은 눈을 깜빡였다.
“돌아가거라. 네 녀석 때문에 내가 선택한 그 녀석이 미쳐 날뛰고 있으니, 떨어트려 놓아야겠다.”
“싫습니다.”
“이놈이!”
심원은 이내 자리에 아예 철퍼덕 주저 않고 팔짱을 끼고 앉아 단호한 얼굴로 팽-. 고개를 돌려 몽마를 무시해 보였다. 노발대발한 몽마는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며 바닥을 발로 쿵쿵 구르며 화를 내었다.
“네녀석이 그 아이 옆에 있어서 도움이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속만 시꺼멓게 타들어 가게 하지 않느냐!! 그렇다고 그 고지식한 녀석이 나를 사존이라 부르지도 않고!”
“제가 아니면 안 되니 그렇겠지요. 제가 돌아가면 해결할 수 있을 일들입니다. 게다가........”
심원은 이내 입꼬리를 올리고 자신 있는 표정으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낙빙하!!!!!!!”
“아니, 이놈이!!”
“낙빙하 어디 있느냐!!!!!!!!!!"
몽마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다름 아닌 낙빙하의 꿈속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닌가. 심원은 쾌재를 부르며 낙빙하의 이름을 고래고래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몽마의 모습이 다시 불꽃으로 억지로 변하는 듯하더니 순식간에 풍경이 변했다. 자신도 익숙히 아는 대나무 숲의 모습이 드러났고, 이 익숙한 전개 또한 기억나 심원은 침을 꿀꺽 삼켜 버렸다. 부르니까 진짜 오네. 강아지도 아니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하자 자신의 옷이 천천히 신발부터 변해 올라가는 것이 보여 눈을 깜빡였다. 정말 돌아왔구나.
심청추는 이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바람이 흩날리자, 길어진 머리카락과 속발관(束发冠: 머리 장식)에 매어 둔 청색 끈이 이리저리 흩날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 있자니, 저 멀리서 사람의 모습 하나가 다가오는 것이 보여 심청추는 눈을 깜빡였다. 아주 작은, 낙빙하가 저 멀리서 물동이를 이고 오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화사한 얼굴로 뛰어와 예를 갖추며 허리를 숙여왔다.
“사존!”
“........”
이 꿈 안이 낙빙하의 꿈 안인 것을 알면서도 심청추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여 낙빙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자, 꽃이 만개하듯 웃어 보인 낙빙하가 제 허리에 매달리며 사존, 사존! 하고 애타게 자신을 부르기 시작했다.
“네 사존 어디 안 간다.”
“거짓말.”
자신도 모르게 했던 말에 바로 나오는 대답을 듣고 심청추는 몸을 굳혔다. 아이는 자신을 올려다보고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존은 거짓말에 능하십니다.”
그렇게 말하며 아이는 흩날리는 대나무 잎으로 변해 사라져 갔다.. 그 모습에 놀란 심청추가 손을 뻗어 나뭇잎을 잡아보려 하늘을 향해 손을 뻗자, 하얀 옷을 갖춰 입은 사내의 손으로 보이는 것이 자신을 붙잡았다.
“사존, 사존이 말씀하셨지요.”
“무얼.”
“제가 강해질 수 없으면, 저를 지켜주시겠다고.”
“...........”
“사존이 틀리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강해져도, 사존은 지킬 수가 없습니다.”
조금 성인의 티가 나는 낙빙하가 손을 뻗어 심청추의 뺨을 엄지로 조심스럽게 쓸며 손바닥으로 조금은 차가운 것 같은 뺨을 제 손으로 덮어 버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지만 애써 참아내는 얼굴을 하자니, 낙빙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제가 한 번이라도, 사존 등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언제쯤, 아이가 아닐 때. 사존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걸어볼 수 있겠습니까. 제가 앞서지 못한다면 그것이라도 허락해 주시면 좋을 텐데 그것 조차 어렵습니다, 사존. 그렇게 말하는 낙빙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위해 손을 뻗자 또 한번 대나무잎으로 변하는 낙빙하의 모습에 청추는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이내 흐트러지는 대나무 잎을 하나 붙잡아 보자, 축축한 느낌이 들어 잎을 자세히 쳐다보았다.. 마치 성애가 앉은 듯한 잎은 이내 강한 바람에 날아가 버렸고, 언제 그랬냐는 듯, 소복이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눈 밟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뒤에서 다가온 인형(人形: 사람의 형상) 하나가 자신을 부르지도 않고 먼저 입을 여는 것에 심청추는 뒤를 돌아보았다..
“사존 등은 항상 넓어 보입니다. 제가 이렇게 컸는데도.”
“빙하야, 나는-.”
“사존을 믿지 못합니다. 제 손을 빠져나가시는 것에 능하시지 않습니까.”
낙빙하는 이내 한걸음 더 다가오며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 기세에 눌린 심청추는 뒷걸음질을 치다 이내 대나무에 부딪혀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게 붙잡혀 버렸다. 양손목을 붙잡은 낙빙하가 이내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간질이듯 만지며 손을 움직여 깍지를 꼈다.
“이번에 도망치셨으면 멀리 가야지요. 제자가 쫓아오지 못하게.”
“나는, 내 발로 돌아왔.”
“믿지 않습니다. 어차피 미움받을 것이라면, 사존에게 미움받을 짓을 하고 나서 받겠습니다.”
요대(饒貸:너그러이 용서하다)해 주세요, 사존. 낙빙하는 그렇게 말하며 심청추를 끌어안았다. 그 순간 공간이 뒤틀리는 것과 동시에 몸이 무겁게 느껴지고는 심청추는 급하게 숨이라도 들이켜는 사람처럼 눈을 크게 떴다.
“어서 오세요, 사존.”
그리고 꿈속에서 나오자마자, 창문 밖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받으며 자신의 위에 올라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낙빙하의 모습에 심청추는 입술을 깨물었다. 얇은 중의만 하나 걸치고 앞섶은 다 풀어 헤쳐져서는 쳐다보고 있는 시선에 청추는 입을 열었다. 어째, 겁탈은 본인이 하면서 본인이 더 슬픈 얼굴을 하고 있는 게야. 심청추는 손을 뻗어 가볍게 낙빙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듯 만지며 웃었다.
“그래. 다녀왔다.”
“......그렇게 하셔도, 저는 봐드릴 수 없습니다.”
아예 작정이라도 한 듯, 제자 운운도 버리고 자신을 칭하는 호칭을 바꾼 낙빙하의 행동에 심청추는 머리를 만져 주던 손을 더 뒤로 뻗어 낙빙하의 목을 감싸 안았다. 요대 해 달라며 봐주지 않겠다니 말이 두서가 없구나. 그렇게 말하며 웃자, 낙빙하는 홀린 것 마냥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심청추가 잘 넘겨준 머리카락은 이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의 입맞춤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폭포수처럼 쏟아 내려져 시야를 가려 버렸다. 밤은 길었다.
*
“흐으, 그만.”
“아직입니다.”
잔뜩 성 이난 양물을 들쑤시는 낙빙하의 행동에, 심청추는 야금(夜衾: 이불)을 뼈마디가 질릴 정도로 붙잡았다. 옷도 제대로 벗기지 않아, 어깨가 흘러내릴 정도로 내려와 버린 옷은 허리에 두른 완대 때문에 내려가지도 못하고 고정되어 있었다. 반면 하의는 하의대로 벗겨져 활짝 벌려 남근을 받느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더 교접을 깊게 하기 위해 심청추의 다리를 어깨에 올렸던 낙빙하지만, 박아댈 때마다 흔들리는 몸이 늘어져 이미 낙빙하의 팔에 얹어져 늘어져 있었다.
“아, 으응, 앗!!! 그만, 그만! 너무 커-.”
잔뜩 성 이난 천주가 내벽을 긁을 때마다,, 처음 비문으로 받는 성기에 놀란 청추의 몸이 옹골지게 낙빙하의 것을 오물거렸다. 허리를 쳐올릴 때마다,, 이미 안쪽 가득 사정한 정액으로 찔걱 거리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리는 것에 심청추는 당장이라도 귀를 막아야겠다며 야금을 쥐었던 손을 겨우 풀어 귀를 막기 위해 팔을 움직였다. 그러자 그것이 도망가려는 행동인 줄 알았던 낙빙하는 이내 눈을 가늘게 뜨고 영기를 심청추 안에 흘려보냈다.. 순간적으로 아랫배에 훅 올라오는 열기에 놀란 그가 낙빙하를 쳐다보기 무섭게 온몸에 간지러운 느낌이 몰려와 청추는 어쩔 줄 몰라하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사존, 도망갈 수 없습니다. 제자를 버리지 마세요.”
“버리지 않을, 으응!!”
순간적으로 어느 한 곳을 찔러 올리자 몸에 전기라도 흐르는 듯 강한 충격이 와 심청추는 비음을 흘리고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미 잔뜩 사정했던 제 양물이 울컥거리며 또 묽은 정액을 토해내는 것을 느끼고서는 몸을 덜덜 떨자, 낙빙하가 웃으며 심청추의 어깨에 입을 맞추었다. 그만할까요, 사존. 몸이 달아오르시지 않으셨습니까. 많이 부족하실 텐데요. 느릿하게 자신의 양물을 빼내자마자, 잔뜩 부어 붉게 달아오른 비문이 울컥거리며 정액을 조금씩 뱉어 내었다. 절경이 따로 없는 것에 낙빙하가 이내 고개를 숙여 목덜미에 입을 맞추고는 이를 세워 살살 깨물어 주었다.
“천마혈도 딱히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럴 때는 좋네요. 사존을 뒤쫓을 요령으로 먹였던 것인데 말입니다.”
보세요, 사존. 정(精:정액)이 흘러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제대로 막아 두지 않으면 애써 부어 넣은 것이 다 흘러내리겠습니다. 태연한 말투로 그렇게 대답하는 낙빙하의 행동에 심청추는 점점 달아오르는 몸을 비틀었다. 이내 몸을 숙여 아래로 내려간 낙빙하가 연한 안쪽 허벅지를 깨물자, 무엇을 하려 하는 건지 기대감 반 두려움 반으로 낙빙하를 쳐다보자 눈이 마주 했다.
“저는 이제 슬슬 끝을 낼까 싶었는데. 사존도 그리 하고 싶으셨다니 이쯤 하지요.”
“잠, 잠깐!”
이대로 방치한다고!? 이렇게 몸이 뜨거운데!? 색색 거리며 달뜬 숨을 내뱉은 심청추가 옷을 조금 끌어올리려 했지만, 몸의 열기 때문에 그저 배를 감싸 안고 허리를 굽혔다. 배신감에 잔뜩 촉촉히 젖은 눈으로 씨근덕 거리며 낙빙하를 쳐다보자, 은근히 손을 뻗어온 낙빙하가 이내 심청추의 한 손을 붙잡아 축축이 젖은 자신의 것을 쥐게 만들었다. 수음(手淫:자위) 라도 하는 것 마냥 한 손에 다 붙잡히지도 않는 것을 문지르게 하자 심청추가 달아오른 눈을 겨우 떠 낙빙하를 쳐다보고는 정액이 달라붙은 발을 들어 낙빙하의 어깨를 발로 지긋이 밀어 넘어트렸다. 뭔가 싶어 손의 온기가 떠난 제 것이 마무리를 하지 못한 점에 아쉬워하며 누워 있자니, 심원이 느릿하게 낙빙하의 위로 올라탔다.
“사존?”
“가만히.”
잔뜩 흥분한 심청추가 이내 빳빳하게 서있는 낙빙하의 육봉을 붙잡아 입구에 맞추고는 허리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익숙해졌나 싶었더니 다시 몸을 가르는 듯 들어와 빠듯하게 자신의 몸을 채워가는 낙빙하의 것에 만족스러운 듯 야살스럽게 웃고는 배를 손으로 살짝 문지르는 행동에 낙빙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위를 올라 탈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워서 입을 가린 낙빙하가 불만스러웠던 심청추는 이내 낙빙하의 탄탄한 복근을 쓸어내리듯 만지고는 손을 살포시 올려놓았다.
“제자니까 배워야지.”
스승이 가자는 데로, 따라오면 되는 것이다. 이내 심청추가 엉덩이를 조금 들어 올려 삼켰던 양물을 다시 빼내어 내자, 그 느낌에 낙빙하가 신음을 흘려보냈다. 그것이 제법 사내답고 듣기 좋았던 심청추가 느릿하게 다시 음모가 제 비문에 문질러지는 것이 느껴질 때까지 허리를 내리자, 낙빙하가 스스로 허리를 조금 들썩였다.
“빙하야, 빙. 하아, 응!”
“하, 사존.”
낙빙하가 움직이던 말던 제 좋은대로 안쪽을 찌르며 허리를 비틀고 들썩이던 심청추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물기젖은 눈을 내리떠 낙빙하를 바라보자 낙빙하가 이내 못 참겠는지, 심청추의 엉덩이를 강하게 붙잡아 내리며 허리를 쳐올리는 행동에 심청추가 고개를 젖히며 덜덜 떨었다. 너무 깊어. 좋아, 좋아. 이내 낙빙하의 허릿짓에 맞추어 제 허리도 들썩이던 심청추는 입술을 악물고 있던 낙빙하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처음에는 놀랐는지 허릿짓도 멈추던 낙빙하는 침상이 덜컹거릴 정도로 박아대던 허릿짓을 늦추며 혀를 얽혀가기 시작했다. 가벼운 입맞춤이 아니라 농후하고 색욕 짙은 입맞춤에 낙빙하가 심청추의 혀를 살짝 깨물어 버렸다. 아, 하고 감탄사 같은 신음이 심청추의 입에서 나오자 그대로 몸을 안고 다시 위를 차지한 낙빙하는 교접한 상태 그대로 심청추의 몸을 돌려 엎드리게 하였다.
“빨리, 응? 간지럽구나. 안쪽이 너무-.”
“배웠으니 당연히.”
써먹어야지요. 사존이 알려주신 것들인데. 그렇게 말하며 낙빙하는 이내 핏줄까지 돋을 정도로 성이 난 제 것을 뒤로 주욱 빼내 한 번에 허리를 쳐올렸다. 연신 들썩이는 심청추의 몸에서 결국은 단정히 머리를 고정했던 속발관 까지 덜렁거리며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그것이 거슬렸던 낙빙하는 이내 속발관을 고정시키던 비녀를 빼내고 비녀에 걸쳐 있던 끈으로 심청추의 손목을 뒤로 묶었다. 어깨로만 몸을 지탱하며 무릎을 꿇고 엎드리던 심청추는 이내 손목이 묶인 상태로 붙잡혀 그대로 양물을 받아 내었다.
“다시는, 놓지, 않을 것입니다.”
“하아, 읏, 아윽, 아!!”
“다시는.”
연모합니다, 사존. 연모합니다. 그렇게 심청추의 등 위로 엎드려 마지막으로 파정한 낙빙하의 정이 자신의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느끼며 심청추는 까무룩 하게 정신을 놓아버렸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
아침이 되자마자, 부서질 것 같은 허리의 통증에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키려 하니, 아침 조반을 들고 오던 낙빙하가 빠른 걸음으로 자신을 부축해주는 것에 심청추는 눈을 깜빡였다. 어째 자신은 허리 피는 것도 힘든데, 낙빙하는 얼굴에 기름이라도 바른 것 마냥 반짝반짝 빛까지 나 보였다.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낙빙하가 얼굴을 붉히곤 흠.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단상 위에 올려두었던 조반을 침상으로 가져왔다.
“소화하기 좋은 것으로 준비하였습니다.”
“........”
아무래도 이것은, 조금 억울하지 않은가. 자신이 한 몸 희생해 돌아왔는데,, 무언가 더 얻어가야 하는 게 있어야 하지 않는가! 심청추는 이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조반을 쳐다보다가 낙빙하를 보고 입을 열었다.
“손을 들기 힘들다. 손목이 아리구나.”
“.......제가 먹여드리겠습니다.”
묘하게 기쁜 투로 말하는 낙빙하의 행동에 심청추는 웃어버렸다. 차마 자기가 한 일이니 아프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눈치만 보는 그의 행동이 제법 귀여워 보이기도 했다. 수저에 찬 까지 올려 심청추의 입가에 조심스럽게 대어보자, 심청추는 이내 입을 조금 벌려 아기새가 음식이라도 받아먹는 듯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맛이 괜찮습니까? 그렇게 물어보는 낙빙하의 물음에 고개를 선선히 끄덕인 심청추는 자신을 쳐다보았다. 몸은 목욕이라도 한 것 마냥 뽀송하고, 옷 또한 갈아입혀져 있었다. 다만 머리를 장식했던 속발관은 가지런히 정돈되어 저 멀리 협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내가 설마 어제 낙빙하랑 거사를 치렀던 것이 아닌가?! 꿈 속에서 했나?! 심청추는 설마 설마 하는 마음에 자신의 옷을 확 열어젖혀 아래를 쳐다보았다. 그 행동에 낙빙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쳐다보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아닌 게 아니라 온 몸이 보랗고 녹색의 멍이 색색별로 물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심청추의 몸을 물고 빨고 했으니, 그 정도 흔적은 당연한 것이라 느꼈지만. 가슴 유두가 옷에 쓸릴 때마다 따끔한 것이 분명히 여기도 희롱했을 것이라 생각한 심청추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아.”
그 숨소리에 움찔한 낙빙하는 이내 침울한 얼굴로 수저만 달그락거렸다. 자신이 겁간을 했으니 사존이 분명 싫어하는 것일 테지.. 사존이 자신을 다시 보지 않겠다 하면 어찌하나 싶었던 낙빙하가 이내, 자신의 소매를 부드럽게 잡아당기는 느낌에 옆을 쳐다보았다.. 맑은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 보고 눈매를 접어 휘어 보이는 것에 낙빙하는 또 멍하게 그 눈을 바라보았다.
“곡기는 다 챙겨야 하지 않겠느냐. 마저 다오.”
“.....사존, 제자가 잘못하였-.”
“네가 잘못한 것 없다.”
심청추는 이내 심드렁 한 느낌으로 낙빙하의 말을 자르고는 묶였던 손목을 가볍게 돌려보았다가 통증이 미세하게 올라와 그저 낙빙하의 옆에 기대듯 몸을 움직이고는 낙빙하의 눈을 다시 마주하고 말하였다.
“빙탄상애라 하더구나.”
“누가 말입니까?”
“........네가.”
제가요? 사존, 제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까? 제자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당황스러움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낙빙하가 이내 그 뜻을 물어보았다. 심청추는 덤덤히 앞쪽을 다시 주시하고는 눈을 감고 입을 열며 말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뜻이라 하더구나. 그래, 내가 틀린 거지. 네 마음이 무서워 도망가는 것이 답인줄 알았는데. 네가 정답을 알려주더구나.”
“사존, 제자가 감히 물어봅니다.”
묘하게 떨리는 음성에 심청추가 낙빙하의 눈을 쳐다보자, 또 울 것 같은 강아지 마냥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물어보는 낙빙하의 행동에 심청추는 힘겹게 손을 올려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찌 돌아오셨습니까.”
“그거야 당연히.”
심청추는 턱짓으로 다 비워져 가는 아침 조반을 가리켰다.
“네 음식보다 맛있는 게 없으니 돌아왔지. 늘 해줘야 한다.”
여간 멋스럽지 않은 대답인데도 불구하고 낙빙하는 눈을 곱게 휘며 제 몸을 끌어안았다. 덕분에 빈그릇들이 깨지지 않게 바닥을 나뒹굴어 버렸고, 그대로 침대로 누워 버린 심청추를 안아 연신 뺨과 이마에 입을 맞추던 낙빙하가 웃으며 화답했다.
“제가 매번 다른 맛으로 만들어 드리는 건 어떻겠습니까. 싫으십니까.”
심청추는 이내 덜 풀어져 조금은 아린 팔을 들어 올려 낙빙하의 목을 감싸고는 대답해 주었다.
“싫을 리가 있겠느냐. 아주 마음에 든다.”
심청추의 화답에 낙빙하는 짙게 미소를 띠며 조심스럽게 입술에 입술을 맞닿게 하였다. 최고의 보상이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만족스럽게 느끼며 이내 두 사람은 이마를 마주 대고 웃었다.
완연한 봄이었다.
[시스템 확인. ‘광오선마도’의 완성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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