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은 소설의 분위기 용도이니 들으시며 보시는것을 추천드립니다. (듣지 않으셔도 무관합니다.)
* 본 소설은 파판의 스토리와 관련성이 없습니다. 약간의 설정은 참고 했습니다.
* 아우라 종족 (텀) 에 대한 거친 성행위 묘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불쾌하시다면 뒤로 가기 눌러주세요.
- 등장할 수위 : BDSM적 성향, 비 필터링 성기 묘사, 수치적 언어등
* 졸려서 오타가 있을 수 있습니다.
- 하나 속에 열둘 있노라 -
지도는 발품을 팔수록 정확하다 건만
이 몸이 발 디뎌 본 곳은 너무도 적구나
이 지도에 점을 덧붙이려는 노력에
열두 신의 인도가 있기를
이 지도를 피로 더럽히려는 권력에
열두 신의 심판이 있기를
제6성력 1506년
로다드 아이언하트
Tempt fate
에오르제아. 북쪽으론 차가운 바람이. 남쪽으로는 매서운 모래바람이. 열두 신의 가호에 빚어 만든 땅에는 당연하게도 자연이 생겼고, 사람이 생겨났다. 그 속에서 태어난 생명체의 종류도 각양각색인지라. 이것은 먼바다 건너. 또 다른 생명체가 태어난 오사드 대륙의 이야기.
“이게, ‘문자’라는 거야.”
아무도 없는 동굴에 덩치가 제법 좋은 사내아이 둘이 웅크려 바닥에 무언가를 나뭇가지로 쓱쓱 그리고는, 이내 주변을 둘러보고 황급하게 발바닥을 땅과 비벼 그것을 지워나갔다. 주변에서 들리는 인기척에 디안은 서둘러 목에 걸쳐두었던 복면을 다시 걸쳤다. 그러자, 저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신의 눈빛을 닮은, 분홍빛의 옷을 입은 사내 둘. 자신과 자신의 친우인 아버지를 보고는 눈을 내리떴다. 자신의 종족에선 말이란 것이 없다. 그저 눈과 행동. 그것이 사람들이 흔하게 말하는 ‘대화’라는 것의 일종이었다. 케스티르족.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이 우리를 부르는 이름은 그것이었다. 옛날과는 달리, 요즘에는 외부인과의 접촉이 많아져 듣는 것에는 슬슬 적응되었다. 다만 읽거나, 쓰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배우지도, 배울 수도 없었던 것을 자신의 친우가 근처 부족들에게 건너 들은 것이다. 호기심에 따라온 것이 문제였다. 어른들의 무거운 눈빛이 자신들을 향해 내리쬐고 있는 것을 느끼곤 디안은 몸을 움츠렸다. 혹시나 옆에 있던 카샨이 했던 말을 들었을까. 다행히도 어른들의 눈빛은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카샨도 눈치껏 자신 아버지의 손을 붙잡고 자신의 뺨에 대곤 웃어 보였다. 내 아버지도 한숨을 쉬곤 이내 내 손을 붙잡고 동굴 밖을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쉬움에 뒤를 돌아보며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진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문자. 말. 그것은 생각보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원동력이 되어 가고 있었다.
“디안, 디안.”
아주 작게 귀에 바짝 대고 속삭이는 소리에 디안은 놀라 벌떡 일어나 버렸다. 어이쿠, 하고 빠르게 뒤로 고개를 물려 피한 카샨이 킥킥거리며 웃고는 손짓을 해 보였다. 오늘도 따라오라는 것이겠지. 잠깐 기다린다는 것이 눈을 감자마자 곯아떨어질 줄 생각도 해보지 않았다. 멋쩍게 길게 자란 머리를 대충 하나로 묶고는 침대에 베개를 두툼하게 넣어두고 대충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두곤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막사에서 나왔다. 혹시 모를 단검도 하나 챙기고. 늘 긴 머리는 거추장스럽다며, 자고로 전사는 짧은 머리라는 단호한 말과 일치하듯, 짧게 자른 갈색 머리가 달빛에 빛나는 카샨을 쳐다보고는 씨익 웃고 앞서 달리는 카샨을 따라 달렸다. 넓은 평원에 내리쬐는 달빛과, 푸른 잔디를 가로지를 때마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과 풀 짓이긴 향기가 콧속을 스며들었다. 늘 당연한 일상이지만 이 시간만큼은 좋았다.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동굴에 다시 들어갔다. 이젠 거의 살림이라도 차린 것처럼 동굴 안에는 작은 식기나, 초. 간단한 건어물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도 왔었어. 오사드 대륙의 동방 인들이. 우리처럼 뿔이 있는 게 아니었다니까.”
“뿔이 없어?”
“그래. 처음에 우리보고 정말 놀라더라고. 말을 빌리려 한 거 같았는데, 보고 놀라서 도망치는 꼴만 봤지 뭐야.”
상상이라도 한 듯 또 웃고는 벌러덩 뒤로 누워 버리는 카샨의 행동에 디안은 눈을 깜빡였다. 뿔이 없으면 방향은? 듣는 것은? 의문투성이지만 한낱 마물또한 말을 하는 마물이 있고, 사람처럼 흡사하게 생긴 마물도 있는데. 뿔이 없는 것이 무슨 특이한 일일까 싶어서 고개를 그저 끄덕이자 갑자기 벌떡 일어난 카샨이 디안의 손목을 붙잡았다.
“절대 그들과 친해질 생각을 하지 마.”
“왜? 우릴 보고 놀라서 도망갔다며. 무서울 게 뭐야.”
그렇지 않아. 단호한 카샨의 말에 디안은 눈을 찌푸렸다. 그런 뿔이 없는 인간들은 우리의 뿔을 특별하게 생각해서, 종종 사람을 시켜 납치해 팔아넘기기도 한다니까. 조심해. 엄한 눈을 지어 보이더니 다시 벌러덩 누워 버리는 카샨의 행동에 픽 웃어버렸다. 자신도 카샨도. 알아주는 케스티르족의 전사였다. 자신은 창술에 능했고, 카샨은 검술에 능했다. 긴 것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늘 투덜거리는 카샨 덕에 우연히 잡았던 창이 제 손에 딱 맞게 익숙할 줄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던 터라. 과연, 도탈족의 전사들이 환생에 대해 믿는다는 것은 과언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손에 딱 잡히는 창의 감촉이 좋았다. 그런데 쉽게 잡힐 리가.
“너나 조심해. 요즈음에 자꾸 밖으로 나돌아다니니 네 부모님이 자꾸 날 쳐다보시잖아. 이젠 몸 좀 사려.”
“근질근질한데 어떻게 가만히 있냐.”
검을 잡았으면, 뭐라도 해야지. 투덜거리는 친우의 말을 듣고 디안은 웃어버렸다. 자신도 이제 20을 넘었고, 친구도 20을 넘었지만. 여전히 부모님의 시선이 등이 따갑게 붙는 것은 어쩔 수 없는가 싶어 어깨를 으쓱이자, 어디선가 작게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는 몸을 굳혔다.
“무슨 소리 안나?”
“헉, 설마 아버지가!?”
“아니, 그런 거 치곤 사람이 꽤.”
많아. 그것도 멀리서. 불안함에 서둘러 동굴 안에 있던 비상용 초를 끄고 동굴 밖으로 나서자 붉은빛과 함께 연기가 피어오르는 자신의 부족 천막을 보고 몸을 굳혔다.
“카샨!!!”
“이런, 씨발.”
씨발? 그게 무슨 소리야, 하고 물어보기도 전에 뛰쳐나가기 시작하는 카샨의 행동에 디안도 서둘러 뒤를 따랐다. 아짐에서의 평화는 아주 잠깐이다. 작고 큰 전투는 종종 있었으나, 천막에 불이 붙어 멀리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전투가 일어나는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느리게만 느껴지는 자신의 다리를 책망하며 서둘러 부족으로 뛰어가자 점점 날붙이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싹 다 잡아!!! 저항하면 죽여도 좋다!”
대장인 듯, 흉흉한 붉은 눈알을 희번덕이며 팔을 옆으로 강하게 휘두르며 진두지휘를 하는 녀석을 확인한 나와 카샨은 눈을 마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은 무기가 필요했다. 빠르게 근처를 조심스럽게 이동하며 무기고에 들어서자, 난잡한 피 향기와 널브러진 무기들을 보고는 눈을 찌푸리며 창과 검을 꺼냈다. 입구 앞에서 몸을 웅크리고 보초를 보던 카샨에게 검을 던져 주곤 고갯짓을 하고 서로 나누어 부족 안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
앞을 가려 해도, 검으로 배를 찌르는 사람들과 창으로 목을 뚫어버리는 사람들을 지나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신음과 고통소리, 기합소리와 고함에 정신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으니. 이를 악물고 자신의 부족을 향해 달려들려던 타 부족의 사내를 향해 창을 강하게 던졌다. 그대로 목을 파고드는 창이 퍽 소리를 내며 살갗을 뚫어버리고는 바닥에 그대로 처박히는 것을 보자 부족사람이 고맙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서둘러 죽어버린 남자의 머리를 밟고는 창을 뽑아내자 분수처럼 꿀렁거리며 솟구치는 피에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어머니는? 서둘러 주변을 둘러 보자 저 안쪽에서 익숙한 얼굴에 눈을 크게 뜨곤 서둘러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손을 뻗어 아버지를 붙잡아 보려는 순간 아버지가 크게 휘두르던 도끼가 제자리에서 멈추는 것을 보곤 그대로 달려가던 걸음을 늦추었다. 사람들 사이에 가려진 아버지 앞쪽이, 타 부족이 우리 부족사람을 죽이려 달려든 탓에 피가 튀며 방해했던 시야를 사라지게 해 주었다.
“킥킥. 그러게, 그냥 가만히 있어야지.”
네 부인인가 보지? 그렇게 말하며 이미 축 늘어진 여인의 몸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던진 사내는 배 속 깊숙이 박힌 검을 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우두둑 거리는 소리를 내며 비틀어지는 검이 다시 뽑혀버리자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자신 아버지의 모습에 디안은 숨을 멈추었다. 바닥에 쓰러진 어머니. 그리고 이내 피를 토하며 쓰러지며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아버지를 보곤 디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 어머니!!!”
자신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디안의 아버지의 몸을 꿰뚫어버린 사내는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아 눈을 번뜩였다.
“오호라, 네가 이 사내의 아들인가 보지.”
아주 좋아. 안 그래도 사냥을 나갈 노예가 부족했던 참이거든. 너 정도 덩치는 되어야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에게 느릿하게 다가오는 사내의 행동에 디안은 이를 악물었다. 이미 갑작스러운 야습에 많은 부족 인들이 죽어 나가고 있었다. 우선은, 후퇴해야 한다. 동굴에 잠시 들렀다 가 상황을 봐서 다른 부족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도탈족. 그래, 도탈족이라면. 오만 생각을 떠올리며 잠깐 뒷걸음을 치던 디안은 이내 빠르게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이내 뒤에서 큰 소리로 무언가 지시하는듯한 말이 들리자 자신의 뒤로 제법 많은 양의 인원이 따라 붙는 것에 디안은 이를 악물었다. 빨리 최대한 평야를 벗어나야 한다. 우선 홍옥해로 빠지는 척 하며 돌아가자. 홍옥해로 빠져나가는 동굴의 내부는, 자신이 훨씬 잘 아니까. 디안은 약간씩 떨려 오는 다리를 다독이며 앞을 바라보며 빠르게 뛰었다. 손에 든 창은, 짐이 되기에. 품 안의 단도를 확인하곤 뒤로 창을 던지자 억, 하고 소리를 내며 무언가 쓰러지는 것을 듣고는 달리는 다리에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
*
“샅샅이 찾아라!!! 아직 홍옥해로 나가진 못했으니까!”
주변을 맴도는 기척에 디안은 숨을 삼켰다. 이대로 좀 더 버틸까. 조금만 모퉁이를 돌면 자신과 카샨의 비밀 동굴이 나오지만, 초조함이 앞서다 보면 상황 판단을 흐릴 수 있다. 동굴의 구석. 몸을 웅크리고 가쁜 숨을 내쉬며 최대한 숨을 몰아쉬는 순간, 잊지 못할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쥐새끼 마냥, 잘도 도망치는군.”
느릿한 남자의 목소리.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죽인 그자의 목소리. 디안은 숨을 참고는 덜덜 떨리는 몸에 힘을 주었다. 공포감이 아니었다. 넘쳐나는 살의였다.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시신은 어쩌면 이리저리 바닥에 치여 돌아다닐 수도 있을 터였다. 자신이 오늘 동굴로 가지 않았더라면. 그랬다면 다 살았을 수도 있을 텐데. 눈에 핏대가 설 정도로 솟구치는 분노에 자신도 모르게 품에 차고 있던 검에 손을 올리다 이내 애써 흥분감을 가라앉혔다. 발걸음 소리는 하나지만, 움직이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 적이 있을 수도 있다. 그냥 달려나갔다가는 자신이 죽고 모든 것이 무의미 해 질 수 있으니. 품 안의 검에서 손을 놓으려는 순간 남자의 말이 다시금 자신의 귀에 박혔다.
“없는 것 같으니 밖으로 나가서 밖을 찾아봐. 다른 부족에게 연락을 취하러 갈 수도 있으니. 그럼 골치 아파진다고. 도탈족 같은 놈들이랑 붙게 되면 더더욱.”
부두가 족 체면이 서질 않지. 그렇게 말하며 멀어지는 듯한 발걸음 소리에 디안은 귀를 기울였다. 나가는 건가. 살짝 고개를 내밀어 주변을 살펴보자 어느새 사라진 인기척에 조심스럽게 디안은 발을 옮기려 했다.
“쥐새끼가.”
“!!!”
“여기 있었네?”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흉측하게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남자의 행동에 디안은 굳어 버리고 말았다. 악귀처럼 벌려지는 이가, 자신을 삼키는 것 같아 디안은 떨리는 눈을 감을 수 없었다.
*
“우웩, 웩.”
“더럽게, 토할 거면 문밖에다 토하라 했지.”
제 밥그릇에 토하고 지랄이야. 남자는 킬킬거리며 한껏 비아냥거리곤 음식과 토사물이 뒤섞인 노예의 밥그릇을 발로 슬쩍 차내였다. 어휴, 냄새. 코를 손으로 막고는 서둘러 그 자리를 피하는 남자와 철창 안에 가두어져 이내 다시 속이 올라오는지 웁, 하고 입을 막은 남자는 그대로 얼굴 하나 겨우 빠져나갈 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린 배의 창문에 고개를 내밀곤 속을 게워냈다.
“.........”
손을 잠깐 움직이자, 절그럭 하는 금속의 소리가 들려 오는 것에 저절로 눈이 내리떠졌다. 단단하게도 한 쇠사슬과 수갑이 손목에 차여진 데다가, 잡혀 오는 길에 발악이란 발악은 다 했더니, 머리통만 한 쇠 구슬이 달린 족쇄까지 차게 되어버렸다. 먹은 것도 없고, 입맛도 없었다. 디안은 황망한 시선을 작은 구멍 너머로 주기 시작했다. 남자, 부두가족의 족장 정도로 추정되는 남자에게 잡힌 이후 그대로 끌려가나 싶었는데, 이런 놈은 기를 죽여놔도 언젠간 기어오른다며 기어이 노예상에게 팔아넘기는 것에 이를 악물고 머리로 녀석을 들이받으려 했으나, 수많은 장정이 들러 붙는 것에 버둥거리기만 하곤 그대로 붙잡혀 끌려갔다. 발버둥을 치려 하니 축축한 액이 잔뜩 묻어 있는 천이 입과 코를 막아버리는 것에 거칠게 숨을 들이마시자 몽롱해지는 정신에 눈을 다시 떴을 때엔, 이미 커다란 배 위에 올라타 있었다. 게다가 사슬과 철창까지. 옷은 이미 다 벗겨져 중요부위만 조금 가릴 정도의 천이 달린 짧은 바지가 옷 전부였다.
“하아, 하아.”
한껏 토를 해내고 쓰러진 남자가 어쩐지 안쓰러워, 제 밥그릇에 있는 물이라도 건네 주려 하자 그것마저 배가 거친 물살에 들썩거리며 바닥에 쏟아져 낡은 나무 판자 위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배는 쉬는 구간 없이 나아가고, 또 나아갔다. 어디쯤일까. 예전에 아버지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로는, 아주 먼 바다 끝에는 우리와 또 다른 인간들이 산다고 했다. 그런 곳이 아닐까. 노예상인이 있는 것을 보니 신분제 사회가 있는 곳이겠지. 디안은 느릿하게 배의 벽에 기대 누웠다. 넓은 초원과는 다르게, 자신의 몸 하나가 겨우 들어가는 작은 철창은 너무나 좁고, 너무나 넓어서 외로웠다.
먹은 게 없어도 슬슬 속이 올라오기는 마찬가지이다. 밤낮을 구분 없이 달리는 배에, 갈수록 추워지는 기온까지. 알아서 덮으라며 하나씩 던져준 낡은 모포를 몸에 두른 디안은 배의 구멍 너머의 세상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향기가 딱 봐도 넘쳐 흐르는 곳.
“자, 일어나라. 림사 로민사니까, 여기서 비공정으로 갈아타야겠군.”
서둘러. 가볍게 잘 깎아 만든 나무 몽둥이로 철창을 하나씩 두들겨 가며 노예들을 깨운 상인의 우두머리격쯤 되는 남자가 하품을 늘어지게 하며 엉덩이를 북북 긁고는 문 너머로 나섰다. 굽혔던 몸을 일으켜 철창 밖으로 기어나가듯 나오자 갑자기 하나씩 로브를 뒤집어 입히기 시작했다. 다들 들키지 않게 잘 해. 잔뜩 움츠린 노예들을 끌고 나가는 남자들은 덩치 좋은 사내들로 노예들을 감싸듯 에워싸곤 황급히 비공정에 태우기 시작했다. 비공정이란 것이 무엇인가 했더니,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커다란 배였다는 것에 디안은 눈을 작게 깜빡였다. 이런 큰 것도 날 수 있군. 항상 푸른 하늘을 매를 통해 활강하는 것이 익숙하다 보니 이런 것도 날 수 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껴버리고는 눈을 내리떴다.
차례대로 올라탄 뒤, 느릿하게 비공정과 건물을 잇는 나무 사다리가 치워지자 빠른 날갯짓과도 같은 소리가 들리며 비공정이 바람을 천천히 가르며 움직이는 것을 알려주었다. 처음에야 느렸지만, 곧이어 머리카락이 제법 휘날릴 정도로 빠르게 이동하는 비공정에 디안은 눈을 깜빡이곤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의 구름 모양이 오늘따라 유난히, 아짐의 보라매를 닮아 있었다.
*
나른한 바람은 곧이어 차가운 바람으로 변했다. 이미 로브는 머리 부분이 벗겨져 아무렇게나 다들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었지만, 곧이어 불어오는 매서운 강풍과 추위에 로브의 모자를 손으로 붙잡고 단단히 고정하기 시작했다. 디안도 좀처럼 아짐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추위에 몸을 떨며 로브의 모자를 단단히 고정하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차가운 무언가가 톡, 하고 디안의 손끝에 닿았다가 이내 사라지는 감각에 디안은 고개를 들어 올렸다.
“허이고, 조금만 더 늦게 왔으면 폭설이었겠는데.”
하늘에서 무언가 하얀 꽃잎과도 같은 것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디안은 입을 조금 벌려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바람에 따라 유영하듯 흩뿌려지는 그 하얀 것은, 자신의 뺨에 닿자 순식간에 물이 되어 사그라들며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게 뭘까. 잡아보려 손을 뻗자 순식간에 하얀 꽃잎이 물이 되어 사라져 버리는 그 아쉬움과 놀라움에 주먹을 쥐었다 피며 한참을 그렇게 헛손질을 하자 도착했다는 듯 무어라 고함을 치는 사람들과 서둘러 나무 사다리를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성의 한 쪽에 걸치는 것을 보곤 디안은 숨을 죽였다.
“어서어서 내려.”
움직이라고. 멍청이들. 노예상은 거침없이 서로를 이어주는 사슬을 잡아당겼다. 덕분에 주욱 연결된 노예들이 딸려가듯 앞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자, 뒤따른 노예들도 허겁지겁 발걸음을 맞추어 넘어지지 않으려 애썼다. 디안도 마찬가지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그들을 따라갔다. 맨발바닥에 닿는, 하얀 눈의 감촉을 온몸으로 느끼며. 그것이 디안의 첫눈이었다.
“지명 순서대로 나온다.”
커다란 무대의 뒤편에는 급하게 지은 천막 안에서 노예들을 단체로 앉혀 놓고는 순서대로 몇 명을 끄집어내 밖으로 데려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몸을 따듯하게 데워둔 로브를 거칠게 벗기고는 밖으로 내보내자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득 들리며 무어라 외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영 몰골이 좋지 않은 놈은 다른 쪽 구석으로. 그나마 건장한 사내나, 보기 좋은 미인들이 먼저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하고, 제일 큰 키 탓에 가장 뒤에서 쫓아가던 자신이 혼자 구석에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노예상은 디안의 뿔을 잡아당겨 일으켰다.
“그래, 네가 아주 기대가 크군.”
음흉한 눈빛으로 로브를 거칠게 벗기고는 낄낄거리며 제 등을 떠미는 상인의 행동에 눈을 찌푸리곤 천막을 조금 거두어 밖으로 나가려 했다. 순식간에 다른 노예상이 붙어 다리에 다시 족쇄를 채우고 무거운 쇠 구슬을 품에 안고 나가게 하는 것에 한숨을 쉬곤, 구슬을 힘겹게 집어 들어 밖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디안의 발에, 나무가 아닌 차가운 눈이 조금씩 밟히고, 갑자기 불어오는 강풍에 흩날리는 눈발로 눈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다시 밝아지는 것에 디안은 찌푸렸던 미간을 폈다.
“자, 지금 보는 이 노예는 흔한 노예가 아닙니다!! 무려 드래곤의 후예와도 같은 이 뿔!!! 낙찰가 천만길부터 시작합니다!”
수많은 시선. 털을 깎아 만든듯한 커다랗고 풍성한 옷을 입은 키가 큰 인간들. 뾰족한 귀와 서늘한 눈매들이 자신을 향해 있는 것에 디안은 눈을 내리떴다. 곧이어 자신이 들고 있던 쇠 구슬을 아무렇게나 바닥에 툭 던지자, 쿵 하고 묵직한 소리가 내려앉는다. 그러자 웅성거리던 사람들 사이에서 남자가 무어라 외치며 자신을 손가락질하는 행동에 디안은 눈살을 찌푸렸다가 이내 뺨에 닿는 눈의 감각에 아, 하고 하늘을 쳐다보았다.
“노예가 불손할까 걱정이시라고요? 원래 이런 노예는, 거칠게 다루면 다루어 줄수록 순종적이게 되는 법입니다. 힘이든, 뒤든 말이지요.”
손바닥을 삭삭 비비며 제 뒤로 다가오는 노예상의 행동에 디안은 숨을 삼켰다. 지금은 그나마 조금 감시가 허술하다. 비공정을 타고 왔을 때, 이 성의 커다란 문이 다른 육지로 가는 길과 연결되는 것을 분명 보았으니. 그쪽으로 가면 되겠지. 자신의 엉덩이로 손을 내려 강하게 움켜쥐는 손길에 몸을 움찔하고 굳히자, 인간들이 웃는 소리가 들린다. 마치 장난감이라도 보는듯한 그 웃음과 시선에 디안은 숨을 길게 들이키곤 양 손목을 구속하는 사슬을 팽팽하게 당겨 자신의 뒤에 있는 남자의 앞쪽 목으로 걸곤 빠르게 몸을 돌려 남자의 뒤로 가 목을 졸랐다. 컥-. 컥. 하고 급하게 들이키는 숨소리와 놀란 나머지 손을 뻗고 바동거리는 남자의 행동에 사람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공포, 두려움. 불쾌함. 그리고 그 사이로 스며든 흥미로움. 디안은 목을 두른 사슬 근처의 살 색이 보랗게 물이 들 때까지 바짝 조르고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치듯 상인을 던졌다. 뒤늦게 상황파악을 하고 달려드는 경비에게 내려둔 쇠 구슬을 집어 들어 얼굴을 향해 던지자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구슬과 연결된 사슬을 따라 그대로 자신의 몸도 딸려가는 것에 부드럽게 몸을 굴려 착지하고는 장정들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이를 드러내 그대로 같이 덤벼들기 위해 몸의 근육을 경직시켰다.
“2억만 길.”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낮고 울림이 깊은 목소리에, 디안도. 달려들던 장정들도. 서둘러 달려온 다른 노예상도 몸을 굳혔다. 2억만 길. 노예상의 머리가 빠른 속도로 회전을 마치고는 서둘러 진행을 시작했다. 2억만 길 나왔습니다! 2억만 길, 더 없으십니까!? 빠르게 진행되는 노예 경매에, 노예상은 눈짓으로 죽어버린 장정 한 명과 기절인지, 죽은 것인지도 구분 안가는 노예상을 가리켰다. 서둘러 그 둘을 끌고 나가는 장정을 확인하고서야 눈을 휘고는 빠르게 다시금 입을 놀리기 시작하는 노예상을 잠시 쳐다본 디안은 헉헉거리는 숨을 내뱉고 자신의 몸값을 매긴 유일한 사내를 쳐다보았다.
“.........”
사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단정한 얼굴이었다. 꽤 긴 흑발과 대조되는 하얀 피부에 붉은 눈이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것에 디안은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내가 걸음을 옮겨 무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하는 것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길을 터주었다. 느릿하지만 단정하고 묵직한 걸음걸이에 사람들은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는 서둘러 뒷걸음질을 치며 피했다. 좀처럼 외부인이 많은 곳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로 소문난 사람이 왔다며. 수군거리는 사람들 사이를 지나쳐 자신의 앞에 도달한 남자는 디안의 눈을 마주치곤 양 뺨을 한 손으로 붙잡고는 가볍게 힘을 주었다.
“읏!”
억지로 점점 떨리듯 벌어지는 턱을 다물어 보려 했으나, 엄청난 악력에 디안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억지로 벌려진 턱에 타액이 남자의 손을 타고 흘러내려 미간을 찌푸리자 검은 가죽장갑을 낀 손이 혀 안을 유린했다.
“말을 못하는 건 아니군. 혀가 있어. 안 하는 것인가?”
그제야 턱을 붙잡던 손의 힘을 풀어 주는 것에 이를 드러내 남자의 손을 물어뜯으려 했으나 목이 붙잡히는 것이 더 먼저였다. 가까이 다가온 남자의 검은 머리카락이 눈과 같이 흩날려 찰랑거리는 것에 잠시 시선을 준 디안은 비릿하게 웃으며 침을 모아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세상에.”
누군지 모를 사람의 말이 튀어나온 것과 동시에 남자가 뺨에 튄 침을 닦지도 않고 웃었다. 아주 재미있다는 듯. 남자의 눈치를 보던 노예상은 이내 더 이상의 낙찰가가 나오지 않자 서둘러 남자에게 다가왔다.
“위리놈님, 그럼 어떻게 해 드릴까요. 자택으로 옮겨 놓을까요?”
또 굽신거리며 오는 상인의 행동에 여전히 디안의 눈을 마주친 사내는 아니, 직접 데려가지. 목줄을 가져오도록. 하고 손만 내밀어 보였다. 위리놈. 아마도 그것이 이 사람의 이름이리라. 언어를 알아듣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자가 발달이 더딘 것이지 언어 자체는 더뎌진 것이 아니니까. 디안은 위리놈이 이내 노예상에게 받아온 두꺼운 가죽에 사슬을 연결한 목줄을 자신에게 거는 것을 얌전히 쳐다보았다. 아까의 악력으로 이미 턱이 빠질 듯이 아팠으니. 자신이 죽인 사내들이나 그 어떤 것 또한 이렇게 위압감을 주진 못했다. 오히려 얌전한 디안의 행동이 특이하다는 듯 사내는 곧이어 다가온 노인이 건넨 천에 뺨에 튄 침을 닦아내곤 다시 건네는 것을 쳐다보았다.
“넌 오늘부터, 제멜가의 노예다. 따라오도록.”
제 발로 따라오기 싫으면, 끌려가는 수 밖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그의 행동에 디안은 눈을 내리뜨고 스스로 한발을 내디뎠다. 원초적인 힘의 차이는,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었으니까. 맨발로 질퍽거리게 검게 변한 눈을 밟고 목줄이 걸려 이끌리는 데로 따라가려 하니 갑자기 남자가 돌아선다.
“…….”
“더럽군.”
그것이 발만을 뜻하는 것을 알지만, 묘한 느낌에 디안은 몸을 조금 움츠렸다. 냄새가 나나. 자신도 모르게 몸의 향기를 스스로 맡아 보려 했지만. 이내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남성이 자신의 몸을 안아 올리는 행동에 놀라 눈만 껌벅거렸다. 애초에 안아 올려질 일도 없었을뿐더러, 침까지 뱉은 자신에게 이 정도로 관대할 이유는.
“더러운 것을 마차 안으로 집어 넣을 수는 없잖아. 그렇다고 다른 마차를 준비한 것도 아니고. 말을 따로 때고 갈 수도 없으니.”
정말 더러운 것이 마차에 묻어나는 것이 싫다는 어투로 말한 그의 행동에 약간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디안은 한숨을 내쉬곤 피곤한 몸을 그대로 맡겼다. 힘을 빼자 더 묵직해진 덕분에 남자가 잠깐 걸어가던 몸을 멈추고 자신을 쳐다보았지만, 디안은 모른척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했다. 부두가족이 쳐들어온 이후로, 한 번도 편안한 삶이란 것을 기대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주 잠깐의 욕심 정도는 자신에게 부려도 되지 않겠냐며. 그렇게 말하며 나른하게 감기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무언가 간지럽게 몸을 타고 내려 가는 것에 몸을 조금 뒤척거리자 얼굴에 단단하면서도 따끈한데, 말랑하기까지 한 무언가가 닿는다. 디안은 생각외로 편안함에 그것을 끌어안고 뺨을 비볐다. 그러자 몸을 간질이던 무언가가 잠시 멈추더니 천천히 몸을 쓸어내리듯 아래로, 더 아래로. 허리를 조금 쓰다듬고는 이내 말 할 수 없는 곳까지 배회하는 것에 눈을 번쩍 떴다.
“이런.”
깨버렸네. 나지막하게 울리는듯한 목소리에 서둘러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제야 자신이 들어온 것이 커다란 물이 담긴 곳이란 것을 알아차렸지만, 그보다 갑작스러운 무게중심의 이동에 몸이 넘어지려는 것이 먼저였다. 사방이 물기이다 보니 그대로 손을 짚어도 제대로 몸의 균형을 잃지 않을 자신이 없는 것에 눈을 질끈 감자, 턱 하고 자신의 허리를 붙잡는 온기에 눈을 희미하게 떠보았다.
“제법 몸을 좀 굴렸나 본데.”
상처도 공공연히 많군. 특히 이게 거슬려.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 벗어버린 상태로 자신의 허리를 바짝 끌어안은 남자가 이내 자신의 배 정 중앙에 가로로 조금 짧게 그어진 상처를 꾸욱 하고 눌렀다. 마치, 이것만 없었으면 더 완벽하게 자신의 취향일 것이라 구는 남자의 행동에 디안은 뒷걸음질을 치려 했지만, 그 전에 남자가 자신의 허리를 더 바짝 당기는 것이 빨랐다.
“말을 할 줄 아나?”
“.........”
디안은 아무런 대답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처음처럼 자신의 뺨을 한 손으로 강하게 누르듯 감싸 쥐고는 혀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럼, 경험은 있나?”
경험? 무슨 경험. 눈을 가만히 깜빡이자 위리놈은 이내 손의 힘을 느릿하게 풀며 마치 오럴이라도 하는 것 마냥 느릿하게 검지와 중지를 겹쳐 올리곤 혓바닥을 문질렀다. 여기에 뭐라도 넣고 흔들어 봤느냐는 말이지. 더더욱 알 수 없는 말에 디안이 미간을 찌푸리자, 위리놈은 모르는가? 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법 장정한 사내인 거 같은데. 경험이 전무하다고?”
재밌네. 그렇게 말하고는 가볍게 자신의 다리를 걸어 아예 넘어지게 하는 것에 디안이 놀라 위리놈의 어깨를 붙잡았다. 이 자식이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게 틀림없다며 그대로 이마라도 부딪힐까 싶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신의 손을 구속하던 줄이 없어진 것이 보여 붉게 살이 쓸린 자국만 남은 손목을 쳐다보았다.
“무겁기는 또 무겁군.”
하긴, 자신과 키가 얼마 차이가 나지도 않는 자신을 안아 올리는 것도 재주라며 디안은 코웃음을 치며 어느새 얌전히 남자의 어깨를 붙잡고 안겨있는 자신의 꼴을 눈치채곤 뒤늦게 버둥거렸지만, 자신을 안아 올린 남자가 문밖으로 나서는 것이 더 빨랐다. 뜨거운 수증기가 가득했던 욕실에서 벗어나자 한기와 온기가 한방에 머물러 있는 커다란 침실에 도착한 것에 주변을 둘러 보았다. 휘장까지 처진 침대와 척 봐도 세심하게 만든 고급나무로 만든 의자며, 가구까지. 문제는 다 어두운색이라 사방이 칙칙해 보였다. 그나마 휘장이 하얀색이어서 망정이지, 그것마저 검은색이었다면 장례식에라도 온 줄 알 것이라며 디안이 주변을 둘러보자 위리놈이 침대에 다가가며 다시 물었다.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나?”
“........”
난 몰라요로 밀고 가려 하니, 이내 문밖에서 무언가 똑똑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집사장입니다. 말씀하신 것을 조사해 왔습니다.’ 하고 말하는 것에 위리놈이 디안의 몸을 침대에 뉘이곤 문밖의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받아 오는 것을 쳐다본 디안은 곁눈질로 그것을 쳐다보았다. 뭐라고 쓰여 있는지 처음에는 무표정한 그의 얼굴의 한쪽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것을 보고는 디안은 눈을 찌푸리기 시작했다. 조금 위험해 보이는 표정인데. 저도 모르게 이불을 끄집어 위로 올리고는 몸을 가리고 돌돌 말아 움츠리자 종이를 아무렇게나 근처 테이블 위로 던진 위리놈의 손이 그대로 이불에 가려진 발을 더듬어 찾아내곤 주욱 끌어당겼다.
“읏.”
“그래, 말을 전혀 할 줄 모르는 건 아니군. 귀는 없지만.”
아우라족이라 한다 하지. 네 종족은 이 뿔이 듣는 역할도 한다 했었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다리 사이로 허리를 집어넣고 가두듯 위에서 덮쳐 누른 자세로 웃어 보인 위리놈의 행동에 디안은 슬쩍 엉덩이를 물렸다. 다 괜찮은데, 성인 남성의 성기가 서로 부비적 거리고 있으려니 무언가 이상한 느낌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게다가 좀처럼 잘 건드리지 않는 부위인 뿔까지 다른 사람에게 붙잡혀 만져 지고 있으려니 소름이 돋는다. 디안이 바르작 거리자 고개를 숙인 위리놈의 혀가 길게 뿔을 핥아 올리자, 등줄기를 타고 무언가 타고 올라오는 감각에 디안이 숨을 삼켰다.
“아는지 모르겠군. 가끔가다 아우라 족이 노예로 팔려오는 경우가 있지. 가끔은 이 뿔이 흰색이기도. 때로는 너처럼 검은색인 경우가 있다.”
잘근, 하고 뿔을 잘게 깨무는 그의 행동에 디안이 고개를 돌리고 얼굴을 붉히자 위리놈은 마치 귀에라도 속삭이는 듯 작게 이야기를 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뿔은 잘려, 화장품이나 약, 혹은 간혹가다 밤놀이 기구로도 만들어지지. 요즘에야 그런 게 덜했지만. 예전엔 이 검은 뿔과 비늘이, 드래곤을 상상시켰으니 말이다.”
살은 절벽에 던져 드래곤의 먹이로 바쳤지. 조금이라도 자신들을 덜 괴롭히기 위한 용도로 말이야. 인간은 참 어리석어. 그렇지 않나? 나긋나긋하게 말을 하면서도 어느새 이불을 천천히 걷어 버리며 자신의 허리를 만지작거리는 행동에 디안은 몸을 꼬았다. 저도 모르게 스스로 제 꼬리로 허벅지를 감아올리곤 몸을 움츠리자, 위리놈은 숙였던 고개를 들어 올리곤 근처 협탁의 서랍을 열고는 정향유를 꺼내 입구를 막고 있던 코르크 마개를 뽑았다. 꽃과 열매를 짜낸 기름이라 향이 좋아 저도 모르게 디안이 코를 움찔거리자 위리놈이 픽 웃고는 손바닥에 향유를 덜어 바르곤 곧바로 손을 집어넣어 디안의 입구를 문질렀다.
“!!!!!!”
왜 그런 곳을 문지르냐 물어보기도 전에 손가락 하나가 욱여넣듯 비집고 들어오는 것에 디안이 아, 하고 신음을 내뱉자 위리놈은 손가락으로 속을 휘저으며 여전히 나른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아쉬운 일이지. 이렇게 감도가 좋은데. 품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무의미하게 이용하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니지.”
조금 뻑뻑한지 다시 향유병을 집어 들어 거의 작은 병의 반을 고환 근처에 뿌리며 골을 타고 흘러내리게 하며 찔걱이듯 추삽질을 하자 디안이 다리를 움츠려 모으고는 발길질로 위리놈을 차려 했다. 순식간에 붙잡혀 버린 발목에 디안이 다른 발을 들어 올리려 하자 혀를 차고는 몸을 뒤집게 해 그대로 위에서 짓누르는 행동에 디안이 몸을 일으키려 팔을 굽혀 피려 하니 가볍게 엉덩이를 치는 행동에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
“가만히.”
잠깐 사이에 손가락 하나가 더 자신의 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것에 침대 시트를 부여잡고 디안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배출 용도 이외로는 사용해 보지도 않는 곳인데 그곳으로 역으로 무언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속을 찔러대는 감각에 헛구역질이 나려 하기 시작했다.
“원래는, 널 결투 재판의 대리인으로 보낼 요령이었지.”
하지만 이런 용도도 나쁘진 않겠어. 어디까지 조용히 입만 다물고 있는지 보자고. 이내 허리를 쭉 편 위리놈이 디안의 안을 쑤셔대던 손가락을 빼내고는 제 것에 정향유를 부어 손으로 자위라도 하는 것처럼 문지르기 시작했다. 제 몸에도 꽤나 크고 작은 상처, 특히 등에 많았지만, 디안의 몸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덕분에 탄탄한 허벅지와 엉덩이 사이에서 번들거리는 기름을 보고 있자니, 제 것이 단단하게 서버리는 것에 가볍게 감탄사 같은 한숨을 내뱉곤 엉덩이골 사이로 찔러 올리듯 제 것을 부비기 시작했다.
“이름은 디안. 나이는 대략 스물이 좀 넘었나 보지. 케스티르족 출신.”
그 말에 번쩍 정신이 드는 것에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자, 남자가 무엇보다 즐겁다는 듯 환하게 웃는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에 숨을 삼켰다. 아무리 몰라도, 지금 하는 자세가 정사를 나누는 자세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대화를, 해야 한다. 남자가 받은 종이에는 아무래도 자신에 대한 정보가 쓰여 있는 듯, 모든 걸 다 안다는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남자의 행동에 급하게 자신의 허리 옆에 기대듯 팔을 뻗은 남자의 손목을 붙잡는 순간 아. 하는 짧은 감탄사가 들리더니 꾸욱, 하고 비문에 무언가가 억지로 들어 올려 하는것에 손톱을 세웠다.
“어떤 목소리일까.”
허리 아래로 반으로 갈라지는 듯한 감각에 헛숨을 들이키며 점점 자신의 안으로 들어오는 위리놈의 것에 시트를 급하게 더 부여잡고는 몸을 웅크리려 하자 머리카락이 억지로 붙잡혀 당겨진다. 활짝 휜 허리에 그대로 허리를 강하게 내려치듯 들쑤시자 퍽, 하고 기름이 튀며 체온 때문에 덥혀진 향이 확 튀어 오른다.
“하윽!!”
“케스티르족은 말은 거짓의 근원이라 한다지.”
찌걱거리며 느릿하게 뒤로 물려진 허리 때문에 박혀있던 위리놈의 성기가 반쯤 빠져나오자 디안의 허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급하게 자신의 허벅지를 감싸던 꼬리로 위리놈의 허벅지를 감싸 말자 머리카락을 붙잡던 손이 사라지곤, 자신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고는 이내 강하게 쳐올리기 시작하는 위리놈의 행동에 디안은 작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흐, 아!! 으윽, 하아!!!”
사내치고는 아우라 족의 허리는 제법 가는 편에 속했다. 정확하게는 체형에 비하면 이지만.
허리는 가는 편인데 가슴은 또 넓고 큰 편이다. 향유 때문에 번들거리는 손을 조금 내려 유두를 가볍게 잡아 당겨주자 허리가 둥글게 말린다. 색사에 익숙하지 않은 몸놀림 하나하나가 흥분을 자극하는 것에 시트를 붙잡고 하얗게 질린 손을 끌어 제 성기에 손을 올리게 하곤 자위를 시키는 듯, 제 한 손을 겹쳐 박는 속도와 맞추어 성기를 쥐고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 허릴 흔들어야지. 그럼 좋아질 거야.”
누가 좋아질 거라는 지의 주어가 생략되었지만, 디안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겁지겁 허리를 놀리기 시작했다. 색사에 처음 눈을 뜬 덕에 자극 하나하나가 강하게 밀려온다. 뒤는 아프고 야릇한 쾌감이 같이 오는 것을 주체할 수 없었다. 제 성기를 쥐고 겹쳐진 손을 따라 제 성기를 문지르며 허리를 들썩이자, 제 뒤를 쳐올리는 행동이 더 강해지기 시작한다. 강제로 몸을 벌리는 감각에 박자라도 맞추어 덜 들어오게 하려 허리를 조금 빼자 성기를 같이 만지던 손이 이내 엉덩이를 강하게 올려치는 것에 이상한 신음을 내뱉으며 허리를 들썩였다.
“허리를 흔들랬지, 빼라곤 하지 않았어.”
도망쳐 봤자 침대 위고. 빨리 끝내고 싶으면 구멍을 더 벌려. 제대로 받아내면 금방 끝내줄지도 모르잖아. 나긋하게 속삭이는 말과는 다르게 제 허리를 양팔로 안아 올리듯 잡아당기고는 허리를 숙이게 하고 엉덩이만 빼게 한 자세로 거칠게 처박아 대는 위리놈의 행동에 디안은 이를 악물고는 잔뜩 죄는 자신의 뒷구멍에 힘을 풀어 보려 애를 썼다. 사내가 들어오면 뒤의 힘을 풀고, 들어오면 바짝 조이자 속 안에 들어온 사내의 성기가 꺼떡거리며 배를 치는 것처럼 박아대는 것에 헛구역질을 해버렸다. 욱하고 입을 악물자 제 배 위로 손바닥을 올리고는 힘을 주어 꾸욱 누르는 행동에 저도 모르게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잘하네. 배에 상처는. 뭔가 찔렸나 보지. 여기쯤인가?”
마치 배 속을 관찰이라도 하는 듯, 찔린 부위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신념으로 허리를 쳐올리며 그 높이를 가늠하는 위리놈의 행동에 디안은 몸을 조금 들어 올려 자신의 배를 쳐다보았다. 쳐올릴 때마다 무언가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배의 상처보다 더 깊숙이 들어오는 것 같은 남자의 성기에 신음하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끼곤 그대로 쓰러지려 했으나 몸이 돌려지는 것이 먼저였다. 성기를 꽂은 채 가볍게 자신을 안아 올려 다리를 제 팔에 올려 박아대자 성기가 덜렁거리며 제 배를 툭툭 치기 시작한다. 쳐올릴 때마다 흔들리는 성기가 꺼떡이더니 이내 위리놈이 어느 한 곳을 찔러 올리자 번개가 치는 듯 허리가 울리는 감각에 눈을 커다랗게 뜨며 입을 벌리고는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만, 그만....”
“안 들리는군.”
그리고 넌 노예잖아. 부탁해야지. 그만해 주세요, 하고. 채근하는듯한 말투로 말을 하고는 제 성기를 붙잡고 귀두 끝 구멍을 엄지로 막아버리곤 흔들어 대며 연신 찔려 올렸던 곳을 다시 찔러 올리는 행동에 디안은 어찌할 줄 몰라 하며 아무렇게나 흔들리는 손으로 제 성기를 붙잡은 손을 붙잡고 힘을 주었다.
“그만, 그만해 주세요…. 그만.”
“무엇을?”
모르는 척 짐짓 물어보는 행동에 디안은 눈을 부릅뜨고는 차마 성행위를 무어라 해야 할지 몰라 아랫입술을 깨물고는 이거, 이거. 하고 위리놈의 아랫배를 손바닥으로 밀어내려 끙끙거렸다. 이거? 재미있다는 듯 위리놈이 알았다는 듯 허리를 주욱 빼자, 디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몸의 긴장을 조금 푸는 것에 눈을 가늘게 뜨며 그대로 다시 입구를 비집고 허리를 쳐올리는 것에 디안의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곧게 드러나는 목젖에 이를 드러내고는 깨물자 목을 옆으로 젖히며 괴로운 듯 신음을 내뱉는 디안의 행동에 큭큭 거리곤 웃었다.
“말은 거짓의 근원이란 말.”
오늘부턴 체감할 수 있겠군. 순진하기는. 또 이를 드러내 뿔을 깨무는 행동에 디안은 아래에서 저릿하게 올라오는 감각에 도리질을 쳤다. 흡사 소변이라도 마려운 듯한 감각에 허리를 비틀고 위리놈의 허리를 밀어내려 애를 쓰자 빠르게 더 박아대며 치덕 거리는 소리가 울려퍼지기 시작한다. 안돼, 안. 거칠게 흔들리는 시야에 이불 시트만 붙잡고 안된다는 말을 연신 터트리듯 말하고는 기름이 들쑤셔대 포말이 일 정도로 하얗게 거품이 엉겨 붙은 성기가 제 안에서 터지듯 무언가를 내뱉었을 때 자신도 이성의 끈을 놓고 몸의 힘을 풀었다. 제 얼굴까지 튈 정도로 무언가 튀는 감각에 희미하게 뜨던 눈을 깜빡이고 거친 숨을 내쉬자 잘했다는 듯 이쪽저쪽에 입술로 치근덕거리는 남자의 행동에 디안은 자신의 친우가 했던 말을 쥐어짜듯 내뱉었다.
씨발.
그 말에 남자는 짙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 미소를 마지막으로 디안은 붙잡고 있던 가느다란 정신을 놓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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