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취향

[노엘 파비] Young and Beautiful

you. and. me. 2017. 12. 1. 00:43







[노엘 파비]




Young and Beautiful

 

사실은. 어쩌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지 않을는지는 몰라도 당신을 아주 많이 좋아해요. 있는 모습 그대로.

 

브리짓 존스의 일기 -

 

 

 

 

학사모 사이즈랑 졸업의상 치수 잴 거니까 한 줄로 서세요. 낮고 굵은 남자의 목소리에 시끌벅적했던 아이들은 제각기 친구들의 손을 이끌며 줄을 길게 늘어지게 서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귀찮음이 몰려와 창문가에 턱을 괴고 한창 바쁜 교실 내부의 풍경을 무시하고 밖을 내다보았다. 건너편 건물, 그러니까 학교의 중앙 정원을 경계로 저 너머 건물에는 그 사람이 있다. 그것도 보기 좋은 곳에. 눈을 살짝 찌푸리자 초점이 더 뚜렷해진다. 두 개로 희미하게 분산되었던 이미지가 겹쳐 내가 원하는 사람을 그려냈다. 서류를 이리저리 뒤적거리며 점수라도 매기는 듯 한참을 들여다보는 그 모습에 입 꼬리가 저절로 올라간다.

12월은 금방이었다. 올 한해의 마지막의 경종을 알리는 날은 그렇게 많이 남지도 않았다. 조만간 이 중앙의 정원은 눈 덮인 설국으로 변할 것이고, 아이들은 저마다 밖에서 눈싸움을 몰래 즐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봄이 오겠지만.

 

나는 이 자리에 없겠지.

 

다른 의미로 찌푸려지는 미간에 혀를 찼다. 졸업 같은걸 왜 하는지. 이대로 여기 있어도 상관없지 않겠나. 나이 한 살 더 먹어봤자 변할 것은 성인이라는 거창한 이름밖에 없고, 오히려 그 1년의 차이로 인해 더 무거운 것을 짊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것은 사양인데. 치수를 잰 아이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어느덧 친하지도 않은 학생 한명이 내 이름을 부르며 날 찾는 목소리에 커튼을 쳐 상반신만 가린 체 창문 밖을 계속 주시했다. 이쪽의 시선을 느낀 건지 사내는 멈칫하고 종이를 들어 올린 손을 멈추고 옆을 돌아보았다. 눈의 시선이 얽히자마자 나도 모르게 웃었는지 상대편 표정이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귀여워라. 손가락 두 개를 겹쳐 입술에 쪽소리를 내게 맞추곤 상대편에게 날리는 시늉을 하자마자 동그랗게 커진 두 눈의 사내가 서둘러 커튼을 치는 것에 턱을 괴고 낄낄거리며 웃어버렸다.

 

노엘-너만 치수 맞추면.”

 

조심스럽게 열리는 커튼 너머의 학생이 내 표정을 확인하기도 전에 기분 탓인지 올라갔던 입 꼬리는 내려갔고, 휘었던 눈은 날카로워졌다. 나보다 한참이나 차이나는 여자 아이를 쳐다보다가 이내 커튼을 열어젖히고 재단사 앞으로 가 섰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다.

그대를 여름날에 비유해볼까요? 그대가 더 사랑스럽고 부드러워요.

거친 바람이 5월의 고운 꽃봉오리를 흔들고 여름날은 너무나도 짧지요.

 

큰 키 탓에 키부터 재려는 제단사의 손짓에 맞춰 뒤를 돌고 생각에 잠겼다. 여름날은 너무나도 짧지요. 언 듯 시선을 다시금 창문 밖으로 보았다. 선생님, 선생님이랑 이 장소에서 보낸 시간이 너무나도 짧아요. 쭉 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 의문은 그저 허공을 맴돌고 메아리처럼 내 속을 울렸다가 사라졌다. 메아리에 답을 해주는 사람도, 그걸 용기 있게 말해볼 사람도 없으니.

어깨를 재기 위해 줄자가 드르륵 거리며 소리를 울리기 시작했다. 나답지 않은 건가. 나도 모르게 땅을 쳐다보았다. 보이는 것은 구두를 신은 두 발 뿐. 복잡한 생각에 눈을 감았다. 끝났습니다. 하는 재단사의 말이 들릴 때 까지 난 눈을 뜨지 않았다.

 

 

 ◎


 

 

지난 가을날, 아직 그렇게 계절의 흐름이 겨울로 갈아타는 것을 느끼지 않았을 때 즈음, 농구를 하다가 우연히 이쪽을 마주한 선생님을 따라 농구공도 버려두고 뛰어갔다. 친구들이 저놈이 또 어디를 가나 싶어 내 이름을 불렀지만, 성큼성큼 계단을 두 칸씩 뛰어 올라갔다. 순식간에 선생님의 뒷모습이 보여 손을 붙잡았다. 가쁘게 숨을 내쉬고 그 손을 붙잡자 뒤를 돌아보는 선생님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서둘러 상담실을 향해 걸었다. 얼떨결에 이끌려 오는 몸에서 당혹감과 함께 달콤하기도, 향기롭기도 한 향이 파고들어 오는 것에 상담실 입구 앞에 걸려있는 상담실 비어있음간판을 뒤집어 상담 중으로 바꿔버렸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안 선생님이 악을 쓰며 문 밖에서 버티려는 것을 완력으로 끌어당기자 문틀에 한 손을 지탱하고 버티던 선생님이 튕기듯 내 품으로 들어오는 것에 몸에 힘을 주고 문을 닫았다. 그래도 성인 한명이 빠르게 품에 안기는 것에 몸이 뒤로 넘어가는 것에 선생님의 머리를 껴안고 몸을 조금 웅크리자 등 뒤로 둔탁한 바닥의 찬 기운과 약간의 아픔이 몰려오는 것에 눈을 찌푸렸다.

 

괜찮아?’

 

눈 안에 온통 들어오는 연한 하늘빛 눈동자에 웃었다. 괜히 아픈 척 투정도 부렸다.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리는 검푸른 머리카락이 볼을 간질이는 것에 선생님의 뺨을 손으로 감싸듯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입술을 맞췄다.

 

우리는 모든 게 다 처음이겠지.

 

우리가 연인이 된 것도.

우리가 사랑을 하게 된 것도.

 

연신 쪽쪽거리며 입을 맞추자 눈을 가늘게 찌푸리는 선생님의 습관에 눈가의 잔주름을 손으로 꾹꾹 누르며 목덜미에 입을 한번 맞추자 습관이 된 덕인지 옆으로 살짝 기울어지는 고개에 소리 내 웃어버렸다.

감성이 풍부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그런 스타일도 아니었다. 언뜻 붙잡은 손의 크기를 재 보았다. 한마디씩 작은 손. 손가락을 굽혀보자 자연스럽게 손 안에 다 들어오는 그 손도 내 취향이 되었다. 할 말이 많지만 말하지 못해 꾹 다문 입술도 내 취향이 되었다. 가끔 스쳐가도 기분 좋은 이 향기마저 내 취향이 되었다.

 

몸 곳곳에 내 흔적을 새겨 넣으면 조금 덜할까. 선생님을 갉아먹듯 파고드는 감정이 조금은 낮춰질까 했지만, 한번 탐하고 두 번 탐할 때 마다 더 늘어가는 독점욕은 숨길 수 없었다. 이따금 내벽을 문지를 때 터지는 신음이라던 지, 이제는 하도 거칠게 해 대는 섹스에 익숙해져 나에게 맞춰진 선생님의 몸이라든지.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손가락을 넣었을 때 만져지는 고른 치열. 시트를 구기듯 꽉 쥐어오는 손까지. 맞춤 정장이라도 입은 듯 맞는 그를 사랑하지 않고서야 버틸 방법이 없었다.

 

어색하게 사랑한다고 말 하자 어색하게 돌아오는 사랑의 답문에 나는 또 웃었다.

 

내 평생 이 말을 할 수 있을지도 잘 몰랐는데.

 

웃는 얼굴 좀 보여주세요. 가끔 가다 요구하는 나의 사항에 어색하게 미소를 짓는 그 얼굴이 좋아 나는 또 입을 맞춘다.

 

가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마치 처음 만난 초여름의 계절처럼.

 

 

 ◎

 

 

졸업파티 할건데.”

 

이번엔 특이한 컨셉으로 해보는 건 어때? 예를 들면.. 할로윈 풍 졸업파티라던지!”

 

아이의 의견은 순식간에 다른 의견들로 인해 천천히 사라져갔다. 여장 파티! 남장파티! 남녀 공학이다 보니 다양한 의견들이 속출해서 나오는 것에 무심하게 자리에서 코트를 걸치고 일어났다. 어차피 결정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것이니 나는 그저 보고 가기 싫으면 가지 않고, 가고 싶으면 가면 그만이었다. 그 누구도 코트를 입고 나오는 나를 저지하지 않았고, 저마다 올 해의 가장 큰 행사를 생각해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밖으로 나오니 교무실이 있던 옆 건물에서 다른 건물로 이동하려는 선생님이 보여 서둘러 종종 걸음으로 쫓아갔다. 소복하게 밟히는 눈. 안쪽에서는 모르는 첫 눈 위에 새기는 첫 발자국. 선생님도 그것을 보았는지, 자신의 발을 쳐다보며 걷는 것에 살금살금 뒤로 다가갔다. 눈 소리 덕분에 묻히는 발걸음 소리에 몰래 선생님 뒤로 다가가는 것에 성공한 뒤 어깨를 두어 번 톡톡 치곤 집게손가락을 쭉 내밀자 당연하게도 차가운 볼이 손끝에 푹 닿는다.

 

“........”

 

이거 속는 사람이 아직도 있구나.”

 

이거 하는 사람도 아직 있나보지.”

 

미간을 곱게 찌푸린 선생님 머리 위의 눈을 두어 번 털어주곤 선생님의 옆을 나란히 걸었다. 자세히 보니 품 안에 종이 쪼가리들을 눈에 젖지 말라고 품에 안고 가는 것에 코트를 벗어 머리 위부터 덮어 주자 온기에 놀란 선생님이 이쪽을 쳐다 보는 것에 으- 춥다. 하고 괜히 팔뚝을 싹싹 비비는 척을 해 보았다. 옆을 흘겨보자 당연히 코트를 다시 돌려주려는 선생님을 팔로 감싸 안고 바로 선생님이 가려는 듯 한 건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가자 선생님도 어이가 없는지 픽 웃으며 따라 움직이는 것에 기분이 좋아 입을 열었다.

 

이제 졸업하면 선생님 언제 보나.”

 

대학생이니까 주말에 보면 되지.”

 

맨날 봤는데 어떻게 주말에 한번 보는걸 참아내요.”

 

진심으로 입술이 튀어 나오려는 것을 애써 참으며 말하자 좀 참아야 돼, 너는.’ 하는 말에 선생님의 어깨를 붙잡고 우뚝 멈춰 섰다. 같이 움직이던 발걸음이 멈추자 선생님이 이쪽을 보는 것에 고개를 살짝 숙이고 물었다.

 

나 이제 성인인데.”

 

아직 졸업도 안했는데 벌써?”

 

그럼요. 마음은 이미 선생님이랑 동갑인데.”

 

말만 잘해요, 말만. 그렇게 말하는 선생님을 덮고 있는 코트 자락을 끌어올려 입술을 살짝 빠르게 맞추고 떨어지자마자 달려드려는 선생님의 양 손을 붙잡았다. 낄낄 거리며 웃자니 코트가 뒤로 넘어가 결국엔 선생님까지 눈을 맞는 것에 서둘러 코트를 주워 다시 걸쳐 주곤 속삭였다.

 

선생님. 제가 더 이상 젊고 잘생기지 않아도 사랑해 줄 겁니까?”

 

“..........”

 

제가 가진 건 없고 인생에 찌든 영혼 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어도?”

 

눈이 펑펑 흘러 내려서 조금 쌓일 정도가 되어도 선생님은 그저 눈을 말똥말똥 뜨고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답지 않게 너무 어색한 질문이었나 싶어서 멋쩍게 웃으며 손을 놓으려 하자 손으로 차가운 온기가 스며들었다. 날 붙잡은 선생님의 손을 보기가 무섭게 눈덩이 하나가 얼굴에 날아오는 것에 정통으로 맞아 정지 상태로 눈을 털어낼 생각도 못하고 서 있자니 분에 삭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 정도 각오도 안하고 나랑 사귀자 한거냐.”

 

너랑 있으면 모든 게 모험이야. 알겠어? 적어도 난 앞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얼음길을 걷고 있다고. 네 질문 자체가 한심해서 할 말이 없다.

 

한참을 뜸을 들이는 것에 얼굴의 눈을 털어내자 찬 바람 때문인지, 화가 나서인지 상기된 얼굴이 보였다.

 

당연한 것을 물어보지 마.

 

차가운 눈이 손에 닿아 녹아내리는 감각에 코트마저 나에게 집어던지는 선생님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이쪽을 피하려고 전력으로 달리는 선생님의 뒤를 쫓아가며 온갖 야한 말을 던지자 더 붉어진 얼굴로 무어라 하며 도망치는 선생님의 모습에 웃었다.

 

묵혔던 감각들이 봄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제가 만약 천국에 간다면 그와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세요.

신이시여, 가능하다고 해 주세요.

 

익숙한 노래 가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아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시 한 번 당연한 것의 질문을 하지 않기 위해. 반복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선생님에겐 들리지 않게. 저 멀리 앞서 뛰어가는 선생님의 모습이 조금씩 작아질 때 즈음 쫓아가는 것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가 이곳을 떠나도, 변하는 것은 없다는 것을 한 번 더 되새겨 보며.

 




[Young and Beautiful]